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83화 (183/621)

183화. 사면초가 (3)

모두의 표정을 본 한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비상시에 쓸 수 있는 특제 해독약이다. 그러니까…….”

한빈의 설명에 모두는 손에 쥔 목걸이를 바라봤다.

지금 역병은 북방에서 가져온 독초를 희석해 곡식과 식수에 풀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허혈초라는 구체적인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독초로 만든 독약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면?

중독되는 순간 발끝과 손끝이 마비되며 썩어 들어갈 것이다.

한빈이 증상에 대해 설명해 주자, 모두 치를 떨었다.

조호가 장삼의 귀에 속삭였다.

“진짜 썩어 들어간다고요? 장삼 아저씨, 지금 주군이 그렇게 말한 거죠?”

“나도 그렇게 들었다, 조호야.”

“아, 쓰벌! 이제 이렇게 죽는 거야?”

조호가 비명을 질렀다.

물론 나머지 대원의 반응도 비슷했다.

말만 들어도 참혹한 광경이 그들의 눈에 선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역병으로 죽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일 것이고 말이다.

그들의 표정을 본 한빈이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로…….”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먹는 해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허혈초의 독성이 퍼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혈맥 깊숙이 해약을 퍼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 도구로 만든 것이 바로 이 목걸이였다.

설명을 듣던 조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조호는 이번 임무가 생애 마지막 임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이 들고 있는 목걸이를 바라봤다.

목걸이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목걸이의 아랫부분을 힘껏 내려치면 바늘이 나온다.

그 바늘을 타고 해약이 흘러들게 만든 것이었다.

조호는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고 뚜껑을 연 후, 환약을 집어넣었다.

한빈이 얘기한 독약에 중독된다면 이 목걸이가 생명 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건데 이상하게 한기가 도는 것은 왜일까?

게다가 혈맥에 직접 바늘을 찔러 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희한했다.

먹는 해독약은 흔하지만, 이렇게 혈맥에 찔러 넣는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모든 설명을 마치자,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던 대원들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때 조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주군, 그런데 해약은 뭘로 만든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질문이다, 조호.”

“…….”

모두는 말없이 한빈의 입술만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빈이 그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건 당연히 비밀이다. 하지만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재료이니, 소중히 여겨라.”

한빈의 말에 모두는 목걸이를 움켜잡았다.

한빈의 설명을 듣던 장자명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장자명이 보기에 한빈의 마지막 말은 반 정도만 진실이었다.

천수장에서 재배한 무를 재료로 만든 것이다.

극양지기를 흡수한 노란색 무에 몇 가지 약초를 넣어 농축한 것이 해약이었다.

허혈초는 음기로 몸을 잠식하는 독약.

천수장에서 극양지기를 흡수하며 자라는 무와는 상극이었다.

이 해약은 극음과 극양이 만나 자연스레 독이 중화되는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흔하디흔한 것이 천수장의 무였다.

극양지기를 한계까지 흡수하면 뽑고 다시 심고를 반복했던 것이 몇 번이던가?

창고에 쌓인 것이 무였다.

창고에 쌓인 무 중에 반은 이곳 객잔으로 가지고 왔고 말이다.

그런데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라?

뭐, 한빈이 팔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맞는 말이긴 한데, 장자명은 뭔가 속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천수장의 무가 효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년하수오 정도는 안 되어도, 백년하수오 정도의 영기를 품고 있었다.

그러니 한빈의 설명은 반 정도는 들어맞는 것이었다.

장자명은 힐끔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자신과 며칠 밤을 지새운 검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장자명은 새로 들어온 검오의 체력이 약해서 걱정이되었다.

‘저렇게 체력이 약해서야…….’

검오를 걱정하던 장자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이렇게 체력이 좋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한빈의 지시로 매일 밤을 새운 것을 생각하면, 골병이 들어서 빌빌거려야 정상이었다.

‘왜 이리 팔팔하지?’

장자명은 자신이 만든 환약을 바라봤다.

혹시?

아무래도 이렇게 몸이 멀쩡한 이유가 극양지기를 담은 무와 관계있는 것 같았다.

장자명은 자신도 모르게 한빈을 바라봤다.

장자명은 한빈을 보며 무심코 혼잣말을 뱉었다.

“뭔가 있어……. 혹시 신의의 진전을 이어받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옆에서 서재오가 물었다.

“있긴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신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 의원?”

“아, 서 대협, 아무것도 아닙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더니 아무래도 힘들어서요. 그래도 대협이 옆에 계시니 든든합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같이 있어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장 의원님만 알고 계십시오. 저는 이제 여기서 튈 생각입니다. 매화 패도 중요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게 또 어디 있습니까?”

“아, 튀신다고요?”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저도 같이 데려가시면…….”

“나중에 상황 봐서 다시 오겠습니다. 지금은 같이 가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장자명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자명과 서재오가 귓속말을 주고받을 때, 설명을 끝낸 한빈이 손뼉을 시선을 모았다.

짝!

시선을 모은 한빈이 말했다.

“적혈맹호대의 임무는 하북팽가에서 관리하는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사람만은 지킨다. 지금부터 맡은 구역에서 상인에게 소식을 전한다.”

말을 마친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맞춰 소대섭과 심미호가 적혈맹호대 대원들에게 서찰과 꾸러미를 나눠 줬다.

그것들을 받은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을 확인했다.

이제 모두가 임무를 위해 빠져나가자, 실내에는 몇몇만 남았다.

서재오가 조용히 장자명을 바라보며 눈짓했다.

이별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장자명도 아쉬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눈인사를 주고받을 때였다.

한빈이 팔짱을 끼고 둘을 바라봤다.

한빈의 시선을 느낀 서재오가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팽 공자. 할 얘기라도……?”

말끝을 흐리는 서재오를 본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요, 대협.”

한빈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호의가 듬뿍 담겨 있었다.

의심 가득한 눈으로 눈치를 살피던 서재오가 물었다.

“부탁이라니? 혹시 역병에 대해 알아보라는 거라면 사양하겠네, 팽 공자.”

서재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한빈이 이 역병이 진짜 전염병이 아닌 중독이 되어서 일어난 현상이라 설명해 줬지만, 서재오는 믿을 수 없었다.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본 광경은 소문으로 듣던 역병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열이 올라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붉은 반점이 생기는 현상은 분명히 역병이었다.

서재오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갔다가, 나중에 매화 패를 찾으러 오기로 결심했다.

만금 전장의 외동아들이자 화산파의 매화검수인 서재오가 떠맡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서재오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이제까지 한빈은 서재오가 가는 것을 말린 적은 없었다.

매화 패와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이곳에 인질처럼 남아 있었을 뿐.

표정을 굳힌 서재오를 본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서 대협, 위험한 임무는 아닙니다.”

“그럼 대체 어떤 일을 부탁한다는 것인가, 팽 공자?”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이것만 전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마을을 빠져나간다니 그런 일은…….”

“아까 장 의원과 하는 말씀 다 들었습니다. 매화검수인 서 대협이 이곳에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시는 길에 이곳을 봉쇄하고 있는 책임자에게 이 주머니를 전해 주십시오.”

“그 정도의 일이라면 내가 들어줄 수 있지, 험.”

서재오는 선심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게. 상황이 좋아지면 나중에 보세. 그리고 이건 필요 없을 것 같다네.”

서재오는 자신의 목에서 목걸이를 풀어 한빈에게 건넸다.

특제 해약이 들어 있는 목걸이였다.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혹시라도 마을 밖에서 당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넣어 두시지요.”

“음, 그럼 알겠네.”

말을 마친 서재오는 황급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휘리릭.

얼마나 빠른지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신형을 남기지 않았다.

객잔을 빠져나간 서재오는 텅 빈 저잣거리를 가로질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글거리던 거리에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자 서재오는 혀를 찼다.

“쯧, 역병이 분명해. 나 혼자만 빠져나가자니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 없지…….”

서재오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얼마나 갔을까. 내공이 바닥 날 때쯤, 마을 입구가 보였다.

그곳에서는 관군들이 임시 초소를 만들어 놓고 마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막고 있었다.

역병에 대비하려는 듯, 관군은 모두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서재오는 그들 중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한빈이 부탁한 가죽 주머니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서재오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였다.

초소 뒤 막사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는 서재오를 보더니 메마른 목소리로 외쳤다.

“사질 아닌가!”

“사질?”

깜짝 놀란 서재오가 눈매를 좁혔다.

그 모습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굴을 가렸던 천을 내렸다.

순간 서재오의 눈이 커졌다.

그는 다름 아닌 강유찬.

금의위 수장이었다.

순식간에 서재오의 앞까지 온 강유찬이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인가?”

“팽가의 사 공자가 이곳이 수장에게 전해 드리라 한 물건이 있어 왔습니다.”

“음, 진짜로 보냈나 보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서재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유찬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일단 줘 보게.”

“여기 있습니다.”

서재오가 재빨리 가죽 주머니를 건네자 받아 든 강유찬은 가죽 주머니 속 적혈석을 꺼내 확인했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적혈석을 세세히 확인하던 강유찬이 말했다.

“음, 진짜 만마 패(萬馬牌)가 맞군.”

“만마 패라고요?”

서재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강유찬이 기분 좋게 입을 열였다.

“이건 만마 패라 부르는 물건일세. 이걸 이리 쉽게 사용하다니, 팽가의 사 공자는 충신임이 분명해, 허허.”

강유찬이 들뜬 표정으로 적혈석을 바라보자 서재오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리 나쁜 친구는 아니지만, 어떻게 사 공자가 충신일 수 있습니까?”

“이 만마 패에 대해서 들어봤나?”

“제 지식이 미천해, 만마 패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만마 패는 만 마리의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황실이 내린 권력이네. 즉 만 명의 군사를 쓸 수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기병으로 말일세.”

“어찌 팽가의 사 공자에게 그런 권력이 있단 말입니까?”

“자네도 봤지 않나? 그때 내가 이 만마 패를 전하던 모습을 말이네.”

“아.”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만마 패가 일회성이라는 점이네. 만 명의 군사라면 한 가문을 구하고도 남을 힘. 그런데 팽가의 사 공자는 그 힘을 나라를 위해서 쓴 것이지.”

말을 마친 강유찬은 부관을 불러 만마 패를 전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하북성의 모든 군사를 동원해 주게. 이곳 입구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철저히 봉쇄하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군사들을 본 서재오가 입을 벌렸다.

“헉.”

그때 강유찬이 물었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순간 서재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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