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124화 (124/621)

124화. 뜻밖의 움직임 (4)

장자명이 움찔하자 한빈이 주변을 쓱 흝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인은 방을 정리하기 위해 잠깐 사라진 상태.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장 의원님.”

“네.”

“의원님이 보기에 뭐가 그렇게 사악한데요?”

“아, 그러니까…….”

“그냥 툭 터놓고 말해 봐요.”

“사악하다기보다는 조금 이상해서요.”

“이상하다니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남정가와 하북팽가 간의 거래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남정가 대 사 공자님과의 거래잖습니까? 모든 이익도 하북팽가가 아닌 공자님이 챙기시는 거고요.”

말을 마친 장자명은 슬쩍 한빈의 눈치를 봤다.

한빈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내가 힘들게 일한 걸 왜 다른 사람하고 나눠요? 안 그래요?”

한빈은 힐끔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과를 한 손에 든 설화가 오뚝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설화가 당과를 입에 넣은 채 장자명을 바라봤다.

“다, 당연하죠. 그걸 왜 나눠요? 양손에 당과를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장 의원님.”

설화가 던지는 뜻밖의 질문에 장자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설화야.”

“이 당과를 꽉 쥐고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누가 뺏으러 올걸요? 만약 적이 두 명이라면 그 당과를 뺏기 위해 의원님을 반으로 가를지도 모르고요.”

설화가 자신의 양손의 당과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장자명이 손을 내저었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에요. 원래 강호가 그렇잖아요, 의원 아저씨.”

말을 마친 설화는 당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장자명을 쏘아보았다.

그 모습에 장자명이 움찔하며 시선을 한빈 쪽으로 돌렸다.

장자명으로서는 설화가 쏘아 내는 살기를 감당키 어려웠다.

그냥 아이가 노려보는 것으로 생각하면 편할 텐데 가끔 살기가 느껴질 때면 한빈보다 설화가 더 무서웠다.

한빈과 시선이 마주친 장자명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마지막에 대를 이어서 계약이 성립한다는 조항은 또 뭡니까? 공자님, 이거 완전히 노예 계약이잖아요.”

이건 장자명의 진심이었다.

아무리 역사를 뒤져 봐도 대를 이어 계약이 성립한다는 조항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빈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당연한 조항이지.”

“당연하다고요?”

“잘 생각해 봐요, 장 의원님. 이 정도 사건이면 이제 가주가 바뀌겠지요?”

“그럴 수도 있죠. 지금 가주님의 상태를 보면 얼마 안 가서 가주직을 내려놓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그게 바로 요점입니다. 나중에 차기 가주가 계약에 대해서 잡아떼면 어떻게 할까요? 장 의원이 책임질 건가요?”

“제가 왜…….”

“아, 생각해 보니 삼 년이 너무 짧았어. 그래……. 너무 짧은 기간이었어. 종신 계약이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어야…….”

한빈의 혼잣말에 화들짝 놀란 장자명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사 공자님.”

“이제 알겠지요? 장 의원.”

“뭘요?”

“내가 장 의원을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아, 알고 말고요. 그러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장의원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흡족한 듯 한빈이 빙긋 웃었다.

“그럼 됐어요. 하남정가에 있는 동안은 푹 쉬어요. 천수장에 도착하면 몇 배는 바빠질 테니까.”

“사, 사 공자님, 혹시 지금 몇 배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지금까지처럼 놀고먹으려고 했습니까? 적응했으니 지금부터 일해야지요. 사람이 태어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장 의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이 태어나는 이유는 밥값 하라고 태어나는 겁니다. 장 의원님, 천수장에 돌아갈 때까지 몸이나 만들어 두세요.”

말을 마친 한빈은 방을 정리했다고 신호를 보내온 하인을 확인하고는 사라졌다.

사라지는 한빈의 뒷모습에 장자명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동안 죽을 고비가 몇 번이었던가?

무슨 변방 군대에 입대한 것도 아닌데, 천리행군을 밥 먹듯 한 게 엊그제 일이었다.

그때 발에 잡힌 물집은 아직도 회복이 안 되었다.

가주 정무룡을 치료한다고 볼일도 못 보고 밤을 지새운 게 오늘 아침까지였고 말이다.

아니, 천수장에 들어온 후 자신이 사람다운 삶을 산 적이 있던가?

그것도 잠시 장자명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 모습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장 의원 아저씨, 표정이 왜 그래요?”

“잘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뿌듯해하는 장자명의 표정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조금 전까지는 죽을상을 하고 있었잖아요, 의원 아저씨.”

“생각해 봐, 나는 삼 년이잖아. 하남정가는 대대손손이고. 둘을 비교하니 갑자기 행복해지네.”

“저도 삼 년이에요, 아저씨.”

“허허, 너도 땡잡았구나.”

“뭐, 그렇죠. 아저씨.”

설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자명은 활짝 웃으며 중천에 뜬 달을 바라봤다.

장자명이 보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밝았다.

그렇게 미소 짓고 있는 장자명을 힐끔 바라보는 설화는 보이지 않게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인 건가?’

그것은 설화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 * *

잠시 후. 하남정가의 가주 전용 연공실.

한빈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본편의 책장을 추가하기 위한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목에 건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눈을 감고 비급에 집중하자 모든 획이 하나하나 분해되기 시작했다.

[기본편]

획이 분해되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다.

기본편의 제목이 날아가고 빈 상태가 되었다.

[     ]

공간의 아래에는 획이 휙휙 돌고 있었다.

한빈이 지금 보고 있는 건 아주 단순한 과정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한빈을 보고 있다면 기절초풍했을 법한 장면이 몸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한빈의 주변에 투명한 기운이 넘실거리더니 용의 모양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그 기운은 물방울 같기도 했고 용의 비늘 같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본다면 그것이 이제껏 한빈이 흡수한 구결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구결들이 일렁이며 장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강호에서 말하는 오기조원이나 삼화취정과는 또 다른 현상이었다.

하지만, 한빈은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릿속에 펼쳐지는 장면에 집중할 뿐이었다.

한빈은 책장을 추가한다는 글귀를 지금 이해하고 있었다.

서책에 책장을 추가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책장을 고정한 끈을 풀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분해를 뜻한다.

지금 한빈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과정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빈의 몸 주변에서 일렁이던 투명한 기운이 피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한빈의 눈앞에 글귀가 떴다.

[책장이 추가되었습니다.]

그 말에 다시 용린검법의 비급을 바라보니 기본편의 제목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기본편 이(二)]

단계가 상승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는 과연 무엇일까?

뭐, 관계는 없었다.

그때 다시 글귀가 나타났다.

[기본편에서 기본편 이(二)로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이제 담을 수 있는 기본편의 구결 수가 서른 개로 증가했습니다.]

글귀를 확인한 한빈은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본신의 내공 삼십 년에 용린검법의 기본편에 담을 수 있는 내공 삼십 년.

둘을 합쳐 일 갑자의 공력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남들이 확인할 수 있는 공력은 삼십 년이니 적어도 오 할의 실력은 숨기는 셈이 된다.

미소 짓던 한빈의 시야에 다시 글귀가 떴다.

[기본편 이(二)가 활성화되어 동시에 쓸 수 있는 용린검법의 초식이 세 개로 늘어납니다.]

“오호라!”

한빈이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찌 보면 기본편에 담을 수 있는 구결이 늘어난 것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제 용린검법에 대한 보상은 모두 확인한 상태.

한빈은 조용히 옆에 풀어 놓은 목걸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목걸이를 열었다.

툭.

가벼운 소리와 함께 목걸이가 열리고 그곳에는 기름을 먹인 종이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한빈은 그 종이를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그곳에는 마치 고약을 뭉쳐 놓은 것처럼 볼품없는 환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환약을 본 한빈이 헛기침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무림인이 탐내는 청명환이었다.

잠시 청명환을 바라보던 한빈은 바로 청명환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누가 보면 저잣거리 의원에서 산 싸구려 환약을 털어 넣는 모습이었다.

한빈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청명환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끼되 인위적으로 혈맥에 밀어 넣지는 않았다.

과거로 회귀하고 한빈이 전생에 익혔던 상승 심법을 운기하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과거에는 아무도 익히지 못했던 천지일연공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달마가 만들었다는 천지일연공의 특징은 딱 두 가지였다.

인위적으로 혈맥에 길을 낸 무인은 익히지 못한다는 점.

즉, 상승 심법을 익힌 자는 천지일연공을 익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가장 익히기 힘든 난관이 하나 더 추가된다.

그것은 공력이 일 갑자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승 심법을 익히지 않은 자 중 일 갑자 이상이 된다?

그 말인즉슨 영약으로만 일 갑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영약을 먹어도 상승 심법 없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 때문에 알면서도 익히지 못하는 천지일연공은 모든 무림인에게 계륵이었다.

이 심법이 발견되고 한동안 강호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익힐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 알려진 뒤에는 정의맹 비각 한쪽 구석에서 굴러다녔던 비운의 심법이 바로 천지일연공이었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온 후 천산혈랑의 내단과 지금 눈앞의 청명환으로 그 길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럼 한빈은 왜 천지일연공이란 심법에 집착한 것일까?

그것은 다른 내공심법과는 다르게 숨 쉬는 것만으로도 운기가 가능한 심법이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몇 사진을 각 잡고 운공할 때 이 천지일연공을 익히면 열두 시진 내내 운공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한빈이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한빈이 눈을 뜨자 연공실이 환해졌다.

이것은 착각이 아닌 한빈의 안력이 향상된 것이었다.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혼잣말을 토해 냈다.

“조금 부족했군.”

이것은 사실이었다.

일 갑자에 조금 못 미치는 내공을 얻었다.

정확히는 지금 이십 년의 내공을 얻어 오십 년.

이제 딱 십 년이 남았다.

이것도 사실 예상한 결과였다.

전생에 익혔던 심법을 이용했다면 청명환으로 적어도 삼십 년의 내공은 얻었을 것이었다.

장자명에게 각오하라고 한 것이 바로 영약을 만드는 혹독한 작업을 뜻한 것이었다.

천수장에 돌아가면 그동안 심어 놓은 무나 다른 작물이 영약에 버금가는 효과를 띠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으로 나머지 십 년을 채우면 되었다.

만약 안 된다면?

그것은 간단했다.

될 때까지 만들어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뭐, 영약을 뜯을 문파나 가문이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