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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9화 (9/621)

9화. 달아 놓겠습니다 (3)

팽경빈의 시선이 한빈을 따라 자연스레 돌아갔다.

‘이게 무슨······.’

한빈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심미호가 있었다.

순간 팽경빈의 머릿속에 합리적인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하나의 단어로 뭉쳐졌다.

‘배신!’

하지만, ‘왜?’라는 의문이 먼저였다.

그때였다.

팽대위의 목소리가 숙소에 울려 퍼졌다.

“소대섭 조장. 자네는 왜 천자문을 그렇게 비밀스럽게 숨겼나?”

“······.”

소대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것도 아니고 자신이 숨긴 게 아니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한빈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한빈에게 모였다.

한빈은 마치 비밀을 말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대신 답변드리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소대섭 조장은 까막눈에 가깝습니다.”

“까막눈?”

팽대위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책을 읽으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병을 앓고 있어 글을 익히는 것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글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인가?”

팽대위가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소대섭에게 꽂혔다.

소대섭이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 했다.

“······.”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소대섭의 시선이 한빈에게 향했다.

한빈이 고개를 한번 까닥였다.

소대섭은 그제야 한빈의 말이 생각났다.

한빈이 분명히 고개를 끄덕이라 말했었다.

소대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당주님.”

그 모습에 팽대위가 껄껄 웃으며 소대섭의 어깨를 꽉 틀어쥐었다.

“소대섭 조장. 자네의 병은 흠이 아니라네. 무인이라면 한 번쯤 겪는 주화입마와도 같은 게지. 뭐, 그냥 감기쯤이라 생각하게.”

주변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무슨 주화입마가 한 번쯤 거쳐 가는 감기라는 말인가?

중요한 것은 팽대위의 시선이 호의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팽대위의 감정은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

한빈이 말한 난독증은 팽대위가 앓고 있는 병이었다.

병을 병이라 말하지 못하는 팽대위의 사연.

이것은 한빈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팽대위가 외쳤다.

“이걸로 사건을 모두 종결하도록······.”

그때 한빈이 끼어들었다.

“집법당주님, 저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팽대위의 눈에 잠시 이채가 스쳤다.

한빈은 그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이 공자는 분명히 소대섭 조장이 비급을 빼돌리려고 한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팽대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건 지금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 게 아닌가?”

“만약 그가 본 곳이 수호사조의 숙소가 아니라면요? 저는 이 공자가 헛것을 봤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호라.”

팽대위의 눈빛이 다시 바뀌었다.

호기심을 잔뜩 머금은 표정이었다.

한빈이 미소만 짓고 뜸을 들이자 팽대위는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비급이 어디에 숨겨져 있다는 거지?”

한빈은 이 공자 팽경빈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팽경빈을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무사들이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그때 팽경빈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오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의견을 제시하려면······.”

한빈이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네까짓 게 무슨 명예가 있다고?”

“그럼 뭘 걸까요?”

한빈의 물음에 팽경빈이 눈매를 좁혔다.

찰나의 시간 그의 두뇌는 맹렬하게 돌아갔다.

팽경빈에게 이건 내기로 보였다.

모든 계산이 끝난 그가 말했다.

“네 한쪽 팔을 걸어라.”

말을 마친 팽경빈이 자신의 팔을 걷어붙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한빈도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표정이 묘했다.

이상하리만큼 한빈의 표정은 당당했다.

“그럼 한쪽 팔 받고 눈 한쪽까지 걸겠습니다.”

“······.”

팽경빈의 눈이 커졌다.

저리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의 호위대 조장인 심미호가 배신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빈이 외쳤다.

“쫄리면 포기하시죠.”

“······.”

팽경빈이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상황을 다시 계산해야 했다.

그 모습에 팽대위가 미간을 좁히며 한빈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디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냐?”

한빈은 잠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다 말을 이었다.

“삼 공자 팽무빈의 처소입니다.”

한빈의 말에 팽경빈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한빈은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곳을 지적하였다.

사실 한빈의 선언은 모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팽대위도 똑같은 생각인지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이 시간에 비어 있는 숙소는 여기 말고는 삼 공자의 호위인 수호삼조의 숙소밖에 없습니다.”

“그곳이 비어 있다고?”

“삼 공자는 정당한 비무를 하다가 며칠 전부터 의당에 누워 있습니다. 호위대도 그 주변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빈은 유난히 ‘정당한’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 때문인지 다시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막내 공자가 정당한 비무로 삼 공자를 이긴 거야?”

“진짜였어? 암수를 쓴 게 아니고?”

그때 한빈이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첩자를 밝혀내는 것이죠.”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씩 웃었다.

팽대위가 숙소에서 나오자 모두가 뒤를 따랐다.

수호삼조의 숙소를 향해 걷던 팽대위는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네가 꾸민 짓이냐?

갑자기 날아든 전음에 한빈은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한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팽경빈의 수하가 있었다.

한빈의 시선이 그의 손에 멈췄다.

팽대위도 자연스레 그의 손을 바라봤다.

옻이 오른 듯 손이 울긋불긋 부어 있었다.

이 공자의 호위가 막내 공자의 숙소에 들렀다는 이야기였다.

대충 상황을 보면 뒤통수를 치려다 도리어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팽대위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그놈 참,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놨구나······.”

팽대위에 말은 앞의 웃음소리 때문에 누구도 듣지 못했다.

* * *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흘렀을 때 모두는 삼 공자의 호위대인 수호삼조의 숙소에 모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집법당 무사들이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팽대위의 앞에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탁. 탁.

제법 많은 서책이 나왔지만, 역시나 비급은 없었다.

다만 다량의 춘화집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춘화집을 한곳에 모아 놓은 팽대위가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것들은 모두 집법당에서 압수한다.”

동시에 집법당 무사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팽대위가 몸을 돌려 숙소를 빠져나가려 할 때 팽경빈이 외쳤다.

“집법당주님, 아까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슨 약속을 했더냐?”

“한빈은 분명 팔과 눈을 걸기로 했습니다.”

물론 약속한 일은 없었다.

팽경빈이 한발 빼는 바람에 한빈의 제안은 흐지부지되었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이 공자 팽경빈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혀를 찼다.

그때 한빈이 말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집법당 무사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한빈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을 때였다.

한빈은 무사의 팔에 찬 단검을 낚아챘다.

“이것 좀 빌리자!”

뜻밖에 상황에 무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빈은 단검을 뽑아 들고는 한쪽 팔을 걷고 모두를 바라봤다.

“이 공자와 제가 약속을 했으니 마저 살펴본 후 이곳에 아무것도 없다면 제 팔을 자르지요.”

“······.”

숙소 내부는 단번에 숙연해졌다.

누가 봐도 미친 행동이었다.

한빈은 천천히 족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에 모두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족자의 뒤쪽은 집법당 무사들이 모두 살펴본 후였다.

그곳에 비밀 공간이 있을 리 없었다.

한빈이 벽에 걸린 족자를 떼어 냈다.

평평한 벽만이 존재하자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야? 헛다리 짚은 거네.”

“그럼 사 공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팔을 자르려고······.”

모두가 수군대는 가운데 한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천천히 팽대위 쪽으로 달아갔다.

그런데, 그 발걸음이 너무도 당당해 보였다.

얼마나 당당한지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실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삐걱!

바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한빈이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바라봤다.

아래는 단체 침상으로 쓰이는 마룻바닥.

한빈은 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고개를 돌려 팽대위를 바라봤다.

“이곳이 수상합니다.”

팽대위가 단번에 다가와 한빈이 가리킨 곳을 확인했다.

팽대위가 눈매를 좁혔다.

“이음 부분이 거칠군. 누군가 뗐다는 건데······.”

팽대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빈은 단검으로 바닥의 이음새를 찍었다.

그러고는 단검을 기울여 나무 조각을 들어냈다.

공간이 드러나자 팽대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팽대위가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팽대위의 손에는 서책 하나가 들려 있었다.

모두가 한빈과 팽대위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팽대위가 책을 높이 들었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하북팽가의 비급이었다.

“허, 이게 무슨 일이야?”

“이 공자의 말이 진짜였어?”

“그럼 범인이 삼 공자인 거야?”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한빈이 말했다.

“누가 첩자인지는 집법당주님께서 밝혀 주실 거고. 저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팽경빈에게 걸어갔다.

한빈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팽경빈의 낯빛은 사색이 되었다.

팽경빈의 앞에 선 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형님.”

처음으로 형님이라고 했지만, 그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한빈은 단검을 자신의 일부인 듯 휙휙 돌렸다.

그 모습은 마치 백정이 고기를 썰기 전 준비를 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몇몇은 한빈이 단검을 돌리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단검을 저리 놀리려면 짧은 시간 동안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한빈은 단검이 마치 몸의 일부인 듯 자연스레 놀리고 있었다.

그때 팽대위가 달려와 도를 바닥에 찍으며 외쳤다.

쾅!

“약속을 시행하거라.”

동시에 집법당 무사들이 천으로 주변을 둘러 형벌을 받을 공간을 만들었다.

천에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형(刑)]

이 천을 두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죄인의 도주를 막기 위함이요, 둘째는 이 공자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함이었다.

직계 그것도 소가주 후보 중 하나인 이 공자가 수하들 앞에서 형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수치.

집법당주 팽대위의 추상과 같은 기세에 숙소의 공기가 싸늘해지자 팽경빈의 눈이 순간 풀렸다.

그것도 잠시, 뭔가 생각났다는 듯 팽경빈은 입꼬리를 올리며 허리에 찬 도를 뽑았다.

팽경빈은 형벌을 시행하기 위한 공간 안에 남아 있는 심미호를 바라봤다.

천천히 심미호에게 걸어가던 팽경빈이 살짝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봤다.

“나는 내 팔을 건다고는 안 했다.”

어깨를 으쓱한 팽경빈이 자신의 호위인 심미호를 보며 웃었다.

씩 웃은 팽경빈이 도를 내리그었다.

그의 도가 향한 방향은 심미호의 어깨.

모두가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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