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00화 (200/621)

200화. 경천동지(驚天動地) (1)

잠시 뒤.

그들의 수레가 멈춘 곳은 한 폐가의 앞이었다.

공손명후가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분위기가 음침하네요. 이쪽에 창고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창고는 아래쪽입니다.”

공손명후가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그는 발길을 멈추지 않고 폐가로 걸어 들어갔다.

폐가로 들어선 소대섭은 적혈맹호대 대원들과 함께 공손명후가 안내하는 비밀 통로의 입구 앞에 섰다.

묘한 분위기를 내는 통로였다.

통로의 입구에는 거대한 비석이 놓여 있어, 마치 무덤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입구를 확인한 소대섭이 대원들에게 외쳤다.

“모두, 출발한다!”

그때부터 적혈맹호대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나무통을 하나씩 들고 힘들게 비좁은 통로를 통해 어딘가로 이동해야 했다.

모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통로가 불규칙적으로 뚫려 있어서, 가끔은 나무통을 등에 짊어진 채 오리걸음 자세로 통과해야 했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조호가 말했다.

“헉헉, 혹시 훈련을 시키려고 일부러 여기에…….”

“쉿, 주군이 비밀을 요하는 임무라 했다, 조호야.”

장삼이 눈을 찡긋하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알았어요, 장삼 아저씨.”

“알았다고 하는 놈이 이렇게 소리를 내느냐? 조호야, 목소리를 낮추거라.”

“하도 깊어서 밖으로 제 목소리는 새어 나가지도 않을 텐데요, 장삼 아저씨.”

“하긴 그렇다, 조호야.”

장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혈맹호대는 심미호와 몇 명의 열외 인원만 빼고 공손명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앞장서던 공손명후가 걸음을 멈췄다.

“이곳입니다.”

“감사합니다, 공손 공자님.”

소대섭이 포권하며 앞을 바라봤다.

공손명후가 발길을 멈춘 곳에는 제법 큰 공간이 있었다.

마치 비밀 통로 속 또 다른 비밀 공간이 있는 것만 같았다.

소대섭이 외쳤다.

“모두 짐을 이곳에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모두가 낮은 목소리로 복명복창하며 나무통을 내려놓았다.

소대섭은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서찰을 살폈다.

서찰은 마치 기관진식의 설계도면 같았다.

휴식도 잠시, 소대섭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낸 뒤, 도면에 맞게 나무통을 쌓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한빈은 도면대로 나무통을 쌓으라 했다.

가져온 나무통을 모두 쌓자 소대섭이 외쳤다.

“이제 다섯 번 남았다!”

그 소리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

“대주님, 저희 죽습니다.”

하지만, 소대섭은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모두 공손 공자의 뒤를 따른다.”

소대섭의 뒤를 따르던 조호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비볐다.

그 모습에 장삼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조호야.”

“장삼 아저씨, 이상하게 대주님의 모습에서 주군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아서요.”

“나도 그렇구나. 원래 수하는 주군을 닮는 게 당연하지.”

“그럼 저도 닮아 가는 건가요?”

“어쩌면 벌써 조금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장삼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작업이 끝난 것은 꼬박 다섯 시진이 지나고 나서였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온 곳은 들어올 때와는 다른 입구였다.

여기는 마을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절이었다.

소대섭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소대섭은 한걸음에 달려가 포권했다.

“주군, 적혈맹호대 대주 소대섭 외 십오 인,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수고했어, 소대섭 대주. 덕분에 중요한 물건을 안전한 곳에 보관할 수 있었어. 이제 푹 쉬라고.”

“감사합니다, 주군.”

소대섭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밀로 하라고 하고서는 마치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빈은 소대섭을 바라본 채 기감을 최대한 넓혔다.

순간 질척질척하면서도 기분 나쁜 기척이 오감을 자극했다.

한빈은 의도적으로 꼬리를 드러내며 그들을 유인했다.

한빈은 장운현에 남아 있을 만한 적들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었다.

한빈과 나머지 적은 지금 장기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빈은 말이 아직 많이 남은 상태.

적들은 한빈의 말을 최대한 줄이려 할 것이 분명했다.

한빈이 숨겨 놓은 보물도 그 말 중에 하나라 판단할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숨겨 놓은 물건을 찾으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닐 것이 분명했다.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물건을 탐내는 것은 한빈이 장운현을 뜨고 나서일 것이다.

한빈은 그 틈을 노리기로 한 것이었다.

잠시 뒤.

한빈과 적혈맹호대는 객잔에 도착했다.

한빈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맞춰서 설화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설화의 손에는 새장이 들려 있었다.

물론 새장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비둘기였다.

설화가 말했다.

“한 마리만 꺼낼까요?”

“세상이 흉흉하니 두 마리 꺼내라, 설화야.”

“네.”

“그리고 이거…….”

한빈은 돌돌 말린 쪽지를 설화에게 건넸다.

설화는 아무 말 없이 쪽지를 가느다란 통에 넣어 비둘기 다리에 묶었다.

설화가 물었다.

“지금 날릴까요?”

“지금 날리고 이제 쉬자.”

“그럼 날릴게요.”

설화가 비둘기 두 마리를 손에서 풀어놨다.

비둘기가 힘차게 날갯짓하며 밤하늘을 날았다.

푸드득.

그 모습을 본 한빈은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하품을 하며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소대섭이 물었다.

“주군, 지금 보낸 전서구는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북팽가?”

“하북팽가요?”

“소대섭 대주 표정이 왜 그래? 최소한 안부 인사 겸 중간보고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렇군요.”

소대섭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직 시야에 보이는 비둘기를 바라봤다.

무사히 하북팽가까지 갈 수 있을까?

비둘기가 모두의 시야에서 막 사라졌을 때였다.

피슉!

어디선가 암기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전서구 한 마리가 떨어졌다.

털썩.

누군가 황급히 달려가 전서구를 낚아챘다.

* * *

다음 날 아침.

하북팽가의 가주전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한빈이 보낸 전서구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쪽지를 펼친 채 가주 팽강위와 집법당주 팽대위가 마주 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팽강위였다.

“막내가 예상치 못한 공을 세운 것 같네.”

“형님, 예상치 못한 공은 아니죠. 그런데 막내는 무사한 겁니까?”

“아무 일이 없다는군. 다만 고수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났다는군.”

“고수라는 게 누굽니까? 혹시 하남정가에서 막내를 도왔다는 청운사신이라는 은거 기인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런데 말일세…….”

팽강위가 미간을 좁히며 조그마한 쪽지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팽대위가 황급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역병에라도 걸렸답니까?”

“그게 아니라, 이 문구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러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팽강위는 쪽지를 동생 팽대위 쪽으로 던졌다.

휙.

날아온 쪽지를 받은 팽대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글귀를 살폈다.

팽대위는 팽강위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글귀를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사실 내용이 복잡하다면, 난독증에 시달리는 팽대위가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무림을 좌지우지할 하북팽가의 보물을 장운현 깊숙이 숨겨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왜냐하면, 무림을 좌지우지할 하북팽가의 보물은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를 것이, 하북팽가의 비기인 혼원벽력도가 반쪽짜리가 된 것이 바로 오십 년 전이었다.

지금 가주인 팽강위의 할아버지 대를 마지막으로 혼원벽력도의 완벽한 초식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전해지는 초식이나 비급 모두 묘하게 반쪽만 남은 것이다.

분량으로 반쪽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묘하게 마지막 구결에서 초식과 내공의 운용이 들어맞지를 않았다.

팽강위가 요즘 자주 패관에 드는 이유도 그 혼원벽력도를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팽가의 최고 비기마저 불완전한 마당에, 무림을 좌지우지할 보물이 대체 뭐란 말인가?

“휴…….”

팽대위는 얼마 안 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팽강위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 아마도 급하게 전서를 보내느라 실수한 게지.”

그때였다.

둘의 대화에 끼어드는 이가 있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아버님.”

팽강위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과 꼭 닮은 대공자 팽혁빈이 있었다.

늦게 도착한 팽혁빈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팽강위가 말했다.

“말해 보아라.”

“아마, 무림을 좌지우지할 보물이란 장운현의 민심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세가의 힘은 무력에서 나오지만, 세가를 인정하는 것은 바로 민심이 아니겠습니까?”

꿈보다 해몽이 좋지만, 모두는 팽혁빈의 의견이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그것도 맞는 말이구나.”

팽강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팽대위도 한마디 거들었다.

“역시 팽가의 대공자답군.”

그때 팽혁빈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말했다.

“장운현에서의 일들이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팽혁빈이 덩치에 걸맞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팽강위가 재촉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소가주 후보는 한빈이가 맡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제가 막내에 대해서 조사한 바가 조금 있습니다. 제 생각에 가문을 경영한다는 것은 초식을 펼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문을 경영하고 가문을 최고로 올려놓을 지략이 부족합니다.”

“음.”

팽강위는 조금 깊은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저렇게 뒤로 빼는 모습은 평소 첫째와는 달랐다.

첫째는 진짜 막내를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때 팽혁빈이 가주 팽강위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저는 장운현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공을 세운 막내를 제가 맞이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그리하여라.”

팽강위의 허락과 함께 팽혁빈은 물러났다.

사라지는 팽혁빈의 모습을 본 팽강위는 기분 좋은 듯 옅은 웃음을 흘렸다.

소리 없는 그의 웃음에 팽대위가 물었다.

“좋으십니까?”

“그럼 좋지 않고.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가문의 평화야.”

그의 웃음과 함께 가주전의 창문으로 해가 점점 밝아 왔다.

* * *

보름 뒤.

한빈 일행은 봉쇄된 마을 입구의 초소에 도착했다.

한빈이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유찬은 막사에서 뛰어나왔다.

마치 적토마처럼 한빈을 향해 돌진하는 강유찬.

강유찬은 투구를 벗어 바닥에 던진 후, 한빈을 안았다.

“수고했네, 팽 공자.”

“…….”

뜻밖의 상황에 한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시 강유찬의 품에 파묻혀야 했다.

그렇게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나자, 강유찬은 재빨리 떨어졌다.

“흠, 미안하네, 너무 기쁜 나머지 내 실수했네. 정말 고맙네, 팽 공자.”

“아닙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네. 이번 일만 끝나면 자네의 우국충정을 폐하께 알리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강유찬은 시선을 돌려 서재오를 바라봤다.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강유찬은 조용히 서재오에게 다가갔다.

우락부락한 강유찬이 다가오자 서재오는 움찔 뒤로 물러났다.

서재오의 예상과는 달리 강유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나 좀 보세.”

“네, 알겠습니다, 사숙.”

서재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찬은 앞장서서 막사 뒤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한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쉽지 않군.”

한빈이 이렇게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는 한빈이 아니라 이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빈의 행세를 하며 다니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한빈을 아는 자와 마주치면 난감했다.

일단은 상황을 잘 넘겼다고 생각한 이무명의 머릿속에 문득 한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한빈은 장운현에서 마지막 결산을 하고 온다고 하고서는 객잔에 남았다.

마지막 결산이라는 것이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을 뜻하는지 떠오르지 않아 불길한 이무명이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라진 서재오와 강유찬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이무명은 고개를 돌렸다.

한빈이 남아 있는 장운현 쪽이었다.

이무명이 한빈을 걱정하며 멀리 떨어진 마을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마을 쪽에서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르릉!

쾅!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음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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