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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7화 (7/621)

7화. 달아 놓겠습니다 (1)

“네, 알겠습니다. 공자님.”

철노가 자리를 떠나자 한빈은 숙소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아무리 봐도 낡았다.

모든 게 힘으로 결정되는 팽가의 규칙으로 보면 사실 당연한 처사였다.

문제는 수호사조의 무사들은 주인을 잘못 만난 죄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한빈은 숙소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철노가 옻나무 수액을 대나무 통에 담아 왔다.

옻나무 수액을 확인한 한빈이 말했다.

“미안한데 씻을 물하고 음식 좀 부탁해. 철노.”

“갑자기 물은 왜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

“네, 공자님.”

철노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한빈은 조용히 숙소 쪽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한빈은 옻나무 수액과 붓을 든 채 조용히 숙소에서 나왔다.

그때 철노가 돌아왔다.

“공자님, 다녀왔습니다.”

철노가 물이 담긴 대나무 통을 내려놓자 한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시장하니 먹을 물과 음식 좀 부탁해. 그리고 내가 여기 없으면 철노는 조용히 여기서 기다려. 그럴 수 있지?”

한빈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철노도 눈치 빠르게 작게 답했다.

“네, 공자님.”

철노가 떠나자 한빈은 숨을 죽이고 숙소로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가 숙소로 기어들어 갔다.

한빈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숙소로 다가가 창틈으로 상대를 관찰했다.

검은 무복의 사내는 숙소를 청소하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손을 놀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한빈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사내가 나가자 한빈은 숙소로 들어가 조용히 그의 손길이 갔던 부분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숙소에서 머물던 한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빈이 돌아온 것은 일각이 지난 후였다.

다시 돌아온 한빈은 태연하게 철노가 있는 나무 쪽을 향해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한빈은 철노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다 먹고 난 한빈이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쓱쓱 옷에 문질렀다.

“공자님, 옷에 음식 냄새가 밸 것 같아요.”

“많이 나냐?”

“네. 공자님이 뭐 먹었는지 냄새만 맡아도 알 정도예요.”

“그럼 됐어. 가자, 철노.”

한빈은 씩 웃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냄새가 싹 지워졌다.

그때 철노가 물었다.

“네. 공자님. 그런데 대체 뭐 하셨습니까?”

“청소!”

“청소요?”

“나를 지켜 주는 호위대인데 내가 그쯤은 해 줘야지.”

“진짜요?”

철노의 눈이 커졌다.

철노에게 한빈은 유약한 주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상해졌다.

일부에서는 막내 공자 한빈이 미쳤다고 하지만, 철노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이상한 행동을 했다.

‘수하들의 숙소를 보수한 후 청소까지 한다니?’

이것은 한빈이 보여 준 적 없는 행동이었다.

한빈은 씩 웃으며 앞서갔다.

철노는 한빈의 등을 힐끔 바라봤다.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한빈의 등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말이다.

* * *

서쪽 벽 보수공사를 지휘하고 있는 부총관 허만위는 수호사조의 조장 소대섭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총관 허만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소대섭 조장, 미안하네. 이 공자가 자네들에게 이런 일을 시킬 줄은 몰랐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간 후 하북 전체에 인부가 부족했기에 공사를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이 공자가 막내 공자의 호위대를 인부로 차출한 것이었다.

수호사조의 조장 소대섭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부총관님, 괜찮습니다.”

말과는 달리 소대섭의 가슴은 끓고 있었다.

팽가에서 천대를 받는 것이 모두 주인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었다.

소대섭은 수호사조를 작업에 배치한 이 공자보다 직속상관인 한빈이 더 미웠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빈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소대섭은 터지는 울화통을 참으려 이를 꽉 깨물었다.

드디어 한빈이 앞에 오자 소대섭이 한숨을 삼키며 포권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잘 지냈어?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가문의 보수공사를······.”

“내 얘기는 왜 수호사조가 하느냐는 말이지? 이건 원래 인부가 하는 거잖아.”

그때 부총관 허만위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태풍 때문에 인부가 부족해서······.”

한빈이 바로 말을 끊었다.

“제가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럼, 무슨 말씀인지요?”

“누구의 명령을 받고 여기에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건 이 공자님의······.”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원래 공자의 호위는 직속상관인 저와 가주님의 명만을 받지 않습니까?”

“······.”

“혹시 가주님의 명입니까?”

“······.”

부총관 허만위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가문의 규율대로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색함에 소대섭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한빈이 먼저 외쳤다.

“박아.”

한빈의 시선은 소대섭을 향하고 있었다.

소대섭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

“내 말이 아닌 이 공자의 말을 들으라고 누가 그래.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헉!”

급기야 소대섭은 얼굴까지 창백해졌다.

‘스벌. 스벌.’

그는 튀어나오려는 욕을 겨우 집어삼켰다.

얼마 전 본 후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한빈이었다.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없는 살림에 개처럼 구르는 자신에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이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막내 공자 한빈 옆에 계속 있어 봐야 안 봐도 앞일이 훤했다.

하북팽가에서 나가서 차라리 낭인으로 사는 것이 더 나았다.

이젠 사표를 던져야 할 때였다.

“공자님.”

“왜? 소대섭 조장.”

“이젠 도저히······.”

소대섭의 입술이 열리려 할 때였다.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와 한빈에게 포권했다.

“공자님. 저희는 집법당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에 한빈의 눈이 살짝 빛났다.

한빈은 눈빛을 지우고 물었다.

“집법당에서는 왜?”

“팽가의 비급을 외부로 빼돌리려 한 혐의로 소대섭 조장을 소환하려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빈이 아무렇지도 않게 묻자 소대섭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부터 발언 허락되지 않습니다.”

집법당 무사가 도를 바닥에 찍었다.

쿵.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소대섭이 외쳤다.

“제가 비급을 빼돌리려 했다니요?”

집법당에서 나온 무사는 소대섭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뒤를 돌아봤다.

“죄인을 포박하라!”

순간 소대섭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말도 안 되는 혐의였다.

소대섭은 한빈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무슨 눈빛이지? 뭐야? 자기하고는 상관도 없다는 표정이잖아!’

누가 봐도 한빈은 이 상황을 즐긴다는 듯 웃고 있었다.

수호사조의 조장 소대섭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개보다도 못한 주인 같으니라고!’

그때 부총관 허만위가 눈이 동그래져서 끼어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부총관님 죄송하지만, 집법당의 일입니다.”

“흠.”

부총관 허만위는 부뚜막에 앉은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랐다.

갑자기 보수공사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속으로 욕은 했지만, 지금 믿을 것은 한빈뿐이었다.

일단 누명이 벗겨지기 전까지는 호위를 그만두는 것을 미뤄야 했다.

소대섭이 집법당 무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한빈의 앞으로 달려갔다.

“공자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한빈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었다.

“억울하다? 뭐가 억울한지 말해 봐. 소 조장.”

“정말 저는 죄가 없습니다. 게다가 비급이라니요?”

소대섭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을 때 집법당 무사가 한빈에게 다시 포권했다.

“증거가 충분합니다.”

“증거라?”

“물증도 있고 심증도 있습니다.”

“심증은?”

한빈의 질문에 집법당 무사가 답했다.

“소대섭 조장의 딸아이가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심증이 되나?”

“아이가 많이 아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비급을 빼돌린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봅니다.”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다고?”

한빈은 집법당 무사와 소대섭을 번갈아 바라봤다.

집법당 무사는 살짝 한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분명 미쳤다고 했다.

그는 한빈이 언제 미친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한빈의 입이 열렸다.

“그럼 할 수 없군. 마음대로 해.”

“네?”

놀란 집법당 무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미친 것이 분명했다.

수하가 저리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소대섭이 몸부림치며 한빈에게 한발 다가왔다.

“공자님, 저는 정말······.”

소대섭이 말을 맺지 못했다.

집법당의 무사에게 바로 점혈을 당했기 때문이다.

집법당 무사는 수하에게 다시 외쳤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으니 나머지 대원들도 포박하라.”

집법당 무사들은 남은 한빈의 호위들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휙휙.

포승줄 묶는 소리와 수호사조 무사들의 악쓰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부총관 허만위는 살짝 어깨를 떨었다.

자신이 팽가에 몸을 담은 지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처럼 살벌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찌 되려고······.’

부총관의 떨림과는 관계없이 한빈은 씩 웃으며 앞장섰다.

멀뚱히 서 있던 철노가 물었다.

“공자님, 어디 가십니까?”

“집법당!”

한빈은 짧게 답하고 집법당 무사들이 출발하기도 전에 발길을 옮겼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부총관 허만위는 그런 한빈이 의아할 뿐이었다.

수하가 집법당에 끌려가는데 저리 신나서 앞장선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막내 공자가 미쳤네, 정말······.”

부총관 허만위는 말을 맺지 못했다.

소대섭을 포박해 끌고 가려던 집법당 무사들마저 한빈의 행동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하북팽가 집법당.

강철 의자에 한 사내가 팔걸이를 톡톡 치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큰 덩치에 날카로운 눈빛을 한 사내는 턱선을 따라 흉터가 나 있었다.

흉터는 호랑이의 무늬처럼 어울렸다.

그는 흉터를 훈장이라도 되는 듯 기분 좋게 어루만졌다. 움직일 때마다 울퉁불퉁 꿈틀거리는 근육 때문인지 그의 팔뚝은 바위 위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이름은 팽대위.

그는 한빈의 셋째 숙부이며 하북팽가 집법당의 당주였다.

강호에서는 팽가의 셋째 호랑이라 일컫는다.

문이 열리자 팽대위는 한참을 보던 서류를 귀찮다는 듯 옆으로 툭 던졌다.

그러고는 끌려 들어오는 소대섭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뒤로 수호사조의 대원들이 줄줄이 끌려오고 있었다.

팽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세 때문일까?

집법당이 꽉 차는 느낌마저 들었다.

팽대위가 천천히 소대섭에게 걸어갔다.

앞까지 걸어간 팽대위는 소대섭의 아혈을 풀었다.

아혈이 풀리자 소대섭이 외쳤다.

“억울합니다. 저는 비급을 빼돌리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팽대위가 손뼉을 쳤다.

짝.

동시에 옆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와 검은 무복의 여인이 나타났다.

제법 눈에 띄는 커다란 도를 허리에 찬 사내는 이 공자 팽경빈이었다.

그 옆에서 그를 보좌하듯 서 있는 여인은 호위조의 조장 심미호.

한빈은 심미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를 미행한 날만 일주일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그녀의 행적을 쫓다 보니 괜한 친근감마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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