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96화 (196/621)
  • 196화. 강북의 생불(生佛) (1)

    이 정도로 사악한 기운을 뿜는 시독과 마주할 기회가 앞으로 있을까?

    흔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중요한 것은 한빈이 없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독인들과 마주친다면, 상황은 지금처럼 끝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한빈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적혈맹호대는 한빈의 수하.

    그에 걸맞은 힘을 지녀야 했다.

    짐이 아닌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는 지원군이 되어야 했다.

    이제는 상대의 병장기뿐 아니라 독에도 맞서야 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처럼 만만치 않은 독인을 만났을 때였다.

    이런 강한 독마저 이겨 낸다면, 실력편의 독 구결 다섯 개를 얻는 것과 같을 터.

    대충 백독불침이라 부르는 경지의 중간에는 다다른 상태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주변에 퍼진 시독을 폐부 깊숙이 밀어 넣었다.

    옆에 있던 설화도 한빈을 흉내 내며 주변에 퍼진 시독을 깊이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마시자 실력편에 변화가 일어났다.

    [실력편]

    [……]

    [독(毒) : 이십오(二十五)]

    독에 대한 내성을 나타내는 속성이 다섯 개 늘어난 것이었다.

    동시에 뜨는 문구.

    [만독불침에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한빈의 예상대로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독에 대한 내성을 얻을 것이다.

    물론 한빈과 다른 이가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한빈은 자연적으로 해독이 되었지만,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해독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힐끔 보니 설화도 한빈을 따라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

    동시에 설화의 피부도 점점 변해 갔다.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나자 시독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복면을 하고 있던 적혈맹호대 대원들도 중독되었다.

    그냥 들이마시든, 피하려고 하든, 중독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적혈맹호대 대원들도 푸르딩딩한 얼굴로 한빈에게 달려왔다.

    턱수염을 붙인 이무명도 푸르딩딩한 얼굴을 드러내고 달려왔다.

    모두 중독이 된 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 중독된 심미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독이다, 독이다!”

    심미호가 외치자 뒤쪽에 적혈맹호대도 따라 외쳤다.

    “독이다!”

    평소 훈련한 대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복면을 고정하고 있는 끈을 더욱 바싹 당겼다.

    한빈의 앞에 선 심미호가 물었다.

    “주, 주군, 어, 어떻게 해요? 이걸 혈맥에 찔러 넣어야 해요?”

    “잠시만 기다려, 심 부대주.”

    한빈이 손을 내젓자 옆에 있던 소대섭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아, 아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군.”

    “일단 해독약을 준비만 해.”

    한빈의 말에 소대섭이 외쳤다.

    “모두 준비한다! 해독 준비, 해독 준비!”

    그들을 시작으로 적혈맹호대 대원들 모두가 장신구를 쥐고 홈을 눌렀다.

    철컥, 철컥.

    장신구에서는 날카로운 바늘이 튀어나왔다.

    장신구를 꽉 잡은 소대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제 혈맥에 찔러 넣습니까?”

    “아직이야, 조금만 기다려.”

    말을 마친 한빈의 그들의 상태를 쓱 둘러봤다.

    밥으로 치면 아직 뜸이 덜 든 것이었다.

    이번에는 조호가 물었다.

    “주군, 아직이에요?”

    다급한 목소리의 조호.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 시커멓게 변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정도라면?’

    색은 조금 옅었지만, 아직도 뜸이 덜 들었다.

    하지만, 이제 해독해야 할 때였다.

    독이라는 것은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데에 차이가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한다면, 대원 중 하나를 잃을 수 있었다.

    이제 한계라는 말이었다.

    심미호가 물었다.

    “주, 주군 아직이에요?”

    “지금부터 잘 들어라. 독이 너무 깊게 퍼졌다. 이제는 단순하게 혈맥에 해독약을 흘려 넣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심미호는 황당했다.

    독이 깊게 퍼졌다니?

    그렇다면 진작에 해독약을 혈맥에 찔러 넣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왜 주군은 자신들의 몸에 독이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인가?

    심미호는 복잡한 심경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모든 대원이 마찬가지였다.

    그때 한빈이 외쳤다.

    “다들 목걸이를 가슴에 찔러 넣어!”

    “네? 그게 무슨…….”

    심미호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정확히 심장에 찔러 넣어라. 그럼 살 수 있다. 못 하는 자는 머리부터 썩어 갈 것이다.”

    모두는 떨리는 눈빛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물론 당황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옆에 있던 설화는 아무 의심 없이 해독약이 담긴 장신구를 심장에 찔러 넣었다.

    설화의 모습에 조호가 외쳤다.

    “설화도 겁을 내지 않는데, 우리가 겁내면 무슨 낯으로 주군을 모십니까? 저도 따라 하렵니다!”

    푹!

    조호도 설화를 따라 해독약을 찔러 넣었다.

    그 모습에 장삼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호야, 설화가 너보다 고수다.”

    “아, 알아요.”

    조호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답했다.

    장삼이 말했다.

    “괜찮네, 그럼 나도…….”

    푹!

    장삼도 찔러 넣었다.

    그 옆에는 벌써 심장에 해독약을 박아 넣은 심미호와 소대섭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아직 망설이는 이가 있자 한빈이 다시 외쳤다.

    “살고 싶다면 찔러 넣어라, 지금! 조금만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호랑이가 되지 못하는 적혈맹호대는 가죽도 남기지 못한다.”

    “…….”

    망설이는 자들의 손이 점점 가슴 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죽어서 호랑이 가죽을 남길 것인지, 고양이 가죽을 남길 것인지는 너희가 선택해라. 내 조언은 여기까지다.”

    한빈의 말에 적혈맹호대의 눈빛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 삼류 무인이라 홀대받던 그들이었다.

    서러웠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누군가 외쳤다.

    “밑져야 본전이다! 찔러 넣는다!”

    “다시 돌아가긴 싫습니다. 주군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한마디씩 외친 나머지 대원들이 심장에 해독약을 찔러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 모두가 해독약을 찔러 넣었다.

    한빈은 그들을 살폈다.

    대충 살펴보니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심장에서 혈맥으로 퍼진 해독약이 시독을 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빈이 한숨 돌릴 때였다.

    설화가 한빈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설화는 이미 장신구를 가슴에서 빼낸 상태였고, 혈색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다, 설화야.”

    “그런데, 저기…….”

    “왜 그러니? 설화야?”

    “화산파 아저씨는 어떻게 해요?”

    “아, 화산파 아저씨라면 서 대협이 저기에…….”

    한빈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당황한 표정은 아니었다.

    서재오는 해독약만 가지고 구하기에는 늦었기 때문이다.

    한빈은 설화에게 남은 해독약을 구해 오라 한 뒤 서재오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서재오가 있는 곳에 가 보니, 약간 떨어진 곳에 천독으로 보이는 시체가 있었다.

    그 시체는 상반신이 뜯어져 있었다.

    마치 천산혈랑이 뜯어 먹은 것처럼 날아간 상반신.

    아까 광경으로는 분명 폭발한 것이었다.

    진룡파혼검에 당한 상태에서 자살을 했을 리는 없었다.

    천독이 이렇게 된 것은 분명 누군가가 걸어 놓은 금제 때문일 것이었다.

    생명이 꺼져 가니 그 금제가 발동한 것일 테고.

    힘을 잃자 자연스레 주변에 흩어진 독기를 모았고, 숨통이 끊어지자 모아 놓은 독을 터뜨렸다는 것인데, 수법이 악랄했다.

    이제 문제는 가장 앞에 있던 서재오였다.

    한빈은 서재오를 앉혔다.

    가부좌를 틀게 하고 그 뒤로 가서 그의 등에 손을 뻗었다.

    서재오는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모닥불 위에 토끼구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 고통은 뼛속 깊이 전해졌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혀를 깨물고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등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등줄기를 타고 청아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기하세요, 서 대협.”

    서재오는 조용히 화산파 고유의 심법인 매화심결을 운용했다.

    동시에 미약했던 서재오의 기운이 청아한 한빈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기운은 막대한 힘으로 바뀌었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막대한 기운은 자신의 내력과 하나가 되어 고통을 몰아내고 있었다.

    고통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서재오의 머릿속에 의문이 싹텄다.

    지금 한빈이 하는 치료는 화산파에 있는 자신의 사부도 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내부로 들어온 것은 분명 선천지기였다.

    선천지기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청아한 기운을 뿜을 수는 없을 테니.

    선천지기를 써서 남을 치료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희생이 필요했다.

    세상에 누가 선천지기로 타인을 치료할까?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선천진기라는 것은 쓰고 나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쓰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선천지기는 무인에게는 생명력과도 같았다.

    그때부터 서재오의 머릿속에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을 못 뜯어먹어 안달인 사 공자가 자신을 위해?

    이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성이 아닌 본능이 그의 손길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재오의 이성과 본능이 충돌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몸 곳곳에서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뭐지?

    의문도 잠시 고통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전의 고통이 온몸이 불에 타는 고통이라면, 지금의 고통은 몇 군데만이 아플 뿐이었다.

    어찌 보면 견딜 만한 상태.

    서재오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고 있을 때였다.

    그 고통이 묘하게 한곳에 모였다.

    그곳은 자신의 심장이었다.

    순간 한빈의 음성이 들렸다.

    “몇 개나 구해 왔어?”

    서재오는 눈을 감고 있었기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다.

    그때 답이 이어졌다.

    “일곱 개요.”

    “일곱 개라? 그건 너무 많으니, 다섯 개만 꺼내.”

    “다섯 개요?”

    “그래, 해독약 다섯 개만 꺼내서 박아 넣어.”

    “설마 가슴에요?”

    “그래, 너나 적혈맹호대가 했던 것처럼 심장에 박아야 살 수 있다. 지금 태우고 남은 시독을 전부 심장에 몰아넣었으니, 해독을 하려면 지금이 기회야.”

    “죽으면 어떻게 하죠? 화산파 아저씨가 없으면 안 되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냐? 지금 두면 심장이 썩어 문드러질 테니 빨리 찔러.”

    “나눠서 찔러야겠죠?”

    “아니, 한 번에!”

    그들의 대화에 서재오는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다.

    ‘설마 무시무시한 해독약을 심장에 박으려는 건…….’

    서재오는 생각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에 뭔가 박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푹!

    동시에 심장에 타들어 가는 고통이 이어졌다.

    서재오는 의문을 떠올릴 틈도 없었다.

    의식이 점점 흐려졌기 때문이다.

    그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한빈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설화야. 화산파 아저씨는 멀쩡할 거야.”

    설화에게 하는 한빈의 말은 마치 장난기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날 목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한빈의 목소리가 묘하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이젠 편하게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막 의식이 끊기려 하기 전이었다.

    이제는 사지에 감각이 모두 돌아온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한 감각이 발목에서 느껴졌다.

    누군가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재오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승사자나 귀신이 사람을 데려갈 때, 발목부터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몸이 약해지니 어릴 적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절로 떠오르는 서재오였다.

    서재오의 의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 * *

    이틀 뒤.

    서재오는 낮은 신음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끄응.”

    신음과는 달리 몸은 한숨 잘 잔 것처럼 개운하기만 했다.

    서재오는 조심스럽게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게 뭐지?”

    서재오는 눈을 크게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천장을 본 서재오는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쿵쿵.

    혹시 여기가 저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서재오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옆을 보니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