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화 왕을 적시다
색정적으로 흘러넘치는 물을 바라보던 도아는 물 밑으로 몸을 가라앉히며 뽀얀 가슴을 애써 숨겼다.
등 뒤로 뜨거움 숨결이 맞닿았다. 강이 두 팔로 떨고 있는 가녀린 양어깨를 어루만지며 끌어안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멀 지경이야.”
그의 입술이 어깨에 닿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도아는 온몸을 간지럽히는 기운에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어느새 그가 몸을 돌려세워 도아와 눈을 마주했다. 수증기로 안개에 갇힌 듯 두 사람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은 다가가 이마며 눈, 양 볼, 코끝에 입을 수없이 맞추며 기다렸던 입술에 안착했다.
두 손으로 작은 얼굴을 잡아 더 가까이 제게 끌었다. 두 사람의 입술에서 나는 소리가 끈적끈적하게 울렸다.
간신히 도아에게서 떨어진 강은 가슴을 가리고 있던 한쪽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넘겼다.
“저, 전하…….”
“예뻐.”
“…….”
“숨이 멎을 것 같아.”
욕정으로 타오른 강의 두 눈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도아를 원하고 있었다. 다시 다가온 입맞춤으로 도아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 안아……. 주세요.”
거칠게 들어오는 강을 겨우 밀어내고 도아가 꺼낸 말이었다. 강은 믿기지 않는 눈초리로 도아의 턱을 살며시 잡아 제 눈에 고정시켰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했소?”
“네…….”
“시작하면 그대가 애원해도 멈출 수 없소.”
“멈춰 달라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입맞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마치 도아의 온몸을 흡수하려는 듯 입 안을 핥아 빨아들였다.
도아의 입술을 진득하게 탐하던 입술이 어느새 목덜미로 내려갔다. 점차 쇄골을 지나 더 아래로 내려갔다.
“흡……!”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고, 생각이 가로막힌 듯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쾌락에 빠진 몸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듯 제멋대로 붉게 물들어 강을 원하며 허리를 비틀었다.
“난 한계요.”
“……네?”
말을 마친 강은 숨을 헐떡이며 목욕통 난간에 도아를 번쩍 들어서 앉혔다. 물에 넘실거리며 가리고 있던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아는 화들짝 놀라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강은 웃으며 그 팔을 풀어 소중히 쓰다듬고는 입술을 눌렀다.
그러는 사이 도아의 꼬리에서 물기가 떨어져 나가고, 매끈한 두 다리가 드러났다.
“가만히 있으시오.”
부끄러움에 온통 붉어진 도아가 멀거니 눈을 깜빡거리자 강은 서둘러 물 밖으로 나와 밖에 벗어 두었던 검은색 야장의를 집어 들었다.
그것으로 도아의 나신을 꼼꼼히 감싸 가려 주었다. 제 손길에 순응하는 도아를 바라보던 강은 다시 온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도아를 안아 든 강은 상의를 벗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 저, 전하…….”
문소리에 다가오려던 무이가 두 사람의 흠뻑 젖은 모습에 화들짝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부르기 전에는 누구도 들이지 마라.”
“예?”
“어명이다.”
눌러 말하는 강의 목소리는 거칠기 그지없었다. 처소로 들어와 문이 닫히자 강은 안고 있던 도아를 내려 주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젖은 몸을 둘러싸고 있던 야장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어둠 속에 흰 나신이 드러났다.
다가온 입술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같은 향기가 났다. 땀과 물이 어우러져 끈적끈적해졌다.
강은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준비되어 있던 이불 위로 천천히 도아를 이끌어 눕혔다.
“그대가 너무 좋아서.”
“…….”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
“…….”
“이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아.”
절절한 고백이 끝나자 다시 입술이 다가와 도아의 숨결을 빨아들였다. 평생 이어져도 좋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도아의 온몸을 어루만지고 빠짐없이 곳곳에 입을 맞추며 열꽃을 피웠다.
“아프면 천천히 할 테니까 말하시오.”
“네…….”
두려움과 설렘으로 뒤엉킨 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 몸을 지배한 강을 올려다보았다.
몸 안으로 그가 들어올수록 참아 보려 했던 고통의 범주를 넘어선 듯 도아의 얼굴이 고통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미…… 미안…….”
“하윽…… 아, 아파…….”
평소 같았으면 도아의 고통에 당장 모든 것을 멈췄을 그였지만 이번에는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나지 못했다.
도아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밀어냈다. 그러는 사이 강이 고스란히 몸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처음이라, 그렇소. 많이 아픈 것이오?”
“네……. 찢어진 것 같아요.”
“미안하오……. 물러설 수가 없소.”
그게 미안하다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도아는 그를 야속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강이 괴로움에 허리를 움직이자 이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강은 최대한 참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도아의 목에 입을 맞추며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처음 경험하는 여체에 도무지 참아지질 않았다.
“윽……. 미안하오.”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허리를 흔들자 도아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강은 입술을 포개어 삼켰다.
오래전 입궐을 할 때 노 상궁에게 성교육을 받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생살을 찢는 고통이라 말했던가.
“흐윽…… 그, 그만…….”
“다 왔어…….”
어느새 고지에 다다른 강이 마지막을 터뜨리며 자지러지는 도아의 나신 위로 힘없이 쏟아져 내렸다.
가녀린 몸으로 처음을 경험한 도아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얼할 지경이었다. 도아를 배려해서 강이 많이 참은 것은 느껴졌지만 고통은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든 강이 숨을 헐떡이는 도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한 번 더 하자고 하면, 혼나려나?”
양심도 없지! 도아는 눈을 흘기며 그의 몸 아래서 빠져나와 등을 돌리고 누웠다. 그러자 강이 웃으며 뒤에서 안아 주었다.
그러고는 도아가 고뿔에 들 것을 염려하여 이불을 끌어다가 덮어 주고, 다시 안아 주었다.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든 두 사람은,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나신으로 서로의 품을 찾아 파고들었다.
* * *
온전히 그의 여자가 된 그 날, 도아는 꿈을 꾸었다. 온몸을 가득 채운 행복함이 닿은 곳은 피로 물든 바다였다.
300년 전 황금 인어가 죽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그날, 그 자리에 도아가 있는 듯 생생하게 피부로 전해졌다.
바다가 보여 주었던 환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생한 순간에 피비린내마저 코를 찔렀다.
화살과 창에 온몸이 찢긴 황금 인어가 그물을 뚫고 바다에 빠졌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는 인어가 이번에도 도아를 응시했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인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만나야 할 것이다. 허나,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인간들이 그리도 할 수 있겠느냐? 눈이 시뻘게져 팔아넘길 테지.’
저주에 대해서 읊조리는 황금 인어는 숨이 다한 듯 헐떡였다.
‘만일 그런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저주는 그 대에서 끝나고, 그 인어는…….’
듣지 못했던 끝자락이었다. 허우적거리며 다가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황금 인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항상 잡지 못했던 그 손을, 이번에는 잡을 수 있었다. 죽어 가는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뻐끔거리고 있을 때 황금 인어가 말했다.
‘그 인어는 죽을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도아는 힘들게 잡은 황금 인어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 * *
거칠게 숨을 마시며 눈을 떴다. 거칠게 뜬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과 흐린 빛을 담은 천장이었다.
생경한 꿈에 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죽음을 예견하는 황금 인어의 눈이 도아라는 인물을 예견한 듯 번뜩이고 있었다.
나신으로 강의 품에 안겨 있던 도아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곤 곁에 누워 잠든 강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저 꿈에 지나지 않아. 바다가 보여 준 환영에서도 보지 못한 것을 꿈에서 볼 리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눈을 감았으나 도무지 환영이 잊히질 않았다. 손끝에 황금 인어의 차가운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이던 도아는 다시 강의 품에 몸을 눕혔다. 그러고는 아이가 어미 품을 찾듯 더 깊이 파고들었다.
* * *
몸을 완전하게 회복한 도아는 이른 아침 단장을 마치고, 웃전에 문안 인사를 간다며 무이를 데리고 전각을 비웠다.
홀로 남은 란희가 마당을 쓸다가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처소 안에는 아무리 살펴도 뭐 하나 의심으로 삼을 만한 게 나오질 않았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제 목욕했던 곁방으로 건너갔다.
‘귀인마마는 예민하셔서 목욕할 때 주변에 외부인이 들락거리는 것을 싫어하셔. 그러니 마마께서 목욕하실 땐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
어제 무이가 신신당부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대전에서 보낸 호화스러운 목욕통이 놓여 있었다.
“엄청 크다. 이 안에 물을 채우려면 죽어나겠네.”
중얼거리면서 커다란 목욕통을 만지작거리며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휴……. 아무것도…… 어?”
이번에도 수확 없이 돌아서던 찰나 물을 비운 목욕통 끝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무언가가 반짝반짝 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빈 목욕통으로 조심스레 몸을 들여 반짝이는 것을 향해 홀린 듯 걸어갔다.
구석에 박혀서 제대로 보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란희는 손을 뻗어서 그것을 움켜쥐고 일어났다.
“무슨 비늘 같은데……. 이게 뭐지?”
그것은 간밤에 도아의 꼬리에서 떨어진 ‘인어 비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