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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3화 (23/621)
  • 23화. 결자해지(結者解之) (3)

    가장 뜸하게 뽑히는 것이 공이었다.

    동시에 단전에서 내공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내공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때 날 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비무는 무효요.”

    목소리의 주인은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도객이었다.

    그는 접객당의 당주 이희찬.

    한빈이 물었다.

    “왜 무효라고 하시는 겁니까?”

    “검도 뽑지 않은 검술은 인정할 수 없소. 막내 공자.”

    한빈은 그의 입술을 자세히 바라봤다.

    불만이 아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빈은 문득 그에 대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무위는 절정.

    하지만, 접객당을 맡은 이유로 칼을 맞댈 일이 거의 없었었다.

    아마 지금을 비무의 기회로 보는 것 같았다.

    한빈이 다시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막내 공자가 내 십 초를 받아 내면 인정하리다.”

    한빈은 그의 몸을 자세히 바라봤다.

    황색 점이 무려 두 개였다.

    왕거니였다!

    이전에 없던 구결이 그가 비무를 신청하자 나온 것이다.

    한빈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늦게 줄을 선 대가는 치러야 했다.

    한빈이 다시 손을 번쩍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쫙!

    의미를 모르는 접객당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 공자, 그게 무슨 뜻이요?”

    “저와 겨루고 싶으시다면 돈을 내십시오.”

    “그게 무슨…….”

    “저는 분명 기회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안 나오시더니 지금 제게 비무를 제안하시는 의도는 뭡니까? 옛말에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얼마라는 말이요?”

    “다섯 냥입니다.”

    “흠……. 철전 다섯 냥이라?”

    “아니, 은전입니다.”

    “허, 그런 심한 처사가…….”

    접객당주가 말끝을 흐리자 한빈이 외쳤다.

    “이번까지 다섯 냥이고 이번 비무가 끝나고 끼어드는 분이 있다면, 열 냥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다음은 스무 냥.”

    한빈의 계산은 단호했다.

    비무가 끝난 다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다면 두 배씩 올려서 받겠다는 것이다.

    지금 유일하고 웃는 이는 가기군이었다.

    주작각주 가기군은 자신이 공짜 비무를 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더니…….”

    그의 말은 팽강위의 서슬 퍼런 안광에 끊겼다.

    팽강위의 안광이 뜻하는 것은 소가주 후보인 한빈의 제안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가주가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자 장내에 변화가 생겼다.

    비무를 원하는 각주와 원로 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우르르.

    옆을 힐끔 본 한빈이 소대섭을 불렀다.

    “소 대주.”

    “네, 주군.”

    “대주가 알아서 접수해. 비무 비용은 미리 받고.”

    “네, 주군.”

    소대섭이 접객당주 이희찬에게 가 은전 다섯 냥을 받았다.

    그리고 줄을 선 뒤쪽 원로와 각주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약간의 반발은 있었어도 수금은 수월하게 끝났다.

    만약 한빈이 비무 불능 상태가 되어 비무를 못 한다면 돈을 돌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약속에 접객당주가 물었다.

    “내가 이긴다면 내게도 돌려줄 테요? 사 공자.”

    “물론이지요. 가르침을 바랍니다. 접객당주님.”

    한빈의 말에 접객당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다시 비무를 알리는 팽강위의 신호가 울려 퍼졌다.

    쿵!

    한빈은 검을 뽑는 동시에 검집을 바닥에 던졌다.

    같은 수가 두 번 먹힐 수도 없을뿐더러 그의 경지는 절정.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희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매서운 눈매로 한빈을 바라봤다.

    후배에게 한 수 양보하려는 모습은 이희찬의 표정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거세게 달려왔다.

    두 걸음 앞에서 접객당주 이희찬의 도가 마치 호랑이 앞발처럼 올라가더니 바로 한빈의 정수리를 향해서 내려왔다.

    팡!

    한빈이 재빨리 왼쪽으로 한 걸음 피했다.

    휘릭.

    동시에 검을 찔러 들어갔다.

    휙!

    상대는 예상했다는 듯 도로 검을 쳐내려 했다.

    그때 한빈은 검을 회수했다.

    상대의 도가 허공을 가를 때 한빈은 검날이 아닌 검파로 그의 어깨를 찍었다.

    퍽!

    승부를 끝낼 공격은 아니기 때문에 접객당주 이희찬은 비틀거리면서도 도를 횡으로 그었다.

    팡!

    한빈은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옷 앞이 허전함을 느꼈다.

    펄럭.

    한빈의 옷자락이 잘려 나갔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도기(刀氣)다.”

    “접객당주님이 막내 공자를 잡으려고 작정했네.”

    여기저기서 술렁대기 시작했다.

    한빈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깊었어도 한 달 정도 의당 신세를 질 뻔했다.

    그것은 한빈의 착각이었다.

    도기에 피부가 상했는지 앞쪽에서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의당 신세 일주일은 예약해 놓은 상태.

    하지만, 한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공(功)을 획득하셨습니다.]

    [력(力), 력(力), 력(力)]

    [공(功), 공(功), 공(功), 공(功)]

    [복(復)]

    기본편을 채운 구결 들에 한빈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발전을 의미했다.

    한빈의 웃음에 접객당주 이희찬이 발끈해서 달려왔다.

    챙, 챙!

    그의 도와 한빈이 검이 마주치며 불꽃을 냈다.

    잠시 후.

    “후.”

    한빈의 숨을 몰아쉬며 검을 갈무리했다.

    한빈의 상의는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한빈이 상대한 이는 모두 다섯.

    다섯의 칼을 받아 낸 한빈에게 칼을 뽑는 자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한빈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여기서 조금만 더 무리하면 한빈의 관을 짜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빈의 변화된 모습이었다.

    이전 한빈은 분명 피만 보면 기절하는 하북 최고의 겁쟁이였다. 그런데 너덜너덜해진 상의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기절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한빈은 이제 하북의 겁쟁이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빈에게서 이상한 기세를 느꼈다.

    상체가 피범벅이 된 채 웃고 있는 한빈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기괴했으며 공포스러웠다.

    모두의 뜨거운 눈길 속에 한빈은 허공을 바라봤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공(功)을 획득하셨습니다.]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체(體), 체(體), 체(體), 체(體), 체(體)]

    [력(力), 력(力), 력(力)]

    [공(功), 공(功), 공(功), 공(功), 공(功)…….]

    [복(復)]

    공(功)마저도 열 개를 채웠다.

    지금 단전에서는 내공이 꿈틀대고 있다.

    전생의 기준에서 가늠해 보면 대략 십 년.

    공(功)의 구결 하나당 십 년의 내공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비급이 말을 걸듯 문구를 띄웠다.

    [응용편(應用篇)이 열렸습니다.]

    동시에 용린검법의 책장이 스르르 넘어갔다.

    [응용편(應用篇)]

    [응용편에서는 당신에 신체와 능력에 맞춰 용린검법을 함께 만듭니다.]

    [……]

    기본편보다는 다소 긴 설명을 읽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분명 이십 년이라고 했는데…….’

    의문의 끝에 다시 문구가 떴다.

    [용린검법의 기본편을 익히기 위한 이십 년을 충족했습니다.]

    한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비급이 말하는 것은 전생과 현생을 합친 이십 년을 말하는 것이었다.

    전생도 용린검법을 익히기 위한 삶이라 비급이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빈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당장 응용편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자신을 방해하는 무리 덕분에 얻어진 성과이기에 더욱 값진 보상이었다.

    그때 가주 팽강위가 손뼉을 쳤다.

    짝, 짝.

    모두가 팽강위를 바라봤다.

    팽강위가 도를 내밀며 말했다.

    “검이든 도든, 적의 목을 베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인정하겠다는 뜻이었다.

    각주 중 하나가 포권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래도 소가주 후보가 신물로 검을 가지고 온다는 건 가문의 규칙에…….”

    팽강위가 손바닥을 보이며 그의 말을 끊었다.

    “우리 가문에 그런 규칙이 있는가?”

    “흠.”

    반대를 표한 각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팽강위의 말이 맞았다.

    팽가의 상승 무공이 도법이라 자연스레 도를 잡은 것이지, 검을 잡으면 안 된다는 가문의 규칙은 없었다.

    소란이 진정되자 팽강위가 다시 한빈을 바라봤다.

    “준비는 됐느냐?”

    “네, 됐습니다. 이 검과 제 목숨을 걸고 팽가의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한빈이 검을 높이 치켜들자 팽강위가 말했다.

    “오늘부터 너를 소가주 후보로 인정한다. 오늘은 쉬어라.”

    동시에 울려 퍼지는 함성.

    “와!”

    “우와!”

    가주의 지시에 좋든 싫든 모두 가면 한 장을 얼굴에 덧씌우고 환호를 보냈다.

    환호성이 잦아들자 팽강위가 다시 한빈을 바라봤다.

    “옷부터 갈아입거라.”

    팽강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태사의로 걸어갔다.

    그때 원로 중 하나가 손뼉을 치며 한빈에게 다가왔다.

    “하북팽가 소가주 후보 중 최초의 검객이 된 것을 축하하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이 활짝 웃으며 포권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초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실내가 조용해질 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최고가 아니면 최초라는 말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빈의 마지막 말에 모두가 헛기침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한빈은 그들의 눈빛에서 아직 불만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닌 적의에 가까웠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자세히 보니 정문을 지키는 호위 무사 중 하나였다.

    그는 한빈을 힐끔 보더니 가주에게 포권한 뒤 입을 열었다.

    “지금 무씨검가에서 뵙기를 청했습니다.”

    무씨검가라는 말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과는 달리 팽강위는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듯 물었다.

    “무씨검가라?”

    팽강위가 고개를 갸웃하자 총관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가주님, 팽한빈 공자의 약혼녀가 있는…….”

    그제야 팽강위는 기억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돈이 왔다니 할 수 없군.”

    팽강위가 발길을 옮기려 하자 한빈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죄송하지만,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팽강위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것도 잠시 표정을 지운 그가 말했다.

    “말해 보아라.”

    “지금 무씨검가에서 온 손님이 누구입니까?”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팽강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볼 때 뒤쪽에서 무사가 대신 입을 열었다.

    “무씨검가의 둘째인 무소율 공녀가 총관을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사의 말에 한빈이 팽강위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가주님이 가실 자리가 아닌 듯합니다.”

    팽강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니라니? 소상히 말하라.”

    “지금 무씨검가에서는 총관과 공녀가 왔다고 했습니다. 총관과 제가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씨검가의 무소위와 사소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충돌이라?”

    “티끌만큼도 안 되는 사소한 오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자해지라 했으니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팽강위가 한빈의 눈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입꼬리를 쓱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도록.”

    팽강위는 총관에게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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