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1화 (41/621)

41화. 사마귀 뒤에 참새, 그 뒤에 독수리 (5)

장자명이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그럼 제가 사마귀였습니까?”

“아니, 참새 정도는 되는 것 같아.”

“그럼 참새는 무슨 실수를 했습니까?”

“참새는 뒤에 올 독수리를 살피지 않은 거지.”

“그럼 공자님이 독수리입니까?”

“하하, 그건 비밀이야.”

한빈은 기분 좋게 웃었다. 한빈은 독수리도 아니고 참새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 잡아먹을 용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남에게 할 때쯤이면 이무기 정도는 되어 있을 거라 한빈은 생각했다.

한빈이 나가려도 돌아서서 말했다.

“이제는 장 의원이라고 편하게 부를게. 참, 팽가에 있을 때는 팽가 의당에서 의술에 정진하고 천수장으로 돌아갈 때만 나를 따르면 돼.”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내가 나가서 집법당주님한테 말하면 바로 풀려날 테니 나갈 준비하고 전서구 잘 기억하라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공자님.”

장자명이 눈물을 글썽이며 포권했다.

한빈은 콧노래를 부르며 뇌옥에서 나와 팽대위가 있는 집법당 대전을 향했다.

* * *

집법당.

장자명의 처리에 대해 소상히 말하자 팽대위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강호에서 의생은 그만큼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한빈이 모든 비용을 대고 의당으로 섭외했다니 이건 가주 대행으로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렇게 처리하마.”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한빈은 절도 있게 포권하며 뒤돌아섰다. 한빈이 막 집법당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팽대위가 불렀다.

“사 공자, 자리에서 멈추게!”

날카로운 목소리에 한빈이 미간을 좁혔다.

순간 한빈은 자신의 계획에 허점이 있나 하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다음 나올 팽대위의 말에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를 예상해 보았다.

한빈의 진지한 표정을 본 팽대위의 볼이 실룩였다.

팽대위가 말했다.

“사 공자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잊었나?”

“그야, 이 일들을…….”

“아니, 그 전에 찾아온 목적 말이야.”

“그러니까…….”

“나랑 비무를 하러 왔지. 그럼, 일은 마저 끝내고 가는 게 이치에 맞는 법.”

팽대위가 씩 웃으며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동시에 집법당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중앙에 있는 집기들을 주변으로 치웠다.

한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빈이 제일 귀찮아하는 것이 생산성 없는 비무였기 때문이다.

“표정이 왜 그런가?”

“아, 긴장되어서 그렇습니다.”

한빈이 재빨리 답했지만, 팽대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닙니다. 긴장된 것 맞습니다.”

“아무리 봐도……. 귀찮은 표정인데.”

“아닙니다. 그런데…….”

한빈이 말끝을 흐리며 팽대위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팽대위가 말했다.

“또 눈빛이 바뀌었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표정인데.”

한빈이 황당한 표정으로 팽대위를 바라봤다.

힘만 앞세우는 인물로 보이지만, 팽대위는 눈치도 빨랐다.

지금 한빈은 팽대위에게 구결을 나타내는 점을 찾은 것이다.

번쩍번쩍.

팽대위의 가슴에 반짝이는 점.

용린검법의 구결을 뜻하는 점이 분명했다.

한빈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쿵쿵.

팽대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표정은 또 뭔가?”

“집법당주님, 한 수 부탁드립니다.”

“좋지, 그래야 팽가의 호랑이지.”

“아직은 고양이도 안 되지만,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하하.”

팽대위가 웃음으로 답했다.

쿵쿵.

한빈의 가슴이 더욱 뛰었다.

집법당주 팽대위에게 보이는 점이 유난히 진했기 때문이다.

오해한 팽대위가 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신 있다는 표정이군?”

“오해이십니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오해라······.”

말끝을 흐린 팽대위가 거도(巨刀)를 치켜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비무는 말이 아닌 칼로 하는 것이겠죠.”

한빈은 웃으며 팽대위가 하려던 말을 대신 끝맺었다.

휙!

공간을 가르는 팽대위의 칼.

한빈의 월아가 답했다.

스릉!

챙!

맞부딪친 둘의 병장기는 마치 대화하듯 공명했다.

우우-웅!

* * *

한 시진 후.

“헉헉!”

한빈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무릎을 꿇었다.

한빈은 석양이 팽대위의 어깨 아래로 꼬리를 감출 때까지 팽대위를 건드리지 못했다.

“지쳐 보이는데 인제 그만하지.”

“아닙니다.”

팽대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도 젊었을 때 싸움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빈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면서 저리 달려드는 패기가 부럽기도 했다.

그때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빈은 오직 붉은 점이 궁금할 뿐이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한빈의 몸이 화살처럼 튕겼다. 용린검법의 마지막 공력을 짜낸 것이다.

팽대위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거대한 도를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팡!

대지를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한빈은 몸을 틀었다.

한 바퀴 구른 한빈은 도기(刀氣)가 스쳐 지나간 자리를 확인했다.

거칠게 파여 있는 집법당의 바닥.

한빈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포기하겠습니다.”

“갑자기 왜?”

“죽기 싫습니다. 조카와 비무에서 도기를 이렇게 악랄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빈이 포권하자 팽대위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그러자꾸나.”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한빈은 깊숙이 포권하며 자리를 떠났다.

한빈은 이번 비무에서 느낀 바가 컸다.

용린검법의 초식이 한 단계 정도의 경지는 무마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는 것이었다.

즉, 경지가 깡패라는 것이었다.

팽대위의 가슴에 반짝이는 점이 아른거렸지만, 그것은 나중에 수확하기로 했다.

괜히 설레발치다가 몸이라도 상하면 다른 구결을 획득하는 과정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빈은 최대한 빨리 집법당을 벗어났다.

멀어져 가는 한빈을 본 팽대위는 입맛을 다셨다.

마지막 일격은 사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간 투기.

그것을 한빈이 피한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진심으로 투기를 보이다니!’

팽대위는 오늘따라 자신도 폐관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 * *

처소로 돌아온 한빈은 입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거기서 뭐 해?”

“아, 공자님.”

“주군.”

“주군 왜 이제야 오십니까?”

철노와 소대섭 그리고 심미호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중 철노는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한빈에게 달려왔다.

철노가 한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공자님, 또 맞으셨습니까?”

철노는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한빈의 무복에 붙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그냥 비무 한 번 한 거니 호들갑 떨지 마라.”

“비무요?”

철노가 고개를 갸웃할 때 심미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누구하고 하셨어요?”

“집법당주.”

모두의 눈이 커졌다.

“헉,”

“아니, 어쩌자고 초절정 고수와…….”

“공자님, 미쳤습니까?”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자 한빈이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

심미호가 한빈을 살피며 물었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뭐 멀쩡하긴 한데, 그 양반 정말 무섭네. 초절정이 딱지치기로 얻은 허명은 아닌가 봐. 마지막에 도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한빈의 말에 심미호가 다시 나섰다.

“하북팽가의 공자 중에 윗대와 비무를 청한 사람은 아직 없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도전하셨습니까?”

“그냥.”

물론 구결이 탐나서였다.

옆에 묵묵히 보던 소대섭이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덤비지 마십시오. 이 년 전에도 조장 하나가 수련을 청했다가 팔이…….”

소대섭의 말이 길어지려 하자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 * *

다음 날 정오.

정화 부인이 머무는 별채 앞에 선 한빈은 쓱 안을 살폈다.

하북팽가라는 거대한 장원에 멋진 저택 하나가 별도로 존재하는 모양새였다.

화원이나 연못들을 보면 가주전보다도 더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한눈에 파악되었다.

뭐, 밤에는 자주 왔지만, 낮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한빈은 여유 있게 경관을 감상했다.

정화 부인의 처소에 도착한 한빈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쪼르륵.

차를 잔에 따르고 차향을 음미한 정화 부인이 입을 열었다.

“집법당주님에게 들었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사과하지.”

“뭐 상관없습니다.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요.”

한빈의 말에 정화 부인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절정검 이무명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절정검이란 별호는 하남정가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절정에 올랐기 때문에 붙여진 별호였다.

전생에 기억에 의하면 절정검이란 별호는 절망검으로 변했고 그 후에는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

즉, 지금의 경지가 한계라는 점이다.

한계란 왜 존재할까?

그것은 핑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한계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하지만, 한계는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한빈은 그를 요긴하게 쓸 자신이 있었다.

그와 비무를 원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에게 확인한 구결이었다.

정화 부인의 눈빛을 받은 이무명이 말했다.

“저는 부인의 호위지, 물건이 아닙니다. 육 개월 뒤에는 하남정가로 복귀하기로 되어 있는 관계로 사 공자의 수하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정중하지만, 칼 같은 통보였다.

한빈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말했다.

“그럼 비무는 허락해 주실는지요.”

“그건 정화 부인께서 허락하시면 응해 드리겠습니다.”

절정검 이무명의 말에 정화 부인이 끼어들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거라.”

“소뿔도 단김에 빼라 했습니다. 여기서 지금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한빈의 말에 정화 부인이 이무명을 바라보며 턱짓했다.

지시를 받은 이무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럼, 이 앞 연무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정화 부인의 처소 앞 연무장.

시퍼런 날을 빛내는 두 개의 검이 마주 봤다.

이무명의 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귓가에 전음이 울렸다.

-죽여!

짧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전음.

이무명은 이를 악물었다.

육 개월간 모셔야 하는 정화 부인의 명이었다. 뒷일은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가주가 이무명에게 명하기를 육개월간 그의 칼이 되라 했다.

그런데 팽가에 와 보니 정화 부인과 두 명의 아들은 그야말로 개차반이었다.

무인의 자긍심은 벗어던진 그들을 따르자니 속이 뒤집혔다.

정화 부인을 따르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정도를 벗어나려는 정화 부인을 따르는 것은 하남정가의 가칙에서도 벗어나는 일.

이무명은 이 비무가 끝나면 정화 부인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하며 검을 뽑았다.

슝!

이무명은 한빈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하남정가 특유의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공격.

한빈은 빠르게 옆으로 돌았다.

전광석화의 효용으로 한빈은 잔상을 남기고 없어졌다.

하지만, 이무명의 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뱀처럼 집요하게 검 끝을 틀었다.

휙!

한빈이 뒤쪽으로 물러섰다.

계속 뱀처럼 파고드는 검.

한빈이 씩 웃으며 구결을 바라봤다.

[일촉즉발(一觸卽發)]

공의 구결 하나를 소모하는 단발성 초식.

동시에 한빈의 몸이 이무명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경악에 찬 함성.

“앗, 검기다.”

“사 공자가 어떻게 검기를 쓰지?”

“뭐야, 절정에 올라선 거야?”

“아니, 일류의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지.”

하지만, 이무명의 귀에 그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검 끝에 일렁이는 검기만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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