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60화 (60/621)

60화. 빈객 전쟁 (1)

한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남쪽으로 가는 상행 아니야?”

“헉,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남쪽이면 하남정가 쪽일 가능성이 크겠네.”

“와, 공자님, 완전 족집게네요. 요즘 주역 공부하세요?”

“에이, 무슨 주역 공부를 해?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거지. 사실 내가 궁금한 건 자세한 내용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철노는 한빈이 기다리던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상행을 하다 털리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문제는 이상하게 정화 부인과 관련된 상행만 털린다는 점이다.

상행을 돕던 호위 무사도 여럿 죽어 나간 사건이기에 하북팽가의 원로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태라고 철노가 전했다.

한참을 침 튀기며 떠들던 철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왜?”

“마치 상관없다는 표정이잖아요.”

“상관없는 건 맞잖아. 날 싫어하는 정화 부인이 털리는 일인데 내가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고.”

“그건 아니죠. 저도 그쪽이 당하는 건 안타깝지 않은데, 하북팽가가 표적이라면 우리도 언젠가는 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자님.”

“우리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철노.”

“어떻게 장담하세요? 공자님.”

“예감이야.”

“혹시?”

“혹시 뭐?”

“공자님이 무슨 일을 꾸미셨다든가, 그런 건 아니죠?”

“철노는 요즘 나를 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아니에요. 공자님은 제게 항상 아기 때 그 모습 같거든요.”

“고마워, 철노. 그 마음 변치 마.”

“그럼요, 공자님, 일단 이것 좀 드세요.”

철노가 바구니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김이 펄펄 나는 만두가 담겨 있었다.

한빈은 문득 인생사가 바구니에 담긴 만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나 만두나 맛을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 인생사와 같으니 말이다.

한빈은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며 씩 웃었다.

“철노, 오늘따라 만두가 맛있네.”

“더 가져올까요?”

“아니, 괜찮아.”

한빈은 배를 두드렸다. 오늘 같은 날은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흑천이라?

한빈은 그들의 저력을 다시 평가해야 했다.

단순한 살행은 복수를 부르기 마련.

그들은 철저하게 실리를 노리고 있었다.

한빈이 원하는 타격도 바로 이런 종류였다.

한빈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자 철노가 말했다.

“공자님, 요즘 들어 부쩍 잘 웃으시네요.”

“하하.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야, 철노.”

한빈은 배를 두드리며 간만에 호쾌하게 웃었다.

한참을 웃음 한빈은 구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본편]

[속(速) : 십(十)]

[체(體) : 십(十)]

[력(力) : 십(十)]

[공(功) : 십(十)]

[복(復) : 십(十)]

가장 큰 변화는 기본편이었다.

한빈은 절호곡 늑대 토벌 임무에서 복귀한 뒤에도 천수장에서 훈련을 끝낸 소대섭 일행과 꾸준히 비무를 벌였다.

그때 기본편의 모든 구결을 획득할 수 있었다.

속(速)에서부터 복(復)까지 모든 구결을 다 획득하자 나란히 서 있던 구결 대신 숫자로 바뀌었다.

[응용편]

[전광석화]

[일촉즉발]

[백발백중]

[쾌검난마]

[인급 : 기사회생]

응용편은 더는 늘지 않고 절호곡 늑대 토벌 때와 같이 유지하고 있다.

다만, 초식의 운용을 머릿속에 그리며 수련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급 구결인 기사회생의 경우, 목숨 줄이 하나 더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 구결 운용에 필요한 십오 년의 내공은 남겨 두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당장 쓸 수 있는 공력은 본신 내공과 용린검법의 공력을 다 더해 십오 년이었다.

이 십오 년 안에서 용린검법을 운용하는 것이 요즘 수련의 목표였다.

* * *

정화 부인의 처소.

정화 부인의 앞에는 삼 공자 팽무빈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정화부인이 분에 못 이기듯 탁자를 탁 쳤다.

가득 담긴 찻물이 튀며 삼 공자 팽무빈의 얼굴을 덮쳤지만, 그는 얼굴을 닦을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정화 부인의 표정은 살벌했다.

“대체 상행이 그렇게 털리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마비 독에 당하는 바람에…….”

“고가의 물건을 다 잃고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너를 빼내려고 내가 막내에게 고개 숙인 것이 후회되는구나. 너는 그냥 뇌옥에 있어야 했다.”

“반성하겠습니다, 어머님.”

삼 공자 팽무빈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불미스러운 일을 덮기 위해 정화 부인이 내려 준 임무는 바로 고가의 인삼 운송이었다.

앞에 불미스러운 일은 모두 한빈에게 당했던 일.

그 일을 씻기 위해서는 커다란 공이 필요했다.

이번에 운송한 인삼의 가격은 팽가 전체 상행의 십분지 일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양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실패한 것이었다.

정화 부인이 다시 물었다.

“그 많은 물건을 강탈해 가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의맹 하남 지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오리무중입니다.”

“일단 당분간 외출 금지다. 너는 가문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거라.”

“손님이라니요?”

“화산파의 매화검수 한 분을 빈객으로 모셨다.”

몇 가지 단어에서 팽무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빈객이라면 강호에서 힘깨나 쓰는 인물을 대접하면서 머물게 하는 제도였다.

주로 돈 많은 커다란 상단에서 빈객을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대 문파의 제자들은 때가 되면 강호행을 나오게 되는데, 말이 강호행이지 넉넉지 않은 여비에 툭 하면 노숙을 하기 십상이었다.

삼 년 정도의 강호행을 마치고 들어갈 때쯤이면 문파의 제자인지 개방의 제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어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대접해 주는 세가나 상단에서 빈객으로 머물게 된다면?

정답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속담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강호행을 나온 거대 문파의 제자는 호의호식하며 그 기간을 보낼 수 있어 좋고 상단이나 세가는 거대 문파를 등에 업을 수 있어 환영했다.

그런데 정화 부인의 입에서 나온 빈객의 신분은 무려 화산파였다. 화산파 내 평제자도 아니고 매화검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컸다.

이 기회에 잘 친분만 쌓아 놓는다면 차후에 큰 힘이 될 터였다.

팽무빈은 그를 어떻게 하면 잘 모실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그것이 팽무빈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 * *

정화부인이 초청한 화산파의 빈객은 매화검수 정명 서재오였다.

그는 화산파의 이대제자로 매화검수 중 말석이긴 했지만, 문파 원로들의 사람을 듬뿍 받는 제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비는 서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상이었다. 그의 아비가 화산파에 바친 돈만 해도 문파 한 해 예산은 될 터였다.

그러니 서재오를 싫어할 원로는 아무도 없었다.

거대 문파일수록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서재오에게 돈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돈과 더불어 번뜩이는 재능도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천재는 아니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은 알아듣는 수재 정도는 되었다.

그러기에 지금 매화검수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화산파에서도 항상 최고급 차가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았으며 최고급 비단이 아니면 그 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니 강호행이 그에게는 고난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집에 머무르려 했지만, 화산파의 원로는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강호행의 의미가 무엇이던가?

험난한 강호의 모진 풍파를 직접 맞아 보라는 의미에서 행하는 제도가 아니던가!

그 때문에 선택한 것이 바로 하북팽가였다.

강북 오대세가에 속하는 하북팽가와의 교류와 자신의 가문 못지않은 하북팽가의 부가 그 선택의 이유였다.

물론 이것은 하북팽가에 오기 전까지의 착각이었다.

차를 들이켜던 정명 서재오는 뒤를 돌아 찻물을 뱉고 바로 찻잔을 내려놨다.

그 모습에 시중을 드는 시녀가 물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대협.”

“아니다, 팽가에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차밖에 없느냐?”

“이런 종류의 차라 하시면…….”

“정화 차에서 상, 중, 하가 있고 상급에도 금, 초, 행의 제품이 있거늘 네가 내온 차는 하품이 아니더냐?”

“제가 그렇게 세세한 차의 종류는 몰라서…….”

“됐다, 너 같은 것이 어찌 귀한 차를 구별하겠느냐!”

정명 서재오는 손짓을 하며 시녀를 쫓아냈다.

그러고는 처소의 상태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가 평가한 방의 수준은 하 중에서도 하.

화산에 꾸며 놓은 자신의 처소보다도 못했다.

서재오는 자꾸 한숨만 나왔다.

그때 문이 열렸다.

덜컹.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사내가 들어오자 서재오는 잠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본 팽무빈은 넙죽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정명 대협, 저는 팽가의 셋째 팽무빈이라고 합니다.”

“흠, 그럼 정화 부인의 아드님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말씀 낮추시지요.”

“그래, 그러마. 내가 화산의 ‘정’자 배이니, 항렬로 따지면 너의 어머니와는 같고 너는 내 조카뻘이니, 편하게 사숙이라 부르거라.”

서재오의 말에 팽무빈이 재빨리 포권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숙.”

하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살짝 불편했다. 팽무빈이 알기로 서재오의 나이 서른 초반. 그렇다면 불과 여덟 살 차이밖에 안 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숙이라니?

팽무빈은 이곳에 오며 의형제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 결과는 모셔야 할 사숙 하나가 덜컥 생기고 말았다.

그때 서재오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조카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나?”

“말씀하십시오, 사숙.”

“내 솔직히 말함세, 조카. 여기 팽가가 하북의 명가라 해서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음식도 그렇고 차도 그렇게 너무 입에 안 맞아서 그러니 도와줄 수 있겠나?”

“네, 말씀만 하십시오. 사숙님.”

“그러면, 먼저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내와 봐라.”

“어떤 걸 원하십니까?”

“네가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음식이면 족하다.”

“네, 알겠습니다.”

팽무빈은 깊숙이 포권하며 서재오의 처소를 빠져나왔다.

잠시 후,

팽무빈은 자신의 말을 후회해야 했다. 자신이 맛있게 먹었던 요리를 숙수에게 부탁해 올렸지만, 서재오는 모든 음식을 한 젓가락씩만 먹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화산파 음식만 못하네.”

“죄송합니다, 사숙님.”

“뭐, 조카가 죄송할 것까지야 없고 팽가 사정이 이런데 어쩌겠어.”

“…….”

팽무빈은 입을 딱 벌리고 서재오를 바라봤다.

이건 매화검수의 껍데기를 쓴 쓰레기였다.

순간 팽무빈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쓰레기는 쓰레기끼리 붙여 보자는 것이 팽무빈의 생각이었다.

즉, 한빈에게 매화검수 서재오를 소개해서 불을 질러 보자는 것이 팽무빈의 계략이었다.

안하무인에다가 배분도 높은 서재오를 무기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팽무빈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사숙, 혹시 팽가의 검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팽가의 검이라? 팽가면 도 아니야? 모든 비전이 도를 중심으로 도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팽가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팽무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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