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85화 (85/621)
  • 85화. 천리 표행 (3)

    깜짝 놀란 장자명이 말했다.

    “네? 사 공자가 신의라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까?”

    “허허.”

    약재상 천 씨는 헛웃음을 흘리며 주변을 바라봤다.

    장자명도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흠칫 뒷걸음쳤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장자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앗,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장자명이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약재상 천 씨가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그러십니까?”

    장자명의 말에도 그 자리를 다급히 빠져나온 약재상 천 씨가 심호흡하며 말을 이었다.

    “휴……. 장 의원.”

    “네,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사 공자님 욕하면 큰일 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마을 사람들과 사 공자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시는지요?”

    “얼마 전에 사 공자가 앉은뱅이를 일으켰답니다. 저도 그건 보지 못했지만요.”

    “헉, 앉은뱅이를 일으켰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랫마을 저잣거리에서 사 공자가 기적을 행했다고 합니다. 몇 날 며칠을 앉아 있던 거렁뱅이 소녀를 일으켰답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약재상 천 씨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장자명은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던 거렁뱅이 소녀가 있었는데, 그 소녀를 허공섭물로 일으켰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것도 모자라 그 소녀를 뛰게 만들었고 말이다.

    장자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약재상 천 씨를 바라봤다.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허공섭물로 사람을 일으키고 뛰게까지 합니까?”

    “허허, 벼락 맞을 소리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러시네요. 마을에서 사 공자를 안 믿는 사람은 딱 한 명뿐입니다.”

    “그게 누군데요?”

    “저쪽에…….”

    천씨는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그곳에는 백발의 노인이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해도 기세로만 봐서는 쇠뿔도 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장자명이 물었다.

    “저분은 누군데 저렇게 화가 난 거죠? 혹시 사 공자가 돈이라도 떼먹고…….”

    “허허, 그게 아니라 우리 마을의 유일한 의원 어르신입니다.”

    “아.”

    장자명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환자를 빼앗겼으니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무명이 장자명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만 가시죠, 장 의원님.”

    “그런데, 저대로 두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텅 빈 천수장 앞에 저렇게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요.”

    “다 쫓아낼 수도 없고 쫓아낸다고 해도 저희가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오면 그것을 어찌 말리겠습니까?”

    “하긴 그렇긴 하네요, 허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군이 전한 임무를 수행할 때입니다.”

    이무명은 장자명을 잡아끌다시피 하며 데려갔다.

    끌려가는 장자명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천수장 앞에 늘어선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 * *

    며칠 후.

    덜그럭, 덜그럭.

    천리 표국의 마차가 잔도를 달렸다. 잔도란 산길 옆으로 낸 길이었다.

    험준한 산길을 뚫어 길을 낼 수는 없는 일.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산 옆에 나무로 된 길을 내기 마련이었다. 여기서 급한 일은 당연히 전쟁에서의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중원 속담에 일쟁일로(一爭一路)라는 말이 있다. 즉 한 번의 전쟁에 하나의 길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천리 표국의 표행은 현재까지 백 리를 지나왔다.

    하북팽가에서 하남정가까지의 거리는 천 리.

    윤용호는 이번 임무를 천 리 표행이라 낭인왕 이세명에게 전달받았다.

    그들의 임무가 천 리가 될지 백 리가 될지는 모든 것이 하북팽가의 사 공자인 한빈에게 달려 있었다.

    하지만, 윤용호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맡은 표물인 전서구만은 끝까지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윤용호가 말을 멈추고 눈매를 좁히며 전방을 바라봤다.

    휘이-잉.

    마침 말도 투레질하며 멈췄다.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가 윤용호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대낮에 상행이 빈번한 잔도에서 살기를 내비친다라?

    작정을 하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살기가 느껴지는 곳의 백 걸음 밖에는 굽어진 데다가 바위틈으로 자란 소나무 가지 때문에 잘 안 보이는 곳이었다.

    적은 그곳에서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매복이란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렇게 따끔거릴 정도로 살기를 쏘아 보내니 말이다.

    윤용호가 검집째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어떤 고인이 저희의 길을 막으시는 것이오? 어서 모습을 드러내시오.”

    동시에 발소리가 잔도를 타고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윤용호는 침을 삼키며 흔들리는 소나무 바라봤다.

    그때 소나무 가지 사이에서 거대한 얼굴이 드러났다.

    백 걸음 밖에서도 드러나는 괴한의 얼굴에는 흉터가 빽빽했다.

    괴한은 어깨에 커다란 낭아봉을 걸치고 있었다.

    낭아봉이란 금속 봉에 타원형의 날카로운 못을 심어 놓은 방추를 앞에 단 병기였다.

    문제는 그 낭아봉의 크기였다.

    낭아봉에 달린 방추의 크기가 소 머리만 했다.

    윤용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괴한의 덩치와 낭아봉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별호.

    그것은 편육랑아였다.

    산서에서 활동하는 사파 무인으로 상대를 고기 다지듯 누른다고 해서 편육이라는 말이 무기인 낭아봉의 앞에 붙어 생긴 별호였다.

    즉 그와 싸운 상대는 형체도 안 남고 잘게 여민 편육의 모양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절정의 표두인 윤용호가 겁낼 인물은 아니었다. 편육랑아가 잔인하기는 해도 비슷한 경지의 무인과 겨뤄서 얻어 낸 별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그는 교활하리만큼 강자와의 승부를 피했다.

    편육랑아의 본명은 강소추.

    대략 유추하기로 편육랑아의 경지는 절정 초급. 절정 상급인 윤용호의 적수는 아니었다.

    편육랑아가 천천히 걸어오자 윤용호가 검을 빼 들었다.

    “멈춰라.”

    터벅터벅.

    편육랑아는 천천히 윤용호에게 다가왔다.

    윤용호는 힐끔 뒤를 바라봤다.

    의미 없는 표행이라고는 하지만, 한빈의 일행이 신경 쓰여서였다.

    터벅터벅.

    잔도가 울릴 정도로 내공을 실어 걸어오던 편육랑아가 마차를 여섯 걸음 앞두고 멈췄다.

    여섯 걸음이면 낭아봉과 편육랑아의 팔 길이를 더해 보면 그의 공격이 가능한 간격 안이었다.

    윤용호가 검을 올려 기수식을 취했다.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면 파고들 생각이었다.

    그때 편육랑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왜 갑자기 그렇게 살기를 드러내시오?”

    편육랑아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윤용호가 재빨리 받아쳤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표행을 막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소.”

    “껄껄, 소인은 살기를 드러낸 적이 없소만, 왜 내게 그러시오.”

    누가 봐도 말장난이었다.

    윤용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장난할 시간이 없소, 어서 길을 비켜 주시오.”

    말을 마친 윤용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살갗이 따끔할 정도의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윤용호가 편육랑아를 바라봤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전혀 없었다.

    살기가 느껴지는 곳은 아까와 같았다.

    윤용호는 편육랑아가 나온 소나무 너머를 바라봤다.

    살기는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순간 윤용호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편육랑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혼자서 주로 활동하지만, 편육랑아에게는 의형제가 둘 있었다.

    그의 의형제는 흑의살풍 막대강와 빙혈서생 소경운이라 불리는 사파의 고수였다.

    강호에서는 이 둘과 편육랑아를 합쳐 산서삼살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산서삼살을 떠올리던 윤용호의 눈이 커졌다.

    이상하게도 표행을 하며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의 시야에 뒤쪽에서 부채를 든 서생이 보였다.

    큰 키에 깡마른 체구, 약간은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 한동안 햇볕을 못 본 느낌이었다.

    북해빙궁의 파문 제자라고도 알려져 있는 그는 별호인 빙혈서생에서 알 수 있듯이 빙공을 쓰는 무인이었다.

    그가 왔다는 것은 흑의살풍도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윤용호는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튀겼다.

    하북팽가 사 공자인 한빈은 그가 보기에 기껏해야 절정 초반, 아니 정확히 계산해 보면 절정을 앞둔 일류가 맞았다.

    거기에 그가 데리고 온 시녀는 짐이었다.

    그는 이번 표행의 표두로서 계산을 끝냈다.

    “강 표사는 마차를 몰고 뒤로 물러나라!”

    따라온 표객에게 한 외침이었다.

    주춤주춤 말 머리를 돌리자 편육랑아의 낭아봉이 바람 소리를 내며 몰아쳤다.

    팡!

    다행히 마차는 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상태.

    윤용호는 편육랑아의 낭아봉을 피하며 그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딱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가면 편육랑아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을 수 있을 터.

    휙!

    윤용호의 검이 바람처럼 공간을 갈랐다.

    그때였다.

    윤용호의 이상한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편육랑아가 내뿜는 기세와는 달리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질적인 상기에 윤용호는 재빨리 손을 거둬들였다.

    그때 그의 팔뚝을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픽!

    윤용호는 재빨리 낭아봉의 간격에서 벗어나 상황을 살폈다.

    그의 팔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용호는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낭아봉을 든 편육랑아와 자신 사이에 검은 복면인이 단검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복면인이 바로 흑의살풍이었다.

    살막 출신으로 알려진 사파의 고수.

    이제는 줄행랑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 윤용호는 마부와 동료 표사에게 신호를 보내려 고개를 돌렸다.

    하나 뜻밖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마차의 퇴로를 빙혈서생이 막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 장면에서 그는 헛숨을 들이켜야 했다.

    “헉.”

    마차에서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하북팽가의 막내 공자가 천천히 나왔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나온 한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무림세가의 직계가 강호에 처음 나왔을 때 범하는 실수였다.

    무림세가라 불리는 곳에서 직계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성장한다.

    흔히 강호 속담에 무림세가 직계가 휘두르는 검에는 풍(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여기서 풍은 허풍을 말함이었다.

    직계가 휘두르는 검을 세가에서는 진심으로 받아칠 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호라는 큰 대해(大海)로 나온다면 그 개구리는 세상에 얼마나 강자들이 많은지를 깨닫는다.

    그런데 지금은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하필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 휘적휘적 걸어 나오다니?

    ‘이게 제정신이란 말인가?’

    하북 최고의 겁쟁이로 불리던 한빈에 대해서는 요즘 말이 많았다.

    하북 최고의 겁쟁이에서는 벗어났지만, 이것이 모두 사람을 사서 퍼뜨린 소문의 결과였다고 한다.

    천산혈랑의 숨통을 끊어 놨던 일.

    화산파의 서재오와 비무에서 승리한 일 등 모두가 윤용호가 보기에는 헛소문에 불과했다.

    거기에 소문 하나가 더 떠돌았다.

    막대한 거금을 들여 무제자 홍칠개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문은 진실이라 사람들은 믿고 있다.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한빈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천리 표국의 표사들과 산서삼살 사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모두는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한빈의 신호에 맞춰 설화가 보따리를 들고 뛰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설화는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따리를 한빈의 앞에 펼쳐 놨기 때문이다.

    설화의 동작은 철노보다 더 민첩했다.

    보따리를 깔고 종이를 펼치고 붓을 건네는 동작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한빈이 잡고 있는 붓이 세필(細筆)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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