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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0화 (10/621)
  • 10화. 달아 놓겠습니다 (4)

    분명 팽경빈의 도는 심미호의 팔을 자르려 하고 있었다.

    심미호는 분노에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누군가 뒤에서 혈도를 제압했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었다.

    ‘주인에게 배신당한 것은 둘째치고 수하까지 배신하다니?’

    다른 이들도 황당함에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하의 팔을 자르려 하다니.

    그것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팽대위는 도를 바닥에 세운 채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장기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경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팽대위를 제외한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때였다.

    챙.

    모두의 귓전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곳에는 한빈의 단검과 팽경빈의 도(刀)가 맞댄 채 멈춰 있었다.

    다만, 힘에서 밀린 한빈의 단검은 조금 내려와 있었다.

    덕분에 팽경빈의 도는 심미호의 어깨에 살짝 올려져 있다.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힘이 부족해서 밀렸다라?

    이것은 무인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뚝!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심미호의 어깨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한빈이 심미호의 마혈을 풀며 외쳤다.

    “뒤로 물러서!”

    “······.”

    심미호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모두는 한빈과 심미호, 그리고 팽경빈을 번갈아 살폈다.

    그들의 눈에는 한빈이 적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어찌 된 일인지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한빈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누가 내 물건 건드리래?”

    한빈의 말에 팽경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심 호위가 네 물건이라고?”

    호기심 어린 팽경빈의 표정에 비해 한빈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아까 첫 번째 내기에서 분명히 저와 이 공자는 각자의 호위대를 걸었습니다.”

    “나도 생각나는군.”

    팽대위가 수염을 쓰다듬자 한빈이 활짝 웃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약속은 지켜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당주님.”

    한빈의 말에 팽대위가 웃었다.

    “수호이조는 이 시간 이후로 수호사조로 편입된다.”

    말을 마친 팽대위가 씩 웃자 팽경빈이 다급히 외쳤다.

    “호위대를 넘기라는 것은······.”

    픽!

    팽대위에게 혈도를 제압당한 팽경빈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팽대위는 감정 없이 턱짓했다.

    “약속을 집행하라.”

    “알겠습니다. 집법당주님.”

    한빈은 검을 들고 팽경빈에게 걸어갔다.

    불과 한 걸음.

    팽경빈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한빈은 단검을 허리춤에 넣은 채 주먹을 그대로 팽경빈의 얼굴에 날렸다.

    빡!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한빈의 시야에 글귀가 떴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력(力)을 획득하셨습니다.]

    팽경빈의 도를 막으며 부족했다 느껴진 힘이 이렇게 채워지다니!

    구결은 한빈의 부족한 신체 능력을 정확히 메꿔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기본편은 한마디로 내공심법과도 같았다.

    한빈이 미소 지었다.

    한빈은 쓰러진 팽경빈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빡!

    찰진 소리가 주변에 울렸지만, 집법당 무사들이 철저히 가리는 바람에 누구도 이 소리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주변에 몰려든 무사들은 한빈과 팽경빈이 비무를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다른 이들의 착각을 뒤로한 채 한빈은 입꼬리를 올렸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력(力)을 획득하셨습니다.]

    한참 동안 주먹을 날리던 한빈이 주먹을 멈췄다.

    더는 건질 구결이 없기 때문이었다.

    [속(速), 속(速), 속(速), 속(速)]

    [체(體), 체(體)]

    [력(力), 력(力)]

    신체 능력을 높여 주는 구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늘어난 속도와 힘 그리고 체력까지.

    글자를 확인한 한빈은 더욱 진득한 미소를 피워 냈다.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멈추자 장막 밖의 사람들이 웅성댔다.

    사람들 장막 쪽을 바라보며 상상하기 시작했다.

    “또 비무를 한 거야?”

    “사 공자가 멀쩡히 나오는 걸 보면 혹시······.”

    “설마!”

    “그런데 너무 멀쩡하잖아.”

    “소문이 사실인가?”

    “사 공자가 삼 공자를 정당한 방법으로 이겼다는 거 말이야.”

    “에이, 그건 아니지.”

    주변의 웅성거림 속에 한빈이 장막을 걷어 젖히고 걸어 나왔다.

    그 뒤에서 팽대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빈은 고개를 돌려 팽대위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다니요?”

    “약속 말이다.”

    팽대위는 짧게 답하며 팔을 가리켰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팽대위는 팽경빈의 팔을 잘라도 된다고 허락한 것이다.

    ‘이 양반도 단단히 미쳤네.’

    혀를 찬 한빈이 나지막이 말했다.

    “달아 놓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나중에 시간 날 때 자르겠습니다. 제가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한빈이 해맑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팽대위는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웃었다.

    “하하, 농담인가?”

    “내기의 주체가 저이니 팔에 대한 소유권도 제게 있다고 봅니다. 처소에 가자마자 장부에 적어 놓겠습니다.”

    씩 웃은 한빈은 쓰러진 팽경빈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건들면 그때는 확 물어뜯어 버릴 겁니다! 때론 성난 호랑이보다 미친개가 무서운 법입니다.”

    한빈은 살짝 이를 드러냈다.

    광기 어린 모습에 묘하게 기세가 실려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확인한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농담입니다, 형님.”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한빈은 수호삼조의 숙소에서 조용히 나왔다.

    그 뒤를 말없이 수호사조가 따랐다.

    한빈 일행이 떠나자 심미호가 수하들에게 턱짓했다.

    한빈을 따라 떠나자는 신호였다.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팽경빈이 넋이 나간 듯 천장만 바라봤다.

    집법당의 무사들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멍해 있는 상태.

    집법당주 팽대위는 반짝이는 눈으로 한빈의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팽대위는 분명 한빈의 속도를 보았다.

    ‘이류도 안 되는 한빈이 일류 무인의 속도를 낸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팽대위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방금 봤던 장면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한빈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다.

    면적이 절대적으로 좁은 단검으로 팽경빈의 도를 막는 모습은 놀라웠다.

    그것은 분명 놀랄 만한 속도였다.

    그때 수하가 팽대위를 불렀다.

    “당주님! 괜찮으십니까?”

    그 목소리에 팽대위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고거 참.”

    팽대위가 입맛을 다시자 수하가 물었다.

    “출출하십니까? 그럼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당주님!”

    “아니다, 우리도 돌아가자.”

    팽대위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 * *

    수호사조(守虎四組)의 숙소 연무장 앞에 이십 명의 무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기존 수호사조와 이번에 흡수된 수호이조의 무사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중 수호이조 조장 심미호의 표정만은 변화무쌍했다.

    누가 보면 희로애락을 한 번에 표현하기 위해 기를 쓰는 경극 배우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쿵쿵.

    그녀의 심장은 아직도 맹렬히 뛰고 있었다.

    한 시진 전 심미호는 한쪽 팔을 잃는 줄 알았다.

    그것은 무사로서의 생명이 끝난다는 얘기였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적이었던 한빈이 자신을 구한 것.

    심미호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은 한빈이 자신을 ‘내 물건’이라 칭한 후였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소속감을 가져다주었으며 무인으로서의 피를 끓게 했다.

    심미호가 한빈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오호단문도의 비급은 대체 누가?’

    두 시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의 이목을 숨기고 비급의 장소를 바꿔치기할 사람이 팽가 내부에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상대의 목을 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자를 수하로 둔 사 공자를 적으로 두고 있었다니!’

    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졌다.

    심미호가 어깨를 가늘게 떨 때 한빈이 입을 열었다.

    “소대섭 조장, 심미호 조장.”

    “네, 공자님!”

    “공자님!”

    소대섭과 심미호가 한 발 앞으로 나와 포권하자 한빈이 연무장 바닥을 가리켰다.

    “박아!”

    순간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헉!”

    “지금 공자님께서······.”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한빈이 말했다.

    “소대섭 조장!”

    “네, 공자님.”

    “아까도 말했지만, 수호사조는 나와 누구의 지시만 받는다고?”

    “가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아까 이 공자의 명을 받고 움직인 건 누구 책임이지?”

    “제, 제 책임입니다.”

    한빈은 심미호의 앞에 섰다.

    “날 엿 먹이려고 했으니 신고식은 하고 넘어가야지. 너도 박아. 그리고······.”

    한빈은 말끝을 흐리며 나머지 호위들을 바라봤다.

    “내 처벌에 불만 있는 놈은 지금 튀어나오도록!”

    “······.”

    갑자기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 침묵이 흘렀다.

    수호사조와 수호이조의 대원들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호위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못 하자 한빈이 외쳤다.

    “실시!”

    동시에 소대섭과 심미호의 머리가 바닥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한빈이 외쳤다.

    “잠깐만!”

    바닥으로 향하려던 둘이 동시에 멈칫했다.

    한빈이 소대섭과 심미호 앞에 섰다.

    “이것도 달아 놓겠다. 알겠나?”

    “네?”

    “못 들었어? 달아 놓는다고 했잖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이자까지 쳐서 벌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공자님.”

    이상하게도 수모를 받을 뻔한 소대섭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심미호는 더 심했다.

    마치 한밤에 달 대신 태양이 뜬 듯 눈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눈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확인한 한빈이 소대섭과 심미호 사이에 섰다.

    탁!

    탁!

    한빈이 그들의 등을 강하게 토닥였다.

    그 소리는 고요한 연무장에 강렬하게 울렸다.

    조금 센 토닥임은 하루 일과가 끝났다는 종소리와도 같았다.

    등이 얼얼할 정도였지만, 심미호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실 한빈이 내뻗은 손은 팽경빈을 구타할 때와 강도가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가 있는 동작이었다.

    소대섭과 심미호의 등을 두드린 한빈은 허공을 바라봤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체(體)를 획득하셨습니다.]

    [용린검법의 기본편 중 공(功)를 획득하셨습니다.]

    공이라는 구결이 비급에 자리 잡자 단전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운공이 아닌 구결로 단전에 없던 내공까지 만들다니!

    역시 기본편이 내공심법이 맞았다.

    한빈은 겨우 표정을 숨겼다.

    그의 모습을 본 수하들은 입을 벌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을 바라보는 한빈의 모습이 득도한 도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하루, 강호에 몸을 담아도 경험하기 쉽지 않은, 마치 태풍에 휩쓸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을 바라본다니!

    뜨거운 시선을 느낀 한빈이 시선을 돌렸다.

    “이거로 소대섭 조장의 실수는 없어진 거야.”

    “네, 공자님.”

    한빈이 심미호를 바라봤다.

    “이제 우린 아무 원한 없는 거야.”

    “네, 공자님.”

    한빈은 뒤쪽을 돌라보며 수호사조에게 외쳤다.

    “이제 수호이조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둘은 형제다. 그리고······.”

    한빈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모두는 침을 삼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빈의 행동에 긴장한 것이었다.

    연무장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때쯤 한빈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대주 선발을 위한 비무를 진행한다.”

    “······.”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며 옆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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