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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81화 (181/621)

181화. 사면초가 (1)

한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새로 얻게 된 초식으로 위기를 벗어났다라?

어찌 보면 용린검법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안배와도 같았다.

제법 많은 공력을 소비한 한빈은 정신과 육체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빈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흘렀다.

한빈은 숨을 돌린 뒤, 바위에 기댄 채 멍하니 있는 아미백선을 땅 위에 눕혔다.

제 꾀에 당한 아미백선은 멍한 눈으로 시전자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혈향미혼대법의 시전자는 한빈이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한빈은 전생에 귀검대주로 살며 미혼대법과 제법 많이 마주했다.

미혼대법의 파훼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혈향미혼대법이 두 가지를 매개체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혈향미혼대법의 매개체는 소리와 피였다.

두 가지 매개체를 사용해서 상대를 노예로 만든다.

그 매개체가 변한다면?

먹을 것에 침을 발라 자신의 것이라 표시하듯, 한빈은 그렇게 혈향미혼소에 자신의 피를 발라 놓은 것이었다.

피가 침투하며 아미백선이 연주하던 혈향미혼소의 시전자는 한빈으로 바뀐 것이었다.

피를 인식하는 혈향미혼소는 강호에 떠도는 소문대로 기물이 맞았다.

‘혈향미혼소라……. 과연 성공했을까?’

한빈은 다시 아미백선 정소군을 바라봤다.

완벽하게 상황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물론 영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효과는 아미백선이 이번에 실행했던 대법에 한해서였다.

일단 아미백선은 혈향미혼대법에 걸려든 상태.

아미백선을 완벽하게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두 번째 단계가 남아 있었다.

한빈은 아미백선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미세하게 한빈의 입술이 떨리며 휘파람 소리가 빠져나왔다.

휘이-익.

한빈이 아미백선을 바라봤다.

“이 소리, 기억했어?”

“…….”

아미백선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빈이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한빈은 같은 행동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

한빈이 다시 물었다.

“이 소리를 기억했나, 아미백선 정소군?”

“네, 기억했습니다.”

아미백선이 건조한 어투로 답하자 한빈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제 아미백선은 혈향미혼대법에 완전히 걸려든 것이다.

한빈의 혈향에 종속되었고, 소리마저도 이제 한빈의 휘파람 소리에 반응하게 만들어 놨다.

한빈은 지친 듯 그녀의 앞에 털썩 앉았다.

편안한 자세로 한빈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앉아.”

“…….”

말이 없이 눈만 끔뻑이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편하게 주군이라고 불러.”

“네, 주군.”

“그럼 편안히 앉아.”

한빈의 말에 아미백선이 자리에 앉았다.

한빈이 말했다.

“해약 좀, 꺼내 봐.”

“네, 주군.”

아미백선이 품속을 뒤져 호리병을 꺼냈다.

호리병에서 해약 하나를 꺼낸 한빈은 조심스럽게 은침으로 찔러 봤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맞았다.

해약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한빈은, 흡족한 표정으로 해약을 삼켰다.

그는 해약이 든 호리병을 다시 건넸다.

“이건 넣어 놔.”

“네, 알겠습니다.”

“내가 몇 가지만 물어볼게.”

“네.”

“너희가 찾으려고 하던 것이 공손세가에 있던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한 것이냐?”

“아직은 모릅니다.”

“그럼 이번 임무에 대해서 다 말해 봐.”

“그러니까…….”

설명을 다 듣고 난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흠…….”

상황이 묘했다.

강호에서 사라졌던 팔선이 나타난 것도 신기한데, 그들이 이 조직의 몸통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아미백선은 장운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녀는 흑선과 함께 이 마을에서 나가는 인원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물론 공손수를 손에 넣으며 안쪽의 상황을 보고 받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나머지는 다른 이가 맡았다고 한다.

한빈이 알아낸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그녀가 속한 단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할 때마다 아미백선은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으으윽. 아, 안 돼.”

지금처럼 말이다.

아미백선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아무래도 금제에 당한 것 같았다.

금제와 한빈의 지시가 충돌한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혈관이 소면 가락처럼 튀어나와 붉어졌다.

이대로 두면 그녀의 머리가 터질 것이 분명했다.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질문은 취소한다.”

“휴우…….”

아미백선이 깊숙이 숨을 들이켜며 혈색을 찾았다.

한빈은 그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어떤 수법인지 모른다면 그것을 풀 방법이 없었다.

안다고 해도 그녀의 금제를 푸는 것은 위험했다.

그것은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한빈은 잠시 아미백선 정소군을 바라봤다.

혈향미혼대법에 잠식당한 아미백선이 거짓을 말할 리는 없었다.

장운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무리가 이제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미리 와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한빈이 뭔가 기억난 듯, 아미백선을 바라봤다.

“참,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네, 물어보시지요. 주군.”

“너희들의 목적이 대체 뭐냐?”

이 정도의 질문이라면 금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던진 질문이었다.

아미백선이 바로 입을 열었다.

“조마필멸(蹧魔必滅) 위정필교(僞正必校).”

“조마필명이라고?”

“썩은 마교를 멸하고 거짓된 정의를 고치는 것은 하늘이 내린 임무…….”

아미백선은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빈이 재빨리 그녀를 막았다.

“됐어, 거기까지.”

“휴우.”

아미백선이 다시 숨을 몰아쉬자, 한빈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썩은 마교를 멸하고 위선적인 정파를 고친다라?

속으로 아미백선이 하던 말을 되뇌던 한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골 때리네.”

진심이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것을 위해서 수많은 백성을 굶어 죽게 만들고 멀쩡한 가문을 파탄으로 몰아넣는다?

힘이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놈부터 패면 될 것이었다.

전생을 돌아보면 정, 사, 마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행동해 놓고는, 마치 하늘의 뜻인 것처럼 혓바닥을 놀려 댄다.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다.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

한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옷을 턴 한빈은 품에서 깃발 하나를 꺼냈다.

한빈은 숲 밖으로 걸어 나가 깃발을 마을 입구에 꽂았다.

그러고는 다시 아미백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 후 반 시진이 지나자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공자님, 지시한 거 가지고 왔어요.”

“잘했다. 용케 알아봤네.”

“제가 원래 눈이 좋잖아요.”

설화는 보따리를 한빈의 앞에 내려놨다.

* * *

한빈은 설화와 함께 아미백선을 처리했다.

물론 그녀의 목을 벤 것은 아니었다.

혈향미혼대법을 통해 한빈의 수족이 된 그녀를 굳이 지울 필요는 없었다.

그녀를 적의 심장 깊숙이 심어 놓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한빈에게는, 구사일생의 수법이 될지도 모르는 도구를 얻은 것과도 같았다.

한빈은 아미백선의 기억을 지우는 동시에, 상처도 지워야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미백선과 자신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지웠다.

옷에서부터 상처까지 처리해야 할 것이 많아 조금 번잡하긴 했지만, 한빈은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객잔으로 돌아와 조용히 자신의 방문을 연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과 똑같이 붉은색 무복을 차려입은 이무명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다가가 이무명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툭.

고개를 돌린 이무명의 눈이 커졌다.

“사부,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막 왔어. 별일 없었어?”

“별일이라기보다는 윤 표두님이 식량을 가져왔습니다.”

“다행히 때맞춰 왔군.”

“그런데 전쟁이라도 치르실 생각이십니까?”

“전쟁이라? 어찌 보면 그 말도 맞네.”

“헉, 전쟁이라고요?”

“뭐, 전쟁이라기보다는 수성(守城)이라고 해야 하나? 방패가 될 사람들이 있으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방패라니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흑사문이요?”

“흑사문 말고 또 누가 있어?”

“아무리 봐도 뛰어난 자들 같지는 않은데, 저들이 어떻게 방패가 되죠?”

“다 방법이 있지.”

“혹시 고기 방패요?”

이무명이 눈을 빛내며 묻자 한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야 당연히…….”

이무명은 한빈을 힐끔 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한빈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무명아.”

“아.”

이무명은 낮게 탄성을 터뜨렸다.

이상하게도 한빈의 말이 반대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상하며 누구보다도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 한빈이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면, 한빈만큼 사악한 사람도 드물었다.

한빈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것은, 마치 나쁜 일을 할 테니 기대하라고 예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무명은 조용히 흑사문에서 온 무리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빈이 말한 방패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약하기만 하고 악행을 일삼는 무리를 어디에 쓴다는 말인가?

이무명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휴…….”

그것도 잠시 이무명은 잽싸게 입을 막았다.

한빈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저지른 실수였다.

하지만,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참, 윤 표두님이 다음 물건은 언제 보내온다고 했지?”

“윤 표두님이 다음 물품이 도착하는 날은 이틀 후라고 했습니다.”

“이틀 후라……. 늦지는 않겠네.”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당과를 양손에 들고 있는 설화였다.

설화를 본 한빈이 물었다.

“더 놀고 와도 된다니까.”

“아니에요, 공자님. 어차피 돈이 다 떨어져서…….”

설화가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한빈의 눈이 커졌다.

“설마, 내가 준 돈으로 다 당과를 사 먹은 거냐?”

“어쩌다 보니…….”

설화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원래의 삶에서는 한참 멀어진 것 같았다.

계약 기간이 지나도 살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길은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빈은 이무명과 설화를 번갈아 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자, 이제 새로운 초식을 배울 때가 됐다.”

말을 마친 한빈은 손뼉을 치며 시선을 모았다.

이무명이 고개를 길게 빼며 한 걸음 다가섰다.

“사부, 대체 어쩐 초식을 가르쳐 주시려고요?”

“음, 그러니까…….”

한빈이 말끝을 흐리자 이무명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재촉했다.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비밀이야.”

한빈이 어깨를 으쓱하자 이무명은 입을 딱 벌렸다.

가르쳐 주기로 한 초식이 비밀이라니?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이무명이 다시 물었다.

“혹시 검법입니까?”

“아니, 검법은 아니고 권장법(拳掌法)에 가깝지.”

“아! 그럼 저희에게 박투술을 가르쳐 주시려고요?”

이무명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시선을 한빈에게 옮겼다.

그러고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이무명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파혼검이야 강호에 알려진 초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영보와 무영수는 달랐다.

무영보와 무영수가 공공문의 초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강호인은 없었다.

그렇다고 무영보를 보고 저게 공공문의 초식이구나 하는 강호인도 없었다.

그 이유는 무영보와 무영수를 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도둑이 자신의 수법을 드러내는 것은 도둑질에 실패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공공문이 도둑질에 실패할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단 공공문과의 연관된 끈을 잘라 내는 것이 맞았다.

한빈은 무영수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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