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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69화 (69/621)

69화. 혈랑공자 (3)

서재오는 망설이고 있었다.

매화 패가 어떤 물건이던가?

매화검수의 상징이며 이 패를 가지고 있으면 장문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매화 패는 화산파 권력의 상징이었다.

사실 첫 번째 만남에서 심상치 않은 한빈의 기질을 보고 한 달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의 무공을 가다듬었다.

저런 하수에게 절대 질 리가 없었다.

사실 지금 첫 합으로 간을 보기 전까지는 서재오는 안심하지 않았다. 안하무인인 성격이지만, 검을 대할 때만큼은 신중한 그였다.

그런 그에게 자만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준 것은 한빈의 행동이었다.

서재오는 자신의 내공을 못 받아서 피를 쏟는 모습에서 그는 이 승부의 승패를 확신했다.

“승낙하마. 내 네놈의 방자한 버릇을 고쳐 주지.”

말을 마친 서재오가 멀리 떨어진 팽대위를 바라봤다.

이런 내기는 참관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팽대위가 검을 들었다.

팡!

그들의 내기를 승낙한다는 신호였다.

그 모습에 무림 고수들은 입맛을 다셨다.

월아가 탐났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저 비무대 위에 있었다면 월아는 자신들의 것이 되었을 텐데.

물론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바로 홍칠개였다.

홍칠개는 연무장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이 교차하고 있을 때 한빈과 서재오가 다시 격돌했다.

먼저 달려든 것은 의외로 서재오였다.

서재오의 검이 묘한 변화를 주며 한빈의 가슴을 노리고 파고든다.

순간 연무장에 피어나는 매화 향기.

주변이 술렁거렸다.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이다.”

“화산파의 절기를 벌써 꺼내 들다니!”

“뭐, 시시하니 일찍 끝내려는 거지. 저따위 허약한 놈에게 가르침 따위는 필요 없지. 그런데 대단하긴 대단하네. 비무에서 매화 향기라니!”

이들은 모두 정화 부인의 호위들이었다.

그들의 웅성거림 속에 이진명이 힐끔 옆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정명은 매화검수 중 말석이 아닌가요?”

“허허. 그래도 달리 매화검수겠는가?”

“내 말은 그게 아닙니다. 말석의 매화검수가 이리 진한 매화 향기를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허, 그러고 보니…….”

곤륜의 이진명이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서재오는 하북팽가에서 머무는 한 달 동안 자신의 경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비록 벽은 허물지는 못했지만, 초절정이라는 경지 내에서도 자신만의 검날을 다시 세운 것이었다.

좌중의 술렁임 속에서도 서재오의 검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공간을 파고드는 서재오의 검.

매화일지(梅花一枝)의 수법.

저 곧게 뻗은 검은 회초리가 될 수도 송곳이 될 수도 있는 매화나무 가지처럼 보였다.

서재오의 검이 변하기 시작하자 한빈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물론 그의 검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그에게 구결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안 보이다가 이십칠수매화검의 일 초를 펼치니 구결이 나타난다라?

이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이제까지 정체되어 있던 용린검법의 벽을 깨부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한빈이 놓칠 리 없었다.

한빈은 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전광석화.’

‘일촉즉발.’

멀리 튕겨 나간 한빈의 검 끝에서 푸른 검기가 일렁였다.

한빈의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 화살촉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슝!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한빈이 매화일지를 파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상대했기 때문이다.

“저건 너무하는 게 아니오? 생사결도 아닌데 저리 덤비다니, 호랑이에게 덤비는 하룻강아지 같군.”

비무를 관전하던 점창파의 원로 정창명이 혀를 찼다.

그의 눈에는 적당히 봐주려는 서재오의 일 수에 한빈이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주려는 검에 살기를 담아 받아친다?

그것은 무인의 도리가 아니었다.

일렁이는 검기에 서재오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휙!

하지만, 한빈의 검은 뱀처럼 그의 어깨를 노렸다.

옆으로 피한 서재오의 검이 회초리처럼 횡으로 한빈을 압박했다.

휭!

동시에 한빈과 서재오의 검 끝이 상대의 소매를 그었다.

피슉!

피슉!

살짝 너덜거리는 둘의 소매.

두 번째 합을 나눈 둘은 다섯 걸음 정도를 떨어져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한빈의 왼팔에서 피가 비쳐 나왔다.

소매를 타고 붉은 무복보다 더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뚝.뚝.

서재오의 하얀 무복에도 피가 비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아 보였다.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의 경지는 초절정 하급, 막 초절정 경지에 발을 들인 자였다.

천산혈랑의 내단을 취한 후 한빈의 경지도 비슷했다.

그런데 밀린다는 것은 서재오에게 성취가 있었다는 것.

한빈은 재빨리 작전을 바꿔 속도로 승부를 보기 시작했다.

한빈은 이제 자신의 비급에 자리 잡고 있는 ‘구걸십팔보’를 펼쳤다.

일단은 속(速)을 한 개 사용했다.

일 성의 강도.

순간 기묘하게 변하는 한빈의 걸음.

한빈은 구걸십팔보로 상대의 눈을 현혹하며 검을 뻗었다.

마치 검까지 빨라지는 느낌.

주변의 시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빨라진 한빈의 검에 서재오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곳도 잠시 그는 초식에 변화를 주었다.

매화일쾌(梅花十快).

한 번의 움직임에 열 번의 변화를 담은 이십칠수매화검의 열 번째 초식이었다.

이 초식은 이십칠수매화검 중에서도 빠르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검법이었다.

이 검법의 장점은 검의 속도와 내공이 비례한다는 점.

서재오는 매화일쾌를 극성까지 펼치지 않고 한빈에게 대응했다.

챙! 챙!

한빈과 서재오의 검이 점점 빨라졌다.

검로의 변화가 아닌 오직 ‘쾌’에 방점을 찍은 둘의 세 번째 합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둘의 투혼이었다.

둘은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챙! 챙!

그들의 속도가 실시간으로 빨라지고 있다.

곤륜의 이진명이 옆을 힐끔 보며 물었다.

“서재오의 이십칠수매화검이 저 정도 경지였나요?”

“흠. 생각보다 성취가 높군. 저런 자가 화산파의 말석이라니? 화산파의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점창파의 정창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곤륜이 이진명이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팽가의 막내도 제법 받아치는데요?”

“오호!”

점창의 정창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은 이제야 한빈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비무를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은 사실 홍칠개였다.

지금 한빈이 펼치는 구걸십팔보는 어제보다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변화가 있다.

구걸십팔보의 보법과 검로가 묘하게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본래 하나인 것 같았다.

게다가 한빈이 검과 보법이 동시에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극성까지 펼치지 않고 점점 속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라?

이것은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허!”

홍칠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때 한빈의 검이 서재오의 어깨를 찔렀다.

픽!

거기에 맞춰 서재오의 검도 한빈의 어깨를 찔렀다.

푹!

둘은 마치 판화를 찍어 놓은 것처럼 상대의 어깨에 검을 적중시켰다.

모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면 비무를 중단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들어간 깊이로 봐서 둘의 상처는 만만치 않았다.

그때 모두가 놀랐다.

한빈이 작게 미소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고 웃는다라?

문제는 그의 어깨에도 검이 박혀 있다는 점.

그런데도 즐겁게 웃고 있다는 것은?

모두 한빈이 이 비무를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빈이 지금 웃고 있는 것은 허공에 글귀가 떴기 때문이었다.

[용안으로 초식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 응용편 중 성(聲)을 획득하셨습니다.]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 서재오에게는 남아 있는 구결이 두 개 더 보였다.

즉 왕거니라는 말이었다.

한빈의 웃음을 본 서재오가 나지막이 외쳤다.

“그래, 나도 전력을 다하마.”

이것은 진심이었다.

한빈을 만만히 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검을 맞대며 한빈을 경시하던 마음은 없어졌다.

게다가 이 비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한빈의 마음을 서재오도 알 것 같았다.

한빈의 검은 더욱 진한 대화를 나누자고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서재오도 응답해 주는 것이 맞았다.

그가 나지막이 외쳤다.

“매화만검(梅花萬劍)!”

이십칠수매화검 중 마지막 초식이었다.

화산에 매화나무가 얼마나 될까?

그 매화나무의 꽃잎이 동시에 떨어진다면?

동시에 떨어지는 꽃잎이 만약 검날이라면?

과연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이유로 이 초식은 친선 비무에서는 쓰지 않는다.

서재오가 매화만검을 꺼내 들었다는 것은 한빈을 인정했다는 것.

서재오의 검 끝이 한빈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검이 매화의 꽃잎을 그린다.

수만 개의 꽃잎을 말이다.

한빈은 구걸십팔보와 전광석화의 조합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남아 있는 ‘속(速)’을 소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만 개의 매화나무 꽃잎을 막는 방법이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꽃잎을 쓸어 담는 것이었다.

챙! 챙! 챙!

호흡 한 번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고 갔다.

더욱 진해지는 매화 향기.

연무장에 가득한 매화의 잔상.

하지만, 그 매화의 잔상이 한빈에게 다가오면 스르륵 녹아내린다.

쉭!

픽!

서로의 몸을 베고.

서로의 몸에 검 끝을 찔러 넣는다.

한빈은 이제 승부를 걸기로 했다.

‘구걸십팔보’를 극성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한빈은 빠른 속도로 서재오가 뿌리는 매화의 잎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쓸어 담기만 하면 끝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한빈은 구결을 나타낸 점을 잊지 않고 공격했다.

푹!

[용린검법 응용편 중 동(東)을 획득하셨습니다.]

서걱!

[용린검법 응용편 중 서(西)를 획득하셨습니다.]

한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잠시 멈췄던 구결 수집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웃음에 서재오의 검도 미칠 듯이 빨라졌다.

매화만검을 극성까지 펼친 것이었다. 내공이 한 톨도 남지 않은 상태.

서재오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다시 한빈과 서재오의 검이 맞닿았다.

챙!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더는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한순간의 정적.

모든 이들이 숨을 참으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온 힘을 이 한 판의 비무에 쏟아 낸 두 명의 무인이 지금 검을 맞대고 있다.

그것은 한 폭의 수묵화.

정화 부인 측에서 이 비무를 관전하고 있는 이진명과 정창명도 숨을 참았다.

마치 선천진기까지 다 쏟아부은 듯한 두 무인의 열정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들은 누구를 응원하고 있는 것일까?

서재오?

아니면 한빈?

아마 그 누구도 아닐 것이다.

둘의 비무는 그들 속에 흐르는 무인의 피를 깨웠다.

그들은 순수하게 이 비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심장의 고동 소리가 연무장 주변에 울려 퍼졌다.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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