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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92화 (192/621)

192화. 넌 누구냐? (2)

머리카락까지 완벽한 녹색으로 바뀐 상황.

드디어 만독지체를 완성한 것이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천독은 청연을 다 먹은 귤껍질을 버리듯 옆으로 던졌다.

휙.

생기를 잃어버린 청연이 피떡이 된 독인들 사이에 짐짝처럼 버려졌다.

청연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가 아련히 울렸다.

퍽.

천독은 제자인 청연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본래 이렇게 쓰려고 키운 제자였다. 청연은 그에게 살아 있는 영약에 불과했다.

천독은 고유의 기세를 뿜어내며 한빈을 향해 감정 없는 어투로 말했다.

“이제부터 본좌가 널 상대해 주겠다.”

“아까 날 상대한 사람은 누구였는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빈의 도발에 천독이 미간을 좁혔다.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한빈은 씩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입 터는 놈치고 싸움 잘하는 놈 못 봤고, 내 앞에서 나불대는 놈치고 아직 살아남은 놈 못 봤다.”

한빈의 말에 천독이 진득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문답무용.”

“됐고, 그냥 들어와.”

한빈은 검지를 까닥거리며 상대를 도발했다.

문제는 한빈의 도발이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독은 한빈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걸어왔다.

쿵. 쿵.

일부러 상대방을 겁박하려는 듯 거대한 기세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천독.

하지만, 한빈은 그저 웃으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지금 정면승부는 한빈이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외모에서부터 기세까지 일순간 변한 천독은 이전과는 다른 상대였다.

이전에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는데, 그가 만독지체를 완성한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변화한 원인이었다.

한빈이 보기에는 마교의 역혈신공과 비슷한 원리였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면 그만이었다.

물론 시간을 끄는 방법도 한빈에게 정답은 아니었다.

일각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은 공력을 끝없이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한빈의 계획은 간단했다.

구결을 빼먹은 후 튄다.

그 후 천독의 무력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린다.

이 계획은 독기 속에 버틸 회복의 속성과, 실력의 차이에도 구결에 검을 적중할 수 있는 초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빈은 재빨리 구걸십팔보와 전광석화를 다시 유지했다.

사사-삭.

한빈이 천독의 주변을 맴돌자, 그는 재빨리 가공할 독기를 실어 검을 뻗었다.

쏴악.

노도처럼 몰아치는 독기가 주변을 장악했다.

* * *

독기가 내뿜는 기세가 흉포한지 멀리서 둘의 생사결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조차 움찔하고 있었다.

지금은 흑사문뿐 아니라 적혈맹호대도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적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술판을 벌이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적혈맹호대가 들고 있는 호리병에는 술이 아닌 물이 들어 있었다.

소대섭이 나지막이 외쳤다.

“주군이 위험하면 모두 튀어 나간다!”

새로 만든 칼을 움켜잡은 소대섭의 팔뚝 근육이 꿈틀댔다.

초초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심미호가 조용히 말했다.

“대주, 그건 지시 위반이에요.”

“주군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거, 심 부대주도 알잖아.”

“주군이 쉽게 당하실 분인가요? 그리고 우린 저곳에 갈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십 장 안쪽으로만 접근해도 피를 토하고 쓰러질 거예요. 잘못하면 주군을 방해하는 격이 될 게 분명해요.”

“흠.”

소대섭이 낮은 침음을 흘리다가 눈을 빛냈다.

“그럼 주군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

“그건 저도 찬성이에요.”

말을 마친 심미호는 주위를 둘러봤다.

막내 조호부터 가장 연장자인 장삼까지 모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소대섭의 말에 찬성한다는 뜻이었다.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귀도도로 바닥을 찍었다.

쿵. 쿵.

그것은 마치 전장에서 울리는 북소리 같았다.

한빈에게 보내는 그들의 마음.

본능에서 나온 그들의 행동은 다른 이가 보기에 성스럽게 보였다.

한빈의 복장을 하고 있던 이무명도 검을 바닥에 찍었다.

쿵.

무기가 없는 장자명은 약병을 바닥에 내려치려다가 멈칫하고는 발을 굴렀다.

쿵.

흑사문의 무리도 이번만은 한빈에 대한 원망을 모두 버리고 발을 굴렀다.

쿵.

그들의 뒤에 선 서재오도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검 매화삼경으로 바닥을 찍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대결은 사람의 무위가 아니었다.

검기와 검강 그리고 검환이 오가는 비무를 본 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서재오가 바라보는 대결은 차원이 달랐다.

화산파에서 독인과 저렇게 일대일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고수가 있을까?

장문인이나 전대 고수 중에 찾는다면 천독이라 불리는 저 독인을 처치할 고수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식의 대결을 아닐 것이었다.

무위로 상대로 누르고 독기가 닿지 않은 거리에서 검환이나 이기어검으로 상대하는 게 전부일 것이었다.

이길 수는 있어도 저렇게 독에 맞서서 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천당가나 백독곡의 인물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거기에 더해 저자가 누굴까 하는 의문도 떠올랐다.

설화와 잘 아는 것을 보니 사 공자 한빈일 수도 있지만, 한빈은 적혈맹호대와 함께 있지 않은가?

고민도 잠시, 서재오는 자신의 검 매화삼경에 공력을 실었다.

쾅!!

서재오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빈의 대결을 주먹을 불끈 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아직 객잔에 남아 있던 진세미도 지붕 위에서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 적혈맹호대의 대원들과는 달리 그녀는 이상한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한빈의 싸우는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익은 것이었다.

“뭐지? 그리고 이 기분은…….”

진세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이었다.

“적룡대협…….”

* * *

이제껏 한빈만을 바라보던 천독의 시선이 처음으로 객잔 쪽으로 향했다.

쿵. 쿵.

요란한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씩 웃었다.

말 안 해도 천독의 시선을 알아서 분산시키는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대견했던 것이다.

한빈은 다시 천독을 바라봤다.

천독의 공격에 대처한 한빈의 방법은 특유의 가벼움이었다.

한빈은 흩날리는 꽃씨가 바람에 날리듯, 사뿐히 천독이 장악한 공간에서 밀려났다.

검으로 꽃씨를 벨 수 있을까?

꽃씨는 검날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원리로 한빈은 천독이 내뿜는 독기를 피하고 있었다.

화난 천독이 외쳤다.

“왜 벌처럼 빙빙 맴돌기만 하느냐! 내가 꽃처럼 보이…….”

천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천독이 그의 검인 독아에 독기를 실어 한빈을 내려치려 할 때였다.

한빈의 검이 묘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독기로 공간을 모두 장악한 천독은 여유 있게 검을 막았다.

쩡!

천독이 눈썹을 꿈틀댔다.

묘하게 자신에게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화접목의 묘수?

독기에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대응한다?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강호를 헤쳐 오며 들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독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빈의 검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챙!

검을 휘두르던 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이 빙빙 도는 것만은 아니지. 때에 따라서 쏘면 죽이기도 하니까.”

“이놈!”

챙!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천독은 타격 때문이 아니라 한빈의 묘한 수법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게다가 검의 궤적이 점점 복잡해졌다.

그 궤적만큼이나 천독의 마음도 복잡해졌다.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데 상대의 검을 막기에 급급하다라?

거기에 더해 자신의 뿜어내는 독기에 대항한다고?

‘저놈은 만독불침이라도 되는 건가?’

만독지체가 내뿜는 독기를 견디는 경우는 만독불침밖에 없었다.

천독은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체 저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천독은 허리가 뜨끔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빈의 검이 허리를 훑고 지나간 것이다.

동시에 한빈의 눈앞에 글귀가 떴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地級) 구결 자(者)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급(地級) - 近(근), 자(者)]

역시 한빈의 예상대로 지급 구결이 완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결의 완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한빈은 재빨리 월아를 뻗었다.

‘성동격서.’

전광석화의 효용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동격서로 상대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자승자박도 계속 쓰고 있었다.

성동격서는 허허실실의 묘리를 담은 초식.

다섯 번에 한 번은 무조건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번 공격의 성공은 초식 본연의 위력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 결과였다.

한빈은 지금 세 가지 초식을 섞어 사용하고 있었다.

자승자박, 성동격서, 전광석화.

상대가 월아를 막으면 그 힘의 이 할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 번의 공격 중 한 번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눈을 현혹할 수 있는 빠름이 있다.

이 세 가지 조합으로 천독을 공략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공방이 이어졌다.

만독지체로 변한 천독의 검은 한빈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챙! 챙!

월아와 독아가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진동음처럼 들렸다.

용린검법은 하늘이 내려 준 무공일까?

용린검법의 초식은 만독지체가 된 천독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푹!

한빈은 다시 한번 천독의 몸에 공격을 적중시켰다.

그의 숨통을 끊지는 못하지만, 딱 구결을 취할 만큼의 위력은 되었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地級) 구결 묵(墨)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地級) - 근(近), 자(者), 묵(墨)]

이제 남은 구결은 하나.

뒤로 물러난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공력을 무한하게 쓸 수 있다면 천하무적이 될 것 같았는데, 의외의 부작용이 있었다.

그것은 한빈의 신체가 공력을 버티지 못하는 점이었다.

고민도 잠시, 한빈은 월아에 묻은 혈흔을 시원하게 털어 버렸다.

쫘악!

대충 몸 상태를 살펴보니 남은 시간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천독이 한빈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숨을 고른 한빈도 그를 향해 날았다.

순간 생경한 감각이 월아를 통해 느껴졌다.

서겅!

툭.

천독의 옷섶이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천독이 자신의 가슴을 아무 저항 없이 내준 것이었다.

이렇게 팽팽한 대결에서 저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가슴을 내어 준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불길한 예감에 한빈은 재빨리 쾌검난마를 지우고 다른 초식을 떠올렸다.

바닥에 천독의 옷자락이 뒹굴었지만, 천독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순간 깊게 파인 가슴에서 그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올 때는 분수였지만, 그의 피는 방울방울 나뉘어 한빈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벌 떼처럼.

그 피가 녹색이라는 점은 대결을 지켜보던 모든 이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피할 틈도 없이 천독의 가슴에서 쏟아져 나온 독혈은 순식간에 한빈을 덮쳤다.

한빈의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독혈을 뒤집어쓴 한빈의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한빈은 녹색 형체가 되어 그 자리에서 굳었다.

녹색 석상이 된 한빈을 본 천독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들을 수 있을 때 네 숨통을 끊은 초식을 말해 주마. 이 초식의 이름은 천지만독이다. 하늘과 땅을 가득 덮는 독이니 네 능력이 부족하다 섭섭해하지 말거라. 무림의 어떤 고수가 와도 내 앞에 서 있었다면 네 꼴이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흠.”

천독은 헛기침하며 자신의 가슴을 동여맸다.

그러고는 녹색 혈독에 묻혀 형체만 남은 한빈을 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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