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91화 (191/621)

191화. 넌 누구냐? (1)

[최초로 지급(人級) 초식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 초식의 최초 획득으로 용혈지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특전으로 기본편의 수준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기본편이 실력편으로 변경됩니다.]

그 글귀와 함께 비급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기본편이라는 제목이 스르륵 사라지더니 그곳에 새로운 제목이 나타났다.

[실력편(實力編)]

[담을 수 있는 속성이 늘어납니다. 속성의 한계가 늘어납니다.]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실력편(實力編)]

……

[복(復) : 사십(四十)]

[심(心) : 이십(二十)]

파혼검을 전해야 늘어나는 심의 속성을 제외하고 모두 사십 개가 되었다.

원래 열 개였던 심(心)의 속성은 열 개가 더 늘어 이십 개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한계가 열 개씩 늘어난 것이었다.

이어서 다음 글귀가 나타났다.

[실력편의 깨달음으로 일각(一刻) 동안 속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한빈의 눈이 커졌다. 속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일각(십오 분) 동안 공력을 무한대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천독에게 남아 있는 구결은 아직 다수.

잘하면 지급 구결을 완성할 기회였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려던 한빈은 낮은 탄성을 흘렸다.

“흠.”

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월아를 타고 줄기줄기 흘러드는 무시무시한 독기.

번개에 맞은 개구리처럼, 한빈의 다리와 팔이 마비된 것이다.

한빈은 후각에 집중하며 천독의 피에 대해 살폈다.

그 결과 한빈은 낮은 한숨을 토해 내야 했다.

“휴…….”

천독이 뿜어내는 피는 세상 모든 독을 하나로 뭉쳐 놓은 것과 같았다.

피가 아닌 순수한 독기의 결정체라고 봐야 했다.

독인에게는 선천지기와 마찬가지인 독의 결정체.

한빈이 보기에 천독은 자신의 독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빈은 시선을 돌려 자신을 살폈다.

‘이게 대체…….’

한빈의 눈이 커졌다.

천독이 뿜어내는 독기가 한빈의 오른손에 스며들고 있었다.

한빈의 내공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검은색으로 변한 피부는 마른 낙엽처럼 언제 부스러져도 이상치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빈의 손은 원래 색을 찾기 시작했다.

회복의 속성이 오른손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똑같은 장면이 몇 번씩 반복된다.

한빈의 손이 검은색도 살구색도 아닌, 회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를 터였다.

공력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것은 불과 일각.

계속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독기에 녹아내려 천독과 살점이 섞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마비된 팔다리부터 풀어야 했다.

한빈은 재빨리 초식 하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자승자박.’

‘쾌검난마.’

동시에 단전에 남은 내공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자승자박은 이화접목의 수법.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일정 부분 피해를 돌려주는 초식이었다.

자승자박의 초식을 운용하자, 월아를 타고 들어오는 독기의 줄기에 변화가 생겼다.

줄기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된 것이다.

하나는 한빈을 향해 뻗어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빈이 천독에게 돌려보내는 독기였다.

설마 했는데 독기마저도 돌려보내고 있었다.

일정 부분 독기를 흘려보냈기 때문일까?

오른팔을 제외한 신체에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청연이라 불린 여인이 검을 들고 천천히 한빈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터벅터벅.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터벅터벅.

이제 불과 열 걸음만 남은 상태.

이렇게 팽팽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청연이 검을 휘두른다면?

한빈이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검날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챙!

청연의 검과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설화의 검.

한빈은 시선을 돌려 천독에게 집중했다.

맞붙었던 설화와 청연의 검이 살짝 틈을 만들었다.

둘 다 다음 공격을 위해 공간을 만든 것이다.

잠시 눈빛이 오간 후.

서로를 만만치 않게 느낀 듯, 동시에 서너 발짝 뒤로 물러나 상대를 바라봤다.

타다닥.

설화가 말했다.

“아줌마는 왜 우리 공자님을 해치려는 거예요?”

“아, 아줌마라고……?”

“우리 공자님이 말했잖아요. 아줌마 수하를 해친 건 우리 공자님이 아니라 저 악랄할 할아버지라고요.”

“좀 조용히 해 줄래?”

“그냥 물러가면 조용히 하죠, 아줌마.”

청연은 미간을 꿈틀하며 설화를 바라봤다.

독공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긴 해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외모는 그녀에게는 역린과도 같은 존재.

청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물론 설화가 이렇게 격장지계를 펼칠 수 있는 것은 한빈에게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움켜쥐고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것이다.

설화가 최대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공자님이 말해 준 게 있어요.”

“…….”

갑작스러운 설화의 말에 청연은 말없이 눈을 빛냈다.

설화는 더욱 해맑은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진실을 말해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줌마 같은 표정을 짓는다던데, 진짜네요.”

“나이도 어린 것이 골 때리는구나. 내가 매운맛을 보여 주지.”

“골 때리는 게 아니라 뼈 때리는 거겠죠?”

설화는 쉼 없이 입을 놀렸다.

사실 설화도 자신의 입담에 놀라고 있었다.

차라리 검으로 대화를 나눌지언정 이렇게 입을 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흑천에 있을 때 설화는 과묵한 편.

사실 살수의 입이 무거운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천수장에 오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흑천에서 지낸 모든 시간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말을 토해 낸 것이다.

뭐, 지금은 더욱 심했다.

마치 자신의 혀가 물레방아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설화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적의 검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설화는 이 승부를 빨리 마무리 짓고, 한빈을 돕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한빈의 지시를 어기게 된 김에 적극적으로 돕기로 한 것이다.

설화는 재빨리 한빈에게 배웠던 파혼검의 초식을 사용했다.

설화가 펼치는 것은 오 성의 파혼검으로,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인 백혼(白魂).

혼을 흐트러뜨릴 정도의 힘을 가진 파혼의 단계는 아니지만, 상대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의 힘이 있었다.

설화는 검을 곧게 뻗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마주 선 청연의 검에 변화가 생겼다.

검이 점점 흑색으로 변한 것이다.

진기가 아닌 독기로 만들어 낸 검강이었다.

둘이 내는 발소리가 마치 달리는 사두마차처럼 주변에 울렸다.

타다닥.

둘이 격돌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챙!

둘이 맞부딪힌 순간, 묘한 느낌에 설화는 눈을 크게 떴다.

쩌적!

파혼의 기운이 상대를 누르기도 전에 자신의 검이 버텨 내지 못한 것이었다.

설화는 뒤로 몇 발짝 물러나 앞을 봤다.

하지만, 설화가 보고 있는 것은 청연이 아닌 자신의 검이었다.

설화의 검에는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다.

“아, 싸구려였어!”

안타까운 눈빛을 하던 설화는 힐끔 흑사문의 장대찬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촘촘히 모여서 결투를 구경하던 흑사문의 무리가 점점이 흩어지고 있었다.

설화는 다시 상대를 바라봤다.

동시에 품 안에 있는 우혈랑검을 떠올렸다.

단검이 암살에는 유리하지만, 이렇게 일대일 승부에서는 불리하므로 쓰지 않았다.

그런데 길이는 짧지만, 우혈랑검이라면?

파혼검의 기운을 온전히 버텨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설화는 재빨리 손에 쥔 검을 상대에게 던졌다.

휙.

한빈만큼은 아니지만, 설화가 던진 검은 정확히 청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파공성을 내며 날아오는 설화의 검을 청연이 쳐 냈다.

탕!

순간 검이 두 조각이 나며 반쪽짜리 파편이 청연의 미간으로 튀었다.

청연은 고개를 휙 옆으로 돌리며 파편을 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검으로 설화를 베었다.

쩡!

요상한 소리가 검날에서 울렸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검신을 타고 청연의 손에 전해졌다.

마치 수만 근의 바윗덩이를 내려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청연의 검은 힘없이 손에서 튕겨 어디론가 날아갔다.

휘리릭!

문제는 손을 타고 전해지는 이상한 감각이었다.

청연은 그것이 작은 흔들림, 즉 진동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챘다.

처음에 손을 타고 들어왔을 때는 미세했던 진동이 혈관을 타고 점점 더 강해졌다.

그 진동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청연의 머리.

청연의 머릿속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순간 단검이 청연의 목 쪽으로 날아왔다.

청연은 이를 악물고 검집을 들어 단검을 막았다.

팡!

청연의 검집과 설화의 우혈랑검이 마주치며 어마어마한 파공성을 냈다.

둘 사이에는 진천뢰가 터진 듯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충격받은 쪽은 청연 하나였다.

청연이 달걀이라면, 설화는 바위였다.

즉 달걀로 바위 치기.

청연은 깨진 달갈이 되었고, 설화는 바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우혈랑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 결과 청연은 힘없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끈 풀린 연처럼 펄럭이며 뒤쪽으로 날아가는 청연.

그런데 묘하게도 그녀가 날아가는 곳이 한빈 쪽이었다.

막 마비에서 풀려 뒤로 물러나려던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청연이라는 독인이 자신 쪽으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게 된 한빈은 천독의 몸에 박힌 월아를 빼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순간 둘 사이를 잇고 있던 독기가 끊어졌다.

날아온 청연이 한 바퀴 뒹굴더니 한빈과 천독 사이로 굴러왔다.

한빈과 천독이 몇 발짝 떨어져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때, 청연이 검집을 지팡이 삼아 겨우 일어났다.

청연은 검집으로 몸을 지탱한 채 한빈을 바라봤다.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 청연이 사부를 위해 한빈을 막아서는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애처로운 모습.

하지만, 한빈의 감정에 측은지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적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빈이 월아를 청연에게 겨눴을 때였다.

천독이 갑자기 청연의 머리를 내려쳤다.

빡!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때였다.

물론 한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천독은 입술 사이로 작은 웃음소리를 토해 냈다.

“후훗.”

그 웃음소리와 함께 청연의 몸이 점점 생기를 잃어 갔다.

한빈 때문에 만독지체로의 변화가 방해받았지만, 천독은 제자 청연의 독기를 모두 뽑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천독이 독기를 뽑는 과정은 모기가 피를 빠는 것처럼 간단하면서도 신속했다.

한빈이 손쓸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빈이 주변을 살피니 설화가 입을 벌리고 석상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실수라 판단한 것 같았다.

한빈은 재빨리 손을 저었다.

뒤쪽으로 물러나라는 신호였다.

설화가 한빈의 지시에 따라 주춤주춤 물러섰다.

뭐, 사실 한빈에게는 지금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적은 하나 줄어들어 지금은 완벽한 일대일 상황.

언제든 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천독을 해치우지 못해도, 그는 독 안에 든 개구리에 불과했다.

금의위의 강유찬이 마을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빈은 월아에 묻은 독혈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 냈다.

탁!

천독의 피가 바닥이 쫘악 들러붙자 흙이 녹아들어 갔다.

치치직.

한빈은 일단 천독을 관찰했다.

퇴로가 있는데 동귀어진을 생각하고 달려드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었다.

한빈과 마주한 천독의 흰색 눈자위가 점점 녹색으로 덮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