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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23화 (123/621)

123화. 뜻밖의 움직임 (3)

익절선생 마휘는 거칠 게 없다는 표정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문주님, 제가 미리 전달했던 대로 일단 적룡대협이란 자와 마주한 자들을 모두 불러 주시겠습니까?”

익절선생 마휘에게 적룡대협은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 모르는 미지의 재료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호칭에 있어서도 아군도 아니고 적군도 아닌 그저 ‘자’라는 단 한마디를 붙인 것이었다.

이미 적룡대협의 의협심에 푹 빠져든 백사문주 진사명은 살짝 노기가 치밀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익절선생 마휘에게 틈을 보인 순간 물어뜯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주할 때는 감정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네, 지금 모여 있으니 이쪽으로 오시죠. 군사님!”

백사문주 진사명은 앞장서 마휘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 * *

회의실에서는 진사명의 딸 진세미가 안절부절못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아, 하필이면 이때…….”

진세미는 진룡대협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주인 아버지가 호출을 한 것이었다.

문파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법.

할 수 없이 복귀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적룡대협을 찾고 있는 그녀였다.

진세미가 어쩔 줄 모르자 지긋한 나이의 중년인이 그녀를 토닥였다.

“진정하거라. 우리가 나선다고 찾을 수 있었겠느냐?”

“죄, 죄송해요. 아저씨.”

진세미는 울 듯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녀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자는 다름 아닌 흑의살풍.

흑의살풍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북의 사파인인 산서삼살은 강남의 백사문과 과거 인연이 있어 반년가량을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진세미는 산서삼살을 아저씨라 부르며 졸졸 쫓아다녔었다.

사람의 크기만 한 낭아봉을 어깨에 걸친 편육랑아.

얼굴에 생기 하나 없는 빙혈서생.

검은 복면을 쓴 흑의살풍까지.

그 당시에는 셋이 저잣거리를 지나가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췄다.

또한 당과를 사려고 줄지어 서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는 조그만 아이가 있다라?

그 아이는 산서삼살을 무서워하지 않고 팔에 매달리기도 하고 졸졸 쫓아다니며 놀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것은 신기함, 자체였다.

흑의살풍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 위에는 자연스레 하북팽가의 사 공자 한빈의 얼굴이 그려졌다.

첫 만남에서는 만만한 애송이였고.

그 후에는 사파는 찜 쪄 먹을 악마 같은 놈이었다.

그런 놈이 사파인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더욱 놀란 것은 그가 보여 준 무위였다.

잔혈마도와 마주하며 기죽지 않고 일갈을 지르던 한빈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호걸 그 자체였다.

한빈이 잔혈마도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을 때는 피가 들끓었다.

한빈의 정체를 알고 있는 흑의살풍 자신마저도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움켜잡고 적룡대협을 목 놓아 외칠 정도였다.

흑의살풍은 그때의 일을 잠시 떠올려 봤다.

과연 살아 있을까?

잔혈마도의 파혈도에 배가 뚫린 채 강 속으로 빠진 만큼 살아날 확률은 없었다.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고 조용히 빠지려던 흑의살풍은 자신도 모르게 적룡대협을 찾는 사파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 다시 만난 것이 진세미였다.

흑의살풍과 진세미를 보고 있던 편육랑아가 끼어들었다.

“왠지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의 배 속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꼬르륵.

그 소리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편육랑아의 배로 향했다.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순간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강남 사도련의 군사인 익절선생 마휘가 방문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적룡대협에 대한 수색을 멈추고 복귀한 것도 모두 마휘가 자신들을 보고 싶다고 청했기 때문이었다.

터벅터벅.

가주 진사명의 안내를 받은 마휘가 멈췄다.

마휘는 고개를 돌려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모두를 살피던 그의 시선이 진세미에게 멈췄다.

“자네가 적룡대협의 수색을 총지휘했던 책임자인가?”

“네, 맞아요. 군사님.”

“그럼 자네에게 모든 일을 듣는 것이 제일 정확하겠군.”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릴까요? 군사님.”

“적룡대협이란 자를 마주한 처음부터 설명해 보게나!”

“네, 알겠습니다. 군사님! …… 그러니까, 그분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진세미는 조금 과장해서 잔혈마도를 물리친 적룡대협의 활약상을 마휘에게 털어놓았다.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세미가 전하는 적룡대협의 활약상은 그들의 눈에도 선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제가 본 적룡대협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흠.”

마휘는 염소수염을 매만지며 헛기침했다.

그는 진세미에게 설명을 들으며 회의실에 있는 모두를 살폈다.

마휘가 보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표정, 손짓 그리고 사소한 헛기침 소리마저도 모두 그의 관찰 대상이었다.

사실 설명을 듣던 마휘는 적잖게 당황했다.

적룡대협이란 한마디가 튀어나오자 모두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을 빛냈기 때문이다.

마휘는 재빨리 헛기침을 멈추고 진세미에게 물었다.

“적룡대협이 살아 있을 확률은?”

“저는 살아 있다고 믿어요.”

“그 상처에도 살아 있다라?”

질문을 던진 마휘는 진세미의 표정을 살폈다.

진세미의 표정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휘는 그것이 확신이 아닌 단순한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세미가 입술을 앙다물며 답했다.

“네, 살아 계실 거예요.”

“그래, 그게 사파를 위해서도 좋겠지.”

마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진심이 아니었다. 사파에 나타난 신진 고수.

그런데 그 경지가 무려 화경이 이르렀다고 한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한다.

젊은 화경의 고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강호의 재편을 의미한다.

범위를 더욱 좁힌다면 사파의 조직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면?

그것은 사파에 있어 호재였다.

지금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적룡대협이란 자의 명성에 숟가락만 그대로 얹어 놓으면 그만이었다.

사도련은 강북 사도련과 강남 사도련으로 양분되어 있는 상태.

잘만 하면 적룡대협이란 자의 위명을 등에 업고 양대 사도련을 통합할 수도 있었다.

이제 적룡대협의 위명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천천히 계획하면 된다 생각했다.

그때였다.

마휘의 시야에 눈물을 글썽이는 진세미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것은 마휘도 예상치 못한 상황.

강남 사도련의 총군사인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무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휘가 물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군사님께서 부르시지만 않으셨어도 적룡대협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진세미는 말끝을 흐리며 소매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냈다.

마휘는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마휘를 보고 있었다.

적의를 내비치진 않지만, 탐탁지 않은 눈빛임에는 분명했다.

마휘는 헛숨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적룡대협이란 자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 의문은 당연했다.

사파의 역사상 단기간에 사람들을 저리 사로잡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적룡대협이란 자를 이용해야 했다.

잘만 하면 강남 사도련을 중심으로 사도련을 통일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 후에는 자연스레 무림을 일통할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천운!

마휘가 주먹을 불끈 쥔 순간이었다.

덜컹!

회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누군가 다급하게 마휘 쪽으로 뛰어왔다.

마휘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뛰어오는 자는 자신의 오른팔인 척삼이었다.

마휘 앞에 뛰어온 척삼은 포권도 잊은 채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군사님!”

마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더냐?”

“잠시만 시간을…….”

“알았다.”

마휘는 척삼을 데리고 잠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척삼은 짧게 자신이 전할 상황을 요약했다.

“…… 이게 현재까지 하남정가의 상황입니다.”

척삼이 들려준 이야기에 마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정파에도 화경의 고수가 나타났다고? 그것도 적룡대협이란 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는 건가?”

“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그자가 의술을 펼쳐 하남정가의 가주를 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화경의 무위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펼쳤다는 것인가?”

“네, 그것도 맞습니다.”

“그자의 사문은?”

“아직까지는 정체불명입니다. 하남정가를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자의 사문에 대해서는 지금 정보를 취합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적룡대협이란 자와 그자가 동일인일 확률은?”

“없습니다. 적룡대협이 중상을 입고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자는 푸른 도포를 걸치고 신선과 같은 무위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운사신이라 부른답니다.”

“사신이라…….”

“푸른 도포는 구름과 같고, 그 구름이 지나간 자리는 죽은 자밖에 남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입니다.”

이것은 척삼이 수집한 정보를 그대로 전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현장에서 한빈이 펼친 활약이 과장된 것이었다.

강호의 소문이란 반나절만 지나도 소협이 신선으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그에 비하면 척삼이 전한 한빈의 활약은 진실에 가까운 것이고 말이다.

마휘가 뭔가 결심한 듯 염소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아무래도 일을 서둘러야겠군.”

“네, 정파에서도 청운사신이란 자를 이용하려고 할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사파를 위해 의연히 목숨을 바친 적룡대협보다는 못할 테지.”

마휘는 조용히 중천에 뜬 달을 바라봤다.

강남 사도련이 하늘에 뜬 달처럼 유일무이한 무림의 단체가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그는 확신했다.

마휘의 계획은 간단했다.

그것은 적룡대협을 이용해 사파를 결집하는 것이었다.

일단 적룡대협을 사파 최고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였다.

그 후 그가 사파 무인들을 위해 잔혈마도와 맞서 싸운 영단산을 사파의 성지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아까 잠시 봤던 산서삼살까지도 이용해야 했다.

산서삼살이라면 강북에서 힘 좀 쓴다는 사파인.

그를 잘 이용한다면 강남과 강북이 합심하는 모습까지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마휘는 계속 달을 바라보며 계획을 머릿속에 쌓았다.

정파에 청운사신이란 불세출의 영웅이 불쑥 튀어나온 상황.

한시라도 빨리 적룡대협의 영웅화 작업을 실시해야 했다.

밝은 달만큼이나 오늘따라 계획이 속속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이 큰 착오, 아니 족쇄가 되리라는 것을 마휘는 진정 몰랐다.

* * *

한편, 한빈은 가주 정무룡이 딸려 보낸 하인의 안내를 받아 걷고 있었다.

터벅터벅.

걷고 있던 한빈이 미간을 좁히며 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공자님.”

“이상하게 귀가 간지럽네!”

말을 마친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장자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끼어들었다.

“간지럽지 않으면 이상한 겁니다, 사 공자. 무슨 계약서를 그렇게 사악하게…….”

장자명은 재빨리 말끝을 흐렸다.

한빈의 눈빛이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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