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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96화 (96/621)

96화. 운수 좋은 날 (6)

머뭇거리는 수적들의 모습에 한빈이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한숨의 끝에 한빈이 편육랑아를 불렀다.

한빈의 손짓에 편육랑아가 뛰어왔다.

인상만으로도 강북 무림을 찜 쪄 먹을 것 같은 편육랑아였지만, 한빈에게만은 순한 양이었다.

편육랑아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협, 시키실 일이라도…….”

“쟤네 보이지?”

“네, 수적 놈들 말입니까?”

“그래, 네가 좀 쫓아내라. 귀찮다.”

“네, 대협.”

편육랑아가 그들에게 걸어가며 낭아봉을 휘둘렀다.

붕! 붕!

다시 바람 소리가 일자 수적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때였다.

한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는 묘하게 편육랑아의 낭아봉 휘두르는 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이런 것이 기세이고 권력이었다.

편육랑아와 수적이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한빈에게 몰린 상황.

한빈이 검지로 검오를 가리켰다.

“너는 빼고 나머지는 가.”

“네?”

검오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묻자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빼고.”

순간, 검오는 석상이 되었다.

수적들이 웅성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튀자.”

“그런데, 검오는?”

“검오가 문제냐? 다 죽게 생겼는데…….”

수적들은 검오만을 남긴 채 재빨리 우르르 배에 올랐다.

타다닥, 타다닥.

수적들의 다급한 발소리가 둔덕에 울려 퍼졌다.

혼자 남은 검오는 우두커니 한빈을 바라봤다.

검오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항상 버림받았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을 찾아갔지만, 그 친척은 검오를 노비로 넘겼다.

차후 철이 들자 그 집에서 빠져나와 몸을 담은 것이 강북 십이수로채였다.

검오의 일생에서 수적 생활이 가장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 또 버림받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두목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동료에게까지 버림받았다.

검오는 한빈이 자신만 남긴 것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가장 잔인한 수법으로 자신을 썰어 댈지도 몰랐다.

검오가 마음의 결심을 하고 있을 때 한빈이 말을 붙여 왔다.

“너희 두목 이름이 뭐냐?”

“…….”

검오가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한빈을 바라봤다.

“살려 주시는 겁니까?”

“내가 너를 죽여서 뭐 하겠느냐? 도망친 너희 두목 놈이면 또 몰라도.”

“아, 감사합니다. ······참. 절 버리고 간 두목 놈의 이름은 양악군입니다.”

“양악군이라…….”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어디선가 들어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기에 질문을 이었다.

“소속은?”

“강북 십이수로채입니다.”

“몇 채주야?”

“평령강에서 활동하고 있는 칠 채주입니다.”

“그럼 놈의 특징이라든지 생각나는 건 모두 털어놓거라.”

“그러니까……. 참, 거기에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변장을 잘하는 편입니다.”

검오는 제법 자세하게 두목 양악군의 특징을 술술 털어놓았다.

이제는 두목도 뭣도 아니었다.

검오에게 양악군은 배신자였다.

검오가 양악군에 대해 모두 털어놓자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절대 잡을 수 없을 겁니다. 평령강으로 돌아가지 않을 텐데요.”

“괜찮아.”

“괜찮다니요? 대협.”

“크게 다친 사람 없으면 됐지. 물건 하나 잃어버린 게 큰일은 아니지.”

“대협, 청명환을 탈취당한 게 큰일이 아니라니요?”

오히려 더 흥분하는 검오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서삼살이 헛웃음을 삼켰다.

그중 빙혈서생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한철 궤를 잃어버린 것은 형님 아닙니까?”

“그렇지, 내가…….”

“형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난번에도 이상한 나무 상자를 한철 궤를 던져 주며 속였지 않습니까? 이번 것도 가짜일 겁니다.”

“허허, 이번에 잃어버린 한철 궤는 진짜였다.”

흑의살풍이 답하자 빙혈서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상자 안까지 봤습니까?”

“흠.”

흑의살풍이 고개를 갸웃하자 빙혈서생이 말을 이었다.

“한철 궤가 진짜라고 해서 안에 있는 물건까지 진짜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한철 궤가 하나밖에 없는 물건도 아니고요.”

“허허.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구나.”

“그게 가짜가 아니라면 저희를 그냥 놔두겠습니까? 저런 악질이 말입니다.”

빙혈서생은 턱짓으로 멀리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빈을 가리켰다.

동시에 흑의살풍과 편육랑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청명환 도난 사건에 대해 추측하고 있을 때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마차 쪽에 있는 설화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순간 설화가 고개를 돌리더니 번개같이 뛰어왔다.

“네, 공자님.”

“깔아라, 설화야.”

한빈의 말에 검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도 안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설화는 보따리를 풀더니 가느다란 붓을 한빈에게 전했다.

“여기요, 공자님.”

“그래, 고맙다. 설화야.”

한빈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들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검오는 침을 삼켰다. 잔뜩 긴장하던 터라 한빈의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보따리 위에 글씨를 쓰는 줄 알았더니, 그 아래에는 조그마한 빈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한빈이 일필휘지로 뭔가를 써 내려갔다.

휙!

붓을 내려놓은 한빈은 종이를 말린 다음에 접어 통에 넣었다.

한빈은 전서구 통을 설화에게 건넸다.

“여기 있다.”

“전처럼 날리면 되는 거죠? 공자님.”

“그러면 된다. 설화야.”

설화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 뛰어가자 검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벌을 받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검오였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설화라는 시녀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검오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산서삼살 중 흑의살풍이 혀를 찼다.

“진짜 우리와 똑같구나. 그 양악군이라는 놈도 참 불쌍하지.”

그때 비둘기가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푸다닥!

그것을 본 편육랑아가 말했다.

“형님들, 생각해 보니 아까 시간 날 때 비둘기를 강에 던져 버릴 것 그랬습니다.”

“아우야.”

빙혈서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편육랑아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편육랑아가 귀를 쫑긋 세우며 다가서자 빙혈서생이 말을 이었다.

“휴……. 너는 참 단순해서 좋겠다. 우리가 비둘기를 버린다고 해도 저 인간이 소문을 안 내겠느냐? 진짜는 지가 처먹고 죄는 우리에게 뒤집어씌울 인간이다.”

“허허, 맞습니다.”

“아마, 양악군인가 하는 그놈은 가짜를 가지고 희희낙락거리며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요.”

“뭐, 자기 딴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겠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면서 말이야.”

빙혈서생이 고개를 돌려 한빈 쪽을 바라봤다.

편육랑아도 한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며칠 간의 기억이 머릿속에 맴돌자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토해 냈다.

“악마 같은 놈!”

이것은 편육랑아의 진심이었다.

편육랑아의 목소리가 다소 컸기에 빙혈서생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쉿!”

* * *

장하의 하류.

양악군은 어깨에 박힌 쇠못을 빼내었다.

“휴……. 지독한 놈. 끝까지 포기를 안 하는군.”

양악군은 보따리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드디어 한철 궤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냉기를 풀풀 풍기는 것이 분명 진짜가 맞았다.

양악군은 한철 궤를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것을 판다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것이고 만약에 복용한다면 초절정 최상급까지 경지를 올릴 수도 있었다.

양악군은 당장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때였다.

구구구!

비둘기가 양악군의 머리 위를 날아갔다.

“비둘기면 길조지, 길조야. 오늘은 진짜 운이 좋은 날이구나!”

물론 그 비둘기는 한빈이 날린 비둘기였다.

전서구가 개방에 도착한다면 양악군은 평생 얼굴을 내놓고 못 다닐지도 몰랐다.

물론 수로채에서도 말이다.

양악군은 머리 위로 날아간 비둘기의 의미도 모른 채 활짝 웃었다.

* * *

세 시진 후.

한빈 일행은 하남정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앞서가던 빙혈서생이 돌아와 물었다.

“대협, 저쪽에 마을이 있습니다. 노숙보다는 저곳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죠.”

그때였다. 빙혈서생의 시선이 한빈의 무릎에 꽂혔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상자가 있었다.

빙혈서생이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혼잣말을 토해 냈다.

“한철 궤?”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아, 아닙니다.”

빙혈서생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전에 빼앗긴 청명환도 가짜라는 것이었다.

빙혈서생은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을 해 보았다.

‘진짜는 과연 가지고 있을까?’

‘벌써 먹어 치운 것이 아닐까?’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빙혈서생이 고개를 갸웃하며 앞으로 가고 있을 때 악비광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에 빙혈서생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저희가 두고 내린 물건이 있는지 해서 물어볼 겸 왔습니다.”

“두고 내린 물건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죠?”

“그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빙혈서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는 더는 말할 기운이 없었다. 몇 시진 전에 배가 빙빙 돌 때는 다시 한번 주화입마가 찾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빙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걸린 이후로 회복이 안 되어서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그다.

빙혈이라는 별호도 쥐꼬리만 한 빙공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창백한 그의 혈색 때문이었다.

그들의 대화에 편육랑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을 세어 봤다.

빠뜨린 것이 혹시 사람인가 해서였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센 편육랑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진 사람은 없었다.

배에 탈 때도 아홉 명이고 배에서 내린 지금도 자신을 포함해서 아홉 명이니 사람이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빼먹었을까?

둘째 형 빙혈서생은 머리가 비상하기로 소문난 자였다. 그가 의심하고 있다면 뭔가 빼먹은 것이 맞았다.

편육랑아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전낭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해 보니 한빈에게 압수당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번 일행에 새로 합류한 검오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너나 나나 같은 처지이니 그렇게 쫄지 말고.”

편육랑아가 검오의 어깨를 톡톡 쳤다.

살짝 친다고 쳤는데 검오가 앞으로 팍 밀려 나갔다.

검오는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빈이 검오만을 지적해서 데려온 것이었다.

말로는 우두머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는 했지만, 나머지 수적 무리를 풀어 준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차별이었다.

* * *

강북 십이수로채 중 일곱 번째 집단의 배 위는 엉망이었다.

사실 뭍에서 조금 더 정비를 하고 가야 했지만, 한빈의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서 다급하게 출발했다.

무리 중 하나가 이마에 손을 올려 햇볕을 가리며 멀어진 육지를 확인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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