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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08화 (108/621)
  • 108화 사소한 오해 (2)

    한빈의 말에 거지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니, 거지한테 밥을 얻어먹겠다고?”

    “나는 거지보다도 못하거든.”

    “거지보다 못한 놈이 어디 있냐?”

    “땅거지!”

    한빈이 아무렇지 않게 입꼬리를 올리자 미친 거지가 손을 내저었다.

    “오늘 재수 옴 붙었네.”

    한편, 사파 무사들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갔다.

    낭떠러지 앞에 선 사파 여자 무사가 발길을 멈췄다.

    “이게 무슨…….”

    그녀는 앞에 벌어진 참담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물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파른 절벽에 중간중간 나와 있는 암초 때문에 아래가 정확히 보이지도 않았다.

    저기에서 떨어진다면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발!”

    여자 무사가 주먹을 꽉 쥐고 적룡대협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흑의살풍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흑의살풍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도 한빈은 사파를 위해 죽은 것이 분명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왜 사파를 위해?

    이것은 영영 의문으로 남을 일이었다.

    고개를 돌린 흑의살풍은 편육랑아에게 눈짓했다.

    적룡대협의 신분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의 신분이 밝혀진다면 정파에서는 하북팽가의 오명으로 남는 동시에 사파에서는 의문의 눈초리로 하북팽가를 주시할 것이 분명했다.

    흑의살풍에게 하북팽가 사 공자라는 신분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적룡대협이란 네 글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여자 무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 같이 추적해 봐요. 적룡대협이 살아 있다면 저희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 주신 것처럼 저희도 마지막까지 포기하면 안 돼요.”

    그녀의 말에 사파 무사들이 병장기를 높이 치켜올리며 외쳤다.

    “다 같이 찾자!”

    “적룡대협을 위해!”

    그 울림이 얼마나 우렁찬지 나룻배에 있는 한빈마저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한빈이 듣기에는 추격의 의지를 다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 * *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 그날 저녁.

    한빈의 앞에는 잘 손질된 토끼가 모닥불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다.

    저 소리는 중원 제일의 기루에서 울리는 칠현금 소리보다도 더 감미롭게 들렸다.

    결론적으로 거지는 약속을 지켰다.

    열심히 토끼를 굽던 거지가 한빈에게 물었다.

    “이 썩을 놈아, 솔직히 말해 봐라!”

    “뭐를 솔직히 말하라는 거야?”

    “너 정말 아까 폭포에서 같이 떨어지려고 한 거냐?”

    “당연하지, 너 같으면 그 상황에서 노를 놓겠어?”

    둘의 기세 싸움은 식사 자리에까지 이어졌다.

    거지가 한빈을 빤히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특기가 무슨 동귀어진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허!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한빈이 혀를 찼다.

    자신은 전생에 동귀어진한 몸이었다.

    뭐, 조금 전에도 잔혈마도 임길태와 함께 동귀어진 한 몸이고 말이다.

    물론 거지가 맞힌 것은 우연이겠지만, 맞힌 것은 사실이었다.

    한빈이 감탄하자 거지의 눈이 더 커졌다.

    놀람도 잠시 이제는 포기했다는 듯 손을 휘휘 저은 거지가 다 익은 토끼구이를 내밀었다.

    “에이, 미친놈! 이거나 먹어라.”

    “잘 먹을게.”

    토끼구이를 받아 들고 막 입에 넣으려 할 때였다.

    거지가 타구봉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한빈의 머리를 노리고 찔렀다.

    휙.

    정확히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타구봉.

    한빈은 본능적으로 반걸음 물러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어라?’

    타구봉이 멈췄다.

    허초라는 이야기였다.

    휙!

    동시에 타구봉의 방향이 바뀌었다.

    거지는 손쉽게 한빈의 토끼구이를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빈은 멍한 눈으로 허전한 자신의 꼬치를 바라봤다.

    거지가 껄껄 웃었다.

    “약속은 지켰다.”

    “이게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밥 달라고 해서 줬다.”

    “이거 어이없네.”

    “딱 거기까지다. 난 밥상을 지켜 주겠다고는 안 했다. 아니꼬우면 실력으로 다시 뺏어 보든가. 내가 내공은 안 쓰도록 하지.”

    거지는 사정을 봐주겠다는 듯 사람 좋은 얼굴로 손짓했다.

    한빈이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도 승부가 시작되니 기운이 돌았다.

    역시 인생은 승부와 도박의 연속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딱 들어맞았다.

    한빈은 아무 말 없이 거지를 바라보다가 기습적으로 꼬챙이를 찔렀다.

    그 공격에 거지가 타구봉을 올렸다.

    좌로, 우로.

    뒤쪽으로.

    거지의 타구봉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어른이 강아지를 가지고 노는 모양새였다.

    ‘강아지?’

    한빈은 속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타구봉의 움직임은 분명 복구유희(伏狗遊戲)였다.

    복날 개를 잡아먹기 전에 데리고 놀아야 살이 연해진다는 말에서 나온 초식이었다.

    이렇게 상대를 가지고 놀다가 손봐 주겠다는 의미였다.

    이대로라면 한빈이 복날 개처럼 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상대방의 도발에 응할 건지, 적당히 뒤로 빠질 것인지.

    그때 한빈은 일렁이는 점을 보았다.

    그것은 거지가 채어 간 토끼 고기에서였다.

    한빈은 거지와 자신의 경지를 가늠해 보았다.

    이 거지는 초절정 중급.

    평소라면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여기서 움직인다면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 몸으로 토끼 고기를 뺏을 수 있을까?’

    의문도 잠시, 한빈은 입맛을 다셨다.

    토끼 고기가 아닌 구결을 향해서 보이는 열망이었다.

    꼬챙이를 검 삼은 한빈은 팔을 뻗으며 거지에게 짓쳐 들었다.

    ‘전광석화!’

    ‘일촉즉발!’

    순간 한빈이 발목을 방아깨비처럼 튕겼다.

    남은 공력을 다 쏟아부은 것이다.

    이젠 본신의 내공도 없었다.

    ‘악!’

    옆구리 쪽 상처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빈은 신경 쓰지 않고 초식을 쓰기 위해 보법을 펼쳤다.

    무엇보다 승부가 먼저였다.

    묘하게 사람이 아닌 토끼구이에서 구결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빈은 한 가지 사실을 더해야 했다.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물건에서도 구결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닥.

    갑작스러운 한빈의 동작에 거지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돌았다.

    거기에 맞춰 한빈은 손목을 틀었다.

    획!

    거지가 토끼 고기를 뒤쪽으로 다급히 숨겼다.

    한빈은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고기와 거지의 동작에 집중했다.

    지금 몸이라면 토끼 고기를 뺏는 것은 무리였다.

    상대가 자신의 앞에 토끼 고기를 바치도록 해야 했다.

    검의 끝과 몸이 하나가 된 듯 한빈은 몸을 화살처럼 날렸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수법.

    물론 용린검법의 일촉즉발을 사용할 내공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 계속 같은 초식을 사용하다 보니 초식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효용은 본래 일촉즉발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한빈은 상대의 목을 꿰뚫을 기세로 찔러 들어갔다.

    꼬챙이의 앞에 희미한 검기가 일렁였다.

    마치 몸이 화살촉이 된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최단 거리로 들어가는 꼬챙이는 순간 파공성을 냈다.

    팡.

    순수히 근력만으로 낸 속도였다.

    거지가 급히 한 발 뒤로 물러났지만, 한빈은 간격을 점점 좁혀 갔다.

    두 뼘, 한 뼘.

    드디어 닿았다.

    푹.

    꼬챙이가 박혔다.

    동시에 거지가 외쳤다.

    “이 썩을 놈이 거지 죽이려고 덤벼드네!”

    꼬챙이가 뚫은 것은 거지의 목이 아니었다.

    꼬챙이는 정확히 토끼구이의 중앙에 박혔다.

    거지는 끝까지 몰리자 급하게 토끼구이를 방패 삼아 막았다.

    물론 한빈의 꼬챙이가 토끼구이를 낚아채기까지는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거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수에 당했는지 몰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한빈은 그러거나 말거나 재빨리 토끼구이를 자신 쪽으로 가져왔다.

    “너, 내 목숨 노렸지!”

    거지가 앙칼지게 외쳤다.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초식이 실패했다면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거지의 몸 한 곳은 뚫렸을 것이었다.

    초식의 목표는 토끼 고기.

    결론적으로 한빈의 공격은 성공했다.

    한빈은 거지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앞을 바라봤다.

    [용안(龍眼)으로 초식을 확인합니다.]

    [……보충 설명이 가능합니다.]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획이 흩어지면서 글귀가 나타났다.

    [기본편의 구결을 보충하는 방법은 시간뿐이 아닙니다. 기본편의 구결이 모두 소진되었다면, 처음 습득할 때 방식으로 구결을 다시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열두 시진이 지나지 않아도 구결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약점을 보충할 방법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 단계 더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빈이 허공을 바라보며 웃자 거지가 더 발끈했다.

    “왜 웃기만 해! 너 나 죽이려고 한 거지?”

    “난 분명히 토끼 고기를 노렸어. 잘못해서 네 얼굴에 맞을 수도 있었지만…….”

    “아니야, 분명 내 목을 노렸어. 이건 내 감이야.”

    “…….”

    한빈은 거지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토끼구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긴 한빈이 입을 벌렸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한빈이 씩 웃자 거지가 외쳤다.

    “사람 죽이려고 해 놓고 밥이 넘어가냐?”

    “일단 밥부터 먹자!”

    한빈은 토끼 고기를 마저 뜯었다.

    한 마리를 다 해치운 한빈이 꼬치를 하나 더 들자 거지가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대답을 안 하냐? 마지막에 내 목을 노린 것 맞지?”

    자신이 죽을 뻔한 것보다 칼끝이 뭘 노렸냐가 궁금한 걸 보면 미친 게 맞았다.

    한빈은 꼬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일단 마저 먹고. 너는 안 먹냐? 혹시 술이라도 있으면 내놔 보고.”

    한빈은 거지의 허리에 달린 술병을 가리켰다.

    거지는 절대 줄 수 없다는 듯 술병을 뒤로 숨겼다.

    “절대 안 돼.”

    “속이 느끼해서 말이 잘 안 나온다.”

    “크흠, 제기랄.”

    헛기침한 거지가 호리병을 내밀었다.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뚜껑을 열어 입술을 적셨다.

    전생 같았으면 몇 병을 들이부어도 괜찮겠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얼마 못 견딘다는 것을 알았다.

    입술만 축였는데도 제법 뜨거운 기운이 목젖을 타고 식도로 흘러내려 갔다.

    “캬! 좋다.”

    한빈은 낮게 탄성을 지른 뒤 호리병을 거지에게 건넸다.

    한 모금 들이켠 거지가 눈매를 좁혔다.

    “이젠 말해 봐라.”

    “별거 없다. 너 따라 했다.”

    “따라 했다고?”

    “네가 처음에 허초를 써서 고기 뺏어 갔잖아. 나도 허초다.”

    물론 허초의 수법은 달랐다.

    거지가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그 눈빛이 초식에 대한 호기심 이상인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거지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개방의 광개라고 한다. 너는?”

    거지가 술이 든 호리병을 건넸다.

    순간 한빈은 먹던 고기를 뱉을 뻔했다.

    전생에 친분이 있는 놈이었다.

    미칠 광(狂)에 빌어먹을 개(丐)가 합쳐진 별호였다.

    간단히 말해 미친 거지라는 뜻이었다.

    강호인 중 미친놈을 뽑으라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개방의 광개였다.

    미친 듯 싸움을 좋아하는 세 명의 사내.

    강호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무림삼광(武林三狂)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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