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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74화 (174/621)

174화. 창과 방패 (1)

한빈이 놀란 것은 마지막 글귀 때문이었다.

[강호에 흩어진 구결을 완성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삼 년, 기간이 지나면 용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며…….]

놀람도 잠시, 한빈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을 무작정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 분명했다.

마지막 글귀를 머릿속에 담았을 때 한빈의 눈앞에 다시 글자가 나타났다.

[진룡무영수(眞龍無影手)를 익히기 위해서는…….]

마지막 글귀까지 확인한 한빈이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보니 공손수와 공손명후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한빈이 일어났다.

“지금 왜 그러고 계시는 거죠?”

“지금 누군가가 침입했네.”

“침입자가 있다고요?”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감에 잡히는 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공손수가 알고 있다니?

기감에 있어서는 이 자리에서 한빈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안 가는 상황.

한빈의 표정을 본 공손수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바닥에 묻어 놓은 실이 반응하고 있네.”

공손수가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방울이 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방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 누군가가 오면 울리는 장치인 것 같았다.

하긴, 십 년이나 이곳을 지킨 그들이었다.

벽화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둘 리가 없었다.

이런 경보 장치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때 미세하게 흔들리던 방울이 소리를 냈다.

딸랑.

“백 걸음 밖이네. 일단 자네는 피하게.”

공손수가 심각한 얼굴로 답하자 한빈이 재빨리 말했다.

“일단 벽 뒤로 숨고 지켜보시죠.”

말을 마친 한빈은 공손수와 공손명후를 벽 뒤 공간으로 물러나게 한 후, 장막으로 벽을 덮었다.

한빈도 벽 뒤 공간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밖의 상황을 살펴봤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한빈은 눈을 감고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문 쪽을 바라봤다.

한빈에게도 기척이 잡히긴 했는데, 그것이 상당히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딸랑. 딸랑.

방울이 더욱 세게 울렸다.

이어서 문이 열렸다.

덜컹.

동시에 바닥에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삭. 사사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한빈의 앞에 누군가가 멈춰 섰다.

이어지는 목소리.

“누가 내 제자를 납치해 갔느냐?”

그 목소리에 한빈이 입을 딱 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홍칠개.

상대를 확인한 한빈은 장막을 걷고 재빨리 앞으로 뛰어나갔다.

“사부님, 여긴 대체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한빈의 모습에 홍칠개가 당황한 듯 물었다.

“헉, 제자야. 무사했느냐?”

“당연히 저야 무사하죠.”

“분명히 위험하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어쨌든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휴…….”

홍칠개가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한빈의 뒤에 있는 공손수를 바라봤다.

“혹시, 너는 공가 놈 아니냐?”

“너는 개방의 홍가 놈?”

홍칠개와 공손수가 검지로 서로를 가리켰다.

아마도 이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검지로 서로를 가리키며 놀라는 둘.

멍하니 있던 둘의 사이에 한빈이 끼어들었다.

“어르신, 그리고 사부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얘기해 주겠네.”

공손수가 앞으로 나서자 홍칠개가 손을 내저었다.

“내 제자인데 내가 말을 해야지. 왜 자네가 끼어드나?”

둘이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뒤늦게 설화가 도착했다.

“저 왔어요, 공자님.”

“그래, 왔구나.”

“공자님이 얘기한 대로 홍칠개 할아버지 데려왔어요.”

한빈은 그제야 사정을 알 수 있었다.

한빈은 분명히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홍칠개에게 사정을 알리라고 했다.

설화는 그 지시에 충실한 것이었다.

설화가 홍칠개보다 늦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한빈의 시선이 설화의 양손에 든 당과 꼬치로 향했다.

설화는 홍칠개를 불러오며 도중 당과를 사 온 것 같았다.

한빈의 눈길에 설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이 누구한테 당할 리는 없잖아요.”

설화의 어색한 변명에 한빈이 손을 내저으며 앞장섰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설화야.”

“네, 공자님.”

한빈은 조용히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 뒤를 공손명후가 재빨리 따랐다.

“같이 가시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날 무렵.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던 홍칠개와 공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갔지? 내 제자.”

“그러게 말일세…….”

둘은 그제야 허겁지겁 한빈의 뒤를 쫓았다.

* * *

잠시 후.

공손세가의 회의실.

한빈은 홍칠개의 밝혀지지 않은 과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홍칠개가 거지가 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꽤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공손수와 만난 것은 어릴 적 서당이고 말이다.

가끔씩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홍칠개가 개방에 들어가고도 나서도, 공손수가 황실에 들어가고 나서도 둘은 연락을 끊지 않았다고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공손명후도 눈을 크게 뜨는 것으로 봐서는 둘의 관계는 비밀이었던 것 같았다.

개방의 원로와 대학사가 어린아이처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다.

어찌 보면 둘 다 각자의 분야에서 일대 종사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었다.

지금 이곳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광경.

그렇게 웃음꽃을 피우다가 앞으로 장운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던 중 한빈은 품 안에서 부채를 꺼냈다.

탁.

탁자 위에 올려진 부채에 공손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부채를 펼쳤다.

촤르륵.

부채를 펼치자 나타난 산수화.

한빈은 그중 몇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어르신, 이곳에 대해 아십니까?”

공손수의 눈이 커졌다.

“그곳이라면…….”

공손수는 말끝을 흐리며 공손명후를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공손명후가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그곳이라면 제가 할아버지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이곳을 어떻게 아십니까?”

“이 마을에서 이상하다 싶은 곳을 표시해 놓은 곳일 뿐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흠, 그러니까. 공자께서 표시해 놓은 곳은 탈출구입니다.”

“탈출구라고요?”

“공자께서 저를 따라오셨던 통로 말입니다.”

“네, 그 통로는 여기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여기하고만 연결된 통로가 아닙니다. 장운현에 미로처럼 뻗어 있는 통로입니다. 아마 진시황 때부터 이어진 통로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의 통로는 제가 만든 것이고, 나머지 출구는 원래부터 있던 출입구죠.”

“그럼 하나만 더 묻죠.”

“네, 말씀하시죠.”

“그 출입구가 막히면 어떻게 될까요?”

한빈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어본 것이었다.

“출입구가 막힌다라?”

공손명후는 뭔가를 상상하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빈은 재촉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공손명후가 눈을 떴을 때는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공자가 말한 상황과 출구가 막히는 일이 같이 일어난다면…….”

공손명후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공손수가 나섰다.

“그건 내가 대신 말하겠네. 아마 장운현 사람의 삼분지 일은 사라질 걸세.”

“삼분지 일이라고요?”

한빈이 놀란 듯 물었다.

비밀통로의 출구가 막히는 것과 무슨 상관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 표정을 본 공손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의 삼분의 일은 우리 사람일세. 자네는 우리의 정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객잔의 점소이와 지나가는 마부까지……. 삼 분의 일은 우리 사람이라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것이지.”

이것은 한빈도 예상한 바.

“그런데 그들이 출구가 막히면 죽는다는 겁니까?”

“만약 경천동지할 일이 생기면 피할 곳은 지하의 비밀 통로 한 곳이니 당연히 그곳으로 피하겠지. 하나 피난처의 식량이 떨어지면 굶어 죽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렇군요. 그럼 통로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어르신.”

“그러니까 …….”

설명을 모두 끝낸 공손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저곳이 막힌다는 건가?”

“별건 아닙니다. 다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생에 기억대로라면 공손세가를 돕는 정보원들이 모두 그곳에 묻힌다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한빈이 표시한 출구가 파헤친 것처럼 구덩이의 형태로 남게 될 터.

상대는 공손세가를 세상에서 지우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빈이 이곳에 안 왔다면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공손명후밖에 없을 것이었다.

한빈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공손명후는 공손의 성 씨를 버리고 강호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변장과 경공술의 달인으로 말이다.

한빈의 표정을 본 공손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말해 보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 통로로 피하지 마십시오.”

“흠, 알았네. 자네에게 말했으니 이젠 비밀 통로가 아니지. 게다가 자네에게 미행까지 당했으니 이제 그 통로의 가치는 없어졌네.”

“그럼 제가 좋은 일에 써도 괜찮겠습니까?”

한빈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날 아침.

한빈 일행은 공손세가의 대문을 나왔다.

홍칠개는 힐끔 한빈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제자야. 너는 진짜 대단하구나.”

“제 무공이 말입니까? 사부님.”

“그게 아니고 일거리 물어 오는 재주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말이다.”

“하하. 그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게다가 넉살도 좋고. 험.”

홍칠개는 못마땅한 듯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홍칠개가 왜 이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한빈이 공손가에서 무영보를 배웠기 때문이었다.

한빈이 구걸십팔보를 놔두고 무영보를 배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용린검법의 전언이 전한 내용 때문이었다.

두루마리가 말한 대로라면 무영보 속에 진룡무영수가 숨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용린겁법의 한 귀퉁이에 진룡무영수의 초식이 자리 잡고 있으니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융합편]

[구걸십팔보]

[진룡파혼검]

[진룡무영수]

비급을 확인한 한빈은 홍칠개를 달래듯 말을 걸었다.

“참고삼아 배우긴 했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경공술은 구걸십팔보만 쓸 계획입니다. 그만큼 빠른 경공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하하!”

홍칠개가 주변이 떠나갈 듯 웃었다.

그때 옆에서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아까 들어 보니 개방이 창이라면서요. 혹시 방패도 있나요? 공자님.”

“아마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됐는데…….”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적혈맹호대가 묵고 있는 숙소 쪽을 바라봤다.

* * *

같은 시각 적혈맹호대가 묵고 있는 객잔.

때아닌 객잔 보수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심미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일행이 객잔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 공사를 관리하던 심미호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행렬의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의 앞에 선 심미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 객잔은 당분간 영업하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 주셔야…….”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은 심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희는 숙소를 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그럼 여기에 왜 오셨는지요?”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이곳으로 왔다고 해서 급히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존성대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하남 백사문의 진세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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