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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25화 (125/621)

125화. 뜻밖의 움직임 (5)

같은 시각 백사문의 문주실.

적룡대협의 영웅화 계획에 대해 진사명과 대화를 나누던 익절선생 마휘가 대화를 멈췄다.

그 모습에 진사명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군사.”

“아, 아닙니다.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요.”

“창문을 닫을까요?”

“괜찮습니다. 그런 오한이 아니라…….”

마휘는 손을 내저었다.

날씨 때문에 든 오한은 분명 아니었다.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예감 때문에 든 오한이었다.

과연 이 불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휘에게 불길함을 줄 만한 것이라면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손해 보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은 그였다.

정파를 대상으로도.

사파를 대상으로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손해 볼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손해를 본다라?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마휘는 자신의 계획을 떠올려 봤다.

백사문에게는 강남 사도련에서 모든 지원을 해 줄 예정이었다.

백사문은 인력만 대면 되었고 나머지는 정보 조직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면 되었다.

물론 강남 사도련이 자금을 대지만, 분명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 정도의 영웅담이라면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짐을 싸서 사도련으로 몰려들 것이었다.

늘어나는 세력을 바탕으로 강남과 강북을 통일하면 되고 말이다.

몰려들 신흥 무인과 이후에 다져질 사도련의 위상을 생각하면 강남 사도련에서는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뭐, 자금만 놓고 보자면 상황은 약간 달라진다.

백사문이 일 할의 이익이라면 강남 사도련이 칠 할의 이익을 얻어 갈 작업이었다.

이것은 투입 대비 앞으로 얻어질 이익을 예상한 것이었다.

그럼 이 할은?

그것은 마휘가 가져갈 지분이었다.

사도련과 백사문은 손해 본다 해도.

이 계획이 실패한다 해도.

마휘 자신은 절대 손해 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말끝을 흐리던 마휘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하, 나이가 들다 보니 모든 일에 걱정이 앞서는군요.”

“마휘 군사님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으시니까, 당연한 게 아닙니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 문주님.”

“그럼 계속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아까 하던 자금 계획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마휘는 다시 안정을 찾고 입술에 꿀을 바른 듯 유창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자 백사문주 진사명은 털끝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휘의 언변은 그만큼 뛰어났다.

* * *

한편 회의실에 나온 진세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각 입구에서 자신의 수하들이 각을 잡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수하는 얼핏 봐도 열은 되어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진세미는 그들에게 내린 지시를 떠올렸다.

그 수하들은 수색 중에 만난 무씨검가의 무소율에게 딸려 보낸 자였다.

하남정가까지 가는 길을 모른다길래 수하를 딸려 보냈는데, 벌써 돌아올 리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한 진세미가 수하에게 걸어갔다.

수하의 앞에 멈춘 진세미가 물었다.

“어떻게 벌써 돌아온 거야?”

수하 중 수석 무사가 작게 포권하며 답했다.

“사실, 하남정가 근처도 가지 못했습니다.”

“…….”

진세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웃하자 수하가 설명을 이었다.

“가주님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황학산 근처에서 헤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황학산은 하남정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아니야, 그 정도 호의를 베풀었으면 됐어.”

진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진세미의 진심이었다.

적룡대협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강가를 수색하며 사파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잠시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흔들리는 마음의 틈 속에서 나왔던 것이 무소율에게 베풀었던 호의고 말이다.

강남 사도련의 총군사가 오고 적룡대협은 찾지도 못하게 된 이 순간 정파인인 무소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진세미가 수하에게 말했다.

“이제 됐으니 너는 영단산으로 출발해.”

“영단산은 왜요?”

“찾아야지.”

“누굴요?”

“적룡대협을!”

“이 정도로 수색했는데 못 찾은 걸 보면…….”

“설마 너, 그분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진세미의 눈빛에 수하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 모습에 진세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회의실 옆에 열린 창문이 있었다.

오늘따라 중천에 뜬 달이 유난히 밝게 느껴졌다.

진세미도 사실 알고 있었다.

적룡대협이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 *

다음 날 새벽.

한빈은 가주의 연공실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누가 보면 썰렁한 연공실에서 뭐 찾아 먹을 게 있냐고 묻겠지만, 한빈은 진짜 찾을 게 있었다.

한빈은 이제 이 연공실에서 전생에 확인했던 안배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하남정가의 연공실 어디엔가 있다는 궁극의 검로였다.

십 년 후에 마교가 훼손할 검로.

마교는 어떻게 알았을까?

훼손된 검로는 과연 어떤 궁극의 비기를 담고 있었을까?

마교가 훼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이 검로인지 몰랐다는 그 전설의 쾌검.

뭐 그게 쾌검을 나타내는 검로일지?

아니면 하남정가의 시조 중 누군가가 장난을 쳐 놓은 건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빈은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벽면을 만져 봤다.

모든 벽면을 확인한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벽면을 만져 봤지만, 느껴지는 검로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간은 많고, 자신은 이 가문의 은인이 아니던가?

하남정가에서 한빈이 못 갈 곳은 없었다.

어찌 보면 하남정가와 맺은 계약이 부수적인 것이고 이것이 하남정가에서 얻어 가야 할 목표물이었다.

책장을 추가하고 단전에 오십 년의 내공을 쌓은 한빈은 천천히 연공실을 나왔다.

그때 연공실의 입구에 그림자 두 개가 보였다.

하지만, 익숙한 기척. 둘은 설화와 이무명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던 한빈이 헛기침했다.

“흠.”

한빈의 헛기침 소리에 그림자의 주인공들이 고개를 돌렸다.

한빈이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설화야,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호법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공자님.”

“연공실 안에서 걸어 잠그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틈이 없는데 호법은 무슨 호법?”

“그래도 모르잖아요. 연공실에 들어가셨으면 어떤 깨달음을 얻으시려는 의도이실 텐데, 적이라도 쳐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적, 무슨 적?”

“정휘지의 잔당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허, 걱정도 태산이네.”

“생각해 보세요. 공자님 다치면 당과는 누가 사 줘요?”

“아, 그랬구나. 내가 걱정이 된 게 아니라 당과가 걱정이 된 거구나. 하하.”

한빈이 웃자 옆에 있던 이무명이 포권했다.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주군.”

고개를 숙인 이무명의 아래턱에서는 수염이 펄럭인다.

대역을 끝낸 이무명이 수염을 붙인 것이다.

수염을 붙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한빈과 닮았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것이다.

묘한 것이 수염을 붙인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니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무명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라도 한빈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무명과 한빈이 닮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자신의 쓸모가 커지니 말이다.

호법을 서기 위해 나온 것도 고맙지만, 이무명의 그런 마음씨가 한빈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고마워요, 이 호위.”

“연공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단기간에 기세가 달라지셨습니다.”

“뭐, 잠을 푹 잤다고 하면 믿을런가?”

“하하, 그건 절대 못 믿죠.”

“오늘 정휘지와 일전을 치르며 얻은 깨달음을 정리했다는 하면 믿을 수 있나요? 이 호위.”

“아…….”

이무명이 긴 탄성을 흘렸다.

멈추지 않는 탄성이 고요한 연공실 앞에 울려 퍼졌다.

그 탄성이 끝나 갈 때쯤 이무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군,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뭘 말입니까? 이 호위.”

“처음 저와 검을 맞댄 그날 말입니다.”

“흠, 그날이라면 정화 부인의 앞에서 비무를 벌인 날 말이죠?”

“네, 그날 말입니다. 그날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신 겁니까? 저는 그날 주군의 검이 진심이라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휘지와의 대결을 보니 그날 주군은 힘의 구 할은 숨겼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진짜 솔직한 대답을 원합니까? 이 호위.”

“네, 주군.”

“그럼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날 전력을 다한 게 맞습니다. 진심으로 이 호위와 검을 마주한 것이 맞다는 말입니다.”

“헉, 그럼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강해지신 겁니까? 주군.”

“궁금합니까?”

“네,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혼자 제자리걸음인 것 같습니다.”

이무명은 깊숙이 포권했다.

한빈은 그 모습에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절정검 이무명이 오르지 않는 경지 때문에 절망검으로 바뀌는 것은 조금 지나서의 일이다.

한빈의 무위를 본 이무명이 자괴감이 빠지며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 같았다.

사실 한빈도 이무명에 왜 절정검에서 절망검으로 별호가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긴 고민 끝에 한빈이 말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알고 싶습니까? 이 호위?”

“네, 주군.”

“그럼 이 호위의 문제에 대해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지요.”

한빈의 말에 이무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했다.

그 모습에 한빈은 적잖게 당황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앞으로 당분간 사부로 모시겠습니다.”

“사부라고요?”

한빈이 놀라자 벌떡 일어난 이무명이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야, 나도 부탁한다.”

“약속한 당과 잊으면 안 돼요, 이 호위 아저씨.”

“그래.”

그들의 대화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무명이 설화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일까?

한빈이 의문을 떠올리자마자 그 해답이 바로 나타났다.

설화가 옆쪽에서 보따리를 가져온 것이다.

설화는 연공실 앞 바닥에 보따리를 풀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광경이었다.

보통은 한빈이 설화에게 가져오라고 시키는 건데 이번에는 이무명이 자진해서 계약서를 쓰기 위해 설화에게 지필묵을 부탁한 것이다.

한빈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무명은 계약서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나지막이 외쳤다.

“아, 자진 노예 계약서네요!”

그 말에도 이무명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에 내용을 빼곡히 적었다.

물론 이제까지 한빈이 쓰던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붓을 멈춘 이무명이 한빈에게 말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죠?”

“지금 보니 서당 호위 삼 개월이면 계약서를 쓰는군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하남정가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요?”

“조금 전에 가주님께 말씀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하남정가를 떠나 천수장으로 몸을 옮기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가주님도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네, 그럼 오늘은 이만해 두고 들어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 말에 한빈이 미간을 좁혔다.

사부라?

전생에도 들어 보지 못한 호칭이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한빈은 빙긋 웃었다. 그저 수하라고 생각하면 될 뿐이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주군이나 사부나 그 호칭이 의미하는 바는 크지 않았다.

그때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꼬끼오!

그 울음소리에 한빈은 조용히 뒤돌아서서 처소로 돌아갔다.

이무명도 말이 없었고 설화도 말이 없었다.

고단한 하루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새벽이 밝아 온 것이다.

며칠 후.

한빈은 하남정가에 있는 열두 개의 연공실 중 열한 개를 살폈다.

하지만, 한빈이 원하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연공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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