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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7화 (27/621)

27화. 먹힐 것이냐 먹을 것이냐 (1)

정화 부인이 다시 난을 바라봤다.

하북팽가의 직계는 네 명.

그런데 왜 난에 있는 숫자는 더 많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녀가 가지고 싶은 것에는 하북팽가뿐 아니라 친정인 하남정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북의 직계 중 이제 멀쩡히 남아 있는 난은 이(二)와 삼(三)이다.

이 공자와 삼 공자는 자신의 자식이지만, 그 난을 바라보는 정화 부인의 눈빛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그녀의 야심을 채워 주기에는 자신의 아들 둘 다 부족하다 생각해서였다.

정화 부인이 자신이 친 난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눈썹을 꿈틀했다.

동시에 내뻗는 손.

휙.

붓이 허공을 가르고 창문을 향했다.

문틈을 빠져나간 붓이 뭔가에 적중했다.

퍽.

정화 부인이 재빨리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빗자루가 쓰러져 있었다.

낮에 청소한 후 옆에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요즘 예민해지긴 했어. 휴, 찬 공기가 피부에 좋지는 않지.”

한숨을 내쉰 정화 부인은 창문을 닫았다.

탁.

너무 세게 닫았는지 창문이 부르르 떨린다.

그것은 요즘 정화 부인의 심정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막내 공자가 정화 부인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 * *

부르르 떨리는 창문 아래의 검은 그림자가 스르르 사라졌다.

사라진 그림자는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복면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바로 한빈이었다.

한빈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거참, 살벌하네.”

한빈은 조용히 야행복을 벗어 행낭에 넣고는 정화 부인의 처소를 바라봤다.

자신이 정화 부인이 생각하는 경쟁자 명단에 올랐다는 것을 오늘 확인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뭐, 영광이지.”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하북팽가의 몰락은 정화 부인으로부터 시작한다.

한빈이 보기에 그녀는 호랑이 무리에 숨어든 구렁이었다.

구렁이도 구렁이 나름.

그녀는 천년 묵은 이무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무기가 용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앞으로 용이 되어 하늘을 날 결심을 한 한빈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한빈도 이제 칼을 세워야 할 때였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지운 한빈은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한빈이 처소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앞에 철노가 불쑥 나타났다.

“공자님!”

“아, 철노. 깜짝 놀랐잖아.”

“의당에서 일주일은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어딜 다녀오십니까?”

“가만있으니까 좀이 쑤셔서.”

“다섯 명의 도객과 무씨검가의 무소율 아가씨와 비무를 벌이신 게 오늘입니다. 그런데 좀이 쑤시다니요?”

“누워 있으면 병이 날 것 같아서.”

철노가 못 믿겠다는 듯 한빈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가 눈매를 좁혔다.

“공자님, 여긴 왜 그러세요?”

철노가 소매로 한빈의 뺨을 닦았다.

철노의 소매에 슬쩍 묻어 나오는 피.

조금 전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한빈은 당황하지 않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나도 모르게 나무에 긁혔나 봐.”

“자꾸 다치시면…….”

철노의 눈이 다시 촉촉해지려 하자 한빈이 두 손으로 막았다.

“알았어, 철노. 이제는 안 다칠게.”

아무래도 철노는 한빈의 무위가 높아졌다는 점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말을 마친 한빈은 도망치듯 앞섰다.

그것도 잠시, 앞서가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철노는 왜 안 자고 그래?”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있어야죠?”

철노가 한숨을 쉬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끄럽다니?”

“연무장에서 아직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서 통 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아리송한 철노의 말에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무슨 소리?”

“모르셔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수호사대의 수련 때문에 나는 소리죠.”

그때 멀리서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철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빈은 방향을 틀어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횃불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그 중앙에는 수호사대의 무사들이 박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대견하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던 한빈이 천천히 걸어갔다.

한빈의 기척을 느낌 소대섭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주군.”

소대섭의 각 잡힌 포권에 한빈이 씩 미소를 지었다.

“다들 왜 그렇게 무리하고 그래?”

“오늘 있었던 주군의 비무에 감명받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이렇게 나왔습니다.”

소대섭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빈은 주위를 둘러봤다.

나머지 이들도 소대섭만큼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다.

일렁이는 횃불 때문일까.

마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한빈이 소대섭에게 말했다.

“수련이 좋아도 몸 좀 사려. 그러다 탈 나면 본전도 못 건지잖아.”

“아닙니다. 주군의 활약을 보니 뛰는 가슴이 멈추지 않습니다.”

눈에 잔뜩 힘을 준 소대섭을 보니 진심이 느껴졌지만, 한빈은 손을 저었다.

“소 대주. 왜 그래? 안 하던 행동 하지 말고 그만 들어가서 자. 옛말에 안 하던 짓 하면 일찍 죽는다잖아.”

“아닙니다. 주군! 죽을 때 죽더라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군이 단시간에 강해질 수 있었던 비결을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런 비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겠지만요. 하지만…….”

소대섭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염치가 없다 느꼈는지 말을 맺지 못하고 대신 포권했다.

동시에 뒤쪽의 무사들도 한빈을 향해 같은 동작을 취했다.

소대섭만의 뜻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해지고 싶나? 뭐,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지.”

“네?”

소대섭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뒤쪽에 정렬해 있던 무사들이 눈을 빛냈다.

그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은 한빈이 다시 물었다.

“방금 말한 거 진심인가? 소 대주.”

“네, 진심입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그 전에 ‘죽더라도’라고 했던 말 말이야.”

“…….”

소대섭은 바로 답을 못했다. 왠지 모르게 한빈의 말투에서 살짝 오한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한빈의 맑은 눈을 바라본 소대섭은 결심했다.

“네, 사실입니다. 고수가 밟으면 꿈틀대지도 못하고 사라져 갈 하수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소대섭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소대섭의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그도 지금의 부탁으로 자신이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 같은 꼴이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의 말에 한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빈의 얼굴은 태양 빛을 반사하는 얼음과도 같았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을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한빈은 아무 말 없이 포권한 소대섭을 바라봤다.

소대섭은 아직도 포권을 풀지 않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가주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빈을 대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소대섭과 수호사대는 한빈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다섯 도객의 칼을 받아 낸 한빈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마음은 돌아섰다.

소대섭과 수호사대가 보기에 한빈의 무위는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시간 동안 올라간 한빈의 실력이다.

그들은 한빈에게 비밀이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버텨 낸 한빈의 집념 또한 그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데 한몫했다.

한빈처럼 단시간에 발전할 수 있다면?

소대섭과 나머지 대원의 가슴은 기대감에 방망이질 쳤다. 지금 그들은 죽으란 말만 빼면 한빈의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달빛 아래 모두가 포권하고 있을 때 한빈이 허리에 찬 월아를 뽑았다.

“강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은 자는 칼을 들어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여기저기서 칼이 올라왔다.

슥!

달빛을 받은 칼 때문인지 연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한빈이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가 무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의지를 확인한 한빈이 외쳤다.

“지금부터 싸움의 법칙을 가르쳐 주겠다.”

동시에 울리는 함성.

“와!”

그들은 그것이 고난의 시작임을 몰랐다.

한빈이 혼잣말을 뱉었다.

“어찌 다들 불나방 같네.”

이건 한빈의 진심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뛰어든 이들은 호롱불로 달려드는 나방이나 다름없었다.

불사조가 될지 불나방이 될지는 그들 하기 나름이었다.

그들은 힘을 원하고 한빈은 자신의 칼에 날을 세워야 할 때.

한빈이 기분 좋게 웃으며 철노를 바라봤다.

“철노, 지필묵 좀 가져다줘.”

“네, 공자님.”

철노가 처소로 뛰어가 지필묵을 가져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철노가 종이를 한빈 앞에 펼쳤다.

촤르륵.

바로 먹을 갈기 시작하는 철노를 본 한빈이 붓을 들었다.

한지 위에 슥 지나가는 먹물은 달빛을 받자 화사(花蛇)가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슥슥.

한빈의 붓이 미끄러지듯 화선지 위를 달리자 수호사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가 목울대를 꿀렁이며 목을 빼고 있을 때 한빈은 붓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해지고 싶은 자는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라.”

뜻밖의 말에 무사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수호사대의 막내 조호였다.

조호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빈 앞에 섰다.

한빈이 그에게 화선지를 쓱 내밀었다.

조호가 화선지 위의 글씨를 바라봤다.

천자문을 못 뗀 조호이기에 어두운 밤, 달빛 아래 글자는 그저 먹물에 가까웠다.

조호가 물었다.

“주군, 무슨 내용입니까?”

“너희의 목숨을 내게 맡긴다는 내용이다.”

“흠.”

조호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목숨을 건다고는 했으나 이렇게 문서를 들이미니 갑자기 긴장된 것이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이 계약서의 내용은 유교적 사상을 담고 있다.”

분명 계약서의 내용에는 서당에서 많이 듣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체발부수지주군(身體髮膚受之主君)이며…….]

언뜻 보면 효경에 나오는 대목이지만, 뒤에 부모가 주군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신체 포기 각서에 가까웠다.

아무리 저들이 원하는 수련이라 해도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어야 하는 법.

설명을 이어 나가던 한빈이 품속에서 전낭을 꺼내며 모두를 바라봤다.

“너희가 목숨을 포기하는 대신 참가 격려금으로 은전 한 냥 그리고 수련에 통과한다면 나는 너희에게 은전 열 냥을 약속하마.”

한빈이 전낭을 풀었다.

순간 달빛에 수많은 은전이 드러나며 반짝였다.

그 반짝임에 무사들이 심장이 공명했다.

쿵!

쿵!

망설이던 조호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철노에게서 붓을 빼앗아 들었다.

“여기 서명하면 됩니까? 주군.”

“…….”

한빈은 씩 웃으며 계약서 아래 공간을 가리켰다.

슥슥.

조호는 붓을 빼앗길세라 재빨리 서명을 했다.

조호를 시작으로 수호사대의 대원들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먼저다.”

“내가 먼저 줄을 섰다니까.”

“아니야, 난 아까부터 앞줄에 서 있었잖아.”

눈 깜짝할 사이에 수호사대의 대원들이 모두 서명하자 한빈이 계약서를 말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한빈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강해지는 첫 번째 방법을 말해 주겠다.”

“…….”

뒤쪽에 줄을 선 막내 조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보름달처럼 빛냈다.

나머지 무사들도 마찬가지다.

한빈이 이제 때가 되었다는 그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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