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2화 (42/621)

42화. 그림자 무사 (1)

파팍!

이무명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화살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

그는 검에 기를 실어 재빨리 한빈의 검을 쳐 냈다.

챙!

순간 그는 팔목에서 저릿한 통증을 느꼈다.

그만큼 한빈의 검은 묵직했다.

순간 한빈의 열린 어깨가 보였다.

그 기회를 놓칠 절정검 이무명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검을 돌려 한빈의 어깨를 베었다.

서걱!

얕지만, 검이 살갗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강한 타격음이 귓전에 울렸다.

빡!

이어지는 통증.

힐끔 아래쪽을 보니 검집이 허리에 닿아 있었다.

한빈은 미소 지었다.

검으로 그의 시선을 끈 한빈은 검집으로 이무명의 옆구리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팔에 얕은 상처를 내어 주고 구결을 얻은 것이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복(復)을 획득하셨습니다.]

[기본편]

······

[복(復). 복(復)]

……

복이 두 개가 되었다.

팔에 스며드는 피가 서서히 멈추는 느낌이었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들뜬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이제까지 경험으로 보면 복의 구결은 응용편의 구결보다도 획득하기 힘들었다.

왕거니를 잡았다고 생각한 한빈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이무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자신의 공격은 가볍지 않았다. 그 증거로 한빈의 팔에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웃고 있다니?

저건 분명히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비무를 즐기는 무인을 언제 봤던가?

분명 강남 땅에서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쓴 초식도 예사롭지 않았다.

방금 한빈의 공격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이무명은 알 수 없었다.

이무명은 허리를 만졌다.

마지막에 살짝 피해 급소는 피했지만, 검집으로 혈도를 찍는다라?

정파의 고지식한 초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초식은 실로 창의적인 수법이었다.

한빈을 인정하려던 이무명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인정하려던 검객이 하북팽가의 직계임을 깨달은 것이다.

도(刀)의 명가에서 나온 검객이라?

이무명은 한빈의 존재가 참으로 아깝다고 생각했다.

비록 소가주 후보로 올랐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검객이 가주가 되는 것을 팽가에서 인정할까?

그건 불가능할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하남정가에서의 자신과 똑같았다.

이무명은 한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리 비무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가슴속 울분을 달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이무명은 앞으로 하북을 대표할 이 젊은 검객과 오늘만은 신나게 어울려 주리라 생각했다.

이무명의 검이 날카로운 검기를 담고 한빈의 간격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피슉!

한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용린검법 중 전광석화의 효용!

이무명의 눈이 한층 더 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물론 한빈도 똑같이 입맛을 다셨다.

물론 의미는 달랐다.

한빈이 입맛을 다시는 이유는 이무명에게서 새로운 구결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챙!

챙!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일각이 지났다.

한빈은 다시 전광석화를 운용했다.

이제 남은 공(功)의 개수는 다섯 개.

이 비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몰라도 이무명이 가지고 있는 구결은 싹 다 빼내야 했다.

한빈이 일촉즉발의 초식을 다시 사용했다.

이제 남은 공력의 개수는 두 개.

일촉즉발의 초식으로 화살처럼 이무명에게 달려가던 한빈이 검집을 다시 들었다.

이무명이 그 모습에 씩 웃었다. 똑같은 방식이 너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빈은 검집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탁!

아마도 동작의 폭을 줄이려는 의도 같았다.

날아오던 한빈의 검이 일자로 꺾였다.

찌르기가 아닌 횡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

이무명은 보폭을 넓혀 한빈의 간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휘청.

이무명이 중심을 잃었다.

‘뭐지?’

이무명은 재빨리 발밑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발아래는 한빈이 조금 전 던진 검집이 뒹굴고 있었다.

그가 아차 싶었을 때 한빈의 검 끝이 방향을 바꿨다.

휙!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한빈의 검날에 이무명은 철판교의 수법으로 중심을 하체로 옮기고 상체를 뒤로 꺾어 피했다.

이제는 반격의 시간.

몸을 일으킨 이무명은 검으로 한빈의 하체를 노렸다.

아니, 노리려 했다.

지나간 줄 알았던 한빈의 검이 이무명의 가슴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의 손잡이 부분.

한빈이 검 손잡이로 이무명의 가슴을 가격했다.

퍽!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검(劍)을 획득하셨습니다.]

한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무명이야말로 왕거니였다.

회복 효과의 구결에다 새로운 응용편의 구결이라니!

하지만, 웃는 것도 잠시 한빈은 바삐 이무명의 간격에서 벗어나야 했다.

팡!

이무명이 검이 파공성을 내며 야생마처럼 달려들었다.

연무장에 쉴 새 없이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계속된 비무에 한빈은 단 한 개의 공력만이 남았다.

이제 공력을 모두 소모하고 나면 적당히 빠져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챙!

서로의 검이 맞닿았다.

한빈은 이것이 마지막 합이라는 것 알았다.

남은 공력은 단 한 개였으니.

그때 이무명과 한빈의 검은 묘하게 얽혔다.

두 개의 검은 마치 자석처럼 붙었다.

스스슥.

비무를 구경하던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초식 대결에서 내공 대결로 변한 것이다.

검 끝에 얽힌 푸른 기운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검에 기운이 실리자 한빈에게 하나 남은 공력이 없어졌다.

그때였다.

단전에서 내공이 꿈틀대며 검을 타고 올라왔다.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단전에 있는 내공과 용린검법의 공력이 동일하다고 느꼈는데 둘이 별개라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용린검법의 공력을 모두 소진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어찌 보면 뜻하지 않은 기연.

한빈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동시에 이무명도 미소를 피워 냈다.

이렇게 검을 휘둘러 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이제 승부는 필요 없었다.

맞댄 검에서 상대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무명은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일화에서 나오는 종자기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한빈은 이무명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구결을 정리했다.

그때였다.

스르륵.

서로 얽혔던 검기가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동시에 한빈과 이무명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한빈이 말했다.

“여기까지 하시겠습니까?”

“즐거웠습니다.”

이무명이 마주 포권했다.

두 검객의 상체는 여기저기 베인 상처들로 가득했다.

구경꾼들이 보기에는 둘 다 패자였다.

하지만, 둘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있었다.

그때 둘의 모습을 보는 정화 부인은 고개를 돌렸다.

“흥.”

지금 정화 부인의 속에서는 천불이 끓고 있었다.

단 육 개월의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때까지 이무명은 자신의 칼이었다.

그런데 죽이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상대에게 저리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니 화첩에 난을 하나 더 쳐야 할 분위기였다.

정화 부인이 보기에 이무명은 실력이 모자라 한빈을 못 죽인 것이 아니었다.

분명 이무명은 자신의 절초인 절명일식(折命一式)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단번에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절초를 한빈에게 쓰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하극상이었다.

한빈은 자신의 자식 둘의 날개를 꺾은 적군.

이번에 이무명이 한빈을 죽인다면 뇌옥에 있는 팽무빈도 강제 폐관에 들어간 팽경빈도 모두 풀려날 것이다.

순간 정화 부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때였다.

이성을 잃은 정화 부인이 이무명의 검을 뺏어 뻗었다.

슝.

한빈의 심장으로 향하는 정화 부인의 검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살기를 느낀 한빈이 검을 피하려 할 때였다.

탁!

이무명이 정화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부인, 그만하시지요.”

“어찌 네가…….”

“비무는 끝났습니다. 이제 저는 하남정가로 돌아가겠습니다.”

“…….”

정화 부인에게서 검을 뺏은 이무명이 한빈에게 포권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리지요, 대협.”

한빈이 깊숙이 포권했다.

그가 지금 떠나겠다고 한 것은 세가 내 정치에 신물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둘의 비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무사들이 동시에 칼로 바닥을 찍기 시작했다.

쿵! 쿵!

짜릿한 비무를 펼친 둘에 대한 찬사였다.

언뜻 집법당의 무사들도 보였고 맹호사대의 수하들도 보였다.

소리가 잦아들 때쯤 한빈이 뒤돌아 맹호사대의 무사들에게 외쳤다.

“이제 밥 먹자!”

“존명.”

가장 앞에 섰던 조호가 깊숙이 포권했다.

무사들이 썰물 빠져나가듯 식당으로 향하자 한빈도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이무명이 한빈을 불렀다.

“팽 소협, 주제넘은 말인지는 몰라도 식당 말고 의당에 먼저 가야 할 듯싶습니다.”

“아, 일단 밥부터…….”

한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조호와 장삼이 양쪽 소매를 잡고 끌었기 때문이다.

옆을 보니 심미호도 한숨을 쉬고 있다.

소대섭은 할 말이 없는지 하늘을 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한빈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무명을 바라봤다.

“그럼 의당부터 들르도록 하지요.”

“네, 그럼 같이 가시죠.”

한빈과 이무명이 나란히 의당으로 향했다.

* * *

의당 당주 김무병은 요즘 걱정거리가 늘었다.

비축한 약재가 점점 동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간 몰릴 환자가 단 이틀 사이에 몰려들고 있으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의당 의원 한 명이 충원됐지만, 환자가 더 늘어났으니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화근의 중심에는 막내 공자 한빈이 있었다.

하지만, 한빈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이유는 딱 이틀 만에 의당의 위상이 몇 배는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빈은 한마디로 의당의 특급 고객.

힘은 들지만, 한빈이 벌이는 사건과 의당의 위상은 비례하니 어쩔 수 없었다.

“에휴…….”

김무병의 한숨 소리에 옆에 있던 장자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리 한숨을 쉬십니까 어르신?”

“이틀 동안 너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러네. 그렇다고 봉급이 뛰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은 너무 속 편한 소리를 하십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르신은 잠자는데 환자를 옆에 던져 놓는 놈, 아니 분을 보신 적 있습니까?”

“이 사람아,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김무병이 황당하다는 듯 장자명을 바라봤다.

“그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환자가 거기까지 들이닥친 일은요?”

“허허, 농담이 과할세.”

“그럼 봉급도 안 받고 한 달 동안 죽도록 일하신 적은요?”

“재미없으니 그만하래도.”

손을 내젓던 김무병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자명의 눈이 촉촉했기 때문이다.

소매로 눈가를 닦은 장자명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말한 걸 저는 삼 년을 더 해야 합니다.”

“…….”

김무병은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지금 장자명이 말한 내용은 의생이 아니라 노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