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60화 (160/621)

160화. 하북제일 (3)

같은 시각, 무덤 속 통로를 통해 적당량의 흑철을 빼낸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왜 그래요? 공자님.”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그래.”

“왜요? 또 귀가 간지러워요?”

“아니, 묘하게 예전에 셋째 형한테 당하기 전의 느낌이네.”

한빈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자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느낌이 안 좋다는 말과는 달리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설화의 눈은 정확했다.

이복형들에게 당했던 전생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니 말이다.

한빈의 감정은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다.

거기에 일 푼 정도의 걱정이 섞여 있었다.

천수장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

일단은 빨리 움직이는 게 맞았다.

한빈은 흑철을 쌓아 놓고 대기하는 적혈맹호대를 바라봤다.

“앞에 있는 흑철을 각자 나눠 담는다.”

“명 받들겠습니다.”

소대섭을 시작으로 막내 조호까지 포권하며 흑철을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자신 있게 외치던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표정이 바뀐 것은 흑철이 담긴 자루를 등에 멨을 때였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어이쿠.”

“아이고, 저 죽어요.”

인상을 찡그린 그들은 모두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한빈은 그들이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조호의 앞에 멈춘 한빈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호야, 힘들지?”

“네. 생각보다 무거워서 이걸 가지고 하북까지 간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주군.”

“그럼 덜어도 좋다.”

“네?”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옮겨라.”

한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한빈이 한 말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한빈이 캐낸 흑철을 여기에 두고 간다?

그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한빈이 받아 낸 계약서가 하루아침에 불타는 소리와도 같았다.

조호도 다른 이들의 생각과 같았다.

잠시 한빈을 말없이 바라보던 조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래도 되나요? 주군.”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걸 봤냐? 조호야.”

한빈이 씩 웃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주군이 혹시…….”

“저건 주화입마가 분명해.”

“아니야. 변할 수도 있지.”

“그럼 안 되지,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면…….”

적혈맹호대 대원들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던 것이다.

한빈은 모두의 웅성거림이 잦아들 때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조호야. 사람은 감당할 수 있는 짐만 들어야 한다. 무거우면 내려놓거라.”

“주, 주군.”

조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 모습에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편하게 내려놓거라.”

한빈의 말에 조호는 등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흑철을 조금 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빈은 주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나머지 대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흑철만큼만 담아라. 이건 명령이다!”

한빈의 외침에 나머지 대원도 등에 짊어진 짐을 바닥에 풀어 놓고 흑철을 덜기 시작했다.

“휴, 살았네. 살았어.”

“그런데, 주군이 아무래도 이상해.”

“그러게, 걱정되네.”

“차라지 그냥 짊어지고 가는 게 편할 것 같은데.”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한빈을 봤다.

그때 한빈이 다시 조호를 바라보며 그윽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흑철의 용도를 아느냐?”

“용도요?”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낸 조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한빈이 말했다.

“이 흑철로 너희들의 병장기를 만들 것이며, 남은 흑철의 일 할은 너희 몫이다.”

“저희 몫이라니요?”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 그 책임만큼 보상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그, 그럼 제가 덜어 놓은 흑철의 일 할이…….”

조호의 눈빛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네 등에 짊어진 흑철의 일 할. 네가 덜어 놓은 흑철의 일 할. 모두 네 것이지.”

한빈의 말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 큰일 날 뻔했네.”

“자네, 그거 무거우면 나한테 덜어도 좋네.”

“에끼, 무슨 소리. 난 아직 여유가 있으니 자네 짐이나 내게 주게.”

적혈맹호대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거기에 때아닌 흑철 쟁탈전까지 벌어졌다.

그때 흑철 한 무더기를 멘 장삼이 한빈에게 다가왔다.

“주, 주군.”

“장삼, 왜 그래?”

“저, 흑철 더 캐 오면 안 되겠습니까?”

“에이, 무리하다가 허리 나가면 어떻게 하려고.”

“아닙니다. 제가 이래 봬도 튼튼합니다.”

“됐어. 나중에 다시 옮길 때도 조건은 똑같으니 욕심내지 마.”

“아, 알겠습니다. 주군.”

장삼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한빈이 앞장서며 말했다.

“이제 출발한다!”

한빈의 외침과 동시에 적혈맹호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설화가 조용히 물었다.

“진짜 흑철을 놔두고 오시려고 했나요? 공자님.”

“왜, 안 믿겨?”

“네, 공자님께 흑철은 제 당과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힘이 들면 내려놓는 게 맞아. 하지만…….”

“하지만이라니요?”

“흑철을 덜어 낸 대원이 있었다면 아마 여기에 다시 와야 했을걸.”

“다시 오다니요?”

“하북에 짐 풀자마자 여기에 다시 와서 남은 흑철을 가져와야지. 한 번에 못 옮기면 두 번에 옮기면 되는 거다. 설화야.”

“아.”

설화가 탄성을 흘리며 한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지독한 구두쇠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설화의 시선에 한빈이 말했다.

“너도 당과를 한 번에 못 먹으면 나눠서 먹잖아. 네 기억에 못 먹는다고 당과를 버린 적이 있나 생각해 봐.”

“아, 그러니까 이해가 되네요. 역시 공자님의 강의는 팍팍 들어와요. 헤헤.”

설화가 해맑게 웃자 옆에서 지켜보던 이무명이 혀를 찼다.

어이없다는 듯 한빈을 바라보던 이무명은 묘한 웅성거림에 뒤쪽을 바라봤다.

뒤쪽을 보니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횡액을 겨우 면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한빈이 뭔가 생각난 듯 외쳤다.

“잠시 멈추고 지금부터 모래주머니를 풀어 놓는다. 실시!”

한빈의 말에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모래주머니가 뭐지?”

“그러게.”

그때였다.

조호가 장삼의 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생각해 보니 우리 모래주머니 푼 적이 없어요.”

“모래주머니라니?”

“각반 말이에요.”

“아.”

장삼은 그제야 탄성을 흘렸다.

천수장에 들어오고 찼던 모래주머니였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모래주머니를 하남정가에 다녀올 때도 차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리뿐 아니라 허리에도 차고 있던 모래주머니는 마치 신체의 일부분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장삼이나 조호뿐 아니라 나머지 대원도 마찬가지였다.

한빈의 명에 따라 모두가 모래주머니를 풀었다.

탁. 탁.

모두가 동시에 모래주머니를 풀어 놓자 마치 소나기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 * *

같은 시각 수정반점.

철노를 바라보는 설무익의 눈빛은 마치 독사가 먹이를 노리는 것 같았다.

설무익이 물었다.

“네가 뭔데? 그리고 공자는 대체 뭐지?”

“제가 우리 공자님 오른팔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공자님한테 말하면 보상해 줄 겁니다.”

“그러니까. 네가 말한 공자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우리 공자님은…….”

철노가 살짝 말끝을 흐렸다. 한빈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니 정리가 안 되었다.

처음에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임을 밝히려 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한빈은 아직도 하북제일의 겁쟁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가문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란 소문이 파다했고 말이다.

거기에 더해 괜히 여기에서 한빈을 들먹였다가는 소가주를 향한 행보에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송화산 부근의 마을 사람들은 한빈을 하북제일의 신의라며 떠받들고 있는 상황.

말끝을 흐리던 철노가 말했다.

“우리 공자님은 하북제일입니다.”

철노는 신의라는 말은 생략했다.

설무익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하북제일? 뭐가 하북제일인데?”

“그건 비밀입니다.”

철노는 자신도 모르게 한빈이 평소에 잘 쓰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설무익은 황당하다는 듯 철노를 바라봤다.

“비밀이라고 했지? 그 비밀이 대단하지 않다면 넌 죽었어!”

말을 마친 설무익은 탁자를 소리 나게 내려쳤다.

탕!

그 소리에 맞춰 옆에 수하들이 배를 움켜잡는다.

“아, 배가 살살 아프네.”

“저도요. 아무래도 음식을 잘못 먹은 것 같은데요.”

“아, 뭐 이런 집이 다 있어.”

은침뿐 아니라 다른 수법으로 상대를 옭아 넣으려는 듯 보였다.

철노가 이들을 어찌 상대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관아의 포졸 복장 사내들이 들어왔다.

포졸은 철노와 설무익 사이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그러니까…….”

철노가 포졸에게 막 설명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포졸이 눈매를 좁히며 철노를 위아래로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포졸은 고민하는 듯 턱을 긁다가 설무익에게 물었다.

“혹시 무림인이오?”

“네, 맞습니다. 흑사문의 설무익이라고 합니다.”

“아, 무림인이군. 그럼 그쪽은?”

포졸은 턱짓으로 철노를 가리켰다.

철노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는 무림인은 아니지만, 제가 모시는 공자님은 무림인이지요.”

“그럼 무림인 맞네. 그리니까 결론은 무림인이라는 거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림인이라면서? 주인이 무림인이면 그 수하도 무림인 아닌가?”

“…….”

“왜 바쁜 나를 왜 부른 거지? 서로 알아서 해결하면 될 것을 말이야.”

포졸은 철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옆을 힐끔 보고는 설무익에게 눈짓했다.

그 모습에 철노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이곳 음식점은 무림과 관련된 곳이 아니지 않나요? 나으리.”

“자네가 무림인이라며?”

“제가 이 음식점의 주인은 아니잖아요, 나으리.”

“그럼 해결책은 간단하네. 너는 여기 있는 분과 무림의 법도대로 알아서 해결하고 나는 여기 주인을 잡아가면 되는 거네. 그게 네가 원하는 거 맞지?”

“음.”

철노는 침음을 삼켰다.

힐끔 주방 안쪽을 보니 장수정이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노는 그녀를 보며 슬쩍 눈짓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라는 신호였다.

그때였다.

주방에 숨어 있던 장수정이 뛰어나왔다.

헐레벌떡 포졸 앞으로 뛰어온 장수정이 외쳤다.

“이분하고는 관계없어요!”

“당신이 주인인 모양이군.”

“네, 잡아가려면 저를 잡아가세요.”

“일단 알았으니 옆으로 비켜 있어.”

포졸이 하대를 하며 장수정을 옆으로 밀쳤다.

그 모습에 철노는 확신했다.

포졸과 설무익 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말이다.

생각을 마친 철노가 설무익을 바라봤다.

“지금 당장 보상할 테니 저랑 같이 가죠.”

“네가 한 말에 책임져야 할 거야.”

말을 마친 설무익은 포졸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는 지금 곳간에 돈을 쌓을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북제일이라?

과연 무엇이 하북제일인지는 몰라도 저 철노란 놈의 상전을 홀딱 벗겨 먹을 것이다.

잠시 후, 철노는 수정반점을 나와 앞장서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흑사문.

흑사문주 설경추의 앞에는 백색 무복에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백사문의 진세미.

백사문과 흑사문의 관계는 본점과 지점과도 같았다.

진세미의 한마디라면 흑사문의 현판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 관계에 있기에 흑사문주 설경추는 최대한 진세미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시답잖은 이야기가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오갔다.

찻잔을 비운 진세미가 본론을 이야기하겠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주님, 제가 부탁한 일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죠?”

“사파가 절대 하북팽가 사 공자에게 손을 못 대게 할 것. 그리고 하북팽가의 움직임을 주시하라는 지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

“네, 맞아요. 문주님.”

“그 일이라면 제 아들, 무익이가 맡아서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부탁을 넘어서 강남 사도련 군사이신 마휘 님의 지시이기도 하니 유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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