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붉은 매화나무의 전설.” 三
봄 냄새가 가득 깃든 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이며 지나갔다. 예비 신랑이 될 강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도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며 소매 속에 가려졌다.
사람들이 기분 좋게 웃고 떠드는 소리 속에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대례상 가운데 서 있던 사회를 보는 집사가 준비가 되자 입을 열었다.
“신랑 신부 교배례!”
강과 도아는 서로를 온전히 마주 보고 서서 천천히 의식을 진행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
마지막 한 번을 남겨 두고, 버거운 옷가지를 남겨 두고 도아가 휘청이며 수모에게 넘어지려는데 앞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뭐지?’
놀란 마음에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눈을 다시 빼꼼히 올렸다. 절을 하다가 발이 엉켜서 넘어진 강이 보였다.
장내는 지켜보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모두들 박수까지 치며, 넘어져 얼굴이 벌게진 강을 놀려 주었다.
“풉…….”
“쓰읍!”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도아가 웃고 말자 곁에서 지켜보던 수모가 화들짝 놀라 경고를 했다. 이에 도아는 강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다가 다시 소매 속으로 숨어야 했다.
‘저리 우람하니 다리가 길어 넘어질 수밖에.’
다시 생각해도 웃기는 모양새에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딸을 여의는 날이라 심란해 있던 부모도 강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그만 웃고 말았다.
“신랑 신부 합근례.”
서로 나란히 술잔을 받아 들고, 혼례식 처음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얼굴을 드러낸 도아가 술잔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신부가 선녀가 따로 없네!”
“누가 아니래. 그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네.”
한양의 모든 젊은 도령들을 모두 담장 아래 줄 서게 만들었던 도아의 외모는 모두의 감탄사를 부르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 소리를 듣고 힐끔 신부를 훔쳐보던 강은 하마터면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이고! 신랑이 술 마시다가 코 빠뜨리겠네그려.”
“신부 훔쳐보다가 넋이 나갔네.”
“신방 들기도 전에 이를 어째!”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던 손님들이 이번에도 강을 놀려대며 호탕하게 웃었다. 동네에 혼례보다 경사스러운 잔치는 없었다.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경사를 축하해 주고, 신랑 신부의 앞날이 평안하기를 함께 빌어 주었다.
* * *
까맣게 타들어 가는 촛대를 바라보며 새색시 도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머리는 무겁고, 몸은 겹겹이 에워싼 옷가지에 답답하기만 했다.
얌전히 고이 앉아 기다려야지 했던 마음은 쏟아지는 졸음에 사라지고 말았다. 꾸벅거리며 졸다가 몸이 옆으로 기우뚱 쓰러지고 말았다.
때맞춰 신방에 들어온 강은 그 모습에 한달음에 다가와 쓰러지는 도아의 얼굴을 잡아 주었다. 도아는 낯선 감촉에 눈을 뜨다가 강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그를 밀쳤다.
꾸벅이며 이리저리 졸다가 화관이며 앞댕기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도아가 수습하려 만질수록 더욱 엉망이 되었다.
“내가 해 주겠소.”
피식 웃던 강이 나서서 도아의 머리에 달려 있던 장신구를 하나씩 빼 주었다. 이런 몰골로 신랑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속이 상했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대를 알고 있었소.”
“……예?”
“무서워할 것 같아서 숨기고 싶지만.”
“담장 너머로 훔쳐보던 도령들 중 한 명이셨나요?”
세상 순진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는 말에, 신랑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유난히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소. 그런 내게 부모님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바다 근처에 작은 초가를 지어 주셨소.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초가에서 지내고는 했는데 나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줄 미처 몰랐소.”
“……바다요?”
“그렇소. 그곳에서 그대를 처음 봤소.”
두 사람에게는 바다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서로 어릴 때부터 이끌리듯 바다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찾아다녔다.
“어머니께 받은 것이오.”
“처음 보는 것인데…… 너무 익숙하네요.”
강이 긴장한 모습으로 도아에게 건네준 것은 동심결 노리개였다. 도아는 그것을 받아 들고, 마치 잃어버린 제 것을 찾은 듯 두 손에 꼭 쥐었다.
“평생 그대를 위해 살고, 그대만을 그리며 살겠다고 약조하겠소.”
“그 약조, 이 노리개에 담겠습니다.”
“결코 나로 인해 그대가 눈물짓는 일은 없을 것이오.”
노리개를 꼭 쥔 도아는 아무 말 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온 진심을 다해 마음을 드러내는 강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올려서 연지곤지를 귀엽게 찍어 둔 자리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도아는 사뿐히 두 눈을 감은 채 입술을 받아들였다.
끝내 그 입술이, 제 입술에 닿자 숨을 멈추었다. 수줍고 설레게 다가온 입맞춤은 어느새 녹진하게 온몸을 녹여 왔다.
서로의 몸이 빈틈없이 밀착되어 숨이 막혀 왔다. 이대로, 이런 기분이라면 숨이 멎어 가루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강의 손길이 어느새 꼭 닫혀 있던 옷고름에 닿았다. 도아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그 손길을 거부했다.
“싫은 것이오?”
“그게 아니오라…….”
“너무 밝아서 그런 것이오?”
그 물음에 도아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려 주었다. 강은 미소를 지은 채 방을 환하게 밝히던 촛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다시 맞닿은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 닿았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강의 손이 애타게 옷고름을 잡아 풀었다.
백옥같이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얇은 소복만이 남게 되었다. 도아는 멈추지 않는 입맞춤에 그만 숨이 차 헐떡이며 고개를 돌렸다.
“하…….”
치마로 꽉 잡아서 여민 덕분에 가슴이 보름달처럼 차올라 있었다. 그 위로 강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이대로라면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도아는 짧은 신음을 터뜨리며 두 손으로 힘겹게 강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또 왜 그러시오?”
“…….”
“부인.”
“다른 사람이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상한 말이라니? 설마 나에 대해서 말이오?”
아직은 낯설기만 한 서방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 빙 돌려 말했으나 강은 단박에 알아들었다.
“나를 모르는 자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했소?”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습니다.”
“허무맹랑한 소문이오.”
“정말요?”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일지라도, 부인을 집에 두고 내 어찌 감히 밖으로 나돌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 가슴팍을 밀고 있던 도아의 손을 잡아서 손등과 손 안에 입을 맞추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아…… 아니…….”
“너무 지체했소.”
말이 끝난 입술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도아의 입술을 훔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긴 목을 끝없이 탐하고 향기를 마셨다.
여체를 탐하던 강이 불현듯 도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맞췄다. 그의 눈은 강렬하게 타올라 불씨가 담겨 있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시오?”
“……알 리가 없지요.”
“내가 마치 그대를 만나려고 태어난 것 같다는 것이오.”
“…….”
“그대를 보고, 생각하고 만질수록 그 생각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소.”
믿을 수 없을 만큼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의 파도였다. 도아라는 존재가 파도처럼 강의 온몸을 향해 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순간에도 맞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몇 번의 절정에 정신이 혼미해진 도아가 땀에 젖은 채 나신으로 강의 가슴팍에 쓰러져 누웠다. 몸이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듯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다.
강은 팔을 뻗어서 도아를 곁에 잘 눕혀 주고, 나신 위로 이불을 덮어 주며 꼭 안아 주었다.
“참, 꼭 해 줄 말이 있는데 들을 수 있겠소?”
도아를 꼭 안아 주던 강이 조금 떨어져 말하자 눈을 감은 채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가에서 3년 동안 살다가 본가에 들어갈 것이오.”
“네?”
“내가 이미 부모님께 허락을 다 받아 두었으니 부인은 마음 쓸 것 없소.”
기력을 모두 소진하여 쓰러지듯 강의 품에 안겨 있던 도아는 깜짝 놀란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요?”
“부모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으니 문제 될 것 없소. 짧게나마 3년간 장인 장모님께 사위로서 효를 다할 것이오.”
정말 너무 좋으면 말문이 막힌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도아는 벌게진 얼굴로 환하게 웃다가 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라는 게 이런 것이었다. 도아는 맑고 고운 소리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날 밤 강은 그동안 살면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빈 공간이 비로소 꽉 채워졌다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 *
이제 어엿하게 시집을 가 여인이 되었으니 길게 내렸던 댕기 머리를 버리고, 머리를 올려 쪽 진 머리를 해야 했다.
굵은 머리 타래를 잡아 올려서 녹색 비취 비녀를 꽂아 주었다. 아래로는 새색시를 상징하는 녹의홍상을 입고 동심결 노리개를 달아 주었다.
아가씨일 때와 다르게 한껏 물이 오른 용모에 화려한 장신구는 새색시를 돋보이게 해 주었다.
부모님에게 문안을 가기 위해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이 도아가 들어가자 탄성을 지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아름답소.”
“괜한 말씀이십니다.”
“나는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인데 어찌 그리 얼굴을 붉히시오?”
가까이 다가온 강은 말끔하니 새초롬한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턱 끝을 살며시 잡고, 붉은 입술을 머금었다.
단정히 여민 저고리 아래로 손이 슬금슬금 들어와 가슴을 거머쥐려 하니 도아가 놀라 강을 밀어내며 뒷걸음질 쳤다.
“이러다 문안 인사에 늦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내 괜한 주책을 부렸소.”
“오늘 밤에도 있으니 조급해 마셔요.”
“응?”
“입술…….”
별안간 수줍어하며 건넨 말이 강의 마음을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문안에 늦어도 좋으니 옷고름을 풀고만 싶었다.
다가온 도아가 강의 입술에 제 연지가 번져 있는 것을 잘 닦아 주며 돌아섰다. 어서 문안을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