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계산은 정확히 (2)
적룡대협이라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무명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적룡대협의 정체는 바로 서문무결 앞에 있는 한빈이 아니던가?
설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왠지 새로운 낚시가 시작될 것 같아서였다.
각각 다른 시선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
본인인 한빈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적룡대협이요?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허, 적룡대협을 처음 들어 보다니 이상하군.”
“제가 요즘 바빠서 강호의 소식을 못 들었나 봅니다.”
“그럼 내가 설명해 주겠네.”
“네, 그럼 감사하죠.”
“지금 강북에는 소문이 파다하다네. 적룡대협이란 자가 마교의 잔혈마도를 처단했다고 말일세.”
“흠,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결 도중 동귀어진을 했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네.”
“그런데 적룡대협이란 분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지금 사파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네. 잔혈마도가 누구던가? 화경의 고수가 아니던가? 그자를 제압했다면 적룡대협도 화경의 고수라는 이야기지. 그보다도 놀라운 것은 힘없는 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 의협심일세.”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한 일입니다. 저도 갑자기 의협심이 끓어오릅니다.”
“그렇지. 무인이라면 그게 정상이지.”
“그런데,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적룡대협을 왜 찾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만약 그분이 살아 있다면 그분과 논검을 하고 싶네.”
“비무가 아니라 논검이요?”
“그건 당연하지. 소문이 진짜라면 몸이 정상이 아닐 것이야. 회복하려면 몇 년은 걸릴 테지. 그러니 비무가 아닌 논검을 청하는 것이 맞는 일이지.”
“그렇군요.”
“사실 논검 전에 적룡대협에게 전해 줄 것도 있네.”
“전해 줄 것이라니요?”
“부상을 입었으니 아무래도 단약이 필요할 것 같아 가문에서 몰래 영단 하나 들고 나왔다네.”
그의 말에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서문세가에서 몰래 들고나올 단약이라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영단이 분명했다.
한빈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마른침을 삼켰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설화는 살짝 입을 벌렸다.
왠지 자신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설화의 예상이라는 것은 서문무결을 향한 한빈의 새로운 낚시가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팅! 팅!
그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서문무결이었다.
서문무결은 검집을 움켜잡고 눈을 가늘게 떴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으려는 모습이었다.
한빈이 서문무결을 말렸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자네, 무슨 말인가? 저것도 자네의 일행이 내는 소리라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병장기 소리가 아닙니다.”
“흠,”
서문무결이 고개를 갸웃하자 한빈은 설명을 이었다.
“저 소리는 바로 정과 망치 소리입니다.”
“정과 망치라니…….”
서문무결은 한빈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정과 망치 소리에 생소한 분들이 많죠. 잘 들어 보시면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 끝에 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실 겁니다.”
“흠.”
헛기침한 서문무결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팅! 팅!
서문무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빈이 말한 대로 돌조각 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신도 듣지 못한 소리를 하북팽가의 젊은이가 듣는다라? 서문무결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들인 서문진경을 바라봤다.
서문진경은 같은 나이대에서는 가문 내에 적수가 없다고 하는 아이였다.
자신의 아들과 한빈을 번갈아 본 서문무결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었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닐세.”
서문무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의 아들, 서문진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서문무결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서문무결은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멀리서 소대섭이 외쳤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 말에 맞춰 한빈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장을 푼 한빈 일행의 행렬은 망치 소리가 나는 곳과 가까워졌다.
* * *
잠시 후.
다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한빈 일행은 잠시 발길을 멈췄다.
팅! 팅!
돌 쪼개는 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서너 명의 석공들이 벽돌을 만들고 있었으며 인부들은 그 돌과 자재들을 어디론가 옮기고 있었다.
한빈은 힐끔 심미호를 보며 말했다.
“심 부대주, 저거 뭐 하는 짓인지 좀 알아봐.”
“네, 주군.”
심미호는 깊숙이 포권한 뒤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돌아온 것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였다.
심미호가 한빈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건물을 세우는 중이라고 합니다.”
“건물이라? 혹시 절이라도 세우나?”
“그게 아니고 사당을 세운다고 하네요.”
“사당이라?”
한빈이 눈매를 좁히자 심미호가 말을 이었다.
“좀 이상한 것이 백사문이라는 사파가 중심이 되어 짓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사파가 사당을 짓는다고?”
한빈의 고개가 꺾일 듯 기울어졌다.
그것도 잠시 한빈이 눈을 빛내며 자재가 이동하는 곳을 바라봤다.
어딘가 길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더니.
자재가 이동하는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잔혈마도와 일전을 펼쳤던 곳이다.
순간 한빈의 머릿속은 새가 날갯짓하듯 빠르게 움직였다.
모든 계산을 마친 한빈이 설화에게 말했다.
“설화야, 비둘기 두 마리만 챙겨라.”
“네, 공자님.”
설화가 날렵한 동작으로 마차 위 비둘기를 가져왔다.
이무명과 맹호사대 그리고 장자명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문무결만은 뜻밖의 상황에 한빈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무결이 조심스럽게 한빈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일인가? 갑자기 전서구는 왜 꺼낸 것이고?”
서문무결은 자신의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한빈에게 질문을 쏟아 냈다.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기서 사당을 짓는다는 책임자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백사문이라면 이곳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파일텐데, 위험하지 않겠는가?”
“위험하지 일을 없을 겁니다. 그러니 염려 마시죠.”
“내가 같이 가 주면 어떻겠나?”
“괜찮습니다. 긴히 할 얘기라서 저 혼자 가는 것이 편합니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인부들이 향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설화가 비둘기를 넣은 새장을 가지고 달려가며 외쳤다.
“공자님! 같이 가요!”
잠시 뒤 사당을 짓는다는 터에 도착한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사당을 올릴 집터는 자신이 잔혈마도와 일전을 치른 그 공터가 맞았다.
그 집터 주변에 석공이 깎은 벽돌과 목수가 다듬은 목재가 한 아름 있었다.
그 규모로 봐서 단순한 사당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한빈의 추측이었다.
조그만 사당과 커다란 전각 두 개 정도는 들어갈 것만 같은 규모였다.
한빈은 두리번거리며 책임자를 찾았다.
한빈은 어슬렁거리며 공사 현장을 거닐다가 낯이 익은 자를 찾았다.
그는 강남 사도련의 군사 마휘였다.
마휘는 전생의 기억에 확실히 박혀 있는 인물이었다.
정사 연합을 결성했다가 정파의 뒤통수를 쳤던 인물이니 잊을 수가 없었다.
한빈은 멀리서 마휘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 *
마휘는 이곳에 도착하면서 인부들의 상태, 공사의 규모, 진척도 등 모든 것을 살폈다.
결론은 만족스럽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백사문주를 칭찬하는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공사가 완료된 후 얻을 이익에 대해서 늘어놓기만 하면 되었다.
마휘가 생각하기에 언제나 채찍과 당근은 함께 주는 것이 맞았다.
휘적휘적 걸어가며 인부들의 상태를 살피던 마휘는 얼마 안 가 백사문주를 찾았다.
마휘의 기척을 알아챈 백사문주 진사명이 먼저 포권했다.
“군사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공사를 총지휘하는 문주님의 노고가 더 크지요. 제가 오면서 보니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듯싶습니다.”
“네, 강남 사도련과 군사님의 지원 덕분이지요.”
“지원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무관과 사당이 완공되고 나면 얻어질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 이익 중 일부는 백사문으로 돌아갈 테고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사님.”
“아닙니다. 문주님처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저희의 복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덕담을 계속 이어 나가던 마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진사명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요?”
“다 좋은데 경비 상태가 좀 허술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주님께서 계실 때야 괜찮겠지만, 항상 여기에 머무르실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마휘가 걱정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보자 진사명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다 보니 특별히 눈에 띄는 경비 무사들은 안 보이던데 복안이라도 있으실까요?”
“복안이라기보다는 제 딸아이와 이번에 초빙한 강북 쪽의 고수가 경비를 맡고 있습니다. 사도련 강북 연합의 시초가 될 시금석이 될 작업이니 강북 쪽 고수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딸아이의 생각이 한몫했습니다.”
“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혹시 강북 쪽의 고수라면…….”
“산서삼살 중 두 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보셨죠?”
“아, 산서삼살이라면 충분하겠군요. 그런데 어째 보이지가 않습니다.”
“예리하십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군요.”
“기분이 좋다니……?”
“사실 인부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인부에 대한 관리와 경비 태세의 고삐도 꽉 조이는 효과,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잡기 위한 조치입니다.”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백사문주 진사명은 수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
진사명과 마휘의 앞에 세 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석공과 목수로 위장한 진세미와 산서삼살이었다.
마휘를 본 진세미가 포권했다.
“군사님을 뵙습니다.”
이어서 약간은 못마땅한 얼굴로 편육랑아가 물었다.
“강남 사도련 군사님, 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을 부릅니까? 그러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인데요.”
편육랑아가 마휘를 이리 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도련은 강남과 강북으로 갈라져 있었고.
산서삼살의 활동 무대인 산서는 당연히 강북이었다.
가끔 강북 사도련과 대립각을 세우는 강남 사도련이 편육랑아에게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사명, 진세미 부녀와의 인연 때문에 이 일을 돕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받는 보수도 한몫했다.
편육랑아의 태도에 옆에 있던 흑의살풍이 포권하며 앞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 군사. 제 동생이 좀 버릇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당분간 몸을 담아야 할 곳의 수장에게 대할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흑의살풍의 정중한 태도에 마휘가 손을 내저었다.
“허허, 제가 부른 건 아닙니다. 문주님이 부르신 거랍니다.”
마휘가 슬쩍 옆을 바라보자 진사명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업무를 방해한 것은 아니고 자금을 담당하는 군사님의 입장에서는 경비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건 타당하다고 봅니다. 이해해 주시죠, 흑의살풍.”
“네, 이해합니다. 그럼 저희는 하던 일을 마저 끝내도 되겠습니까?”
흑의살풍이 정중한 태도로 묻자 진사명이 답했다.
“그럼요. 얼굴을 보여 주셨으니 그걸로 확인은 끝났습니다. 그렇지요, 군사님?”
“네, 그럼요. 이제 가 보셔도 좋습니다.”
마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깔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단 이 개월만 지나면 적룡대협을 위한 사당과 돈을 긁어모을 무관이 완성될 것이었다.
산서삼살과 진세미가 막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흑의살풍이었다.
흑의살풍에게는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확인한 흑의살풍의 눈이 순간 보름달처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