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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5화 (25/621)
  • 25화. 결자해지(結者解之) (5)

    그건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빈도 성장했다.

    한빈은 이번 승부를 단번에 결정짓기로 했다.

    마침 무소율의 미간에 보이는 붉은 점.

    그것은 분명 응용편의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분명했다.

    그것은 한빈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쿵쿵.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킨 한빈은 재빨리 공격 방법을 떠올렸다.

    ‘현재 상태로는 속과 공을 한계치까지 모았으니, 단번에!’

    한빈의 속마음과는 달리 연무장 주변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어떻게 합니까?”

    “미리 의원 어르신을 모셔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또 모르는 일이지, 막내 공자가 이길지?”

    “어떻게 이겨?”

    “지난번에 삼 공자와 이 공자를 꺾었잖아.”

    “그거 암수를 쓴 거잖습니까? 여긴 공개된 장소라 암수도 못 쓸 텐데.”

    “하긴 그러네, 쯧쯧.”

    언제 왔는지 팽가의 무사들까지 주변에 몰려들어 한빈의 패배를 예상하였다.

    그들은 가주전에서 이루어진 한빈과 도객들의 비무를 못 본 이들이었다.

    한빈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무소율의 미간에 있는 점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한빈의 표정을 본 무소율이 발끈했다.

    자신을 보고 저런 표정을 지은 남자를 그냥 놔둔 적이 없는 그녀였다.

    “저질! 개자식!”

    작은 목소리였으나 모두는 똑똑히 들었다.

    동시에.

    스르릉!

    무소율이 검을 뽑으며 달려왔다.

    한빈은 거리를 재기만 했다.

    남들이 보면 한빈이 적의 검에 목을 내놓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빈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나, 둘, 셋!’

    한빈이 검을 뽑았다.

    그 속도에 모두가 놀랄 때 한빈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나갔다.

    이제껏 보지 못한 경공술에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총관 이설영이 비명을 질렀다.

    “아! 저, 저건 검기?”

    한빈의 검 끝에는 어설프지만,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내공을 나타내는 공(功)이 열 개였다.

    어설픈 검기 정도는 두를 수 있는 상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한빈의 검은 무소율의 미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무씨검가의 총관이 외쳤다.

    “안 돼!”

    하북팽가의 총관 이설영도 외쳤다.

    “공자님!”

    비무 도중 살인이 일어난다는 것은 두 가문의 전쟁을 의미했다.

    무소율도 한빈의 검을 보고 놀랐다.

    저 정도의 검기라면 무소율도 구사할 수 있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화살처럼 날아오는 저 속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무소율이 검을 들어 막아서려 할 때였다.

    이상하게도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한빈의 검이 무소율의 미간에 다다랐을 때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헉, 제발!”

    “안 돼!”

    그때 한빈은 재빨리 검을 돌려 올라오는 무소율의 검을 쳐내며 검의 손잡이로 그녀의 미간을 찍었다.

    경쾌한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빡!

    순간 모두는 황당한 광경에 입을 벌렸다.

    하북에서도 절세미인이라 꼽히는 무소율이 끈 풀린 연처럼 뒤로 날아가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가문 간의 전쟁은 면했으나, 자존심에 상처 입은 무소율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하북팽가 총관 이설영은 한빈의 표정을 보고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

    한빈은 그 어느 때보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여인을 저리 때려눕히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라니!

    하북팽가의 총관 이설영의 귓가에 무씨검가 총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당.”

    “…….”

    하북팽가 총관 이설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무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혹시 막내 공자가 이기는 거 아니야?”

    “설마, 그거 아니지. 지금, 저건 우연히 맞은 거야.”

    모두의 시선이 한빈에게 몰렸지만, 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용안(龍眼)으로 초식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응용편 중 광(光)을 획득하셨습니다.]

    두 번째 장의 용용편 아래에는 선명하게 구결이 표시되어 있었다.

    [광(光)]

    아직은 반응이 없는 구결.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한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뒤쪽으로 날아간 무소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나를…….”

    무소율은 말을 잇지 못했다.

    미간부터 흐르는 피가 입술을 적셨기 때문이다.

    쓱.

    소매로 피를 닦아 낸 무소율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넌, 오늘 죽었어.”

    그녀의 외침에 한빈은 그녀의 발을 유심히 봤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 같지만, 그녀의 보법은 안정적이었다.

    한빈은 씩 미소를 지었다.

    ‘절대 안 속지.’

    한빈은 살짝 뒤로 물러나며 다음 공격을 생각했다.

    ‘일단 상대의 마음부터 흔들자!’

    가득 찬 내공을 시험해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한빈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검집째 틀어쥐었다.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무소율이 자신의 간격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휙!

    한빈이 검집을 휘둘렀다.

    챙.

    무소율이 가볍게 막았다.

    튕기는 반동을 이용해 한빈이 다시 반대쪽을 공격했다.

    챙.

    무소율이 다시 막아 냈다.

    그녀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방어만 하려고 이렇게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빈의 빠른 검 때문에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방어 후 무소율은 틈을 찾았다.

    사삭.

    무소율이 상체를 굽힌 후 한빈의 하체를 오른쪽 다리로 걸었다.

    한빈이 한 번 물러나자 무소율이 재빨리 머리에서 비녀를 뺐다.

    툭.

    손가락으로 튕기자 비녀의 안에서 손가락 마디 굵기의 얇은 단검이 나왔다.

    무소율은 단검을 한빈의 얼굴에 튕겼다.

    한빈이 오른쪽으로 피했지만, 무소율의 단검은 뱀처럼 한빈을 따라왔다.

    한빈은 아예 뒤쪽으로 물러났다.

    비녀와 단검 사이에는 웬만한 검에는 끊어지지 않는 천잠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빈은 다시 검을 빼내었다.

    검을 왼손에 잡고 단검을 견제했다.

    그때 무소율의 검이 한빈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팡!

    파공성을 내며 쏘아지는 그녀의 검에 총관들이 두 눈을 찔끔 감았다.

    하지만, 한빈은 그 공격을 비웃듯이 유유히 빠져나갔다.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검으로 비녀를 견제하며 왼손으로 검집을 들어 올렸다.

    빡!

    동시에 검집으로 무소율의 어깨를 내려쳤다.

    비틀거리는 무소율.

    하지만, 한빈의 검은 가차 없었다.

    빡! 빡!

    한빈은 마치 이불을 털듯 그녀를 두들겼다.

    물론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점이 계속 생기는데 한빈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만, 무소율이 쓰러지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때릴 뿐이었다.

    빡!

    [용린검법 응용편 중 석(石)을 획득하셨습니다.]

    [용린검법 응용편 중 전(電)을 획득하셨습니다.]

    [용린검법 응용편 중 화(火)을 획득하셨습니다.]

    한빈이 동작을 멈췄다.

    더는 일렁이던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광(光), 석(石). 전(電), 화(火)]

    무소율에게서 모은 응용편의 구결은 네 개.

    그때였다.

    비급이 일렁이며 문구를 만들어 냈다.

    [응용편의 구결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행하시겠습니까?]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눈앞이 번뜩였다.

    용린검법의 구결 중 전광석화가 머릿속에 빨려 들어왔다.

    내공의 운용에서부터 모든 동작이 머릿속에서 일목요연해진다.

    전광석화라는 초식이 마치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써야 할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한빈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박혔다. 이것은 한마디로 초식의 환골탈태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한빈의 이런 변화를 알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한빈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무소율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녀는 태어나서 이런 수치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북 최고의 겁쟁이라고 하는 한빈에게서 복날 개 맞듯 맞자 기혈이 역류하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잃었다기보다는 기절한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무소율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지껄였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한빈이 왠지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불리 덤벼들지는 않았다.

    아직도 한빈에게 맞은 부위가 얼얼했다.

    일어나서 슬금슬금 뒷걸음치던 무소율은 한빈을 탐색했다.

    “주화입마?”

    고개를 갸웃한 한빈을 바라보던 무소율은 확신했다.

    ‘지금이 기회다. 넌 죽었어!’

    슝!

    여섯 걸음 밖의 무소율이 전력을 다해 검을 찔렀다.

    다섯 걸음.

    네 걸음.

    한빈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번에는 반대의 의미에서 모두가 입을 벌렸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비명횡사였다.

    무소율의 검이 거의 다다랐을 때 한빈의 동작이 묘하게 변했다.

    막는 듯 공격하는 듯.

    어정쩡한 한빈의 동작은 묘한 잔상을 남겼다.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형환위!”

    하지만, 그것은 실제 이형환위는 아니었다.

    한계까지 올라간 속도와 새로운 초식이 만들어 낸 잔상이었다.

    무소율의 옆에 나타난 한빈이 검집을 휘둘렀다.

    짝!

    목덜미에 검집을 맞은 무소율은 다섯 걸음 밖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대체 이건…….”

    무소율은 자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만약 검집이 아니라 검날이었다면?’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진 무소율이 한 걸음 더 물러났다.

    하지만, 여기에서 물러날 무소율이 아니었다.

    저깟 하북의 최약체도 이기지 못한다면 강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무소율은 한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무소율은 다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던 하북팽가의 무사 중 하나가 말했다.

    “무 소저가 약한 게 아니라 팽 공자가 강한 것이군.”

    “맞아, 무소율의 비도술과 검법은 무림오화에 버금갈 것 같아.”

    그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허리에 찬 도를 풀어 바닥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이것은 둘의 비무를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오랜만의 명승부는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것도 잠시, 무사들은 행동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빡! 빡!

    봄날 북어 패는 듯한 소리가 박자에 맞춰 연무장에 울렸다.

    보통 상대가 항거불능의 상태가 되면 공격을 멈추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한빈의 손속에는 자비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빈이 무심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눈길조차 상대에게 주지 않는 비정함이란!

    “진짜 악마 같은 놈!”

    무씨검가의 총관이 다시 외쳤지만, 하북팽가의 총관 이설영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털썩!

    무소율이 자리에서 허물어지자 한빈이 입맛을 다셨다.

    한빈은 허탈했다.

    건드리면 조금 더 구결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무소율에게 더는 구결이 나오지 않았다.

    한빈이 검을 다시 집어넣고 어깨에 둘러멘 후 연무장 가장자리로 와 한숨을 내쉬었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더니…….”

    그때 급히 달려온 총관 이설영이 물었다.

    “공자님,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면 승패는 결정된 건가요?”

    “네, 당연히…….”

    “저는 접객당에 먼저 가서 쉬고 있을 테니 무소율 소저가 깨어나면 모셔 오도록 부탁드립니다.”

    한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는 조용히 허공을 바라봤다.

    [전광석화(電光石火) - 일각 동안 속도의 오 할이 증가합니다. 필요 내공 일 년. 소모 후 열두 시진 후 회복.]

    이것이 이형환위라는 착각을 만들어 낸 초식이었다.

    문제는 이 초식을 쓰는 데에는 내공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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