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화 대궐에 출몰한 괴물
가문의 저주가 끝났다는 말에도 치열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도아가 여전히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희미하게 웃던 여식의 얼굴이 못내 가슴에 남아 잠을 이룰 수 없게 하더니 이런 날이 오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대비 조 씨는 앞에 있던 서책을 와르르, 치열을 향해 무너뜨렸다. 무너진 서책들이 날카롭게 치열을 향해 미끄러졌다.
“입이 딱 붙은 것을 보니 양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좌상.”
“모두 소신의 업보로 빚어진 일이옵니다. 귀인마마는 한사코 입궐을 거부했지만 소신이 가문을 위해 등 떠밀 듯 입궐시킨 것이옵니다. 그러니 모든 탓은 소신에게 있사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귀인이 무죄인 것은 아닙니다.”
치열은 벌겋게 충혈된 눈을 들어서 대비를 바라봤다. 보료에 앉은 여인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였다.
“사람도 아닌 것이 감히 주상을 모셨는데 죄가 없겠습니까?”
“…….”
“인어, 결코 사람이 아니지요.”
“귀인마마는 모두와 똑같이 어미의 배 속에서 아홉 달을 기다린 끝에 태어났습니다. 또한 말을 하고, 걸음마를 익히며 여느 또래와 다름없이 자랐습니다. 소신에게는 목숨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자식이옵니다. 송구하오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은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당장 목을 친다고 해도 치열은 이 말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부모를 앞에 두고, 대비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한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아낀다 했으니 부녀간의 정마저 어쩔 수는 없을 겁니다. 그건 좌상이 알아서 하세요. 난 기필코 좌상의 가문과 귀인을 국문하여 국법의 지엄함을 몸소 보여 줄 것입니다.”
“송구하옵니다.”
“이 사람을 기만했던 일을 땅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대비가 으름장을 놓고 있을 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대비마마! 소인 엄 상궁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짜증스레 묻자 밖에서 고하던 엄 상궁이 안으로 들어왔다. 헐레벌떡 들어오던 상궁이 치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궐 후원에 있는 호수에…… 귀, 귀인마마가…….”
“귀인이 뭐?”
귀인을 들먹이자 엎드려 있던 치열이 고개를 쳐들고 엄 상궁을 살폈다.
“빠졌다고 하옵니다.”
“귀인이 호수에 빠졌다고?”
“예……. 대비마마.”
“흠, 가 봐야겠구나. 좋은 구경거리가 아니냐?”
치열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 듯 치열은 두서없는 모습을 보이고는 자경전을 떠나 버렸다.
* * *
위태로웠던 대궐 생활처럼 호수에 껴 있던 살얼음이 이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와장창 깨져 버리고 말았다.
그 위에 서 있던 도아 역시 깨진 얼음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다. 야위어 낙엽처럼 가벼워진 도아는 속절없이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도아는 힘없이 눈을 감은 채 물에 몸을 맡겼다.
‘너무 피곤해. 눈조차 뜨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피곤해. 내 살면서 이토록 무기력해지기는 처음이구나.’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은박 장식이 박힌 치마 너머로 푸른빛의 영롱한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 밖에서는 도아가 인어란 것을 모르니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난리가 났다. 무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호수의 입구로 내달려 물에 뛰어들려 했으나 란희가 잡았다.
“내관들이 들어갈 것이옵니다.”
“마마……. 귀인마마…….”
“진정하세요.”
흐느껴 울고 있는 무이를 두고, 세 명의 내관들이 황급히 호수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물에 능한 듯 익숙하게 헤엄을 쳐 잠수했다.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간 내관들의 눈앞에 도아를 둘러싼 빛이 보였다. 거침없이 헤엄을 치던 이들이 멈춰 섰다.
세 사람의 얼굴에 나란히 당황한 빛이 띠었다. 이윽고 치마 밖으로 유유히 물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꼬리가 보였다.
“우아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물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소용돌이에 갇힌 듯 버둥거리는 꼴이었다.
서둘러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내관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호수 밖으로 다시 헤엄을 쳤다.
“우리 마마는 어쩌고……!”
“괴, 괴물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물속에…… 괴, 괴물이 있사옵니다!”
내관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호수에 괴물이 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중 하나는 넋을 놓고 멍하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느새 호수 입구로 걸어온 청아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내관들을 향해 물었다.
“호수에 괴물이 있느냐?”
“예! 틀림없사옵니다. 소인들 셋이 똑같이 보았사옵니다.”
“그래? 허면 귀인마마는 어디에 계시느냐?”
“예?”
“호수에 괴물밖에 없다면 귀인마마는 어디로 사라졌느냔 말이다.”
“그, 그것은…….”
그러자 말을 이어 가던 내관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본 것이, 괴물이 아니라 도아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한동안의 적막을 거두고, 호수가 일렁거리며 찬란한 빛이 주변을 에워쌌다. 유유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어가 된 도아였다.
“인어야!”
소란에 몰려들었던 궁녀들과 주변에 있던 내관들은 도아의 모습에 일제히 경악했다. 어느 틈에서는 비명도 들렸다.
“마마!”
그 곁으로 황급히 달려간 무이가 물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도아를 향해 달려가 팔을 잡아 주었다.
다리가 없었기에 무릎이 잠기는 물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이미 드러난 꼬리는 모두의 경악 속에 황홀한 빛을 뿜었다.
무이는 저가 입고 있던 치마를 우악스럽게 찢어서 도아의 꼬리를 감춰 주려 했다. 그 손길이 어찌나 애잔했던지, 도아가 그 손을 잡았다.
“옛말에 인어가 사람을 홀려 영혼을 앗아 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과연 귀인마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너, 모두 알고 있었구나.”
“조금도 몰랐습니다. 소첩의 안일한 실수로 벌어진 일일 뿐이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손을 뻗어서 가녀린 목을 부러뜨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노로 가득 찬 시야로 대비와 치열이 보였다.
‘아버지…….’
이런 모습을 가족에게만큼은 결코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부녀의 눈이 허공에 닿자 치열의 주름진 눈가로 눈물이 줄줄이 흘렀다.
“당장 관군을 불러 저 사특한 괴물을 포박하라 전해라!”
대비 조 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모두가 듣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자 엄 상궁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치열이 물로 들어서려는데 단호하게 막아서는 손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강이 보였다.
“저, 전하…….”
“주상!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치열을 막아 세우고 강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용포에 차고 있던 옥대를 풀어서 거칠게 집어 던지고, 용포를 여미고 있던 것을 풀었다.
뒤에서 대비가 피를 토하듯 고성을 질렀으나 강의 눈은 오직 위태롭게 갇혀 있는 도아만을 향해 있었다.
물속으로 거침없이 들어온 강은 용포를 벗어서 도아의 꼬리를 덮어 주었다. 고개를 숙인 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여 안아 들었다.
용포로 가린 덕분에 물 밖으로 꼬리가 드러나지 않고 위태로이 가려졌다.
“내게 기대시오.”
그는 간신히 떨리는 목청을 다듬어 한마디를 건넸다. 도아는 파르르 떠는 손을 뻗어서 그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얼굴을 묻었다.
돌아서서 물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 있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상께서는 모두 알고 계셨던 겁니까?”
“…….”
“주상!”
대비의 말에도 강이 무시하고 그냥 가려 하자 대비가 고함을 치며 불러 세웠다. 그러자 강은 고개만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입 밖으로 개소리를 지껄여 분란을 만드는 것들 모두 사지를 찢는 형벌에 처할 것이다.”
일순간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강은 결코 농이 아님을 눈빛으로 보여 주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 청아가 있었다.
“명심하라. 어명이다.”
그 눈빛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청아는 숨죽인 채 자신에게 머문 시선이 거둬지기만을 기다렸다.
* * *
서예를 하던 중에 소식을 접한 은하는 신중하게 써 내려가던 종이 위로 붓을 떨어뜨렸다.
“마마께서는 알고 계셨사옵니까?”
“…….”
“마마?”
“대궐 안에 모르는 이가 없겠구나.”
은하가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뱉었다.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지 않아 곤두박질쳤다.
“내 처지가 이러하니 가 볼 수도 없구나.”
“소인이 건너가서 다시 소식을 알아 오겠사옵니다, 마마.”
“김 상궁이 수고를 좀 해 주시게.”
“망극하옵니다.”
다시 김 상궁을 보내고 은하는 깊은 시름을 토했다. 비밀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지금 당장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큰일이구나.”
떨어뜨렸던 붓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 *
웅성거리던 자리를 벗어나자 도아에게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두 사람의 모습은 대전 궁녀와 내관들이 철통 보안으로 가린 탓에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누구 하나 힐끔거리지 않고 바닥만을 보고 걸었다. 그 속에서 도아는 비로소 숨을 토해 냈다.
처소로 가는 동안 물이 마르자 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눈이 봤으니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괴, 괴물이 있습니다!’
내관이 뱉었던 말이 잊히지 않아 가슴을 찌르고 찔렀다. 도아는 부여잡은 옷깃을 놓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
들릴 듯 말 듯 흐느껴 우는 소리가 강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어금니를 꽉 문 채 분노를 잠재우려 노력했다.
처소로 들어와 보료 위에 조심스레 도아를 내려 주었다. 그러나 도아는 여전히 그의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놓지 않았다.
“이제 괜찮소.”
한참을 떨고 놓지 못하던 손이 스륵 풀렸다. 강은 붉게 물든 눈을 보며 아프지 않게 쓰다듬어 주었다.
“귀인.”
“…….”
“도아야.”
이름을 불러 주자 허공을 바라보던 도아의 시선이 돌아왔다.
“내 전부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의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것이오.”
“나는…… 난, 죽고만 싶었습니다.”
“…….”
“그리 살고 싶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죽어 없어졌으면 싶었습니다.”
그 심정을 알기에 강은 참지 못하고 도아를 와락 품에 안았다. 한쪽 팔로 감아도 모두 감길 만큼 야위어 버린 도아를, 애달프게 안았다.
“그대를 건드린 자들, 가만두지 않아.”
“전하…….”
“내 성히 두지 않을 것이니 그대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에 힘쓰시오.”
“…….”
“부디 그 순간은 잊길 바라오.”
그는 간절하게 원했다. 도아에게 영원히 악몽이 될 일을 잊어 주길 바랐다.
밖으로 나와 무이에게 당부를 남기고, 뜰로 나가자 상선이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서 있었다.
“전각 앞에 대전 내관을 세워 지키게 하고, 과인 말고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여라.”
“어느 누구라도 말씀이시옵니까?”
“대비마마라 할지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귀인의 처소에 다른 이가 출입하여 불상사가 빚어진다면 변명 따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지금 당장 세워라.”
말을 마치자 상선이 물에 젖은 용포를 강의 어깨 위에 얹어 주었다.
“속히 관군을 귀인의 사가로 보내고, 어명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예, 전하.”
“좌상이 아직 대궐에 있을 것이니 상선이 사저까지 동행하라.”
준비되어 있던 연에 오르자 차근차근 명을 읊조리던 강의 얼굴이 갑자기 서슬 퍼렇게 변했다.
“김 숙의 처소로 가자.”
칼 같은 어명이 떨어지자 모두 숨을 죽인 채 연을 돌려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