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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99화 (199/621)

199화. 강북의 생불(生佛) (4)

양손에 당과를 든 설화는 활짝 웃으며 천천히 지팡이를 짚은 사내아이에게 다가갔다.

설화가 다가오자 사내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마주치기에는 설화의 의복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사내아이의 눈에는 설화가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하지만, 설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먹을래?”

“…….”

“싫어? 싫으면 말고.”

“아, 아니에요.”

“이거 먹어.”

“가, 감사해요.”

사내아이는 당과를 받아 들었다.

당과를 받은 사내아이가 머뭇거리자 설화가 말했다.

“그냥 지금 먹어.”

“그래도 괜찮을까요?”

“부담 갖지 말고 먹어.”

설화의 환한 미소에 사내아이는 당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사내아이의 눈이 커졌다.

이처럼 맛있는 당과를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을 퍼먹은 듯 신선하기만 했다.

중간에 약간 쓴맛이 나긴 했지만, 그 쓴맛 때문에 더 단맛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냥 강렬한 정도가 아니라, 항상 막힌 것 같았던 몸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기분에 사내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설화의 손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확히는 그냥 올려놨다 해야 정확할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의 아비가 불렀다.

“상하야, 빨리 가자꾸나.”

그 말에 상하라 불리는 사내아이는 여자아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이 은혜는…….”

상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상하는 당과 꼬치를 든 채 멍하니 주변을 살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자신에게 당과를 준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상하는 아비에게 걸어갔다.

자신의 지팡이를 두고 온 줄도 모르고 말이다.

상하는 아비에게 말했다.

“여기는 신선이 사는 곳인가 봐요.”

“그게 무슨 말이니?”

“방금 신선 누님을 봤어요.”

“신선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아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이들은 상하와 그의 아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때였다.

염소수염의 사내가 목소리를 높여 친구를 불렀다.

“이보게, 상하! 지팡이는 챙겨야지.”

하지만, 상하와 그의 아비는 대화를 나누며 점점 멀어져 갔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울타리 옆에 버려진 지팡이로 향했다.

그러고는 멀어지는 상하의 뒷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의 시선이 떠나는 상인과 덩그러니 남겨진 지팡이 사이를 오갔다.

물론 확인을 하면 할수록 의문이 피어나는 건 당연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저리 멀쩡하게 걷는다고?”

“그, 그게 말이 되나?”

“아니, 약도 안 먹었잖아. 뭘 했기에 절던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온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긴, 저들이 한 거라곤 하나밖에 없잖아.”

“하나밖에 없다니? 내가 보기에는 약하고 식량 타 간 것밖에 없는데.”

“아니, 계약서를 썼잖아.”

“혹시…….”

“혹시는 무슨 혹시?”

“그게 아니라 계약서에 신통력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그러지.”

“신통력이라면 설마…….”

모두가 웅성대는 가운데, 염소수염의 상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이제는 믿겠네…….”

상하를 자주 본 그로서, 이것은 한 단어로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바로 기적.

염소수염의 상인은 객잔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동시에 몇몇 사람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조금의 의심도 없는 순수한 그들의 눈빛은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도 같았다.

* * *

설화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울타리 밖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이냐? 설화야.”

“사람을 구한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공자님.”

설화는 멀어져 가는 상하와 그의 아비를 바라봤다.

설화의 모습을 보고 한빈도 조용히 그들을 바라봤다.

다리를 절던 상하에게 기적을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설화가 준 당과에는 역병을 일으킨 혈독을 단숨에 제거하는 환약이 섞여 있었다.

마치 수로를 막고 있던 돌덩이를 치우면 물이 지나가는 법과도 같았다.

물론 설화가 천령개, 즉 정수리의 한가운데를 통해 진기를 불어 넣어 약 기운을 이끌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바로 회복은 못 할 터였다.

설화 덕분에 원인이 제거되고 막혔던 혈맥이 뚫리니, 자연스럽게 지팡이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것은 한빈뿐 아니라 밤을 새워 가며 약재를 연구한 장자명의 공도 컸다.

울타리 밖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빈에게 물었다.

“공자님, 궁금한 게 있어요.”

“편안히 말해 봐, 설화야.”

“대가 없이 저 사람을 구한 이유가 뭐예요? 다른 약하고는 달리, 당과에 넣은 약은 비싼 거잖아요.”

설화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보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확히는 대가가 없는 건 아니야.”

“네? 남들하고 똑같이 계약서 한 장만 받으셨잖아요.”

“정확히는 저 아이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지. 나는 저들이 강압이 아닌, 진심으로 나와 하북팽가에게 호의를 보이길 원한 거란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쓴 것이고…….”

한빈은 뒷말을 줄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설화는 탄성만 흘렸다.

울타리 밖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왠지 한빈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뭔가 과한 것 같기도 했다.

울타리 밖의 몇몇은 한빈을 향해 절까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화가 보기에 지금 한빈이 걷고 있는 길은 무인의 길도 아니요, 상인의 길도 아니었다.

교주의 길이었다.

물론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 * *

한편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심미호와 서재오는 울타리의 문을 닫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서재오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계약서를 열 장만 쓴 한빈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소성의 위력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말이다.

지금도 줄에서 이탈을 안 하고 서 있는 사람들이 그 증거였다.

도망가기는커녕, 한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이들을 보면 황당하기까지 했다.

서재오는 지금의 광경이야말로 강호행의 숨겨진 뜻이라 생각했다.

강호행에서 배울 것은 세상을 읽는 눈이었다.

거기에, 협(俠)에 더해서 익(益)도 중시해야 할 것을 배웠다고 할까?

힐끔 옆을 바라보니, 한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연 앞으로 하북팽가의 사 공자는 어떤 행보를 펼칠까?’

서재오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서재오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빈이 심미호를 바라봤다.

“심 부대주.”

“네, 주군.”

“소대섭 대주 좀 불러와.”

“간단한 일이면 제게 맡기셔도…….”

“그동안 수고했으니 심 부대주는 쉬어야지. 이건 대주가 해야 할 일이야. 게다가 내일도 바쁘잖아.”

“네, 주군.”

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피웠다.

한빈에게 인정받은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심미호는 재빨리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의 앞에서 소대섭이 나타난 것은 정확히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였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소대섭 대주.”

“네, 주군.”

“적혈맹호대에게 전해. 장운현에서의 마지막 임무가 있다고 말이야.”

“마지막 임무라니요? 이제 정리만 하면 끝난 거 아닙니까? 주군. ”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내 소중한 물건을 옮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소중한 물건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소대섭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이 울타리 안쪽에 쌓아 뒀던 통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거.”

기름으로 틈을 메꾸고 겉에 기름종이를 감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여러 개의 나무통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통을 잊고 있었다.

저것이 어디에 쓰는 통인지 궁금했지만, 한빈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소중하다면 이 아수라장 속에 왜 저것들을 가져왔다는 말인가?

또한 울타리에 방치해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도 이상했다.

소대섭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나무통을 가리켰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 줄지도 모르는 보물이야. 이번 임무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해, 소대섭 대주.”

“네, 알겠습니다. 어디로 옮기면 됩니까? 주군.”

“안내할 사람이 곧 도착할 거야.”

“안내할 사람이라니요?”

“올 때가 됐네.”

말을 마친 한빈은 시간을 가늠하듯 중천에 뜬 해를 바라봤다.

“대체 누가 온다고……?”

소대섭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누군가 다급하게 한빈에게 다가왔다.

타다닥.

한빈의 앞에 서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공손명후였다.

“헉헉, 제가 늦지는 않았겠죠?”

“네, 시간에 딱 맞춰서 왔습니다.”

“저희 쪽 일꾼이 정말 필요 없는 겁니까?”

“네, 필요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옮겨야 하는 물건입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씩 웃었다.

그 웃음에 공손명후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부탁한 것은 장운현 아래 퍼져 있는 비밀 통로의 안내였다.

그중 창고로 쓸 곳을 알려 달라 했다.

그때 한빈이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참, 누군가가 저 물건을 탐내는 자가 있다면, 그자에게 귀띔해 주십시오.”

“뭐라고 귀띔하라는 말입니까?”

“죽는다고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런데 농담이 오싹합니다, 팽 공자님.”

“뭐, 농담은 아닙니다.”

“하하.”

공손명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빈말 같지 않아서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심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서에 적혀 있던 그 말은 뭐였지?”

그냥 뱉은 말은 아니었다.

운송해야 하는 물건과 계약서의 적혀 있던 문구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심미호의 혼잣말에 서재오가 물었다.

“무슨 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심 부대주.”

“아, 서 대협.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약서에 이상한 말이 적혀 있는데, 이제껏 주군이 한 번도 쓰지 않은 말이라서요.”

“뭐라 적혀 있었습니까? 혹시 비밀이라면 죄송합니다. ”

“호호, 비밀은 무슨 비밀요. 사람들한테 나눠 준 계약서인데요. 하긴, 주군이 비밀이 좀 많죠. 심심하면 막 비밀이라고 얼버무리시잖아요.”

“하하, 팽 공자가 좀 재미있는 구석이 있죠.”

“계약서의 내용에서 경천동지란 말이 몇 번이 나왔거든요.”

“경천동지라…….”

“경천동지할 일이 생기면 가게나 집 밖으로 나오지 말란 내용이에요. 미리 치료한 마을 사람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했는데, 전투는 벌써 끝났잖아요. 그런데도 계약서에 적는 게 이상해서요.”

“뭐, 끝까지 조심하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심 부대주. 옛 성현의 말씀 중에 그런 말이 있죠.”

“무슨 말이요? 서 대협.”

“싸움은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적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끝없이 나타날 것이다.”

“꼭 사파의 거두가 한 말 같네요.”

“음, 화산파의 전대 장문인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 죄송해요. 서 대협.”

“아닙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화산파의 문도들도 모두 심 부대주와 같은 생각을 한답니다.”

“호호, 제가 정상이었군요.”

“아, 그, 그렇죠. 정상…….”

서재오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막상 정상이라고 답을 하려니 의문이 떠올라서였다.

한빈의 주변에 정상인 자가 있던가?

한빈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성보다 본능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고개를 갸웃하자 심미호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서 대협.”

심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서재오는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 아닙니다. 저 앞에 사 공자가 있으니 경천동지가 어떤 의미인지 직접 물어보시죠.”

“말해 주지도 않을 텐데 왜 힘을 빼요…….”

말을 마친 심미호는 기지개를 켜며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오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듯 수레에 옮겨지는 나무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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