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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4화 (34/621)

34화. 싸움의 법칙 (2)

이틀 후.

드디어 한빈 일행이 하북팽가에 도착했다.

하북팽가의 대문을 바라보는 수호사대 대원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집밥이 최고지.”

“아, 이제야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네.”

안심하고 팽가로 들어가려던 그들의 발걸음을 막은 것은 뜻밖에 경비 무사였다.

“멈추시오.”

손을 보이며 막는 경비 무사의 모습에 소대섭을 비롯한 대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소대섭이 외쳤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소대섭의 외침에 경비 무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는 개방 방도는 받지 않습니다. 다른 집으로 가시죠.”

무사의 말에 소대섭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탄성을 흘렸다.

“허!”

소대섭의 눈에도 그들이 거지로 보였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무복은 낡아서 이곳저곳이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흙먼지가 묻어 누군지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그때 뒤쪽에서 한빈이 걸어 나왔다.

묘하게 한빈만은 붉은색 무복에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한빈이 말했다.

“나다, 문을 열어라.”

“아, 죄송합니다. 그럼 이들은…….”

한빈을 알아본 경비무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소대섭과 대원을 가리켰다.

“그래, 이들은 수호사대다. 그리고 이쪽은 수호사대의 전속 의원이신 장자명 의원이시고.”

한빈이 장자명을 가리키며 소개하자 그는 어색하게 포권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언제부터 수호사대의 전속 의원이 되었다는 말인가?

이 의뢰가 끝나자마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쳐야 하는 것이 자신이었다.

장자명이 혀를 차고 있을 때 한빈 일행은 우르르 팽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짐을 풀고 하북팽가의 대연무장에 모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무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무까지 남은 날은 단 하루.

바로 내일이 결전의 날이었다.

대연무장에 수호사대가 모이자 한빈이 말했다.

“이곳이 너희가 결전을 치를 연무장이다. 이제 쉬도록.”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호가 다급히 달려 나와 묻자 한빈이 말했다.

“오늘 수련은 끝이다.”

“주군, 죽을 때 죽더라도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말해 봐라, 조호.”

“저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게 뭡니까? 제 무공은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비무를 앞두고 초식 하나라도 알려 주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초식이라?”

한빈이 모두를 돌아봤다.

수호사대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본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때가 되면 알려 주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빈이 자리를 떠나자 여기저기서 울분 섞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앞장서 말했던 조호가 말했다.

“아, 향이도 잊으면서 강해지려고 했는데, 이런 내가 바보지.”

“너만 속았냐? 나도 속았다. 강해진다는 명분으로 우리를 패기만 하고 저게 무슨 주군이냐? 내일 비무만 끝나면 튄다, 튀어.”

누군가가 말하자 장삼도 뒤를 이었다.

“그럼 당연하지, 나도 이제 무인 생활은 끝이야. 돈 받으면 장사나 해야지.”

그때 구석에 있던 누군가가 한숨을 쉬었다.

“휴.”

거친 한숨 소리가 어찌나 처량해 보였는지 모두가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의원 장자명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원들의 시선을 받은 장자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와, 저도 미치겠습니다. 자려고 하면 환자가 오고. 화장실에 가 있는데도 환자가 와서 볼일도 못 본 것이 한 달 가까이 됩니다…….”

장자명의 넋두리에 대원들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이 고생하신 거 맞습니다. 의원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는 버텨 내지 못했을 겁니다.”

조호가 말하자 장삼이 맞장구쳤다.

“조호 네 말이 맞다. 의원님이 우리에게는 은인이지.”

그들의 칭찬에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던 장자명이 말을 이었다.

“사실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저는 사 공자한테 한 푼도 안 받았습니다.”

장자명의 말에 연무장이 울릴 정도로 술렁였다.

“정말이야?”

“그 생고생을 하고 돈 한 푼 못 받아?”

“우리는 돈이라도 받지.”

그 아우성에 장자명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세상에 이런 구두쇠도 없습니다. 사실 약값도 못 받았습니다.”

말을 마친 장자명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물론 장자명의 목적은 한빈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수장에 있으면서 의원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 자부했다.

그런데 어떻게 돈 한 푼 들어오는 것이 없단 말인가!

악당이라는 것을 들켰을 때의 벌은 달게 받겠지만, 선인으로 행동했을 때의 대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 장자명의 생각이었다.

비록 산공독을 풀긴 했지만, 대원의 치료는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때부터 연무장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무대가 되었다.

그 모습을 몇 쌍의 눈동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몇 쌍의 눈동자가 사라질 때쯤.

조호가 배를 어루만졌다.

“아저씨, 저 화장실 좀요.”

“점심에 뭘 먹었길래?”

“아까 같이 천수장에서 싸 온 음식 먹었잖아요. 요즘 들어서 이상하게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서요. 그런데 막상 화장실에 가면 나오지는 않고…….”

조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삼이 말했다.

“이상하네, 나도 그런데. 하긴 천수장의 음식이 부실하긴 했어.”

그들의 대화에 다른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랫배가 간질간질했던 것이다.

* * *

이 공자의 처소.

연무장의 모습을 확인한 호위가 이 공자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내일 비무는 하나 마나입니다.”

“그 정도인가?”

“제가 봤을 때는 사 공자는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문제인가?”

“구두쇠인 데다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만 신경 쓰지, 대원들의 무위 향상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답니다.”

“그게 연극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저들의 태도가 연극이라면 저들은 호위가 아닌 경극 배우가 되었을 겁니다.”

“험, 그런데 구두쇠라는 말은 무엇인가?”

“멀리서 듣자 하니 의원에게 줄 돈까지 떼먹었다고 합니다. 장자명이란 의원이 동행했다는데…….”

호위의 설명이 계속되자 이 공자 팽경빈이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삼 공자를 통해 붙여 놓은 인물까지 동행한 것으로 봐서 결말은 정해졌다.

이제 편안히 내일의 무대를 기다리면 되었다.

그런데 이 공자 팽경빈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호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자 팽경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빨리 내일의 비무를 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네.”

이 공자 팽경빈은 열린 창문 사이로 휘영청하게 떠 있는 달을 바라봤다.

달은 어딘가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시간이 빨리 가기를 원하는 팽경빈의 마음에 비친 달일 것이었다.

* * *

한빈도 팽경빈과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주를 병째 든 한빈은 입을 축였다.

그 모습에 철노가 말했다.

“공자님, 내일 비무인데, 너무 과음하시면 안 됩니다.”

“괜찮아. 내가 싸우는 건 아니잖아.”

그들의 대화에 심미호가 속이 터지는 듯 끼어들었다.

“주군, 너무 태평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나도 걱정하고 있어. 심미호 부대주를 뺏기면 안 되잖아.”

“지금은 몇 할이죠?”

“지금은 오 푼!”

“헐, 주군, 이제 이길 확률이 없다는 거잖아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주군, 저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왜, 짐 싸게?”

“눈치는 빠르시겠군요. 짐이라도 미리 싸 둬야지요.”

농담 반 진담 반인 그녀의 말에 한빈이 웃었다.

“내게 배운 은신술을 써먹을 때네.”

“그건 고마웠어요, 주군.”

소대섭은 주로 기초 체력을 다듬었고 심미호는 그동안 한빈에게 은신술을 사사했다.

덕분에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곪아 있는 상태.

은신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심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 봤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푸석푸석해졌다.

잘 말려 놓은 육포 같은 느낌이었다.

힐끔 심미호를 본 한빈이 물었다.

“왜 그래? 심 부대주, 혹시 수련이 모자라?”

“아니에요, 주군. 이것만으로 충분해요.”

심미호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한빈이 가르쳐 준 은신술은 별것 없었다.

한빈이 말한 은신술은 안 먹고 안 싸고 움직이지 않기가 비결이었다.

그 결과 이 모양이 된 것이었다.

물론 한빈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한빈이 가르쳐 준 것은 귀식대법의 기본이니 말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한참을 앞을 바라본 한빈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기본편]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속(速) ……]

[체(體), 체(體), 체(體), 체(體), 체(體), 체(體)]

[력(力), 력(力), 력(力), 력(力), 력(力), 력(力)]

[공(功), 공(功), 공(功), 공(功), 공(功) ……]

[복(復)]

[응용편]

[전광석화(電光石火)]

[촉(觸), 발(發)]

발은 바로 어제 비무에서 얻은 응용편의 구결이었다.

이제 두 개만 더 얻으면 응용편의 완벽한 구결이 두 개가 되었다.

* * *

다음 날 정오.

대연무장에 제법 그럴듯한 비무대가 마련되었다.

그 주변에는 비무를 구경하기 위해 나온 이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것은 가주가 앉을 단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단상을 본 한빈이 혀를 찼다.

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 공자가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공자와 정화 부인은 이번 비무를 통해 한빈을 팽가에서 매장시키려는 것 같았다.

비무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

이 공자 측 호위들은 각을 잡고 매섭게 한빈 쪽을 노려보는 반면, 수호사대는 비무대 주변이 침상이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전의를 상실한 모습.

비무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수호사대의 이런 모습을 보고 킥킥대며 웃었다.

“승패는 결정 났네.”

“그러게, 역시 이 공자 측에 걸기를 잘했어.”

“에이, 그런 소리 하지도 마.”

“왜 그러나?”

“승패가 불 보듯 훤한데 누가 사 공자한테 걸어, 이 공자한테 다 몰리니 배당금도 적을 수밖에 없지.”

“배당금이 있는 것을 보니 그래도 사 공자한테 건 사람이 있나 봐?”

“어떤 미친놈이 은자 다섯 냥이나 걸었더라고.”

“허, 돈이 남아도는 놈일 거야.”

그들의 대화를 멀리서 듣던 한빈이 귀를 후볐다.

“왜 이렇게 간지럽지? 참, 소대섭 대주, 부탁한 건 시간 맞춰 온다고 했지?”

“네, 정철민 명장이 직접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때였다.

멀리서 마차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덜덜.

마차가 지나갈 때 바닥이 들썩이는 것으로 봐서 무게가 꽤 나가는 물건을 싣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레를 본 한빈은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마차 앞에는 정철민과 손녀 정소연이 앉아 있었다.

정소연은 한빈을 보자마자 마차에서 뛰어내려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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