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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1화 (11/621)

11화. 흑묘백묘 (1)

한빈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팽가 규칙에 무력조는 두 개를 통합하면 상위 조직인 무력대를 창설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한빈의 말에 무사들의 눈이 커졌다.

무력조와 무력대는 단지 어감의 차이뿐이 아니었다.

팽가 내에서의 대우와 녹봉이 달라진다.

“소대섭 대주 후보와 심미호 대주 후보는 지금부터 서열을 가린다. 이긴 자는 대주, 진 자는 부대주다.”

힘을 중시하는 팽가의 규칙 그대로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빈은 돌아서려 했다.

그때 심미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주군, 질문 있습니다.”

“말해 봐라.”

“죽여도 됩니까?”

“뭘 죽여?”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심미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소대섭을 바라봤다.

한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적당히······.”

한빈이 둘을 번갈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둘의 표정을 확인한 한빈이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그냥 적당히 반만 죽여!”

한빈의 지시에 소대섭과 심미호의 눈이 빛났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전염병처럼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나머지 호위들도 눈을 이글거리며 도를 바닥에 찍기 시작했다.

쿵!

쿵!

팽가의 연무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빈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줬다.

둘의 비무에는 관심 없다는 듯 멀리 떨어져 앉은 한빈은 시야를 바라봤다.

[속(速), 속(速), 속(速), 속(速)]

[공(功)]

허전했던 비급의 기본편이 넉넉해졌다.

한빈은 웃음을 감추고 조용히 철노를 바라봤다.

넋 나간 표정으로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노.”

“네, 공자님.”

“철노 눈빛이 왜 그래?”

“공자님이 자랑스러워서요. 전 공자님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나실 줄은······.”

낯간지러운 칭찬이 이어지자 한빈이 손을 저었다.

“빈말은 그만하고 가서 고기와 술 좀 준비하라고 해 줘.”

“고기와 술이요? 무슨 잔치라도 벌이시게요?”

“새 식구를 맞았으면 당연히 잔치를 열어야지. 경비는 내 이름으로 달아 놔.”

“네, 공자님.”

철노가 자리를 떠나자 한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한빈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운이 작용했다.

다른 이들이 한빈을 견제하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승리였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섣불리 건드리는 자도 없겠지만, 만약 한빈을 치려 하는 자가 있다면 철저히 준비해 올 것이다.

물론 타초경사(打草驚蛇)는 아니었다.

한빈이 때린 것은 풀도 아니었고 놀란 건 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때 한빈의 귓가에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

함성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소리가 잦아들고 얼마 있지 않아 둘이 한빈의 곁으로 다가왔다.

“수호사대 대주 소대섭 인사 올립니다.”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이어졌다.

“수호사대 부대주 심미호 인사 올려요.”

가만 보니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혈흔이 보인다.

소맷자락은 아예 넝마가 되어 있고 말이다.

지시대로 적당히 어울린 모양이었다.

한빈이 말했다.

“오늘부터는 내게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둘의 답을 들은 한빈이 말을 이었다.

“힘든 일도 숨기지 말고, 슬픈 일도 숨기지 말고······.”

한빈의 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것은 이들에게 하는 말이자 전생의 귀검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말을 마친 한빈이 연무장 쪽을 힐끔 바라봤다.

그 모습에 소대섭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군.”

어느덧 호칭이 바뀌었다.

한빈은 못 들은 척 다시 말을 이었다.

“대원들이 너무 빠진 거 아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까 내가 둘에게 머리 박으라고 했잖아?”

“아, 네.”

소대섭이 쑥스러운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한빈이 말을 이었다.

“조장 둘이 머리를 박는데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조원이 어디 있어? 여기가 무슨 당나라 군대야? 군기가 빠질 대로 빠져 가지고.”

“그게 아무래도······.”

소대섭이 뒷머리를 긁적이자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의 직속상관은 나지만, 저들의 직속상관은 너희들이야.”

둘은 그제야 한빈의 말뜻을 알았다.

이번에는 심미호가 나섰다.

“공자님, 제가 적당히 굴릴게요.”

심미호는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녀에게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는 반 죽여 놓으라는 뜻과 같았다.

심미호가 눈을 빛내고 있을 때 한빈이 그녀를 무심한 눈길로 바라봤다.

“오늘은 일단 새로운 식구를 맞았으니 잔치부터 하고. 내일부터 굴려. 확실히.”

한빈은 마지막 단어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조했다.

그때였다.

철노가 주방 식구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한빈은 조용히 일어났다.

“나는 빠질 테니 편히 즐겨. 참, 심 부대주는 잠깐 와 봐.”

한빈은 심미호에게 잠시 속삭인 후 조용히 사라졌다.

한빈이 사라지자 소대섭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군께서 뭐래?”

“아까 제 혈도 찍은 놈 손에 옻 독이 올라 있을 거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제 옷을 확인해 보니 진짜 옻 냄새가 나네요.”

심미호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술판이 벌어지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심미호의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일단 너는 박아!”

* * *

같은 시각 가주전.

이 공자 팽경빈은 상기된 표정으로 가주 팽강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부자지간이지만, 팽강위는 언제 봐도 부담스러웠다.

마치 삼국지의 관우가 환생한 듯한 큰 키에 짙은 눈썹.

누가 보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철혈도제라는 별호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부담감에도 팽경빈이 용기를 내어 아버지를 찾아온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아버님을 뵙습니다.”

팽경빈이 깊이 포권했다.

가주 팽강위가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내려온 팽강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 것이냐?”

“소자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

팽경빈은 자신의 죄를 교묘하게 숨기며 오늘의 일을 보고했다.

이야기를 듣는 팽강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바위같이 굳건한 팽강위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짧지만, 여러 의미가 담긴 질문이라 생각한 팽경빈은 치열하게 머리를 돌렸다.

‘의미가 뭘까?’

그때 다시 팽강위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렸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더냐?”

팽경빈이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제 호위조를 잃었습니다.”

“그것이 누구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집법당주님의 판단 착오라 생각합니다.”

“힘이 없어 빼앗긴 자가 변명하는 것만큼 비굴한 것은 없다. 너는 네가 호랑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고양이라고 생각하느냐?”

“······.”

“호랑이가 아니면 팽가라는 성을 쓸 수 없지.”

가주 팽강위는 뒤돌아 태사의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팽경빈에게는 태산처럼 보였다.

마치 거대한 산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산은 팽가의 절대 권력이었다.

그 권력이 팽경빈의 손을 떠나고 있는 것이었다.

팽경빈이 힘없이 가주전에서 물러나자 가주 팽강위는 총관에게 턱짓했다.

총관은 조용히 가주전의 옆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팽가의 셋째 호랑이 팽대위가 들어왔다.

가주 팽강위와 마주 본 팽대위가 커다란 술병을 내밀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네 말대로다.”

“하나의 호랑이 새끼가 사라지니 다른 호랑이 새끼가 나타난 겁니까? 그런데 그 호랑이 새끼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데 못 본 걸 수도 있고, 가끔은 늦게 소리를 내는 호랑이도 있는 법이니. 뭐, 그놈마저 호랑이인지는 아직 모르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팽강위는 커다란 술병을 입에 들이부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술은 폭포처럼 흘러내려 끊임없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때 팽대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형님. 그걸 다 마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그거 비싼 술입니다.”

팽대위의 하소연에 팽강위는 어깨를 으쓱한 뒤 빈 술병을 건넸다.

“내일 넷째를 가주전으로 불러라.”

“혹시 문책을 내리려 하십니까? 녀석에게 잘못이······.”

“문책이 아니다. 칼을 내리려고 한다.”

“혹시 그 뜻은······.”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칼이 맞다.”

“자라나기도 전에 밟으시려고요?”

“그건 그놈 하기 나름이겠지. 거목으로 자라날지 짓밟힐지는 말이야.”

“그리 심심하십니까?”

“호랑이가 사는 산은 너무 조용해도 재미가 없는 법이지 않느냐!”

팽강위의 무표정한 얼굴 위에 미묘한 주름이 잡혔다.

잠시 후 가주전 밖으로 두 형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같은 시간 한빈은 처소 빠져나와 목검을 들었다.

수련 검을 들지 않고 목검을 든 이유는 안전상의 이유였다.

구결이 준 내공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휙! 획!

한빈의 목검이 바람을 갈랐다.

한빈이 사용하고 있는 초식은 전생에 귀검대주로 있을 때의 무공이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정파의 무공인지, 마교의 무공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무공이었다.

용린검법의 초식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이 수법으로 몸을 단련하기로 했다.

몸을 대충 푼 한빈은 전력으로 검에 내공을 실었다.

순간 심장이 뛰며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빈의 목검이 나무를 찔러 들어갔다.

순간 목검의 속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팡!

목검이 바람을 가르며 파공성을 냈다.

퍽!

목검이 정확히 원하는 곳에 적중했다.

“이거 믿을 수 없네.”

한빈은 다시 구결을 확인했다.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체(體), 체(體), 체(體)]

[력(力), 력(力)]

[공(功)]

표시된 내공은 하나. 하지만, 실제 느끼는 강함은 그 이상이었다.

그때였다.

딩. 딩.

멀리서 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한빈은 목검으로 마무리 검술을 펼친 뒤 연무장 옆 연못에 몸을 담갔다.

머리가 싸늘히 식고 나니 이제 앞으로의 계획들이 일목요연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가주전.

한빈은 집법당주 팽대위의 연락을 받고 급히 가주전으로 달려왔다.

가주가 한빈을 급히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빈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가주전의 현판을 바라봤다.

전생에는 이곳이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저곳에 만족한다면, 소위 말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상념에 잠긴 한빈의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헉헉.”

고개를 돌려 보니 철노가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공자님!”

숨넘어갈 듯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철노.”

“이거 가지고 가십시오.”

철노가 누런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철노.”

“이거 부적입니다.”

“부적?”

“아무래도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이걸로 액땜 한 번 할 수 있다고 해서 요 앞에 용한 점쟁이한테 샀습니다.”

“에이, 부모 만나는데 부적을 가지고······.”

뒤따라온 소대섭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주군, 아무래도 가지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주군.”

아무 말 없던 심미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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