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59화 (159/621)
  • 159화. 하북제일 (2)

    이야기를 듣고 난 여인이 말했다.

    “공자님이란 분, 너무하시네요. 딱 봐도 오라버니는 몸도 약한데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에요?”

    여인은 검지로 철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철노의 구릿빛 얼굴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사실 철노는 누가 봐도 건장해 보였다.

    무공은 하지 못하지만, 체격만 본다면 일류 무인의 신체였다.

    누가 본다면 여인의 눈이 잘못되었다고 한숨을 쉬었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철노는 기분 좋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공자님은 그런 사람 아니야. 그리고 중요한 건 나 몸 약하지 않아.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철노는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왕년에’로 시작되는 허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침이 마르도록 허풍을 늘어놓던 철노가 뭔가 기억난 듯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참, 준비는 된 거지?”

    철노의 진지한 물음에 여인이 답했다.

    “네, 오라버니. 준비해 놨어요. 오늘을 위해 목욕재계까지 했는 걸요.”

    “에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청결이 필수라고 하셨잖아요.”

    여인이 뒷머리를 긁적이자 철노가 말했다.

    “하긴, 이 일에 기본은 청결이지.”

    “네, 맞아요.”

    “그럼, 시작하지.”

    “네, 오라버니.”

    말을 마친 여인은 앞장섰다.

    여인이 향한 곳은 객잔의 문과는 정반대에 있는 주방이었다.

    치렁치렁 천으로 가려진 주방으로 들어간 여인이 커다란 도마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말한 재료예요. 가능한 한 다 준비했어요.”

    “그래, 이제 시작해 보자고.”

    말을 마친 철노는 먼저 소매를 걷고 옆쪽에 준비된 물에 손을 씻었다.

    그 모습을 여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봤다.

    여인의 이름은 장수정.

    이곳 수정반점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철노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이 아니었다.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요리 비법이었다.

    그 요리 비법은 다행히 이곳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먹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는 만두를 맛있게 먹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먹는 모습이 하도 복스러워서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쉰 한숨이 장수정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호기심 때문에 물어봤는데, 사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 만두에 대한 신랄한 비평이었다.

    이것은 장수정의 심기를 건드려 놨다.

    성인이 되어서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싸운 것은 진짜 처음이었다.

    어찌나 심하게 싸웠는지 사내의 옷고름까지 찢어 놓았다.

    그 사내가 바로 철노였다.

    그렇게 싸우고 헤어진 후 장수정은 철노가 한 말을 곰곰이 떠올려 봤다.

    ‘만두는 만두다워야 한다!’

    ‘간은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갈무리되어야 진정한 맛을 낼 수 있다.’

    ‘반죽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등등.

    사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것이 장수정의 기분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기억 한편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철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가 철노와의 만남을 악연이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던 어느 날이었다.

    수정반점의 문을 닫을 무렵 철노가 대나무 통에 음식을 싸 들고 왔다.

    탁자 위에 대나무 통을 탁 내려놓으며 철노가 던진 말을 딱 한마디였다.

    ‘한번 맛보슈.’

    그녀는 반신반의하며 만두를 집어 베어 물었다.

    그때의 짜릿함을 생각하면…….

    그녀의 상념은 철노의 반죽 소리에 깨졌다.

    탁. 탁.

    철노의 섬세한 움직임에 반죽이 도마 위에서 춤을 추었다.

    장수정은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저 솜씨는 그녀가 요즘 많이 보던 동작이었다.

    첫 만남 이후 철노는 가끔 이곳에 와서 만두를 만들어 줬다.

    덕분에 지금 수정반점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가끔 수정반점에 나타나는 하북제일의 맛.

    그 맛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 하북성 사람들의 애를 타게 하고 더욱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장수정은 그 맛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요구에 철노는 흔쾌히 응해 줬다.

    그 비법을 전수받기 위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탁. 탁.

    반죽을 하던 철노가 힐끔 장수정을 바라봤다.

    “반죽에는 일정한 공기가 들어가야 해. 잘 봐 봐.”

    탁.

    철노가 반죽을 커다란 도마 위에 내려쳤다.

    그 모습에 장수정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철노 오라버니.”

    장수정의 말에 철노가 다시 반죽에 집중했다.

    철노가 만두에 이처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 이유는 한빈 때문이었다.

    가문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한빈에게 해 줄 수 있 그가 좋아하는 만두를 만들어 주는 것밖에 없었다.

    한빈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철노가 직접 만들게 되었고 현재의 비법이 완성된 것이었다.

    * * *

    철노와 장수정의 새벽은 후딱 지나갔다.

    이윽고 수정반점의 개점 시각이 다가오자 철노는 주방에서 나와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주방을 정리하고 온 장수정이 철노의 맞은편에 앉았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철노 오라버니.”

    “갑자기 우리 공자님 생각이 나서.”

    “또 공자님이에요?”

    “뭐, 우리 공자님 얘기는 아니고, 우리 공자님의 제자가 된 친구 얘기야.”

    “무슨 얘기인데요?”

    “이무명이란 친구인데, 우리 공자님하고 검을 처음 맞대고 나서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가 생각났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거문고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검도 음악과 같아서 자신의 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꼭 백아가 된 것 같다고 했거든. 그런데 내 기분이 그런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라버니.”

    “동생이야말로 내 만두의 진정한 맛을 알아주니까 하는 말이지.”

    철노는 장수정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

    장수정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에 철노가 물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새벽부터 무리한 것 같은데, 지금 얼굴이 벌게졌어.”

    “아, 아니에요.”

    “오늘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장수정은 시선을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수정반점의 문이 열리며 풍경이 소리를 냈다.

    땡.

    그 모습에 철노가 말했다.

    “첫 손님이 왔네. 이제 들어가 봐.”

    “아직 점소이도 안 왔는데요. 그리고 한 시진은 지나야 문 여는 시각이에요.”

    말을 마친 장수정은 쪼르르 손님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개점 시각을 알리고 돌려보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장수정이 철노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그런데 한 가지 꼭 알아 두세요.”

    “뭐를 알아 둬?”

    철노가 고개를 갸웃하자 장수정이 웃었다.

    “호호. 철노 오라버니 만두 맛은 저만 알아주는 게 아니라는 걸요.”

    “에이, 진정한 맛을 알아주는 건 동생이 두 번째였어.”

    “첫 번째는 공자님이고요?”

    “이제 잘 아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수정반점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린 장수정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철노가 물었다.

    “왜 그래?”

    “철노 오라버니, 목소리 낮추세요. 저 사람들, 질이 좀 안 좋은 손님이에요.”

    장수정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철노는 힐끔 자리에 앉은 손님을 바라봤다.

    지금 들어온 이는 모두 네 명.

    그들은 목덜미에 검은색 문신을 하고 있었다.

    하북팽가의 밥을 먹는 철노도 어찌 보면 강호에 속한 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철노도 하북에 있는 문파는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지금 들어온 이들의 목덜미에 있는 것은 검은색 독사.

    그들은 하북지역에서 방귀깨나 낀다는 사파인 흑사문이었다.

    흑사문은 어찌 보면 사파 중에는 가장 안하무인인 축에 속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을 중재할 힘이 없다는 점이었다.

    흑사문은 강북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묘하게도 강북사파의 연합인 강북 사도련에 속하는 문파가 아니었다.

    흑사문은 강남의 가장 큰 사파인 백사문의 하위 단체였기에 강남 사도련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철노 쪽을 보며 외쳤다.

    “여기 빨리 주문 좀 받지!”

    그 말에 장수정이 일어나려 하자 철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능한 한 기분을 맞춰 주고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철노는 재빨리 가서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뭘 대령할까요?”

    “여기 만두가 유명하다지. 만두 스무 판하고 죽엽청 다섯 병. 빨리 내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손님.”

    철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장수정에게 달려갔다.

    철노와 장수정은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가 만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내 중 한 명의 눈빛에는 탐욕이 서려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설무익.

    흑사문주의 아들이었다.

    그는 무공보다 간계에 능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돈을 버는 것이 일상이었다.

    설무익은 본문이라 할 수 있는 백사문이 호출하는 바람에 장기간 하남에 있었다.

    오랜만에 밟아 보는 하북 땅에서 벌일 일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곳 수정반점이었다.

    그가 여기에 온 것은 장안에서 소문난 만두 때문이었다.

    그 비법을 빼앗고 수정반점도 인수할 계획이었다.

    잠시 후.

    철노는 만두 스무 판을 설무익 일행의 탁자에 깔았다.

    “주문하신 만두 나왔습니다.”

    “그래, 술은?”

    설무익이 힐끔 만두를 보고는 묻자 철노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죽엽청을 올려놨다.

    “술도 여기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설무익이 손짓하며 철노를 물렸다.

    철노는 주방으로 돌아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만두 스무 판이라?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하지만, 너무 과한 양이었다.

    게다가 기다리던 만두가 나왔는데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음식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주방 안에서 철노가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을 때였다.

    장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철노 오라버니, 왜 그래요?”

    “뭔가 수상해서 그래.”

    “저 관아에 신고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응, 내가 손짓하며 신고해.”

    “알았어요, 오라버니.”

    장수정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철노가 걱정하던 일이 펼쳐졌다.

    갑자기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쾅!

    덕분에 탁자 위에 쌓아 놓은 만두 판이 공중에 날아올랐다.

    파바닥.

    만두가 분수처럼 공중에서 비산하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썩.

    데구루루.

    바닥을 굴러다니는 만두와 그릇.

    철노가 장수정에게 손짓한 뒤 그들에게 달려갔다.

    “손님, 무슨 일이신지요?”

    “여기 숙수 나오라고 해.”

    “제게 말씀해 주시죠.”

    철노가 고개를 숙이자 설무익이 탁자 위에 반쪽 난 만두를 가리켰다.

    “이게 뭐야?”

    “만두에 문제가 있나요?”

    “여기 봐 봐. 만두에 은침이 왜 나와? 나 이거 먹고 죽을 뻔했어.”

    “은침이라니요?”

    “여기 안 보여?”

    설무익은 만두 속을 파헤쳐 은침을 집어 철노의 눈앞에 갖다 댔다.

    철노가 눈매를 좁히며 은침을 바라봤다.

    분명 은침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장수정이 만든 만두에 은침이 들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은 모함.

    철노는 조용히 설무익의 눈을 바라봤다.

    바라본 이의 눈빛에 어린 탐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하북팽가에서 다년간 이 공자와 삼 공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철노였다.

    그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철노는 알고 있었다.

    단순한 시비가 아닌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엮이면 안 될 것 같았던 철노가 정중히 말했다.

    “음식값은 안 내셔도 됩니다, 손님.”

    “이게 음식값으로 해결될 것 같아? 내 입에 생긴 상처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설무익은 만두를 잡아 철노의 얼굴에 던졌다.

    탁.

    순간 철노가 만두를 피했다.

    그 모습에 설무익이 말했다.

    “어쭈. 제법 하는데?”

    그의 도발에 철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보상해 드리면 될까요?”

    그 말에 설무익이 눈을 빛냈다.

    “보상? 네가 보상해 줄 형편이 된다고?”

    “저는 안 돼도 우리 공자님은 가능하세요.”

    철노는 답하며 한빈이 떠나기 전에 당부한 말을 떠올렸다.

    한빈은 철노에게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생기면 천수장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철노는 지금 한빈의 말을 따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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