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04화 (204/621)

204화. 경천동지(驚天動地) (5)

한빈은 장운현에서의 사건이 시작된 바로 그곳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어찌나 빠른지, 한빈이 통로에서 나오자 뒤쪽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공기가 같이 빠져나왔다.

팡!

마치 밀봉된 명주의 호리병 뚜껑을 따는 듯한 청량한 소리.

하지만,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뒤쪽에서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세가 휘몰아쳐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쩌-억.

우르릉.

벽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천둥이 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미세하게 먼저였다.

이것은 한빈과 대결을 펼치던 흑선이 저 통로에 갇힐 거라는 이야기였다.

쿠-아앙.

한빈의 앞에 있던 통로가 굉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한빈은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단서를 놓친 한빈이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통로 쪽에서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쩌억.

지반이 갈라지는 소리에 한빈이 월아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숨 몇 번 쉴 시간 만에 막힌 통로의 입구에서 먼지가 풀썩댔다.

툭. 툭.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흙더미.

한빈이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였다.

막혔던 구멍이 터지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팡!

먼지와 함께 깨진 청강석 조각이 한빈에게 쏟아졌다.

마치 암기처럼 쏟아지는 청강석 조각 사이로 번뜩이는 금속이 튀어나왔다.

흑선의 검이 분명했다.

한빈은 재빨리 월아로 쳐 냈다.

챙.

슬쩍 맞닿은 흑선의 검이 묘한 궤적을 그리며 한빈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휙.

한빈이 왼쪽으로 빙글 돌며 공격을 피했다.

구걸십팔보 중 회(回)의 묘수.

하지만 계속 따라오는 검.

다시 쳐 냈지만, 월아를 피해 독수리의 발톱처럼 심장으로 뻗어 오는 흑선의 검.

한빈은 월아로 막지 못한 검은 흘려보내고 왼팔로 받았다.

쩡, 쩡.

검날과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같은 장면이 몇 번씩 반복되자 금상첨화를 썼던 왼팔이 저릿해져 왔다.

그러던 중, 한빈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가죽 팔찌가 떠올랐다.

어떤 방법으로도 열 수 없고.

어떤 공격에도 깨지지 않은 금 구슬이 박힌 팔찌 말이다.

그 작은 면적으로 상대의 검을 막을 수만 있다면?

아마 상대의 검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었다.

적은 면적으로 막아 낸다라?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용린검법의 초식 중 백발백중.

상대가 자신보다 경지가 낮을 때만 쓸 수 있는 초식.

어불성설 같지만, 흑선의 경지가 높은 것이지 흑선의 검이 한빈보다 경지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한빈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백발백중.’

한빈은 팔찌에 박힌 금 구슬로 흑선의 검 끝을 맞힌다고 생각하고 초식을 펼쳤다.

왼팔과 팔찌에 박힌 금 구슬이 움직였다.

쓱.

쨍!

날카로운 파열음이 귓가에 울렸다.

성공한 것이다.

공력을 한 개 소모했지만, 남는 장사.

지금과 같은 느낌이라면, 앞으로 스무 합 이상을 흑선의 검이 버텨 내지 못할 터였다.

한빈이 왼팔로 막은 수를 본 흑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왼팔로 막은 것도 이상한데, 부딪힌 소리 또한 이상했다.

저릿한 기운이 검을 타고 전해졌다.

흑선은 더욱 내공을 끌어올렸다.

스스스.

거대한 기운이 단전에서 혈맥을 타고 흘러나왔다.

상대인 적도 느낄 수 있는 기운.

바늘처럼 얇게 뻗치던 검기가 점점 굵게 변했다.

종남 삼십삼검 중 마지막 초식인 중원일통으로 바꾼 것이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 공격이라 선고하는 것 같은 흑선의 모습.

한빈을 향해 검을 뻗자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푸앙!

왼팔로 흑선의 검을 막은 한빈이 주르륵 밀려 났다.

순간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팔찌에 박아 놨던 금 구슬의 모양이 변한 것이다.

타원형의 금 구슬이 약간 돌아간 듯 상부와 하부가 약간 어긋나 있었다.

이 금 구슬은 공손세가에서 얻은 안배.

열지 못해서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가 아니던가?

한빈이 자신의 팔목과 흑선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흑선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묘한 수법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 내던 한빈에게 한계가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흑선이 웃음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내 검에 목을 내놓아라.”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약한데? 이 정도로 내 목을 베러 온 거면 실망인데.”

“아직 입은 살았구나.”

“이렇게 멀쩡한 걸 보면 내가 입만 산 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그걸 몰라보는 걸 보니 네 눈이 삐었구나.”

“이놈.”

“나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입만 놀리지 말고 사내답게 실력으로 해결하자고.”

한빈이 자신의 검, 월아를 턱짓으로 가리키자 흑선 다시 달려왔다.

한빈은 자신의 도발이 먹혔다는 듯 기분 좋게 받았다.

쨍. 쨍.

그때였다.

흑선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획.

흑선이 실수한 것은 아니었다.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반 토막이 난 채 부러진 것이다.

검기를 머금은 검의 반쪽은 뒤쪽으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푹.

순간 당황한 흑선의 눈이 커졌다.

한빈이 이렇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었다.

흑선은 한빈이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판단하고 단전을 완전히 개방했다.

우우웅.

흑선의 몸에 휘도는 내공이 공기와 공명했다.

이를 악문 흑선이 반쪽짜리 검을 한빈에게 던졌다.

슝!

동시에 흑선이 주먹을 날렸다.

순간 한빈의 눈이 커졌다.

무시무시한 흑선의 기세 때문에 놀란 것도 있지만, 흑선의 복부에 보이는 진청색 점이 더욱 놀라움을 주었다.

아무래도 지급 구결은 실력에 비례해서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위쪽에서 거대한 청강석 조각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통로만 무너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쾅.

묘하게 한빈과 흑선 사이를 가로막은 청강석 덩어리.

하지만, 흑선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팡.

청강석을 가루로 만들고 뻗어 왔다.

한빈은 재빨리 양팔을 교차해 주먹을 막았다.

툭.

금 구슬의 위쪽이 열렸다.

한빈은 내용물은 확인하지 않고 금 구슬의 위쪽을 잡아 흑선의 복부를 향해 던졌다.

‘백발백중.’

‘성동격서.’

이번에는 운에 기대해야 했다.

아마도 저걸 막는다면 흑선의 주먹도 성치 못할 터.

한빈도 지금 흑선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기세가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정체되어 있었다.

흑선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약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슝!

파공성을 내며 암기가 되어 날아가는 반쪽 금빛 구슬.

흑선은 내공을 담아 금빛 구슬을 쳐 냈다.

하지만, 금빛 구슬은 태극을 그리며 휘어져 들어왔다.

흑선의 권법을 피해 나가는 묘한 곡선.

금 구슬이 점점 자신을 향해 날아오며 그리는 선은, 흑선의 눈에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도가의 기운을 품고 날아오는 느낌이었다.

퍽!

반쪽짜리 금빛 구슬이 흑선의 복부에 꽂혔다.

털썩.

흑선이 허무하게 주저앉았다.

살짝 감기는 흑선의 눈꺼풀.

그는 마치 죽기 전 유언을 남기는 사형수처럼 결의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태극혜검? 무당파?”

스르륵.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그의 신형.

한빈의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쓰러진 모습을 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地級) 구결 흑(黑)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地級) - 近(근), 자(者), 묵(墨), 흑(黑)]

순간 비급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비급이 넘어가더니 초식을 나타내는 부분이 눈앞에 나타났다.

[흩어진 용린검법의 구결 중 하나의 초식을 완성했습니다. 초식이 활성화됩니다.]

[지급 초식 근묵자흑(近墨者黑)을 획득하셨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 용린검법의 초식 중 금제법에 해당합니다. 천령개를 통해 상대방에게 구결을 심을 수 있습니다. 필요 시간 일각. 필요 구결 한 개. 단 한 명에게만 시전할 수 있습니다. 대상을 바꾸려면 이전 대상에게 심은 구결을 제거해야 합니다.]

묘한 초식이었다.

금제법이라니?

이것을 어디에 쓸지 난감하기만 했다.

게다가 시전 시간이 일각이기에, 전투 중에는 사용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초식을 확인한 한빈이 혼잣말을 뱉었다.

“근묵자흑이라…….”

동시에 흑선을 바라봤다.

시험해 볼 대상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빈은 말을 맺지 못했다.

위쪽에서 다시 떨어진 청강석 때문이었다.

획!

쿵.

한빈은 재빨리 정신을 잃은 흑선을 들쳐 메고 뛰었다.

물론 반쪽짜리 금 구슬도 챙겼다.

한빈은 흑선을 들쳐 멨지만, 그가 펼치는 구걸십팔보에는 영향이 없었다.

한빈은 떨어지는 청강석을 피하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순간, 한빈은 떨어지는 청강석에 묘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일정한 법칙에 의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관진식에 영향을 받는 것일 터.

쿵. 쿵.

드디어 떨어지던 청강석이 멈췄다.

한빈은 주위를 둘러봤다.

흑선과 자신이 있는 삼 장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청강석이 막고 있었다.

마치 관 속에 들어온 느낌에 한빈은 혀를 찼다.

“이거 뭐 됐네.”

그러고는 흑선을 바라봤다.

죽지는 않았다.

힘을 모두 소진했는지 자고 있다.

한빈은 조용히 그의 머리 위에 손을 갖다 댔다.

‘근묵자흑.’

새로 얻은 초식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근묵자흑은 시전 시각이 무려 일각이었다.

지금 흑선의 상태를 보면 일각 이상을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뭐, 그 전에 일어나면 초식을 취소하면 그만이고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빈의 눈앞에 실력편이 펼쳐졌다.

실력편의 구결들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빈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구결을 심는다는 것은 금제를 거는 것이었다.

그 금제가 부정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일 수도 있었다.

구결은 비급 속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한빈의 것이었다.

스스슥.

비급의 구결이 획이 되어 한빈의 심장으로 들어왔다.

구결의 획이 마치 내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혈맥을 타고 오른손으로 흘러들어 갔다.

팔을 맴돌던 획이 한빈의 손바닥을 통해 흑선의 천령개로 들어갔다.

스스슥.

순간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비급에는 설명되어 있지 않던 효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흑선의 기억이 손을 타고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억이 짜릿하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실제로 짜릿한 기운이 손을 타고 팔에서부터 머리까지 흘러들어 왔다.

한마디로 기억의 파편.

한빈은 문득 자신의 기억도 흑선 쪽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바로 해결되었다.

한빈의 몸에서 흘러 나간 것과 흘러들어 온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한빈의 손이 번쩍하고 빛을 냈다.

그의 천령개에 구결을 새겨 넣은 것이었다.

한빈은 지금 근묵자흑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라 생각했다.

일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뜻.

한빈은 지금 흑선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빈은 흑선의 천령개에서 손을 뗐다.

그때였다.

근묵자흑의 영향인지 아니면 시간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선이 신음을 뱉어 냈다.

“끄응.”

머리를 감싸 쥐며 일어나는 흑선이 한빈을 바라봤다.

눈앞에 적이 있는데도 흑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미간을 좁히며 질문을 쏟아 냈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나도 아직은 모르겠어.”

“대체 무슨 짓을…….”

말끝을 흐린 흑선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것도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내 머릿속에 무엇을 넣어 놓은 것이냐? 대체!”

“역시 상단전이 개방된 인재답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게 느껴지다니.”

“그, 그거 어떻게…….”

흑선은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