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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02화 (102/621)
  • 102화 허장성세 (1)

    천리 표국과 팽가의 사 공자가 청명환을 운송한다는 소문이 퍼진 덕분에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으니, 누군가는 편안히 진품을 하남정가까지 운송했을 것이었다.

    그것이 빙혈서생의 추론이었다.

    탈출하며 한철 궤를 보따리에 싸서 모두 던졌지만, 지금 하나는 들고 있었다.

    이것은 목숨 줄이었다.

    누군가 청명환을 내놓으라 하면 지금 손에 든 한철 궤를 던져 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서삼살을 발견한 이 중 하나가 외쳤다.

    “진짜 청명환이 저기에 있다!”

    그게 바로 일각 전이었다.

    그때부터 추격전은 계속되었고, 지금 산서삼살은 막다른 절벽에서 꼼짝달싹을 못 하고 있었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 속에서 빙혈서생이 나지막이 외쳤다.

    “나쁜 새끼!”

    “맞습니다. 그놈은 구천 지옥, 아니 그보다 더한 곳이 어울릴 놈입니다.”

    편육랑아가 맞장구쳤다.

    두 사람이 욕하고 있는 대상은 물론 한빈이었다.

    흑의살풍은 아무 말 없이 좁혀 오는 사파 무인들을 살필 뿐이었다.

    이 정도로 몰려온다고?

    이건 아예 사파의 뿌리를 뽑으려는 악랄한 계책 같았다.

    이 일이 끝나면 강북 사파의 세력 중 오분지 일은 날아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흑의살풍은 이것이 정의맹 수뇌부의 계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했다.

    지금 재수에 옴 붙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묘하게도 영단을 뺏으러 온 사파 무인 중 반은 이곳에 모여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빙혈서생은 그들의 병장기를 유심히 바라봤다.

    예상한 대로 그들의 문파는 모두 달랐다.

    그때 빙혈서생의 머릿속에 조금 전까지 욕했던 한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빈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었다.

    빙혈서생이 한철 궤를 들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터벅터벅.

    산서삼살과 사파 무인들의 중간 지점에서 선 빙혈서생은 한철 궤를 바닥에 내려놨다.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짓이지?”

    “빙혈서생이 미쳤나?”

    “지금 청명환을 포기한 거야?”

    모두가 웅성거리며 같은 패거리와 눈빛을 교환할 때 빙혈서생이 나지막이 외쳤다.

    “우리 산서삼살이 사파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라 하지만!”

    마지막 말에 힘을 줘서 끊은 빙혈서생은 주변을 둘러봤다.

    동시에 주변이 잠잠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자 빙혈서생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모두 덤빈다면 우리는 이길 수 없소. 그래서 제안드리는 바이오. 이 중에서 제일 강자가 이 한철 궤를 가져가는 것이 어떻겠소?”

    빙혈서생이 바닥에 있는 한철 궤를 가리키며 주변을 둘러보자 모두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힘으로 차지하자는 거야?”

    “그럼 여기서 비무 대회라도 열자는 말인가?”

    “지금 그게 말이 된다는 건가?”

    그때 빙혈서생이 말했다.

    “모두가 말한 대로 이곳에서 작은 비무 대회를 열자는 말이오. 강자가 보물을 차지하는 것은 강호의 법칙. 또한 여기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눈다면 사파의 힘이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이치요. 강호의 패권을 정파에게 바치는 꼴이 될 것이오!”

    빙혈서생은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모두를 설득했다.

    분명 명분이 있는 연설이었다.

    “일리가 있군.”

    “하긴, 지금 누가 청명환을 차지하든 강북 사파의 세력이 줄어들 것은 사실이지.”

    “모두가 복면을 쓴 채 비무를 벌이고 여기 있는 자들이 모두 소유권을 인정한다면 가능한 일이 될 수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빙혈서생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한빈을 떠올리며 행한 계책이 정확히 먹힌 것이었다.

    빙혈서생이 안심하고 있을 때 사파 무인 중 하나가 빙혈서생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비무라, 좋소. 그런데 비무 후에는 청명환의 소유권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소?”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비무를 다 치르고 승자가 정해졌을 때 다른 문파가 나타난다면 그들이 이 비무의 승자를 인정할 수 있겠소?”

    “…….”

    빙혈서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바라봤다.

    사실 상대의 말이 맞는 이야기였다.

    빙혈서생은 이 비무를 제안하고는 조용히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훼방꾼이 등장한 것이었다.

    빙혈서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우리의 팔이 다 날아가고 우리의 목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우자는 말이오?”

    “그건 아니오. 하지만, 강자만이 청명환을 차지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이오?”

    “예를 들어 경공이 빠른 자가 차지할 수도 있지 않겠소?”

    “빠른 자라…….”

    빙혈서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대는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한철 궤를 낚아챘다.

    휙!

    동시에 뒤로 물러난 사내가 외쳤다.

    “이렇게 말이오.”

    순간 모든 사파인이 움직였다.

    나머지 사파 무인들도 만만치 않았다.

    한철 궤를 든 사내를 신속하게 막아섰다.

    겹겹이 포위된 상태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철 궤를 높이 던졌다.

    “강한 놈이 보물을 차지하는 것은 강호의 법칙이지. 강자존! 보물은 강자의 것이지!”

    공중에 한철 궤를 던진 채 사내는 잽싸게 뒤로 빠졌다.

    동시에 사파 무리가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스릉! 스릉!

    그 모습에 빙혈서생은 황당하다는 듯 사내를 바라봤다.

    피를 안 보고 주인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된다면 자신들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사내는 자신이 차지하지도 못할 것을 훼방만 놓은 것이다.

    “저런 미친놈이…….”

    빙혈서생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 사내와의 대화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인데?’

    빙혈서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눈여겨보던 사내의 움직임이 묘했다.

    사내는 어떤 무리에 속하지 않고 단검으로 상대를 찌르며 다니고 있었다.

    살상보다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빙혈서생은 의문을 멈추고 이 혼란을 틈타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싸움이 일어났지만, 포위망은 그대로였다.

    빙혈서생이 멈춰서 상황을 보고만 있자 편육랑아가 물었다.

    “형님, 빠져나가지 않고 보고만 있는 것이오?”

    “문제는 지금 움직인다면 모두의 칼끝이 우리에게 향할 것이라는 것이다.”

    빙혈서생의 말에 편육랑아는 고개를 돌려 흑의살풍을 바라봤다.

    흑의살풍이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의 말이 맞다. 승자가 정해지기 전에 여길 떠난다면 모두가 우리를 합공하겠지. 우리가 다른 한철 궤를 몸에 숨겨 떠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아.”

    편육랑아가 탄성을 흘릴 때 빙혈서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까 그놈의 목소리가 귀에 묘하게 익습니다.”

    “저놈을 말하는 것이냐?”

    “네, 저 회색 무복의 사내의 목소리가 귀에 익으면서도 묘하게 거슬립니다.”

    “나도 느꼈다. 묘하게 거슬리더구나. 저놈을 보고 있자니 목에 가시가 박힌 듯 거슬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편육랑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내를 바라봤다.

    편육랑아가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사파 무인일 뿐이었다.

    챙!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속에서 사내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사내가 원하는 것은 살상이 아니었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성(聲)을 획득하셨습니다.]

    사내의 정체는 바로 한빈이었다.

    비무로 승부를 내면 혼란이 줄어들 것이었다.

    그것은 한빈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아수라장에서는 일렁이는 구결을 향해 언제든 검을 뻗을 수 있었지만, 비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빙혈서생의 제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빙혈서생이 묘하게 거슬려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가 가장 원망하는 것이 한빈이었으니까.

    한빈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검을 뻗었다.

    한빈은 절대 필요 없는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오직 구결이 일렁이는 점만을 향해 검을 뻗었다.

    슉!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세(勢)를 획득하셨습니다.]

    비록 인급 구결을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응용편 세 개가 모였다.

    한빈은 전광석화의 효용을 더해 더욱 빨리 사파 무인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만일 이들 싸움이 문파 대 문파의 대결이라면 한빈의 행동은 바로 들켰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문파가 아우러진 아수라장 속에서 한빈의 행동은 누굴 공격하든지 자연스러웠다.

    한빈의 공격을 눈여겨보던 흑의살풍이 눈을 크게 떴다.

    입까지 떡 벌린 그의 모습을 본 둘째 빙혈서생이 물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저놈의 정체를 알 것 같다.”

    “네? 저놈의 정체라니요?”

    빙혈서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흑의살풍이 다시 한번 사내를 가리켰다.

    “저놈은 분명 그 악마가 분명하다.”

    “악마라니 그게 무슨 말씀…….”

    빙혈서생은 말끝을 흐렸다. 흑의살풍이 악마라 칭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빙혈서생의 며칠 간의 고난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하북팽가의 사 공자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 말고 악마라 할 수 있는 놈이 어디 있더냐?”

    흑의살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를 바라보던 빙혈서생도 눈을 크게 떴다.

    사파 무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사내의 동작에서 사 공자의 무위를 엿봤기 때문이었다.

    그의 동작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대를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피를 보기 위해서 단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저 피에 굶주린 악마만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거기에 더해 단번에 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사파 무인을 유린하고 있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편육랑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빙혈서생이 물었다.

    “셋째야, 왜 그러느냐?”

    “내가 저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겠습니다.”

    편육랑아가 콧김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빙혈서생이 손을 내저었다.

    “괜히 나서지 말아라, 저놈의 다리를 부러뜨리기 전에 네가 당한다.”

    빙혈서생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편육랑아는 인정하지 못한다는 듯 다시 물었다.

    “제가 당하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저놈도 지쳤을 것이 아닙니까?”

    “저게 지친 것으로 보이냐?”

    빙혈서생은 한빈을 가리켰다.

    한빈은 최소한의 동작으로 사파 무인들을 단검으로 썰고 다녔다.

    “흠.”

    편육랑아가 헛기침하자 빙혈서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놈은 네가 나서는 순간 뒤로 빠지며 외칠 것이다.”

    “뭐라고 외칩니까?”

    “우리가 진짜 청명환을 들고 도망치려고 한다고 말이다.”

    “헉!”

    편육랑아의 커다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단순한 편육랑아라도 그동안 한빈이 해 온 행동으로 봐서는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산서삼살은 한빈의 정체를 알아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한빈은 그들이 자신을 알아본다고 해도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다.

    구결을 수집하는 것을 중지해야 하지만, 아무 피해 없이 몸을 뺄 자신은 있었다.

    한빈은 고개를 돌려 빙혈서생을 바라봤다.

    바라보는 눈빛이 자신을 알아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리에서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것으로 봐서 상황을 파악한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다시 사파의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슉!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장(張)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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