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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9화 (49/621)

49화. 사냥의 시간 (2)

“오해하고 창부터 찔러 넣는 녀석하고 무슨 말을 하냐?”

“흠.”

악비광이 다시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기억을 더듬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악비광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협은 왜 내 도발에 응한 것입니까? 대부분 그런 일이 있으면 왜 그러냐고 묻지 않소?”

“너 같으면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겠냐?”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소.”

“나도 똑같다.”

한빈의 말에 악비광은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순간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한빈의 말이 일정 부분 맞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악귀같이 싸울 수 있는 대상은 원수밖에 없었다.

‘왼쪽 어깨가 꿰뚫렸는데 그걸 무시하고 파고든다? 그런 자가 무림에 있을까?’

그런 자가 있다면 분명…….

“또라이!”

악비광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한빈의 얼굴이 가뭄을 만난 논처럼 찌그러졌다,

“너 뭐라고 했냐?”

“아, 아무것도 아니오. 그건 그렇고 진짜 파혼이 맞소?”

“그래, 맞으니까. 맘에 들면 들이대 보라고.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아.”

“고, 고맙소. 대협.”

“대협이라고 하지 마.”

“아니오. 악룡비참(岳龍飛斬)을 한 번에 파훼한 인물이 대협이 아니라면 누굴 대협이라고 부르겠소,”

한빈은 미간을 좁혔다.

공간을 이동한 듯 창날이 날아들었던 마지막 초식이었다.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악가의 비기 악룡비참이었던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게 파훼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자신의 가문을 높이기 위해 한빈을 높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빈이 말했다.

“그래도 하지 마.”

“그럼 대형이라고 부르겠소.”

“그건 마음대로 하고.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그냥 가능한 한 앞으로 보지 말자.”

한빈은 등을 돌리고 자신의 상처를 살폈다.

슬쩍 기를 흘려보내자 몸 상태가 느껴졌다.

‘어라!’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상처를 들춰 보지 않아도 피의 흐름이 원활한 것이 느껴졌다.

용린검법 구결의 효용은 정말 놀라웠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앞으로의 사냥 계획을 세웠다.

중요한 것은 한빈의 사냥감이 늑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 * *

삼 일 후,

한빈의 엄포에도 악비광은 팽가의 막사가 자신의 집인 듯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대형! 저 왔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리자 악비광이 악가의 막사에서 들여온 음식으로 팽가 무사들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팽가 무사들도 악비광이 싫지 않은 듯 사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빈도 악비광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거두기로 했다.

“왜 왔어?”

“우리 막사에 들어온 지원 좀 나누려고요.”

“이제 신경 안 써도 되니 그만 와도 된다.”

“뭔,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그래, 섭섭하다고 하니까 뭐 하나만 묻자.”

“말해 보십시오, 대형.”

“그런데 왜 이렇게 조공을 하는 거냐?”

한빈의 단어 선택은 정확했다.

날마다 가져오는 음식은 조공에 가까웠다.

한빈의 질문에 악비광이 헛기침했다.

“흠.”

악비광은 대답은 하지 않고 산적 같은 얼굴을 꿈틀거리며 웃었다.

“왜 그렇게 징그럽게 웃어?”

“징그럽다니요. 이 김에 의형제라도 맺을까요?”

“됐다.”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

악비광은 멋쩍은 표정으로 막사를 나갔다.

사실 악비광은 아버지의 말을 지키고 있었다.

산동악가의 가주는 미친놈은 꼭 멀리하라고 했었다.

미친놈인데 무공까지 강하다면 눈길도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서로 엮일 경우에는?

친구로 만들라는 것이 가주의 당부였다.

악비광은 그런 이유로 팽가의 막사를 드나들고 있는 것이었다.

악비광이 나가자 한빈은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막사 밖을 나갔다.

한빈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러 쌍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힐끔 보고 지나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깐씩 머물러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하북암룡(河北暗龍)이야?”

“용(龍)을 붙일 만큼 이곳에 강한 후기지수가 있었던가?”

“만류귀종이라잖아. 어떻게 가든 정점을 찍으면 용이라 불릴 만하지.”

“무공의 정점을 찍었다는 이야기인가?”

“무공에서 뛰어나다기보다는 암수에 방점을 찍은 거지.”

“팽 공자가 암수를 썼어?”

“석화교에서 무가비룡을 꺾은 것도 그렇고 며칠 전에 악비광을 꺾은 것도 그렇고 암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게 아닌가?”

“오, 듣고 보니 그렇군.”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곳에는 관군 둘이 잡담을 나누다 화급히 자리를 뜨고 있다.

그때였다.

멀리서 대규모의 인원이 막사 쪽으로 걸어왔다.

자세히 보니 가죽옷에 활과 자루를 들고 있었다.

한빈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 단번에 알아챘다.

저런 복장으로 다니는 이들은 사냥꾼들밖에는 없었다.

얼핏 봐도 마흔 명 가까이 되는 이들.

그들은 정의맹에 붙여 줄 사냥꾼들이었다.

관군의 막사에 이름을 등록한 사냥꾼들은 하나둘씩 막사에 배치되었다.

팽가의 막사에도 세 명의 사냥꾼이 배치되었다.

심미호가 사냥꾼 셋을 데리고 한빈의 앞에 섰다.

“주군, 우리를 도와 늑대를 잡을 사냥꾼분들입니다.”

심미호의 소개가 끝나자 막사로 온 사냥꾼들은 포권하며 한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공자님.”

“하북팽가와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들은 포권한 채 고개를 숙이며 꿀이 뚝뚝 떨어질 듯 아부를 늘어놨다.

한빈은 웃으며 마주 포권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빈은 미소를 보이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냥꾼들의 포권한 손을 바라봤다.

그들의 손에서 시선을 뗀 한빈은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올리며 막사를 나갔다.

뒤쪽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한빈은 악가의 막사로 건너갔다.

* * *

자기 집처럼 쓱 막사로 들어간 한빈은 모두를 쓱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

“악가의 막사도 시끌벅적하군.”

“오셨습니까? 대형.”

악비광이 활짝 웃으며 맞았다.

한빈은 악비광과 삼허원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냥꾼에게까지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한빈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팽가와 악가에게 배치된 사냥꾼이 다르다는 것은…….’

한빈의 입고리가 한 단계 올라갔다.

그 미소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여유였다.

사냥꾼과 무인을 가장 손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손에 박힌 굳은살이었다.

그럼 둘의 굳은살은 어떻게 다를까?

강호에서 웬만큼 짬밥을 먹은 이라면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

활시위를 당길 때 생기는 굳은살과 병장기를 잡을 때의 굳은살은 확실히 티가 나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에게 공통으로 굳은살이 박여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엄지다.

활시위를 수월히 당기기 위해서는 뿔로 만든 깍지라는 보조 장구를 쓰는데, 뿔 깍지를 끼는 엄지를 보면 활시위를 얼마나 당겼는지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시위가 지나가는 부분인 검지도 마찬가지다.

‘사냥꾼이 활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덫과 활을 안 쓰는 사냥꾼은 이 지역에는 없었으니까.

한빈은 그런 기준으로 악가에 배치된 사냥꾼을 살펴보고 왔다.

같은 사냥꾼인데도 팽가에 배치된 사냥꾼과 악가의 사냥꾼은 달랐다.

팽가에 배치된 사냥꾼은 무인이었다.

‘무인이 사냥꾼으로 위장한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들의 사냥감은 늑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며 한빈이 진득한 미소를 피워 냈다.

한빈의 미소를 본 심미호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비밀이야, 심 부대주.”

“너무하세요.”

“뭐가 너무하다는 거지? 부대주.”

“저 주군 오른팔이잖아요.”

“언제부터?”

“너무하시네요.”

“그럼 그렇다고 치고.”

“인정하신 거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른팔에게 비밀이 어디 있나요?”

“오른팔도 너무 많이 알면 다쳐.”

“헉, 진짜 너무하세요.”

심미호가 눈꼬리를 치켜떴다. 친해졌는지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는 심미호를 한빈은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그때였다.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렸다.

드르륵.

고개를 돌려 보니 짐마차 하나가 천천히 한빈의 막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마차는 한빈의 막사 앞에서 멈췄고 조용히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막사 옆에 쌓인 상자를 보던 심미호가 마차에서 내린 책임자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뭐죠?”

“저도 이곳으로 짐을 옮기라는 지시만 받은 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심미호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한빈이 말했다.

“이거 전부 내가 주문한 거야. 그때 심 부대주가 천리 표국에 주문서 넣었잖아.”

“이게 대체 뭔가요?”

“늑대를 잡을 사냥 도구!”

“사냥 도구요?”

“열어 봐.”

한빈의 말에 심미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이게 대체…….”

심미호가 말끝을 흐렸다.

상자 안에는 식자재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천화루에 주문 서찰을 넣은 것은 그녀였지만, 서찰의 내용까지는 몰랐었다.

심미호가 황당하다는 듯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잖아. 그리고 이건 사냥꾼 양반들에게 드리고.”

한빈이 상자 몇 개를 가리켰다.

심미호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이렇게 많이요? 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요?”

“지난번에 묵철 판 거 많이 남았어.”

물론 거짓말이다.

지금 부탁에 쓰인 대금은 천수장 매입 대금에 얹어 선금으로 지불했다.

한빈이 씩 웃자 심미호가 뜨악한 표정 눈가를 떨었다.

표정을 본 한빈이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시간 날 때 이거 읽어 봐.”

“지금 읽을게요.”

심미호는 서찰을 받고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서찰을 읽고 난 심미호가 빙긋 웃었다.

“저만 믿으세요.”

“지금 읽어 봐.”

“네, 주군.”

서찰에는 앞으로의 행동 지침이 적혀 있었다.

분명 당황할 만도 한데 심미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기만 했다.

서찰을 다 읽은 심미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사 옆 화로에 서찰을 던져 넣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심미호는 사냥꾼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고생 많으신데 이거 받으세요.”

심미호가 기름종이에 쌓인 물건을 건네자 사냥꾼들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고기는 지금 드시고 육포는 넣어 두세요. 그리고 이건 향신료…….”

심미호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자 사냥꾼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걸 다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남아서 주는 거니 부담은 갖지 마세요. 내일부터 이어질 늑대 사냥 때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심미호는 조용히 뒤돌아섰다.

한빈의 말대로 물건을 전달하고 온 심미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냥꾼에게 낯선 느낌이 들었다.

‘저들의 정체가 과연 뭘까?’

의문도 잠시, 심미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빈의 옆에 있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첫째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주군인 한빈의 행동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 한빈은 자신이 특별히 부탁한 행낭을 들고 막사로 들어갔다.

행낭을 풀자 쪽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빈은 재빨리 쪽지를 펼쳤다.

[흑천(黑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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