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63화 (63/621)
  • 63화. 임시 제자 (1)

    거지가 만만한 건 사실이지만, 개방을 그냥 거지로 볼 수 있는가?

    그 물음에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 싶은 것이 이무명의 진심이었다.

    “왜 그래? 이 호위.”

    “아, 아닙니다.”

    한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거봐, 이 호위도 찬성하잖아.”

    “찬성하는 표정이 아닌 것 같은데요.”

    심미호가 뽀로통한 표정으로 이무명을 가리켰다.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한빈이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한빈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탁 벌렸다.

    한빈은 마치 무제자 홍칠개를 가까이에서 봐 온 사람처럼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소대섭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빈이 개방과 친하다는 소문을 들어 본 적도 없었고 옆에서 거지와 만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제자 홍칠개의 습관에서부터 성향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니.

    물론 심미호도 그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자신이 조사해 온 내용보다 몇 배는 되는 많은 양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꺼내 놓는 한빈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새로웠다.

    뭐, 한빈만은 아무렇지 않았다. 전부 전생의 기억을 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강호 짬밥 이십 년이면 웬만한 무림명숙들과 술 한잔할 기회는 얻게 마련이었다.

    다만, 한빈도 확신 못 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전생에 무제자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 경우였다.

    회의는 새벽이 되어 첫닭이 울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한빈은 시뻘게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해산!”

    순간, 심미호를 비롯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탁자 위로 쓰러졌다.

    털썩!

    * * *

    다음 날 오후.

    한빈은 목검 하나를 옆에 끼고 저잣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한빈의 목적지는 천화루였다.

    천화루는 하북의 제일현과 정랑현의 중간에 있는 구 층 전각의 음식점으로 이 지역의 명물이었다.

    전에 낭인왕과 계약을 맺었던 낭인 객잔의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한빈이 이곳으로 향하는 것은 음식을 맛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정보에 의하면 홍칠개가 그곳에서 구걸하고 있다고 해서였다.

    “나 원 참, 개방이란 곳은 평등해도 너무 평등하단 말이야.”

    한빈은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뱉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개방이란 곳은 방주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일정량의 구걸 목표를 채워야 했다.

    그 구걸 목표를 못 채운다면 아무리 나이 많은 원로라도 대우를 못 받는다.

    사실 홍칠개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거대 문파 한 곳만 들러도 몇 년 치 목표를 달성하겠지만, 괴짜로 불리는 그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신분을 숨기고 구걸을 하며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게 정석으로 거지 인생 육십 년을 보낸 것이 바로 홍칠개였다.

    천화루에 도착한 한빈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두리번거리던 한빈의 눈에 거지 하나가 들어왔다.

    천화루에서 세 걸음도 안 떨어진 곳에 있는 거지였다.

    “휴, 저 양반도 권력을 누리네.”

    홍칠개를 찾은 한빈은 작게 웃었다.

    천화루가 어떤 곳이던가?

    하북 최고의 음식점이자 기루였다. 그런데 그 옆에 거지가 있다?

    과연 천화루에서 용납할까?

    홍칠개는 지금 무림명숙이라는 신분으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빈은 그런 상황을 개의치 않았다. 한빈은 그를 낚기만 하면 되었다.

    천화루 모퉁이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홍칠개를 확인한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걸어갔다.

    스윽.

    지나가던 한빈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뒤돌아 가서 품속에 있는 전낭을 꺼내 홍칠개의 동냥 그릇에 은화 하나를 던져 넣었다.

    은전을 던져 넣은 한빈은 홍칠개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떠났다.

    * * *

    땡그랑.

    동전이 떨어진 소리에 홍칠개는 반사적으로 동냥 그릇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헉!”

    홍칠개는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렸다.

    자신의 구걸 인생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동냥 그릇에는 은전 한 냥이 광채를 빛내며 아직도 데구루루 구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홍칠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변은 휑한 채로 낙엽만 흩날릴 뿐이었다.

    무제자 홍칠개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떤 고인이…….”

    이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을 놀리기 위해 소림의 땡중이나 무당의 도사 놈들이 은전을 떨구고 간 일이 간혹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한 노력으로 은전을 받아 본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홍칠개는 그 후 자신에게 은전을 적선한 은인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해가 질 때도 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홍칠개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물욕이 앞을 가리다니!”

    자신의 수양이 얕음을 탓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철전을 적선하려다가 착각하고 은전을 떨어뜨리고 갔을 수도 있는 일.

    홍칠개는 이 자리를 떠나야 하나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만약 은전을 찾으러 오는 자가 있다면 돌려주리라 결심하며 홍칠개는 거적때기를 덮었다.

    원로 거지든 평범한 거지든 거지는 거적만 깔면 그곳이 집이라는 것이 홍칠개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다.

    홍칠개가 은전의 주인이 올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으아앙!”

    여자아이가 천화루 옆 큰 나무를 올려다보고 목청껏 울고 있었다.

    그 울음에 화답하듯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춰 나무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저걸 어째.”

    “그러게 말이야. 저 연 말이야, 오늘 산 것 같은데 저리됐으니.”

    “잘못 건들면 다 찢어질 테고.”

    모두가 아이와 나무에 걸린 연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한빈은 그들의 뒤쪽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멩이를 공중으로 띄웠다.

    한빈의 머리 위로 올라갔던 돌멩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한빈은 목검을 휘둘렀다.

    물론 ‘전광석화’의 효용을 담았기에 한빈의 목검은 보이지 않게 빨랐다.

    돌멩이가 한빈의 가슴까지 왔을 때 검 면과 부닥쳤다.

    탕.

    돌멩이가 화살처럼 나무 위를 향했다.

    쉭.

    직선으로 날아간 돌멩이는 가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때렸다.

    순간 나뭇가지가 쩍 하고 갈라졌다.

    나뭇가지에서 벗어난 연이 바람에 날리다 땅에 떨어졌다.

    툭.

    그 모습에 사람들이 더욱 웅성거렸다.

    “다행이네.”

    “그런데 지금 저 돌이 어디서 날아온 거지?”

    “그러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때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목검을 허리춤 언저리에 꽂았다.

    속도는 용린검법의 초식에 의존했지만, 정확도는 한빈의 노력이었다.

    한빈은 용린검법뿐 아니라 이제 구 할 정도는 검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었다.

    만약에 일 할의 확률로 가지를 못 맞히고 연을 찢어 놨다면?

    뭐,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 걱정을 했다면, 팽가의 항아리가 모두 깨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쨌든 여자아이와 거지 노인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이상하게도 연을 잡은 여자아이가 한빈 쪽을 바라봤다.

    여자아이를 본 한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한빈이 어깨를 으쓱할 때 거지 노인이 그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사람들이 천화루 앞에서 사라지자 한빈은 그제야 거지 노인 쪽으로 다가갔다.

    한빈을 유심히 바라보던 거지 노인은 손을 내민 채 꾸벅꾸벅 조는 척을 했다.

    그에게 다가간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은화를 거지의 손에 툭 떨어뜨렸다.

    “이걸로 만두라도 사 드세요, 거지 할아버지.”

    은화를 거지에게 적선한다는 것은 평상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빈은 전생에도 그런 일은 해 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또 다른 예상 밖의 일을 만들기 마련이었다.

    어제와 오늘, 벌써 두 번째 같은 행동을 하는 중이었다.

    한빈은 최대한 천진난만한 얼굴로 홍칠개를 바라봤다.

    무제자(無弟子) 홍칠개.

    제자 욕심은 많아서 기재(奇才)만 보면 눈이 휙 돌아간다. 그러다가도 영입을 앞두고서는 한없이 망설인다.

    오죽하면 소림의 제자를 뺏으려다 소림사에 출입 금지 명단에 올려졌겠는가.

    한빈의 기억으로는 그는 마지막까지 제자가 없었다.

    홍칠개로부터 직접 들었던 말에 의하면 그가 바라는 제자는 인, 의, 예, 지, 신을 모두 갖춘 인재라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한빈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죽엽청을 토해야만 했다.

    인의예지신의 덕목을 갖춘 인물이 왜 개방에서 거지 노릇을 하겠는가?

    개방의 방도들은 한 가지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게으른 성품이나 게으른 성격이나 게으른 습관 같은.

    말장난 같지만, 개방의 방도 중 부지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홍칠개가 찾는 인물은 부지런하기도 해야 했다.

    속마음과는 다르게 한빈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툭.

    “어이쿠, 감사합니다.”

    반사적으로 돈을 받아 든 홍칠개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어제에 이어서 두 번째 은전이었다.

    혹시 동일 인물?

    아직 속단은 할 수 없었다. 물론 개방 장로임을 밝히고 무림세가를 찾아간다면 은화가 대수겠냐마는…….

    신분을 안 밝히고 구걸할 때에는 이런 큰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거지에게 구걸의 의미는 스님들이 시주를 받으러 다니며 세상의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도 같았다.

    개방 장로인 무제자 홍칠개는 상념을 떨쳐 내고 상대를 바라봤다.

    “어라?”

    홍칠개의 시야에서 한빈은 벌써 사라진 상태였다.

    홍칠개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분명?

    “이형환위!”

    아니, 그걸로도 부족했다.

    이형환위라는 수법은 잔상을 남기고 신형을 움직이는 수법.

    그런데 지금은 잔상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도가의 축지법?”

    홍칠개는 다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 자신의 손에 있는 은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을 검 면으로 쳐서 연을 떨어뜨리는 솜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거기에 그 어린 청년이 신비한 보법까지 펼쳤다.

    반로환동?

    아니면 외모가 동안?

    아니면 신비문파의 고수?

    대체 어디서 온 고수일까? 그 의문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지 할아버지, 뭐 하십니까?”

    뭐지?

    고개를 돌린 홍칠개의 시야에 방긋 웃는 한빈이 들어왔다.

    지금 보니 첫인상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스물은 가까이 된 것 같은 키에 허여멀건 얼굴은 서너 살은 아래로 보이게 만들었다.

    뜻밖의 상황에 다시 놀라던 홍칠개의 눈이 순간 커졌다.

    정파 백대고수에 속하는 자신의 시선을 피해서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만약 실전이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어, 어떻게?”

    홍칠개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빈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거지 할아버지가 눈 감고 계셨잖습니까? 저는 뒤쪽에 볼일이 있어서…….”

    뭐, 사실이었다. 홍칠개가 이리 놀란 이유는 기척을 죽였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이형환위라기보다는 존재감을 지우는 잡기였다.

    홍칠개는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다시 물었다.

    “볼일이라니 무슨 일이냐?”

    한빈이 손에 든 제비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제비가 땅에 떨어져 있네요. 여기 보세요. 제비가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구해 주고 싶은데 저 위까지 못 올라가겠는데…….”

    한빈이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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