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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0화 (20/621)
  • 20화. 월아(月牙) (5)

    처음에는 쇠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쇳물을 녹이고 틀에 붓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도 잠시, 지금은 완벽한 대장장이처럼 쇠를 다루고 있었다.

    앞으로 뒤로 쉼 없이 내려치는 그의 손길은 몇십 년 된 장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철민의 모습을 본 정소연이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래요?”

    “생각보다 쇠를 잘 다뤄서 놀란 거란다.”

    “저 오라버니가 그렇게 대단해요?”

    “저 속도를 보니, 이 비법에서 말한 것이 뭔지를 알겠구나. 허허.”

    정철민은 쇠를 다루는 가문의 비급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럼 오라버니를 좀 도와주세요.”

    “도와줄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도와주고 싶…….”

    정철민은 말끝을 흐렸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었다.

    자신은 한빈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건 무리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의 몸은 약해지리라는 것을 정철민은 알았으니까.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그때였다.

    대장장이 특유의 감각에 이상한 흐름이 잡혔다.

    희미하지만 한빈과 쇳덩이가 뭔가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쇠와 소통한다라? 혼을 담아서.’

    정철민의 머릿속에 ‘혼’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혼을 담는다. 혼을 담는다…….’

    정철민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놀란 정소연이 외쳤다.

    “할아버지!”

    정철민에게 달려가려는 정소연을 심미호가 잡았다.

    “얘야. 잠깐만.”

    “왜, 왜 그러세요?”

    놀란 정소연이 묻자 심미호가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맞춘 후 답했다.

    “아무래도 무아지경에 드신 것 같구나.”

    “무아지경이요? 저도 들어 본 적 있어요. 그런데 그건 무인들한테만 해당되는 얘기 아니에요?”

    “나도 대장장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건 들어 보지 못했지만, 사실이잖니.”

    심미호가 정태민을 가리키며 턱짓했다.

    그러자 정소연이 눈만 깜빡였다.

    심미호는 그런 정소연의 소매를 잡고 정민철에게서 멀어졌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강호의 정론.

    그때였다.

    탕! 탕!

    대장간이 조용해지자 쇠를 두드리는 한빈의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말려야 하나?’

    심미호가 고민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탕! 탕!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울려 퍼지는 망치질 소리는 묘하게 박자가 맞았다.

    자세히 듣다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고승의 목탁 소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불안감을 날린 심미호는 아무 말 없이 정철민을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철민이 번뜩 눈을 떴다.

    안광이 휘몰아치더니 다시 빨려 들어간다.

    눈빛을 갈무리한 정철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소연이 쪼르르 달려갔다.

    “할아버지.”

    “그래, 오냐.”

    “괜찮은 거예요?”

    “그래 이 할아비는 괜찮단다.”

    말을 마친 정철민은 주위를 돌아봤다.

    숨을 죽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에게 정철민이 정중히 포권했다.

    * * *

    한빈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망치질에 집중했다.

    정철민이 깨달음을 얻은 두 시진 동안에도 한빈이 내는 망치질 소리는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한빈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구결 중 속(速)이 열 개가 모이자 더는 모이지 않고 황색 점이 더욱 빨라진 것이다.

    그 때문에 한빈은 이를 악물고 망치질을 이어 나가야 했다.

    자신이 가진 속도보다 더 빨리 손을 놀려야 했고 인식할 수 있는 시력의 한계를 넘어야 했다.

    속도를 따라가던 한빈에게 성과가 찾아왔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체(體)를 획득하셨습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체(體)를 획득하셨습니다.]

    속(速)이 열 개에 체(體)가 다섯 개로 늘어났다.

    한빈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구결을 습득해 나아갔다.

    그때였다.

    탕!

    망치질에 붉은 쇳조각이 한빈의 팔뚝에 튀었다.

    지글지글.

    한빈의 팔뚝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가볍지 않은 화상.

    하지만, 한빈은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쇳덩이에서 보이는 황색 점이 단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저건 흡수하고 치료를 해도 해야 했다.

    탕!

    구결을 때리는 데 성공한 한빈이 눈을 크게 떴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복(復)을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구결이었다.

    ‘복(復)이라?’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이상하게 방금 화상 자국이 간질거렸다.

    묘한 느낌에 한빈은 복의 의미에 대해 알아차렸다.

    그것은 회복력이었다.

    타들어 가던 피부가 안정을 찾아간 것이다.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체(體), 체(體), 체(體), 체(體), 체(體)]

    [력(力), 력(力), 력(力)]

    [공(功), 공(功)]

    [복(復)]

    모든 글자를 확인한 한빈은 이상하게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 비급이 말을 걸듯 문구를 보여 줬다.

    [하루에 획득할 수 있는 구결의 양을 초과하였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건 또 뭐냐?’

    의문도 잠시, 몸이 허물어졌다.

    “고-옹-자님!”

    철노의 목소리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들렸다.

    이어서 다른 목소리도 귓가에 울렸다.

    “주군.”

    “오라버니!”

    “자네, 괜찮나?”

    여러 목소리가 한빈의 귀를 어지럽혔지만, 한번 감긴 눈은 만근의 철문처럼 다시 올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시야에 비급만은 또렷이 보였다.

    비급은 마치 한빈이 말을 걸면 대답해 줄 것처럼 일렁였다.

    기회라 생각한 한빈이 물었다.

    ‘기본편을 마치려면 얼마나 걸리지?’

    [이십 년]

    비급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답했다.

    ‘이십 년이라? 그럼 기본편 이후는?’

    이번에는 비급이 대답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죽을 때까지도 익히지 못할 수도 있겠다 느꼈다.

    신공이라 불리는 용린검법이었다. 쉽게 익힐 수 있다면 그게 신공이겠는가!

    걱정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구결을 완성하는 것이 먼저였다.

    감각이 희미해지려는 순간, 한빈은 망치질 소리를 들었다.

    탱! 탱!

    귓전에 울리는 청아한 소리.

    한빈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 * *

    번쩍 눈을 뜬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법 정갈하게 꾸며진 침실이었다.

    “대체 여기가…….”

    한빈이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달려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철노가 그릇을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상하리만큼 흥분한 철노의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대체 왜 그래? 철노.”

    “기억 안 나십니까? 공자님.”

    “뭐? 망치질 하다가 쓰러진 거?”

    “기억나시니 다행입니다.”

    “약해 빠진 내 몸 때문에 못 볼 꼴을 보였어. 미안해, 철노.”

    “공자님이 약한 게 아닙니다. 다섯 시진 동안 쉬지 않고 쇠를 두드리고 있으면 몸이 못 버팁니다.”

    “하긴……. 지금 뭐라고 했어? 다섯 시진이라고?”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철노를 재촉하며 확인했다.

    “네, 정확히는 다섯 시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런 미친!”

    한빈이 천장을 올려다볼 때 어느샌가 들어온 정철민이 끼어들었다.

    “일어났는가? 자네의 망치질이 예사롭지 않아 내가 그냥 두라 했다네.”

    “예사롭지 않다고요?”

    “무념무상으로 쇠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했다네.”

    “흠.”

    한빈은 헛기침으로 받았다. 구결을 획득하기 위해 쇠를 두드리는 모습을 무아지경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장시간 작업을 하는데도 안 말렸고 말이다.

    물론 오해를 풀어 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정철민의 따가운 시선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정철민은 흐뭇한 눈으로 한빈을 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짝!

    “자네, 혹시 내 뒤를 이을 생각이 없는가?”

    한빈은 씩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르신.”

    “오호, 말이라도 고맙네.”

    “아닙니다.”

    살짝 고개 숙인 한빈의 옆구리를 누가 찔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정소연이 당과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거 드세요.”

    “그래.”

    한빈은 당과를 바라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당과라?’

    어찌 보면 자신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전생과 현생 모두 달다고 하기보다 씁쓸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가끔은 달달한 것도 좋지.”

    씩 웃은 한빈이 당과를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전생과는 많이 변한 것 같은 분위기에 작게 웃었다.

    그때 심미호가 기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와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명장님, 여기 놔두면 될까요?”

    “네, 그래 주시지요.”

    정철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방을 빠져나갔다.

    한빈과 정철민밖에 남지 않자 한빈이 물었다.

    “혹시 제게 해 주실 말씀이 있는지요?”

    “자네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다면 믿겠는가?”

    “깨달음이요?”

    한빈이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뜻밖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 처음 만든 것이 천하제일검 월아(月牙)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그 깨달음의 원인이 한빈이라는 점이다.

    전생에는 검성 서문무결의 검무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었다.

    이 정도의 인연이라면 명검 한 자루 정도는 얻을 명분이 있을 터.

    한빈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순간, 정철민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대장장이로서는 최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하하.”

    “축하드립니다.”

    한빈이 깊숙이 포권하자 정철민의 다급히 손을 저었다.

    “모두가 자네 덕분이네, 자네 덕분에 가문의 비기를 이을 수 있었다네.”

    “가문의 비기라니……. 아, 죄송합니다.”

    “아니네. 물어봐도 되네. 이건 내 선물이네.”

    정민철은 탁자 옆에 있던 상자를 열었다.

    기다란 상자를 열자 그곳에는 평범한 검집에 꽂힌 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아무런 문양도 새기지 않은 평범한 검이었다.

    정철민이 그 검을 한빈에게 건넸다.

    “뽑아 보게. 혼철로 만든 최초의 검일세.”

    “네?”

    놀란 한빈이 눈을 크게 떴다.

    혼철이라면, 정철민이 만든 명검에 들어가는 특수한 철이였다.

    강도는 묵철의 다섯 배. 황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물이었다. 혼철이 어디서 나왔는지, 혼철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광귀로 살았던 전생에도 알아내지 못했다.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자태를 드러낸 검날은 마치 숨결을 벨 것처럼 예기를 흘리고 있었다.

    명검!

    아니, 명검이라는 두 글자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한빈이 눈을 빛내자 정철민이 활짝 웃었다.

    “하하. 자네가 제련한 검신에 우리 가문의 비기를 더해 작업했다네. 덕분에 밤을 새웠지만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철민의 흰자는 핏줄로 가득했다.

    한빈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괜찮네, 이건 자네의 은혜에 비하면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성의네.”

    한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검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처음 잡았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묘하게 검의 기운이 익숙했다.

    한빈이 다시 검을 뽑았다.

    순간.

    ‘월아!’

    분명 천하제일검으로 불렸던 월아였다.

    그런데 월아가 내 손에 있다?

    훗날 비슷한 검이 나올지 몰랐지만, 정철민의 생애 최고 명검이 한빈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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