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8화 (38/621)

38화. 사마귀 뒤에 참새, 그 뒤에 독수리 (2)

그 모습에 팽강위가 은빛 물체를 팽대위에게 던졌다.

물체가 날아오자 포권을 푼 팽대위가 재빨리 그것을 받았다.

“가주 패를 왜 제게…….”

“오늘부터 네가 가주 대행이다.”

“아, 형님!”

집법당주 팽대위가 울부짖었다.

가주 대행이라는 직책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밀려들 서류 뭉치가 두려운 것이었다.

* * *

그날 오후 수호사대 전용 연무장.

연무장에는 수호사대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무사 중 하나가 조호에게 물었다.

“조호, 일류라니 부럽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기연을 얻게 된 거야?”

“지금 저한테 축하할 일이 아니에요. 선배도 일류예요.”

“뭐라고?”

“잘 생각해 보세요. 선배의 칼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그리고 저처럼 아랫배가 간질거린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음식을 잘못 먹어…….”

“그거 내공이래요. 아까 집법당주님께 들었어요.”

“헉!”

무사가 비명을 지르자 다른 이들도 자신의 아랫배를 만졌다.

“나도 그래.”

“나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에 조호가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 훈련의 성과라네요.”

“우리가 그 생고생을 한 게 헛일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럼 그놈이…….”

무사가 한빈에 대해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조호가 번개처럼 도를 무사의 눈앞에 갖다 댔다.

슥.

놀란 무사가 뒷걸음치며 외쳤다.

“아, 조호. 지금 무슨 짓 하는 거야?”

“주군에 대한 불경한 발언은 제가 용서하지 않습니다.”

“…….”

무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조호가 일류의 경지에 올랐다면 자신도 일류일 터였다. 은공에게 그놈이라니!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다.

조호는 힐끔 장삼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장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수호사대 무사 전체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된 마음이 같은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까는 흥분해서 생각을 못 했는데, 눈앞에 들어오는 하남정가의 검이 두렵지 않았어요.”

“그건 나도 그랬다네.”

장삼이 덧붙이자 나머지 무사들이 목을 길게 빼고 조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저 칼의 무게가 다른 것에 비해 두 배가 무겁대요.”

조호는 무사들이 차고 있는 수련용 도(刀)를 가리켰다.

정철민에게 받은 특제 수련용 병기를 고루 나눈 후였기에 그들 모두 허리에 그 칼을 차고 있었다.

“하나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니까. 분명 훈련 성과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건 백 근의 칼을 만 번 휘둘렀다고 주군이 그러셨는데, 저는 기억이 안 나거든요.”

조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장삼이 말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우리 이류 인생을 바꿔 준 은공을 만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야.”

장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빈의 처소 쪽을 바라보며 정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게 도착한 소대섭과 심미호도 그들의 앞에서 같은 자세를 취했다.

* * *

식사를 마친 한빈은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무장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뒤쪽에서는 철노가 숨을 몰아쉬며 돈 자루를 들고 따라왔다.

“공자님, 그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

“가주님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다네요.”

“아, 둘째 형님과 같이 들어가신 건가?”

“이 공자는 말이 좋아 폐관이지 감금이고요. 가주님은 정식으로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집법당주님이 가주 대행을 맡으셨다네요.”

“아, 가슴 아픈 일이네.”

한빈은 서류와 싸울 집법당주 팽대위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애도했다.

잠시 후, 연무장에 도착한 한빈은 이상한 광경에 고개를 갸웃했다.

소대섭과 심미호가 가장 앞쪽에 서 있었고 뒤쪽에 수호사대 대원들이 정렬해 있었는데, 문제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는 점이었다.

누가 보면 석상이라 착각할 정도로 각이 잡힌 모습이었다.

한빈이 다가오자 수호사대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충!”

“충성!”

“주군 오셨습니까?”

그 목소리에 한빈이 손을 흔들었다.

“다들 왜 그래, 쉬라고 했잖아.”

한빈의 말에 조호가 뛰어왔다.

“아닙니다. 주군.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무슨 오해?”

“아, 그게…….”

조호가 말끝을 흐리자 한빈이 웃었다.

“괜찮아. 사실 오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데, 주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라.”

“저희가 두 배나 나가는 칼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입니까?”

“내가 아까 말했잖아. 백 근이 넘는 칼을 만 번 넘게 휘둘렀는데 두 근 차이를 어떻게 느끼겠어?”

“저희가 백 근의 칼을 휘둘렀다고 하셨습니까?”

“밧줄을 타면서 너희 몸무게를 버텼잖아.”

“아.”

조호가 탄성을 토했다.

밧줄이 칼의 손잡이고 자신의 몸이 칼의 무게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조호가 깊숙이 포권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군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를 들어 아랫마을 향이랑 헤어지게 만들어도?”

“음.”

조호가 침음을 삼켰다.

일류의 경지에 오른 기쁨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을 떠오른 것이다.

한빈이 힐끔 철노를 바라봤다.

“철노, 그것 좀 줘.”

“네, 공자님. 여기 있어요.”

철노가 자루를 건넸다. 내기판에서 돈을 싹 쓸어 담은 그 자루였다.

한빈이 자루를 열었다.

그 자루 안에는 은전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위에는 편지 몇 장이 접혀 있었다.

한빈은 그 편지를 꺼냈다.

“이거 받아라.”

한빈이 무심한 표정으로 편지 뭉텅이를 던졌다.

놀란 조호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주군.”

“향이한테 온 연서다.”

연서라면 연애편지. 시집간다던 향이가 자신에게 연서를 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은 까막눈이 아니던가?

그 의문을 한빈이 풀어 주겠다는 듯 말했다.

“내가 대신 써 줬다. 마음은 돌려놨고.”

“네?”

“그리 놀라지 말고, 글공부는 좀 해 둬라, 내가 계속 써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아…….”

긴 탄성의 끝에 조호가 무릎을 꿇었다.

털썩!

그리고 흐느껴 울었다.

“흐흑.”

감정이 전염된 것일까?

수호사대 무사들 전체가 눈물을 글썽였다.

한참을 눈물을 글썽이던 조호가 물었다.

“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제가 이리 강해졌는데, 왜 주군과 비무를 하면 그 차이를 못 느끼는 건가요?”

“그건 말이다…….”

“뭡니까? 주군.”

“비밀이다.”

한빈이 씩 웃자 조호가 조용히 포권하며 물러났다.

조호는 한빈이 힘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심미호가 조용히 물었다.

“주군, 그때 이길 확률이 오 푼이라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아, 그거 잘못 말한 거야.”

“잘못 말하셨다니…….”

“이길 확률이 아니라 질 확률을 말했던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주군, 대체 왜? 저 진짜 짐 쌌단 말이에요.”

심미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해 한빈이 일어났다.

“자, 다들 앞으로 나와라. 약속한 돈 받아 가야지. 소 대주가 나눠 줘.”

탁!

한빈이 자루를 소대섭 앞에 던졌다.

가득한 은전에 소대섭이 놀랄 때였다.

한빈이 눈을 반짝였다.

소대섭과 심미호의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반짝.

반짝.

구결을 나타내는 점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한빈이 지체 없이 말했다.

“소 대주, 심 부대주.”

그 부름에 소대섭과 심미호가 즉시 답했다.

“네, 주군,”

“말씀하세요, 주군.”

한빈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비무 한판 하자!”

한빈의 외침에 연무장에서 각을 잡고 서 있던 수호사대 무사들이 칼을 높이 올렸다.

“실전!”

“훈련!”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오는 구호에 한빈이 천천히 연무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런 한빈을 보며 소대섭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수련용 병기를 뽑아 든 한빈과 소대섭이 달려갔다.

챙!

한빈의 시야에 구결 획득을 알리는 글귀가 떴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즉(卽)을 획득하셨습니다.]

구결 확인한 한빈은 다시 검을 찔러 들어갔다.

동시에 소대섭의 입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헉!”

* * *

잠시 후.

심미호까지 눕힌 한빈은 검을 거두고 허공을 바라봤다.

이번 비무의 성과는 엄청났다.

두 번째 응용편 구결을 완성한 상태였다.

일촉즉발이라는 초식을 새로 얻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 몸을 화살처럼 쏘아 냅니다. 검 끝에 기를 응집합니다. 필요 공력, 삼 년. 소모 후 열두 시진 후 회복.]

용린검법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한빈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조금 전 조호가 한빈에게 던진 질문의 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도 강해졌지만, 한빈은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기본편]

……

[응용편]

[전광석화(電光石火)]

[일촉즉발(一觸卽發)]

연무장 중앙에서 한빈이 허공을 보며 웃음 짓고 있을 때 철노가 황급히 달려왔다.

“공자님.”

“왜 그래? 철노.”

“집법당에서 무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집법당에서? 또 누가 사고 쳤어?”

한빈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무사들을 하나씩 살폈다.

무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한빈과 수호사대가 술렁이고 있을 때였다.

집법당 무사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집법당 무사들을 본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집법당 무사들의 모습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앞장선 이는 커다란 깃발을 들고 있었다.

“뭐지?”

한빈이 고개를 기울일 때 집법당 무사 하나가 달려와 포권했다.

“공자님께 인사드립니다.”

“무슨 일이지?”

“깃발을 가져왔습니다.”

“깃발?”

때마침 집법당 무사들의 행렬이 의당 앞에 멈췄다.

한빈은 깃발을 바라봤다.

펄럭이는 거대한 깃발.

앞에는 맹호(猛虎), 뒤에는 사(四)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한빈은 그제야 이 깃발의 의미를 알았다.

팽가에서 수호사대를 완전한 무력대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즉 단순한 호위가 아니라 외부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내려진 것이다.

깃발을 든 무사가 외쳤다.

“막내 공자는 이 깃발을 받으시오.”

한빈이 깃발을 든 무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깃발은 가주가 내리는 것.

한빈은 그 어느 때보다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했다.

포권한 손으로 깃발이 전해졌다.

깃발을 잡은 한빈이 일어나 외쳤다.

“우리 수호사대는 이제 팽가의 정식 무력대인 맹호사대로 거듭났다.”

동시에 이어지는 함성.

몸 여기저기를 붕대로 감싼 한빈의 수하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

“주군 만세!”

모두가 무아지경 속에서 칼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쿵, 쿵.

사실 연무장 바닥보다 더 심하게 울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가슴속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