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화 인어 포획 포상금
대전에서 정식으로 선위를 표명하는 자리가 열렸다. 어명을 받들기 위해 도화군이 복식을 단정히 하고 들어 있었다.
임금의 도장을 뜻하는 옥쇄와 전위교서를 도화군에게 전달했다. 묵직한 무게만큼 책임감이 실린 것을 받아든 도화군의 얼굴이 긴장감에 차올랐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즉위식을 치를 것이니 날을 잡도록 하라.”
“예, 전하.”
“번잡하고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으나 신하들 앞에 처음 왕으로서 서는 자리니 위엄이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를 철저하게 하도록 해라. 누구든 작은 실수를 범해도 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전해라.”
그리 명을 내리고, 모두 물러가자 도화군과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강은 흐뭇한 얼굴로 도화군을 바라보았다.
“제수씨는 잘 배우고 있느냐?”
“예, 왕실에 시집온 지 오래되었으나 궐 안의 법도에 대해서는 익숙지 않은지라 많이 헤매는 듯 보이지만 영특한 사람이라 걱정하지는 않사옵니다.”
“그래, 이제 즉위식만 치르면 되겠구나.”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늘 선위식을 치르고 피부로 와 닿는 것을 느끼며 긴장감에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백성들 사이에 네가 하늘이 내린 임금이라 칭송을 받는다는구나.”
“어찌 그런……. 망극하옵니다, 형님.”
“민심을 얻는 일은 재물은 모으는 일보다 더욱 힘든 것이다. 왕이 항시 돌봐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외면받지 않도록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살피도록 해라.”
“예, 이 아우가 어찌 형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겠습니까. 모두 기억해 둘 것이옵니다.”
즉위식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면 오랫동안 만나기 힘들 것이다. 선위를 한 왕이 대궐을 드나들 수 없으니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다.
“형님, 어디로 가실지 정말 말씀 안 해 주실 것이옵니까?”
“말하면 귀찮게 하려고 그러느냐?”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아우는 알고 있어야 하질 않사옵니까.”
“나중에 때가 되면 연통을 넣으마.”
“형님.”
“아무리 그렇게 불러도 소용없다.”
곧 대궐을 나가게 될 강은 자신의 행적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끼는 도화군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자신 말고는 모를 것이다.
강은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도화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대전을 나갈 때까지 끈질기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만 가 보란 것이었다.
* * *
항상 따듯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안채였다. 안락하고 포근한 것이 그 자체로 어머니의 자리와도 같았다.
도란도란 몇 시간을 함께한 부인과 도도아는 나란히 앉아서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되면 도아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멀리 떠나야 했다. 도아를 위해 며칠 편의를 봐준 것이니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우와, 엄청 작아요.”
“작지. 네가 태어나 처음으로 입은 배냇저고리다.”
“제가 이렇게 작았어요?”
“이보다 더 작았지. 이 옷도 커서 움직이다 보면 팔도 빠지고 다리도 빠지고 그랬단다.”
작은 배냇저고리는 함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작았던 네가, 어느새 이리도 자랐구나.”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것입니다.”
“네가 강했던 게지.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걸음마도 오래 걸렸는데 곧잘 배워서 금세 뛰어다니질 않았느냐.”
“그건 오라버니가 자주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도와주어 그렇습니다.”
어느새 부인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 얼룩져 있었다. 도아는 손에 쥔 배냇저고리를 만지작거리다가 힘겹게 부인과 눈을 마주했다.
부모에게 차마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죽음,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가. 도아야.”
“네……. 어머니.”
목이 메어 겨우 대답한 도아가 따라서 눈물을 흘리자 부인이 다가와 따듯하게 품어 주었다.
“부탁이니, 꼭 다시 와야 한다.”
“…….”
“어미가……. 어미가 널 기다리고 있으마. 그때도 내 자식으로…… 오너라. 아홉 달 소중히 품고 있다가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낳아 주마.”
“어머니…….”
“평생 아프게 하여 미안하구나.”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문이 택한 길에 천벌을 받아 생긴 병이었다. 도아는 눈을 감은 채 부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에 부인도 고개를 숙인 채 겨우 눌러 두었던 눈물을 터뜨렸다. 보고만 있어도 닳을 것 같아 아까운 금쪽같은 자식이었다.
도아는 겨우 눈물을 그치고, 품에서 나와 부인의 눈물을 차분하게 닦아 주었다.
“꼭 다시 태어날게요.”
“…….”
“그때도 어머니 딸로 태어나 오래도록 곁에 있어 드릴게요.”
“아가…….”
“그러니 너무 오래 아파하지 마세요.”
부인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부녀는 다시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도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지막을 가족들에게 결코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에 잘된 일이라 여겼다.
* * *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쫓겨나게 생긴 청아는 이른 아침부터 처소에서 나가게 해 달라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강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다가 이곳으로 걸음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청아가 관군의 따귀를 때리는 것이었다.
“잠자코 있어도 모자랄 판에 죽여 달라 애원이라도 하는 건가?”
“소첩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듯 죄인처럼 갇혀 있어야 하는 까닭을 모르겠사옵니다.”
“목 위에 달고 있는 머리가 아깝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이제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인지 강에게 서슴없이 언성을 높였다. 강은 무시하고 전각 뜰로 들어가 가운데에 섰다.
“숙의는 어명을 받들라.”
그 말에 청아는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상선은 듣고, 토시 하나 빼놓지 말고 도승지에게 어명을 전하도록 해라.”
“예, 전하.”
“숙의 김씨는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하고, 남을 음해하여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성품이 오만방자하여 경솔하기 그지없으니 왕실의 품위를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다. 하여 과인은 숙의 김씨에게 내려졌던 품계를 거두고 폐서인으로 삼는다.”
“……폐서인이라니요?”
바닥에 앉아서 어명을 듣고 있던 청아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말하는 도중 끼어들려 하자 강은 손을 들어서 멈춰 세웠다.
“폐서인을 가문의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게 하여 평생토록 평범한 백성으로 살게 할 것이다.”
“소첩을 폐서인 삼는 것도 모자라 가문에서 이름마저 지우란 말씀이십니까?”
“그대를 그대로 두는 것도 대제학에게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수는 없사옵니다.”
“어명 위에 누구도 설 수 없다. 모르는가?”
이대로 폐서인이 되면 친정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었다. 족보에서 이름이 지워지면 더는 그 가문 사람이 아니니 양반이 아니었다.
“평생 다른 사람을 아래에 두고, 우습게 여겼으니 이제부턴 그 바닥에서 살아 보시오.”
“싫사옵니다. 감히 따를 수 없사옵니다.”
“어명을 어기는 것은 반역임을 모르는가.”
강이 말을 마치고 그대로 가려 하자 청아가 앞을 막아섰다.
“또한 대제학과 도총관은 최하위 문반직인 참봉으로 명한다.”
“…….”
“그리 전하라.”
“전하께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십니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경악하고 말았다. 그러나 강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는 얼굴로 청아를 응시했다.
“일을 저지를 땐 뒤처리도 생각했어야지.”
“…….”
“지키고 싶은 게 많았으면 잠자코 있었어야지. 자신을 위해 남을 짓밟아 놓고, 정작 자기는 밟히기 싫다는 건가?”
강이 비웃듯이 웃으며 청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섰다. 두 사람의 간격이 이토록 가까운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가까이 와 있었다.
“우습군.”
“소첩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과인도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야. 그러니 그만 까불고, 받아들여. 한 번 더 앞을 막는다면 노비로 내칠 테니까 생각하고 행동해.”
살기 가득한 말에 청아는 감히 강이 전각을 벗어나 나갈 때까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당장 아버지를 불러와라.”
“마, 마마…….”
“뭐 하느냐! 어서 가서 내 아버지를 불러오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연 상궁은 명을 받들 수 없기에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 *
만남과 이별은 항상 붙어 다녔다. 오늘의 이별은 언젠가의 만남을 뜻하게 될 것이다.
어명으로 떠나야 하는 도아의 가족들이 짐을 꾸린 채 마당에 모여 있었다. 하인들도 모두 내보내고 몇 명만을 남기기로 했다.
“정말 소인 없이 괜찮으시겠어요?”
“백 번 묻는구나. 곧 전하께서 오실 테니 괜찮다.”
도아는 그리 말하며 무이의 댕기에 묶인 천을 풀어서 들고 있던 붉은 비단 댕기를 달아 주었다.
“울지 말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모시도록 해. 알겠지?”
“네……. 소인이 항상 마님 곁에 있어 드릴게요.”
“너라면 안심이야.”
울먹이는 무이를 뒤로하고, 부모님과 도진이 서 있는 곳으로 옮겨 갔다. 모두 도아의 뒤에서 운 듯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몸 조심히 내려가세요, 오라버니.”
“그래, 너는……. 괜찮겠지.”
“네, 저는 괜찮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도아는 그리 말하며 함께 오누이의 정을 나누었던 도진을 안아 주었다.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자란 도아의 곁에는 늘 도진이 있었다.
잘 걷지 못하는 도아의 손을 잡아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말하는 법과 뛰는 것을 알려 주며 든든한 세상이 되어 준 오라비였다.
“아버지.”
그리고 치열을 안아 주었다. 한없이 좁아진 어깨와 처진 허리뿐만 아니라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한 치열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도아를 사랑했다.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딸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평생 외롭지 않게,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내게는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너를 만나 위안을 받고, 진정한 사랑을 배운 것은 아버지였다. 고맙구나.”
“부디 몸 건강히…….”
도아는 차마 목이 메어 말하지 못하고, 치열의 품에서 나와 미소로 대신해 주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를 활짝 웃는 얼굴로 안아 주었다.
짧았던 순간은 끝이 났다. 어머니를 가마에 태우고, 치열과 도진이 말에 오른 채 서서히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도아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가족들이 떠난 사저는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밤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치안은 대문 앞에 군사들이 지키고 서 있기에 안전했다.
자정을 앞에 두고,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도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비가 전국에 뿌린 인어 현상금을 두고 전국에서 사냥꾼들이 몰려든 것이다.
양반이라는 신분에 모두 눈치만 보며 망설이고 있을 때 미끼가 던져지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할 군사들은 무슨 일인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어둠 속 사냥꾼들의 이가 훤히 드러나며 웃는 얼굴이 보였다.
“포상금 오백 냥은 거저구만.”
“조심해라. 그러다 인어한테 영혼 빼앗기는 수가 있어.”
“그래 봤자 지가 물속에서나 인어지.”
촛불이 꺼진 별당을 향해 서서히 포위망이 좁혀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