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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11화 (111/621)
  • 111화 사소한 오해 (5)

    심미호는 정휘지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정휘지가 맡긴 임무는 간단했다.

    정휘지가 허가하는 사람을 빼고는 가주의 처소에 들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원이든 하인이든 정휘지가 지정한 사람 외 다른 사람이 가주의 처소에 들어가려 한다면 그 즉시 베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

    심미호는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한 한빈이 신기하기만 했다.

    ‘주군은 신들린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던 심미호는 품 속의 전낭을 만졌다.

    임무는 임무대로 성실히 수행하고 정휘지에게 황금까지 받았으니 심미호의 기분은 오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소대섭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마주친 심미호가 눈짓했다.

    더는 티를 내지 말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조호와 장삼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기되어 있던 것은 장삼이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남정가에 이런 방법으로 침투한다고?

    이건 잠입한 것이 아니라 하남정가에서 자신을 모셔 간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장삼은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쿵. 쿵.

    무사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장삼은 고개를 들어 북쪽을 바라봤다.

    그곳은 한빈이 오고 있을 거라 예상되는 방향이었다.

    “주군!”

    장삼이 나지막이 외쳤다.

    지금 이 나이에 진심으로 모실 수 있는 주군을 찾을 줄은 몰랐다.

    장삼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자신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북쪽을 보고 있었다.

    장삼도 다시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같은 시각, 한빈의 흔적을 추적하던 광개는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영단산 중턱에서 사파 무사들이 부상당한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는지 모두 목숨이 붙어 있었다.

    광개가 쓰러진 사파 무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마, 마교가 다시 나타난 것 같소.”

    “마교라니요?”

    “우린 적룡대협을 찾는 수색대요.”

    “적룡이라면…….”

    “우릴 구해 준 사파의 영웅이오.”

    “아.”

    “우릴 이렇게 만들 자들은 마교밖에 없소이다.”

    “마교라……. 흠.”

    광개는 침음을 삼켰다.

    계속 나오는 마교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때 광개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마교라면 이 사파 무인들의 숨을 붙여 놨을까?

    강호인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백이면 백, 아니라고 답할 것이었다.

    마교는 그만큼 맺고 끊는 것이 정확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습격한 이는 누굴까?

    흔적을 쫓던 광개는 잠시 후 눈을 크게 떠야 했다.

    마지막 흔적에서 구걸십팔보의 자취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개방도?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제기랄!”

    비명을 내뱉은 광개는 재빨리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사사삭.

    광개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쓰러져 있던 사파 무사들이 나지막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보시오. 우리를 구해…….”

    하지만,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벌써 광개의 모습은 그 무사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광개가 있던 자리는 휑했다.

    쓰러져 있던 무사가 말했다.

    “에라, 이 거지 같은 놈아!”

    그때 옆에 나이 든 무사가 나지막이 외쳤다.

    “거지보고 거지라고 욕해서 뭐하나?”

    “뭐, 거지라고요?”

    “지금 그가 펼친 건 개방의 구걸십팔보라네. 그러니 거지가 맞지. 그것도 개방 놈이 분명해.”

    “허허.”

    무사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싸 쥔 채 헛웃음을 지었다.

    * * *

    다음 날 저녁.

    영단산에서 이십 리 정도 떨어진 정백현의 선화 객잔.

    정백현은 하남과 장하의 나루터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상인들로 북적이는 마을이었다.

    선화 객잔은 이곳 정백현의 중심에 있는 객잔으로 삼 층 높이의 전각에 일흔 개가 넘는 객실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서화 객잔의 가장 위 층인 삼 층, 그중에서도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객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객실 안 사람들은 손을 호호 불며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후, 날씨가 정말 춥네요. 그런데 잘 때도 문을 열어 놔야 하는 겁니까?”

    사내는 창가에 서 있는 무사를 보고 물었다.

    무사가 고개를 돌려 답했다.

    “장 의원, 조금만 참죠. 주군이 이렇게 표시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 호위.”

    대화를 나누던 둘은 이무명과 장자명이었다.

    그 옆에 있던 설화는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다가 당과를 베어 물었다.

    설화는 이번 운송 임무가 제법 재미있었다.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삶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니 목표의 심리 상태를 잘 알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살수로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그녀가 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임시 주인인 한빈이었다.

    그녀는 앞일을 내다보는 한빈이 신기하기만 했다.

    제갈공명의 환생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설화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당과를 한 입 더 베어 물려 하다 안타까움의 탄성을 흘렸다.

    “앗.”

    하지만, 당과가 꽂혀 있던 꼬치는 휑했다.

    벌써 다 먹어 버린 것이다.

    “쩝, 다 떨어졌네. 어떻게 하지…….”

    설호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본 장자명이 말했다.

    “설화야, 내가 하나 더 사다 주랴?”

    “괜찮아요, 아저씨.”

    “에구, 이 어린 게 고생도 많지. 생각해 보면 사 공자는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니까. 어린 아이를 이런 위험한 임무에 데려오면 대체 어쩌겠다는 말인지…….”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괜찮아요. 천수장에 남아 있어 봤자 더 위험하죠.”

    “그게 무슨 말이니? 얼마 전 영단산에서도 죽을 뻔하지 않았니?”

    “에이, 괜찮다고 해도요.”

    “그래, 설화는 용감하구나. 그런데, 산을 잘 타던데, 화전민 출신 맞지?”

    “뭐, 비슷해요. 아저씨.”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이무명과 자신이 누구의 안내를 받고 내려왔던가?

    바로 설화였다.

    설화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을 미리 감지하고 피했기에 편안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비록 한빈이 사파 무사들에게 혼란을 줬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감각이라면 충돌 없이 산을 내려오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장자명은 설화가 화전민 출신이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삼 년간 시녀 계약을 한 설화이기에 더 감정 이입을 하며 챙겨 주려는 것 같았다.

    대충 이해는 하지만, 이무명은 자신보다 고수일지 모르는 설화를 저리 챙기는 장자명이 안타까웠다.

    장자명이 이무명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설화를 챙길 때였다.

    덜컹.

    객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쓰윽.

    한 쌍의 눈동자가 방 안을 훑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무명은 재빨리 각 잡힌 포권을 했다.

    “주군!”

    눈동자의 주인이 씩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오자 설화가 일어났다.

    “공자님, 늦으셨네요.”

    “조금 볼일이 있어서 늦었어. 다들 별일 없었지?”

    한빈이 환하게 웃으며 모두를 둘러봤다.

    “네, 저희는 괜찮아요. 조금 심심했던 것만 빼고는요.”

    설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빈은 시선을 돌려 장자명을 바라봤다.

    “장 의원은 내가 온 게 못마땅한가 봐요?”

    “…….”

    장자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설화와 내려오면서 느꼈던 압박감은 엄청 났었다.

    칼날이 빼곡한 기관 장치를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한빈이 영단산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장자명은 절대 아니라는 데 손목을 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게 빠져나오니 할 말을 잃은 것이었다.

    장자명은 한빈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한참 한빈을 보던 장자명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사 공자. 놀라서 그럽니다, 놀라서. 그런데 사 공자도 화전민 출신인가요?”

    “화전민?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화전민이라니…….”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자 설화와 이무명이 동시에 입을 막았다.

    “크큭!”

    “푸웁.”

    누가 봐도 웃는 모습에 장자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도 잠시 장자명은 어깨를 감싸며 창문을 가리켰다.

    “이제는 닫아도 되지 않습니까? 사 공자.”

    “아마 손님이 한 명 더 올 것 같습니다. 장 의원은 추우면 이불이라도…….”

    한빈은 말끝을 흐렸다.

    장자명은 이미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장자명을 잠시 보던 한빈이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천수장에 도착하는 대로 장 의원도 맹호사대의 훈련에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체력부터 길러야겠습니다. 명색이 천수장의 대표 의원인데 그렇게 골골해서야 되겠습니까?”

    한빈의 말에 장자명이 잽싸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아이 같다.

    “아, 아닙니다, 사 공자. 체력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장자명은 재빨리 이불을 침상에 던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그는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눈물이 나오려 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부터 잠도 못 자게 괴롭히며 가짜 청명환을 만들게 한 것이 사 공자였다.

    게다가 사 공자가 마차를 타고 올 때 이무명과 자신은 험한 산길을 달리지 않았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발바닥은 물집투성이였다.

    장자명은 삼 년이라는 기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은 요즘 체감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객실에 스며든 인물에 눈이 한계까지 커진 장자명.

    하지만 그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한눈에 봐도 거지였다.

    뭐랄까?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거지가 맞았다.

    장자명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는 바로 개방의 광개.

    장자명이 호기심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한빈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늦었네.”

    “내가 올 줄……. 알았어?”

    “뭐, 통밥이지.”

    한빈이 씩 웃었다.

    한빈이 처음에 광개에게 오라고 한 곳은 하남정가였다.

    그런데 한빈은 어떻게 그가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생부터 알고 있었던 광개의 습성 때문이다.

    광개는 사람은 놓치되 돈은 놓치지 않는다.

    의심 많은 광개가 과연 하남정가로 가서 기다릴까?구 할의 확률로 쫓아올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중간에 구걸십팔보의 자취를 남기지 않았던가?

    이것 또한 광개에게 시킬 일이 생각나서 남긴 흔적이었다.

    놀란 광개의 표정을 본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출출하지? 뭐라도 먹을래?”

    “지, 지금 그게 문제야? 너 정체가 대체 뭐야? 혹시 구걸십팔보도 네가 남긴 거야?”

    “정답. 그런데 하나씩 물어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이 괴물 같은 놈아!”

    광개는 침을 튀겨 가며 질문을 던졌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재빨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침 튀니까, 흥분하지 않고 말해.”

    “아니, 이놈아. 네 정체가 하북팽가 사 공자가 맞냐고?”

    흥분한 광개의 말에 창가에 있던 이무명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 그리고 제 임시 주군이기도 하죠.”

    “너는 또 누구…….”

    광개를 말을 맺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무명의 위아래를 끊임없이 살펴봤다.

    한참을 살피던 광개는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봤다.

    그때 이무명이 물었다.

    “대체 누구시죠?”

    이무명의 질문에 한빈이 끼어들었다.

    “이 친구는 개방의 광개라고 해!”

    “광개라면?”

    이무명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얼마 전까지 하남정가에 있던 이무명이었다. 개방의 하남 분타주 광개의 이름을 아는 것은 당연했다.

    이무명이 물었다.

    “정말 광개 분타주가 맞습니까? 대체 주군과는 무슨 사이…….”

    이무명은 질문을 멈췄다.

    광개가 넋이 나간 듯 소리 없이 입술만 들썩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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