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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80화 (180/621)

180화. 탈선(脫仙) (4)

아미백선은 멍하니 한빈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멍하니 한빈을 보고 있었을까?

그녀는 한빈의 행동에서 어떤 적의도, 어떤 의도도 찾지 못했다.

한빈이 내뻗는 무영수조차도 공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빈의 무영수가 마치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뻗는 동작처럼 보였다.

거기에다 지금, 아미백선은 자신의 본명과 사부의 이름을 듣고 당황한 상태였다.

이런 원인이 모여 한빈은 구결을 나타내는 점에 무영수를 적중시킬 수 있었다.

팍!

숲속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아미백선이 뒤로 열 걸음 이상 물러났다.

아미백선은 이제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 한빈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빈도 역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한빈이 보는 것은 아미백선이 아닌 허공.

한빈은 기쁜 기색을 숨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에게 진정한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승부사로서는 실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흩어진 용린검법의 구결 중 하나의 초식을 완성했습니다. 초식이 활성화됩니다.]

[인급(人級) 초식 금상첨화(錦上添花)를 획득하셨습니다.]

[금상첨화(錦上添花) - 용린검법의 초식 중 신체 강화의 수법에 해당합니다. 금상첨화는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듭니다. 여기서 신체란 머리, 팔, 다리 등 오체를 뜻합니다. 지속 시간 한 시진. 단, 열두 시진마다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필요 공력 오 년.]

금상첨화라?

새로운 초식을 확인한 한빈은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에 아미백선이 말했다.

“이놈, 도망가려는 것이냐?”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

“네가 그러고도 무인이냐?”

화가 잔뜩 난 아미백선은 구절편으로 바닥을 쳤다.

쫘악!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에이, 참. 할매는 왜 놀음판의 법칙을 몰라!”

“놀음판의 법칙이라고?”

아미백선의 가지런한 눈썹이 꿈틀댔다.

그 모습에 한빈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원래 딴 사람은 배짱부려도 되는 거야. 그럼 나중에 보자고……. 따고 배짱이라는 놀음판의 격언도 몰라? 그러니 할매라 하는 거지.”

한빈은 아미백선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부렸다.

말을 마친 한빈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봄날 눈 녹듯 사라지는 한빈의 모습을 본 아미백선의 눈이 커졌다.

“이놈이!”

아미백선은 노한 표정으로 한빈이 사라진 방향으로 날았다.

한빈을 만나고는 처음 내보이는, 아미백선의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다.

한빈은 뒤를 힐끔 돌아보다 헛숨을 내쉬었다.

“아, 빠르네.”

한빈의 말은 진심이었다.

한빈이 구사하는 구걸십팔보가 중원 최고의 경공술이었지만, 그 차이를 아미백선은 내공으로 메꾸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아미백선이 구사하는 경공술도 만만한 수법은 아니었다.

그녀가 구사하는 경공은 아미파의 운우파보(雲雨破步),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비를 구름 위에 올라 피한다는 아미파의 절기.

초식 이름에 파(破)를 쓴 것은 이 절기를 극성까지 익히면 시전자가 내디디는 걸음에 구름과 비가 아예 없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미백선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던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속성 중 회복을 나타내는 복(復)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빈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사사-삭.

계속 구걸십팔보를 운용하며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붉은 피가 점점 시커멓게 변했다.

혈관을 타고 쏟아지는 피가 검다는 것은?

독이 혈맥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뜻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숲을 벗어나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빈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금 한빈은 철저히 신분을 숨겨야 했다.

한빈은 조용히 자리에서 멈췄다.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한빈은 아미백선을 기다리며 여유 있게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한빈은 팔짱을 끼고 커다란 바위에 기댄 채 앞을 바라봤다.

드디어 한빈의 시야에 아미백선이 활짝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휴, 여기 있었네. 살면서 제일 화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할매 사정까지 알아줘야 하나?”

“자꾸 할매라고 하지 마. 이런 몸매, 이런 얼굴이 어디 봐서 할매야? 젊은 누님이지.”

아미백선은 얼굴과 몸매를 자랑하듯 가슴을 활짝 폈다.

그러고는 한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네. 그건 그렇고 제일 화나는 건 뭐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건 내 밥이 도망치는 거지. 반찬이 도망치는 것까지는 참겠는데, 밥이 도망치면 못 참겠더라고.”

“그렇구나. 그런데 그쪽은 밥에 독을 넣나 봐?”

한빈이 오른팔을 타고 흐르는 검은 피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아미백선이 말했다.

“원래 나는 밥을 독물에 타서 말아 먹어.”

말을 마친 아미백선은 입맛을 다시며 한 발 다가왔다.

“참, 할매는 버릇도 이상하네.”

되받아친 한빈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녀의 행동을 하나하나 뜯어 봤다.

한빈의 예상대로, 아미백선은 품속에서 혈향미혼소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갈대로 만든 대롱을 여러 개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여러 개의 조그만 피리를 일렬로 붙여 놨으니 빗처럼 보였던 것도 당연했다.

아미백선의 의도는, 적에게 미혼술을 건 후 마음대로 요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밥이라고 한 것은 적의 몸이 아닌 적의 생기였다.

가장 팔팔한 상태에서 생기를 취하려면 상대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목을 베서 만드는 것이 아닌 팔팔한 상태로 말이다.

아미백선은 입에 딱 맞는 혈향미혼소를 물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피가 혈향미혼소를 적시자, 그렇지 않아도 붉은 피리는 더욱 붉게 보였다.

동시에 구슬픈 피리 소리가 숲속에서 울렸다.

삐-휘리리.

피리를 불자 적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혼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아미백선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은 한빈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점점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진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완벽한 미혼대법을 위해서 내공으로 적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게슴츠레 뜬 한빈은 용린검법의 초식 중 하나를 운용했다.

‘자승자박.’

그것은 상대의 공력을 돌려주는 효과가 있는 초식이었다.

상대가 한빈보다 경지가 높으니 이 할을 돌려받게 될 것이었다.

한빈은 왜 자승자박을 떠올렸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의 실험에 의하면, 자승자박의 초식이 돌려보내는 공력이라는 것은, 내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혼대법의 수법을 포함한 아미백선의 모든 공격 중 이 할을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빈이 기다리던 기회였다.

한빈은 이어서 쾌검난마를 운용했다.

상대의 마기에 더욱 격렬히 반응할 것이었다.

한빈도 아미백선의 목덜미를 잡았다.

아미백선이 보내는 미혼대법의 수법 중 일부를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미백선은 아무 말 없이 계속 혈향미혼소를 불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독 말이야.”

“…….”

아미백선은 입을 열 수 없었다.

계속 혈향미혼소를 연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미백선의 눈썹이 다시 꿈틀댔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연주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한빈의 다음 말은 그녀를 다시 혼란에 몰아넣었다.

“나도 탔는데…….”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

휘-힉.

혈향미혼소의 음이 살짝 어긋났다.

그만큼 아미백선도 당황했다.

아미백선은 적의 격장지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말없이 피리를 불었다.

휘-리리.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농담 아니야. 아까 그 통나무에 섞어 놓았고 내 검에도 발라 놨거든. 아마 뻐근한 느낌이 용천혈에서부터 올라올 거야. 나도 독에 밥 말아 먹는 걸 좋아하거든.”

“…….”

아미백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혈향미혼소를 연주하며 슬쩍 자신의 몸을 관조해 보니, 용천혈에서부터 혈맥이 불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혈향미혼대법을 시작한 순간 멈출 수는 없었다.

대법을 멈추는 순간, 모든 기운이 자신에게 몰아칠 것이었다.

한마디로 기호지세.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제까지 미혼대법에서 벗어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미혼대법으로 상대를 완벽하게 옭아 넣은 후 해약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혈향미혼소와 한빈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 공력을 더욱 집중시켰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묘한 기운이 자신의 손을 타고 흘러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기운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몸속으로 들어온 기운은 묘하게 몸을 휘돌았다.

자신을 재우려는 듯 쓰다듬는 듯했다.

아미백선은 그제야 그 공력의 정체를 깨달았다.

분명 자신이 적을 옭아 넣기 위해 불어 넣은 미혼대법의 공력이었다.

무림에서 흔히 말하는 이화접목의 수법.

그런데 이화접목의 수법이란,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타격을 주는 것.

지금처럼 사술을 돌려주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아미백선은 그제야 상대를 만만히 봤음을 깨달았다.

내공은 자신보다 아래일지 몰라도, 상대는 자신보다 더한 사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미백선은 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녀는 적의 목덜미를 잡은 자신의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바로 목을 부러뜨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불던 피리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미친…….’

한빈을 보던 아미백선의 눈도 게슴츠레해졌다.

아미백선은 마지막 수를 쓰기로 하고 단전의 모든 기를 방출했다.

휘-리리.

그녀의 피리 소리가 더욱 커졌다.

마치 산중의 왕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그 기세가 얼마나 맹렬한지, 반대쪽 숲에 있던 새들도 놀라 날아갔다.

파드득.

이것은 한빈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

한빈은 갑자기 강렬해진 기세에 이를 악물었다.

자승자박이 펼치는 이화접목의 수법과 기본 구결 중 회복의 속성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한빈의 뺨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주르륵.

한빈의 귀에서 흘러내리는 피였다.

한빈의 청력이, 폭발하듯 밀려드는 혈향미혼소의 소리를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빈의 눈앞에 방금 얻었던 초식이 보였다.

‘금상첨화.’

한빈은 재빨리 금상첨화를 운용했다.

금상첨화는 신체의 일부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수법.

금상첨화를 머리에 사용했다.

순간 한빈의 눈이 커졌다.

노도처럼 밀려들던 혈향미혼소의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머릿속에 쌓였던 미혼대법의 효력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한빈은 이제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로 했다.

한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속에 피가 한 움큼 고이자, 재빨리 백발백중의 초식으로 아미백선의 입술에 물려 있는 혈향미혼소를 향해 날렸다.

휙!

백발백중의 초식으로 날아간 핏물은 정확하게 아미백선이 물고 있던 혈향미혼소와 입술에 적중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아미백선은 한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한빈은 그녀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꽈악.

한빈과 아미백선은 서로의 목덜미를 잡은 채, 석상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숲속을 울리는 혈향미혼소의 연주가 끊기고, 엉켜 붙었던 남녀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한빈이 아미백선을 밀어 낸 것이었다.

아미백선을 본 한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것은 진심이 담긴 행동이었다.

만약 금상첨화의 초식이 없었다면, 아미백선이 연주하는 혈향미혼소의 음에 정신이 잠식당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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