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궁,왕을적시다 (79)화 (80/93)

제 79 화 인어 포획 포상금

강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나룻배는 사공의 능숙한 솜씨로 유유자적하게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 뱃길을 밝혀 주었다. 은하는 그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선재를 떠나던 날이 어스름 떠올랐다. 도아에게 진주를 받고 용기를 얻은 은하는 곧장 결심이 섰고, 강은 지체 없이 계획을 실행했다.

‘낙선재에 불을 지르신단 말이옵니까?’

‘참담한 결과겠지만 그대의 묘연한 행방에 대해 누구도 미심쩍은 생각을 가져선 안 될 것이오. 작은 불씨가 화염을 만드는 법이니 단단히 방비해야 하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과인이 물을 말이오. 그렇게 해도 되겠소?’

숨 가쁘게 대궐을 빠져나와 뒤를 돌아봤을 땐 저 너머로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펄펄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아래로 두 사람은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이 길에 동행을 택한 김 상궁은 저만치 앉아서 흐뭇한 눈길로 한 쌍을 바라봤다.

“사찰에 계속 계셨습니까?”

“네,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제가 마다하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게는 이 길밖에 없었습니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인겸은 자신이 갖고 있던 짐을 풀어서 목도리를 꺼내 은하의 목에 단단히 둘러 주었다. 

“나는 여전히 그날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순간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 자신을 탓하고, 원망하는 것에 내 모든 시간을 썼습니다.”

“서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끝까지 가 보지도 않고, 그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함께하기로 한 순간에도 그의 속마음을 듣는 은하의 가슴은 아팠다. 자기만큼 그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대의 손을 잡고, 야반도주라도 할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내심 바랐었지요.”

“네, 그 눈빛을 읽었으면서도 난 비겁하게 도망쳤습니다.”

“…….”

“해서 이번에는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와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뺨을 가득 메운 눈물은 그의 손길에 의해 닦아졌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길은 여전했다.

“다시는 그대를 홀로 두고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예, 언제까지고 그리하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

“꿈만 같아서…… 두려우면서도, 가슴이 시릴 만큼 좋습니다.”

그와 함께 보냈던 장소를 화폭으로 그리며 어루만지던 때를 떠올렸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추억이 다시금 펼쳐졌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던 인겸이 가까이 다가와 눈물짓는 은하를 안아 주었다. 

“자리를 잡으면 정식으로 혼례부터 올립시다. 하루라도 빨리 그대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든…….”

눈물은 곧 기쁨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그려 갈 미래를 꿈꾸며 서로의 체취에 코를 묻었다. 

* * *

국장이 끝나고 삶의 기운을 놓은 부원군은 교태전에서 나온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식을 앞세웠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사랑채에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시야에 부부인이 들어왔다.

“이제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이 큰 집도, 많은 노비도 모두 필요 없어졌습니다.”

“…….”

“손에 쥐고 있은들 무슨 소용입니까?”

부원군더러 들으란 듯 덤덤하게 말하자 허공을 쫓던 그의 시선이 부부인을 향했다.

“필요한 만큼만 갖고, 지내던 곳으로 돌아갑시다.”

“…….”

“남은 재산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고, 가볍게 갑시다.”

“…….”

“듣고 계십니까?”

연거푸 묻자 부원군은 겨우 고개만 두어 번 끄덕거려 주었다.

“그리 알고, 정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부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다가 멈춰 서서 다시 뒤를 돌았다.

“은하가 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살아 있을까요?”

날아든 칼에, 부원군의 늙은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 * *

새가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소리와 더불어 따듯한 햇살과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도아의 온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눈을 뜨자 간밤에 손을 꼭 잡고 함께 자리에 들었던 어머니가 눈앞에 보였다. 도아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어린아이처럼 품을 파고들었다. 

“시집을 가서도 어미 품을 찾느냐.”

“이 냄새가 너무 그리웠어요.”

“아이처럼 구는구나.”

“어머니 곁에서는 항상 아이고 싶어요.”

아기 새처럼 계속해서 품을 파고들어 꼭 끌어안자 부인도 싫지만은 않은 듯 따라 웃으며 도아를 끌어안았다.

부인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늘어뜨린 도아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잘 땋아서 처음으로 쪽 머리를 손수 해 주었다. 

“어느새 시집을 가서 머리에 비녀를 꽂았구나.”

“댕기 머리보다 올린 머리가 더 예쁘죠?”

“어린아이 같은 말을 하는구나. 뭔들 안 예쁠까.”

잘 만진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닳아 없어질 듯 도아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 네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무슨 말이요?”

“네가 시집을 가거든 어미 비녀 중 가장 아끼는 것을 달라 했지.”

“아…….”

“그날이 까마득하게 여겨졌는데 오기는 왔구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도아의 얼굴은 병이 깊이 든 모양새였다. 부인은 애써 눈물을 삼키고 다시 도아를 안았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죄송스럽지만,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서 기뻐요.”

“어미도…….”

“사랑채에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기다릴 테니 그만 건너가요, 어머니.”

“오냐, 두 사람이 애타게 기다리겠구나.”

폐서인이 된 처지로 비단을 걸칠 수 없기에 소복 차림을 입어야 했다. 어떤 사치도 용납되지 않았다.

사랑채로 건너가자 치열과 도진이 나란히 앉아서 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와 다르게 도아는 한껏 웃으며 들어갔다.

“네 얼굴…….”

“예?”

“아니다, 잘 잤느냐?”

“예, 어머니 품에서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잤습니다. 오라버니는요?”

“오라비도 잘 잤다.”

무너져 가는 도아의 얼굴을 보고 도진이 소태를 씹은 얼굴로 겨우 앞의 말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을 모두 정리하고, 네가 어릴 적 지내던 별저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 가면 너를 살펴 주던 의원이 있을 것이다.”

“저는 이곳에서 전하를 기다리기로 약조를 했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리해도 괜찮겠느냐?”

“이미 그분의 아내로 평생을 살기로 백년가약을 맺질 않았습니까. 그분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말고, 내려가시면 됩니다. 이곳은 아무래도 말이 많아서 더 지내시기 힘들 것입니다.”

도아는 그렇게 말하고 앞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메말라서 갈라져 가는 입술에 한 방울 물기가 묻어났다.

“참, 가실 때 무이도 함께 갈 것입니다.”

“그 아이도 없이 혼자 괜찮겠느냐?”

“전하께서 계시질 않습니까? 괜찮으니 데려가서……. 그 아이를 딸이라 여기고, 많이 사랑해 주시고 아껴 주세요.”

“도아야.”

“제 곁에서 평생을 바쳐 고생만 한 아이입니다. 부디 따듯하게 품어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

번갈아 가며 곁에 앉아 있던 가족들을 부르며 눈을 맞추었다. 무이를 자신처럼 여겨 달라는 각별한 부탁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내일 떠난다고 했다. 사랑채 밖으로 나온 도진과 도아는 나란히 걷다가 소란스러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만 별당으로 가 보거라.”

그렇다 하여 그들의 외침이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도아를 향해 괴물이라 소리치며 이곳에서 떠나라 외쳤다. 

곧이어 사저를 지키고 있던 군사들과 백성들이 부딪치는 듯 보였다. 도진은 도아의 손을 잡고 별당으로 향했다.

“너를 모르고 함부로 떠드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

“예, 알고 있습니다.”

“너…….”

“예?”

도진은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였다.

“대체 어디가 어찌 아픈 것이냐.”

“…….”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던 어릴 때와 같질 않으냐.”

“부모님도, 오라버니도 이미 알고 계시질 않습니까.”

그 얼굴을 보고 대번에 알아차렸다. 대궐의 어의가 손을 놓았으니 마을 의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괜찮을 것입니다. 다 괜찮아질 겁니다.”

“그러면 너는?”

“저도 괜찮습니다.”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생이 다하여 죽기만을 기다린다고, 가족들에게만은 소리를 내 말할 수가 없었다.

“전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

“예……. 마음이 바다와 같이 한량 넓은 분입니다. 이리 제멋대로인 저를 있는 그대로 봐 주시고 아낌없이 그분의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은애하는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대궐에 있을 강을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진은 그들의 결말이 훤히 보여 더는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 * *

대비의 부름을 받은 대제학이 눈치를 살피며 도둑고양이처럼 자경전을 찾아왔다. 그는 연신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듯 보였다.

“주상이 갑자기 선위를 하겠다더니 귀인을 폐출시켰습니다. 길이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

“귀인 그것이 요술을 부려 주상을 꾀어낸 게 틀림없습니다.”

“송구하오나 지금은 주상 전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심이 모두를 위한 길이옵니다.”

“김 숙의를 그 젊은 나이에 과부로 살게 하실 겁니까?”

안 그래도 이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부아가 치밀었다. 차라리 번듯한 가문에 시집을 보냈다면 정략적인 관계로 정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귀인이 사가에 머물고 있으니 손쓰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예?”

“전국의 인어를 노리는 사냥꾼들에게 미끼를 던지면 됩니다.”

“사냥꾼들을 동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멸종된 줄 알았던 인어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졌을 테니 노리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의 손을 빌려야겠습니다.”

폐서인된 후궁을 사냥꾼들의 손을 빌려 죽이겠다는 계획이었다. 대제학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달싹였다.

“이 사람에게 목숨이라도 바쳐 충성하겠다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내 대제학의 충심이 그저 한 철인 줄 알았습니다.”

“망극하옵니다.”

“전국에 인어를 죽여 포획한 자에게 현상금을 주겠다고 방을 만들어 살포하세요.”

“…….”

“현상금은 오백 냥.”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이며 오백 냥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인어 기름으로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현상금 따위는 돈도 아닐 겁니다. 방의 목적은 귀인의 위치를 알리는 겁니다. 또한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이들이 방을 보고 혹하여 움직일 테니 너도나도 달려들 게 분명합니다. 서두르도록 하세요.”

차마 대제학은 대비의 명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죽상인 얼굴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대비가 혀를 찼다.

‘내 주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해도 네년이 죽는 것은 꼭 보고야 말 것이다.’

* * *

총애를 받지 못하고 품계도 올리지 못한 후궁은 화려함을 누릴 수 없었다. 소박한 전각 앞에 선 강은 후궁 처소임에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기별도 주지 않고 불쑥 찾아온 강을 맞이하며 나은은 어색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것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과인이 선위를 하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오.”

“예, 전해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두고 도총관이 새로 지시한 것은 없었소?”

“예? 지, 지시라니요?”

“그대 부친의 명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오.”

“……송구하옵니다.”

“과인이 처음부터 숙의를 찾지 않고 멀리한 것은 부친의 의도가 다분히 노골적이었기 때문이었소. 이후 숙의가 보여 준 행동은 매우 적절하지 못했지.”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성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은은 죄를 알기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깊이 숙였다.

“허나 그대의 천성이 온순하다는 것은 알고 있소.”

“…….”

“그간 따듯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해 미안하오.”

“전하…….”

“오늘 이렇듯 숙의를 찾아온 것은 선위 전에 후궁의 거취 문제에 대해 정해야 할 것 같아서였소.”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강에 대한 두려움으로 입을 꾹 다문 나은이 말을 기다렸다.

“마음은 주지 못했지만 삶의 평안함은 주고 싶소. 과인의 뒤를 이어 도화군이 왕위에 오르면 숙의에게 궁가를 내어 줄 것이오. 그곳에서 3년을 지내다가 원하면 재가를 해도 좋소.”

“예? 재, 재가라니! 재가라니요?”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지내던 곳에서 지내도 되오. 부족함 없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도화군이 도와줄 것이오.”

“하지만…….”

궐 밖 아녀자들에게도 재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왕의 여자로 살던 후궁에게 재가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인이 해 줄 것이 이것뿐이오.”

“…….”

“미안하오, 숙의.”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았다. 뜰에서 강을 배웅하던 나은의 어깨에 눈이 내려앉았다.

하늘에선 포슬포슬 눈이 흩날렸다. 어깨에 떨어진 눈은 순식간에 녹아 버리고 없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