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붉은 매화나무의 전설.” 二
그날 나은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도아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여야 했다.
“내가 이 혼인을 뒤집으면 어찌 될까?”
“약과 드시다가 별안간 불벼락 같은 말씀을 하세요.”
별당 마루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약과를 집어 먹던 도아가 숨을 뱉었다. 아무래도 나은이 했던 말이 걱정되는 듯했다.
“어제 나은 아가씨가 하신 말 때문이면 걱정 마세요. 아무렴 대감마님께서 어떤 분이신데 그런 도련님에게 시집을 보내시겠어요. 아가씨의 일이라면 멀쩡한 돌다리도 수십 번 건드려 재차 안전을 확인하시는 분이십니다. 괜한 걱정일랑 마셔요.”
“……그 댁에서 꽁꽁 숨겼을 수도 있잖아.”
“하인들이 입으로 나르는 소문을, 설마 대감마님께서 모르시겠어요?”
틀린 말이 아니기에 도아는 제법 설득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하녀가 가까이 다가가 바람에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잘 여며 주었다.
“네가 그 댁 하인들과 접선을 해 보는 건 어려울까?”
“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헛소문일지라도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흠……. 그래서 만약 정말 소문대로 그런 사내라면요?”
“노처녀로 늙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쭉정이 같은 사내에겐 시집갈 수 없지.”
“…….”
“내가 시집가면 널 데려갈 텐데 내가 평생 눈물로 살았으면 좋겠어?”
“그 꼴은 못 보죠!”
도아의 말에 하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예비 신랑감 도덕성 확인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별당 작은 마당이 도아의 제자리걸음으로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엄지손톱을 톡톡 이로 물고 있을 때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아가씨! 아가씨!”
소문을 확인하라고 보냈던 하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왔다. 도아는 한달음에 앞으로 가 손을 잡아 주었다.
“알아봤어? 뭐래? 정말 역마살이 꼈대?”
“일부 그런 말들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나은 아가씨의 말씀처럼 심각하진 않던걸요?”
“왜? 뭐라고들 하는데?”
“집에 잘 계시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건 아니래요. 또 학문에도 정진하셔서 서당도 빠짐없이 다니신다고 했어요.”
“흠…….”
“게으르거나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것도 아니랬어요.”
“너 혹시 내가 이 혼인 뒤집을까 봐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가씨!”
눈썹 휘날려라 달려가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는데 고작 의심을 받는다니. 하녀가 득달같이 화를 내자 도아가 미안한 듯 웃어 주었다.
“오는 길에 안채에서 들었는데 혼인날도 이미 잡혔대요, 아가씨.”
“벌써?”
“예, 그만큼 두 분께서 이 도련님을 놓치고 싶지 않으신 거겠죠. 보세요. 그 댁 도령께 역마살이 꼈는데 어떤 가문에서 사돈 맺고 싶다고 줄을 섰겠어요?”
“그것도 그러네. 말이 앞뒤가 안 맞네.”
“음, 실례되는 말이지만 누구에게 소문을 전해 들었는지도 상당히 중요하죠.”
그러고 보니 나은은 항상 확인되지 않은 뜬소문을 가져와 항상 도아의 주변을 시끄럽게 맴돌았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도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괜히 밤새 뒤척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인들이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하더라구요.”
“뭐라고?”
“엄청 미남이래요.”
“……얼굴 뜯어먹고 살래?”
“추남보다는 낫잖아요.”
그날 나은이 했던 말 중에 미남이라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러자 역마살로 의심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괜스레 예비 신랑이 궁금해졌다.
* * *
어느덧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혼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내일이 되면 꿈에 그리던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내일 혼인을 앞두고 청이라, 어디 들어 보자.”
“혼인 후 처가에서 3년을 살다가 들어오고 싶습니다.”
“처가에서 3년을?”
듣고 있던 부모는 짐짓 놀란 듯했지만 그렇다고 역정을 내거나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냐?”
“혼인할 여인이 그 댁 장녀인데 아래로 하나 있는 남동생은 터울이 길어서 아직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혼인 후 바로 시댁으로 들어오면 친정 걱정에 그 여인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흠……. 제법이구나.”
“예?”
“벌써 혼인할 아내의 마음을 이리도 극진히 생각하다니 제법이라 이 말이다.”
부친은 오히려 아내에게 마음을 쓰는 강을 칭찬해 주었다. 곁에서 듣고만 있던 모친도 같은 마음인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안사람이 될 여인이 이 댁에 들어와 누구를 의지하며 살겠느냐. 오로지 서방인 너 하나 보고 사는 것이지. 네가 이러하니 부부 사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게 말이오. 부인의 말처럼 부부 사이 걱정은 없겠소.”
“예, 모두 잘 보고 배운 덕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부인께서도 참.”
강의 부모는 참으로 금슬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이 모습을 보고 배웠으니 혼인해서도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잘할 것이다.
“그리하도록 해라. 3년이면 그리 긴 세월도 아니니 새아가와 더불어 처가에 효도를 하도록 해라.”
“흔쾌히 승낙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냐, 귀한 여식을 네게 주었으니 마땅히 효를 다해야 할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 인사의 절을 올리고 다시 자리에 앉자 모친이 저만치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을 강에게 내밀었다.
“아버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이니라.”
“어찌 이리 귀한 것을 주십니까?”
“네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며느리 될 새아기에게 주는 것이다.”
“…….”
“어미는 아버지에게 혼인 첫날밤에 이것을 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네가 부인이 될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맞겠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답게 자개함은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강이 떨리는 손으로 함을 열었다.
“동심결 노리개니라.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가 깃든 것이다. 네 사람이 될 부인에게 평생을 약조하며 건네도록 해라.”
동심결 노리개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것을 받아 들고 별채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달빛 아래 별채에 앉아 하염없이 동심결 노리개를 바라보던 강은 심장이 옥죄이는 고통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 * *
정다운 모녀지간이 함께 목욕을 마치고 나란히 별당에 앉아서 서로의 머리를 빗겨 주며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숱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구나.”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가 봐요.”
“하기는 나도 혼인을 하고, 머리를 올려 주던 아이가 두 손으로도 모자라 힘겨워했었지.”
“정말요?”
“그럼. 살면서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으니 숱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어머니 머리카락도 풍성해요.”
어머니가 머리를 잘 여며 주자 바로 돌아앉은 도아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흰머리가 도아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시집을 가거든 시부모님을 공경하여 모시고, 신랑과 더불어 잘 지내야 한다.”
“귀가 닳도록 말하셔서 꿈에도 나올 정도예요.”
“그야 우리 도아가 걱정이 되어 그렇지. 물론 너는 똑똑한 아이니 누구보다도 잘할 테지만.”
“걱정 마세요. 잘 살게요.”
머리를 여민 어머니가 돌아앉아 도아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여인은 혼인을 하면 집안에 큰 변고가 없는 한 친정 식구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은 때였다.
그러니 오늘 이 밤이 참으로 애틋하기도 할 것이다. 어머니는 연신 도아를 닳도록 쓰다듬으며 어루만져 주었다.
“시집을 간다고 네가, 도아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예?”
“부디 너를 잃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어머니…….”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야 할 텐데 그만 자리에 눕자꾸나.”
모녀는 나란히 펴 놓은 이부자리에 들었다. 어릴 때 유난히 부모의 품을 떠날 줄 몰랐기에 꽤 오랫동안 부모 사이에 누워 잠들곤 했다.
도아가 몸을 일으켜 촛불을 끄려는데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누구야?”
소리에 예민했기에 곧장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수줍은 듯 베개를 든 도진이 들어왔다.
“저런, 우리 도진이도 함께 자고 싶었구나?”
“누이…… 시집가면…… 다시 만나기 힘들다고 해서요…….”
“그랬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오너라.”
누이를 보내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읽은 어머니는 팔을 벌리며 도진을 들여 주었다. 그러자 도진은 도아와 어머니 사이에 냉큼 달려와 앉았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애네.”
“치! 누이는 아쉽지도 않아?”
“바보야. 아쉽지 않았으면 너 들어오지도 못했어.”
“…….”
“불 끌 거야. 누워.”
도진은 부부가 늦게 얻은 아들이었다. 어느새 불이 꺼지고 사방이 어둠으로 갇히자 천장을 보고 있던 도진이 슬그머니 도아 쪽을 향해 누웠다.
“누이…….”
“왜.”
“시집갔다고 나 잊으면 안 돼.”
“나한테 동생이 열 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를 어찌 잊어? 그런 걱정 말고, 늦잠 자지 않으려면 어서 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 도아는 몸을 돌려 도진을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 주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 *
태어나 처음으로 지분 단장을 하는 날이었다. 백옥 분을 피부에 두드려 바르고, 먹으로 눈썹을 그려 넣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붉은 연지를 입술에 덧칠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와 저고리를 둘러 입자 혼례식의 꽃인 활옷이 들어왔다. 화사한 붉은 옷감에 어머니가 손수 넣은 자수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풍성하게 부푼 치마 위로 활옷을 겹쳐 입고, 대대로 가슴을 꽉 여며 고정시켰다. 이내 자리에 앉자 머리 위로 화관을 씌우고, 올린 머리에 비녀를 꽂아 앞 댕기를 양쪽 어깨 아래로 내려 주었다.
화룡점정으로 연지곤지를 찍고, 자리에서 물러난 하인이 경대를 펼쳐서 보여 주었다. 거울 속 여인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와……. 선녀가 하강했다고 해도 믿겠어요, 아가씨.”
“이게 정말 나라고?”
“네! 평소의 아가씨도 정말 곱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꾸미시니까 정말 눈이 부셔요.”
“어디, 얼마나 곱길래 눈이 부시다는 것이냐?”
뒤이어 들어온 가족들은 모두 손님맞이를 위해 평소보다 꾸민 모습들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나 할 것 없이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웃고 있었다.
“엊그제 걸음마를 하던 것 같더니……. 어느새 이렇게 자라 시집을 가는구나.”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살아야 네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이곳 혼처를 고른 것이다. 멀리 가는 것보단 아무렴 낫겠지.”
“걱정 마세요. 자주 소식 전해 드릴게요.”
“더 있다가는 주책을 부리겠구나. 나가서 손님을 맞아야 하니 그만 가 보마.”
“도아야!”
가족들이 인사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저만치 나은의 모습이 보였다. 나가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도아에게 온 나은이 입을 쩍 벌렸다.
“너무 예뻐서 말도 안 나오네.”
“역마살 낀 내 서방은 왔니?”
눈이 아플 만큼 화려한 활옷을 만지작거리던 나은이 그 말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겠어.”
“무슨 소리야?”
“좀 전에 신랑이 들어서는데 글쎄 모두들 탄성을 질렀어.”
“그래?”
“응! 키가 어찌나 큰지 고개를 번쩍 들어야 얼굴이 보이더라구. 얼굴은 또 얼마나 잘생겼게?”
먼저 신랑을 보고 들어온 나은이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역마살이 꼈다는 말이 잊히질 않았다.
얼마 후, 두 수모의 손길을 받으며 두 손을 살포시 포개어 얼굴을 가린 채 떠들썩한 혼례장으로 나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발에 맞춰 흔들리는 활옷 끝단뿐이었지만 심장은 폭주할 듯 뛰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 대례상 앞에 당도했다.
‘고개를 절대 들면 안 된다. 신부는 첫날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보이면 안 돼.’
수모가 나가기 전에 신신당부하며 알려 주었지만 도아는 왠지 호기심이 동했다. 모두가 극찬하는 신랑이 코앞에 있으니 더욱 그랬다.
포개 놓은 소맷자락 속에 숨겨 둔 두 눈을 살포시 내밀었다. 누가 볼세라 콩닥거리는 심장을 잡았다.
혼례복 차림의 신랑이 곧이어 두 눈에 들어왔다. 말끔한 용모의 신랑, 강을 마주한 순간 도아의 심장은 그 자리에서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