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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94화 (194/621)

194화. 넌 누구냐? (4)

하지만, 급하게 나서서는 안 된다고 한빈은 생각했다.

심화편을 열기는 했지만, 바로 경지가 오를 리는 없는 일.

상황을 봐서 가장 적당한 시기에 천독을 눌러야 했다.

한빈은 일단 죽통의 물로 얼굴에 묻은 독기를 씻어 냈다.

살짝 남아 있는 독기 때문인지 복(復)의 속성이 줄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연기에 얼굴을 그을린 듯한 독기의 잔재.

한빈은 얼굴에 쌓인 그을음을 물로 씻어 냈다.

한빈이 어느 정도 그을음을 닦아 내자,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화의 표정은 묘했다.

호기심과 근심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설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님, 외모가 …….”

말끝을 흐리는 설화의 모습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설화의 표정을 보니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았다.

한빈은 최고의 독인이 만들어 낸 독기 속에 갇혔었다.

바로 금선탈각을 사용해 몸을 피했지만, 멀쩡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한빈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괜찮다. 무인에게 이까짓 흉터 따위는 장신구나 마찬가지야, 설화야.”

“그, 그게 아니라 분위기가 바뀌신 것 같아서요. 꼭 제가 알던 공자님이 아닌 것 같은…….”

설화가 살짝 말끝을 흐렸다.

“분위기라고?”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얼굴을 만져 봤다.

뭐지?

얼굴의 골격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독기로 인해 흉터가 생겼어야 정상인데, 피부가 아기처럼 매끈했다.

거기에 설화가 놀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라?

한빈은 순간 심화편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여의주를 문 용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구절 말이다.

“하하.”

한빈이 허탈하게 웃었다.

추상적인 의미인 줄 알았는데, 진짜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변한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웃던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햇살을 받은 한빈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였다.

환골은 아니지만 탈태는 한 상태였다.

지금은 외모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한빈은 다시 천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는 백선이 잘 버텨 주고 있었다.

하지만, 천독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아미백선과 매화검수 서재오의 협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고 있었다.

* * *

서재오는 지금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천잠사를 통해 자신의 검인 매화삼경에 공력을 불어 넣는 중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천독의 몸까지 매화삼경이 닿지도 않았다.

물론 닿았다고 해서 치명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천독의 심기만 긁어 놓는 중이었다.

아무리 때려도 부서지지 않은 거대한 벽을 마주한 느낌.

문제는 튀어나온 파편 하나를 맞는 순간 이승과는 작별이라는 것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먹고 자란 그였다.

화산파에 들어가서도 별 어려움 없이 매화검수의 자리까지 올랐다.

비록 끝자락이긴 하지만, 매화검수가 어디 놀음으로 딴 자리이던가?

매화검수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강호의 문파들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매화검수라는 호칭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무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그럼 서재오는 무엇을 목표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물론 승리였다.

먼지가 되어서라도 상대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는 것 하나만으로도 적의 신경을 긁어 놓을 수 있다.

그때였다.

상대의 녹색 기운이 갑자기 강해졌다.

천독에게 서재오는 파리에 불과했다.

문제는 귀찮은 파리라는 점이다.

파리가 윙윙거린다고 아플 리는 없지만,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파리였다.

손뼉 한 번이면 피떡이 될 테지만, 여간해서 잡히지 않으니 귀찮을 뿐이었다.

막상 서재오를 잡으려 하면 백선의 만년구절편이 효혈을 향해 날아왔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수확 없이 만독지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 버리게 되는 셈.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천독은 자신의 마지막 절기인 독파(毒破)를 쓰기로 했다.

독파란 독의 기운을 압축시켜 한 번에 터뜨리는 수법.

독파의 수법에 마주할 자는 없을 것이었다.

천독은, 백선과 귀찮은 화산파의 잔챙이를 상대하며 내공으로 독기를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뿜어낸 독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무도 모르게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빈은 아직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곳에 자신이 끼어든다면 어떻게 될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합격술(合擊術)이라는 것이 사람이 많다고 효율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여럿이 상대를 공격하다가 서로 검이 꼬인다면?

그것은 패배의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 생사결이 계속된다면?

처음에야 백선과 서재오가 불리하겠지만, 관건은 저 무시무시한 녹색의 독기를 유지하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빈이 적절한 시기에 끼어들려고 준비할 때였다.

‘뭐지?’

한빈은 천독의 변화를 눈치챘다.

지급 구결을 나타내는 청색 점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변화를 꾀하려는 듯 보였다.

한빈은 직감적으로 이대로 놔두면 저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은 천독이란 놈의 약점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한빈이 생각한 것보다 천독은 까다로운 자였다.

격장지계에도 넘어가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을 지녔고, 절대 방심하지 않는 치밀함까지 지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에게 틈을 만들어 내는 것.

한빈은 재빨리 계산을 시작했다.

한빈이 눈을 빛내는 동시에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드디어 약점을 찾아낸 것이었다.

천독의 숨통을 끊는 건 한빈 혼자서도 충분했다.

막 전각에서 뛰어내리려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빈은 힐끔 자신의 금선탈각으로 탈출한 자리를 바라봤다.

독을 막아 주던 복면이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없었다.

일단 입속으로 들어오는 독기도 실력편의 구결로 몰아내야 했다.

한빈이 말했다.

“설화 너는 내 신호에 맞춰 이 암기를 날려라. 열 걸음 안으로는 절대 들어서지 말고.”

한빈은 보따리 속에 있는 기다란 통을 가리켰다.

그 통은 검오가 만든 이화신기였다.

굵기는 엄지손가락만 하고 길이는 한 뼘 정도였다.

누가 보면 작은 피리로 착각할지도 몰랐다.

장하에서 쓰던 것에 비해 더더욱 개량된 암기였다.

작동시키는 순간 몇십 발이 아닌 백여 발의 머리카락 굵기의 은침이 쏘아져 나올 것이었다.

말을 마친 한빈은 재빨리 일촉즉발의 수법으로 천독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 검기를 머금은 월아와 한빈이 하나가 된 상태.

앞으로 나가던 한빈이 천독의 독기 바로 앞에서 멈췄다.

한빈은 쾌검난마의 수법을 펼쳤다.

동시에 허장성세의 초식으로 사자후를 내질렀다.

“이놈!”

몇 마디였지만, 한빈의 목소리는 심오한 공력을 담고 있었다.

한빈을 중심으로 목소리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우우웅!

장운현 전체를 덮을 듯한 거대한 기세.

뒤로 물러서서 대결에 끼어들 틈을 가늠하고 있던 적혈맹호대 대원들마저 한빈의 사자후에 영향을 받았다.

털썩.

한빈의 기세에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조금만 더 떨어져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 그들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빈은 심화편을 개화하면서 초식의 위력도 늘어났다.

그런 이유로 한빈이 펼친 허장성세는 적혈맹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물론 천독과 싸우던 서재오도 그 자리에서 동작을 멈췄다.

중요한 것은 천독도 잠시 틈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한빈이 왼손에 들고 있던 이화신기를 작동시켰다.

슝!

투투툭!

백 개에 가까운 은침이 천독을 향해 날아갔다.

은침을 날린 한빈은 재빨리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맞춰 천독의 뒤에서 기회를 노리던 설화도 이화신기를 쏘아 냈다.

슝!

투투툭!

한빈의 쏘아 낸 은침이 그의 몸에 닿으려 할 때였다.

허장성세의 기세에 잠시 눌렸던 천독이 정신을 차렸다.

날아오는 은침에 천독은 몸을 감싼 독성을 더욱 높였다.

파파박!

몸을 둘러싼 녹색의 독기가 더욱 진해졌다.

그때 뒤쪽에서 암기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천독이 보기에는 흔한 허허실실의 수법.

앞쪽에서 날아온 은침이나 뒤쪽에서 날아온 은침 모두 평범한 암기가 아니었다.

천독은 모든 독기를 회수해서 호신강기처럼 온몸에 둘렀다.

한마디로 독으로 만든 호신강기.

호신강기에 막힌 은침의 속도가 줄었다.

하나 은침의 속도는 줄어들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천독은 더욱 힘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천독의 눈앞까지 도착했던 은침은 햇볕을 받은 고드름처럼 녹아내렸다.

치지칙.

어찌 보면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천독은, 독을 조절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천재였다.

독파의 수법을 위해 독 기운을 한곳에 모으면서도 독으로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호신강기로 이화신기의 은침까지 녹여 버렸다.

천독이 살짝 마음을 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암기가 날아왔다.

이전에 날아온 은침보다는 확연히 컸다.

천독은 다시 독기로 만들어 낸 호신강기를 앞쪽에 집중했다.

천독은 눈을 크게 떴다.

독기로는 녹이지 못할 암기였다.

‘단검?’

천독은 급하게 검으로 단검을 튕겨 냈다.

챙!

순간 천독은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야 했다.

곧게 날아오던 단검은 하나가 아니었다.

첫 번째 단검의 꼬리를 물고 두 번째 단검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다 보니, 한 개로 착각한 것이다.

천독은 재빨리 몸을 뒤로 틀었다.

천근추의 수법으로 무게중심을 뒤로한 채 상체만 젖힌 것.

그런데 단검의 궤적이 묘했다.

이전에 맞댔던 한빈의 검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태극을 그리더니 슬쩍 검신을 타고 살아 있는 것처럼 달려드는 것이었다.

천독은 할 수 없이 바닥을 뒹굴며 단검을 피해야 했다.

무인에게는 가장 수치스럽다는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

즉 게으른 당나귀가 바닥을 뒹굴 듯, 흉측한 모습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뒹굴고서야 천독의 겨우 단검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천독의 착각이었다.

단검은 묘한 움직임으로 그를 따라왔다.

정확히 머리를 노리고 말이다.

뱀처럼 휘어져 달려드는 단검은 마치 이기어검의 수법과도 같았다.

천독은 다시 몸을 틀었다.

천독의 기세와 움직임으로 단검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단검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쓱!

스스슥.

천독은 눈앞에 눈발이 날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눈앞에 흩날리는 것은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카락.

단검에 머리카락이 왕창 잘려 나간 것이었다.

순간 천독은 이성을 잃었다.

독인이 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풍성한 머리숱이었다.

독기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머리카락은 버텨 내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머리카락도 십 년이 넘게 관리한 것이었다.

독인에게 머리카락은 내공보다도 쌓기 힘든 것이었다.

이성을 잃은 천독이 한빈에게 달려들었다.

“쓰벌!”

“안 됐군. 소중하다면 잘 챙겼어야지. 나처럼 말이야.”

말을 마친 한빈은 자신의 머리를 넘겼다.

햇빛을 받은 한빈의 머릿결은 비단결처럼 찰랑거렸다.

물론 심화편을 개화하면서 얻은 분위기의 변화 때문이었다.

천독의 벗겨진 머리와 한빈의 비단결 같은 머리는 누가 봐도 비교되었다.

그것은 천독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천독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한빈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콰과광.

천독의 검, 독아에서 독기가 터져 나왔다.

이것은 천독의 의지가 아니었다.

화를 누르지 못하고 본능이 움직인 것이다.

한빈은 뒤로 재빨리 물러섰다.

뭐, 이번 독기만 피하면 되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독기와 내공에 공백이 생길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한빈의 계획대로였다.

이제 첫 번째 단계는 끝났고 두 번째 계획만 성공한다면, 천독의 몸에 남아 있는 구결을 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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