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화 천불이 떨어지다
대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이에게 도아의 편지를 전해 받은 강은 몇 줄을 읽기도 전에 모두를 두고, 홀로 대전을 뛰쳐나갔다.
손에는 도아가 남긴 편지 한 장이 꽉 쥐어져 있었다. 강은 모두의 부름을 무시한 채 빗속을 내달렸다.
하늘에서는 속절없이, 사랑하는 여인의 숨을 갉아먹고 자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마지막을 편지로 대신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전하를 뵈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편지를 대신하여 작별을 고합니다.」
대궐로 향하는 길목마다 강이 흘렸던 기쁨의 눈물, 용안에 넘치던 미소는 고통으로 변하고 있었다.
「바다의 말이, 인어의 목숨을 내놓으면 비를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전하의 곁에서 행복하여 모두의 울부짖음을 외면했던 저를, 감히 용서해 달라 청합니다.
늦게나마 전하의 눈물을 바로 닦아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짧았던 시간에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음 생을 기약하며, 전하께서 남겨 주신 동심결을 품고 갑니다.
부디 다음 생에서도 잊지 마시고, 저를 먼저 알아봐 주세요. 전하.」
목 끝까지 차오른 가파른 숨통에 강은 피를 토할 듯 고통스러운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기우제를 앞두고 가족들을 대궐에 초대해 달라 청하던 얼굴이 떠오르자 온몸에 칼날이 날아들어 박히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주신 동심결이, 소첩은 참으로 좋습니다.’
‘항시 몸에 지니고 다녀 주니 그저 고맙소.’
‘평생을, 죽어서도…….’
‘응?’
‘몸에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죽어서도 지니고 있겠다던 동심결, 그 말을 떠올린 강은 어느새 도아의 전각에 당도했다.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들어서자 흙바닥에 엎드려 있는 란희의 모습이 보였다. 강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홀린 듯이 처소로 향했다.
강의 걸음이 닿는 곳마다 바닥에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에는 어의와 의녀가 들어서 도아를 살피고 있었다.
“……도아야.”
흐릿한 음성을 들은 어의와 의녀는 강을 보고는 서둘러 길을 열어 주었다.
그들에게 가려져 있던 도아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강은 고통에 눈을 감아 버렸다. 이윽고 흐르는 눈물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간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아는 시공을 초월한 듯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그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서 미동조차 없는 도아의 손을 찾아서 잡았다.
‘야속한 사람…….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대 목숨으로, 비가 오면 고맙다 할 줄 알았소?’
부여잡은 손등에 이마를 묻은 채 숨을 고르던 강이 나지막이 말했다.
“살아 있느냐.”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에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아직은, 그렇사옵니다.”
“숨김없이 말하라.”
“귀인마마는 어려서부터 병약하시어 매해 고비를 넘기며 지내셨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런 탓인지 급작스레 혼절하시어 맥이 제대로 잡히질 않고 계시옵니다.”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라는 명이었다. 이에 어의는 두 손을 꽉 쥔 채로 솔직히 아뢰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대로라면 깨어나지 못하실 수도 있으시옵니다.”
“깨어나지…… 못해?”
“예, 처소나인이 마마를 발견했을 당시 숨이 멎어 계셨다고 하옵니다.”
“하…….”
“소신이 혈 자리에 침을 놓아 가까스로 희미하나마 맥이 돌아오긴 하셨으나 앞의 정황상 깨어나지 못하실 수 있으시옵니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숨이 멎는 고통의 문턱에서 얼마나 아팠을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도아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순간마다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던 제 감정을 들키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그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나였소.’
어의는 자신이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 상태로는 탕약, 침 어떤 것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다시 날 좀 봐 줘. 그 눈으로……나를 바라봐 줘.’
이 악몽의 끝이 어디일지, 그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 * *
자경전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비가 워낙 거센지라 빗줄기가 잡히면 가려 기다리고 있던 은하는 창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대비는 대궐을 집어삼킬 듯 엄청난 기세로 몇 시진째 쏟아지고 있었다. 은하는 손을 뻗어서 비를 만져 보려 했다.
‘이 비를, 맞고 계시겠지.’
그 생각으로 어두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김 상궁이 두서없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마마! 중전마마!”
“경사스러운 날 어찌 그러는가?”
몸을 돌려세우자 김 상궁이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말하였다.
“귀, 귀인이 생사를 헤매고 있다는 전갈이옵니다!”
“……뭐라? 누가 생사를 헤매고 있어?”
“몇 시진 전에 귀인이 숨이 멎은 채 처소에 쓰러져 있는 것을 처소나인이 발견하여 어의가 들었사온데 별다른 차도가 없다 하옵니다.”
“숨이 멎다니! 어제 자네도 보질 않았는가?”
비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너무 황망한 소식이라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귀인에게 가 볼 것이니 차비하게.”
“예, 중전마마!”
김 상궁이 다급히 처소를 빠져나가자 은하는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어려서 병약하다고는 들었으나 근래 잘 지내는 듯 보여 마음을 놓았는데 어찌 이런 변고가 생긴단 말인가.’
기우제를 지내고 비를 맞으며 기쁨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을 강이었다. 그런 그가 하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어떠했을지 착잡했다.
* * *
거센 빗속을 뚫고 도아의 전각에 당도한 은하는 서둘러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대궐 안에 있는 모든 어의가 모두 집결해 있었다.
들어가자 모두 자리를 물리고, 두 사람만 남았다. 경계를 쳐 놓은 듯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전하, 신첩이옵니다.”
다가가 그를 불렀지만 눈은 도아를 향해 있었다. 생기 넘치던 사람이 근래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으나 이리될 정도는 아니었다.
활쏘기도 곧잘 했고, 문안을 와서 함께 산책도 하고 도란도란 정다운 얘기도 매일 나누었다.
하루아침에 숨이 멎어 쓰러질 정도로 위중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답니다.”
“귀인은 강인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고통에 갇혀 몸부림치고 있을 때 과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소.”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옵니다. 부디 자책하지 마옵소서.”
곁으로 가 앉자 빈껍데기만 이승에 남은 듯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도아가 보였다. 은하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
“이 사람, 어찌 이리도 전하의 속을 썩이시는가.”
속상한 마음에 던진 말에 되레 은하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고개를 돌리자 넋이 나간 듯 도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강이 보였다.
“선천적으로 병약하여 그 탓으로 고비를 넘기는 것일 뿐이옵니다. 저명한 어의들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더군.”
“어의들이 모두 손 놓고 있단 말이옵니까?”
침묵은 그렇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탕약을 끓이거나 침을 놓은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무엇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단 소리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귀인이 독에 취한 것은 아니옵니까?”
“…….”
“전하께서 경황이 없으셔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고서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리될 수는 없사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모두 그럴 것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숨이 멎어 혼절했으니 해괴한 일이었다.
차마 도아의 일을 얘기할 수 없기에 강은 묵고했다.
“어의들이 모두 보았소.”
“…….”
“모두 과인의 죄인 것을…….”
말을 흐린 강은 도아의 손등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을 때 상선이 조용히 들어와선 은하에게 무어라 말을 남기고 갔다.
“전하, 송구하오나…….”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대전에서 신료들이 전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
“상황이 이런지라 가 보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
“송구하옵니다, 전하.”
상선이 와서 전한 말은, 많은 신료가 강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왕의 자리가 이러했다. 공과 사, 명확하게 선을 긋고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으로 하며 살아야 했다.
자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생사를 오가는 정인을 두고, 대전으로 가야 할 만큼 강은 막중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순간 미칠 듯 후회가 되었다.
“전하께서 오시기 전까지 신첩이 귀인을 살피고 있겠나이다.”
은하의 말에 강은 손등에 대고 있던 이마를 떼고, 도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마며 뺨을 닳도록 쓰다듬어 주었다.
앓는 신음이라도 뱉을 만하거늘 얕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럼 부탁하겠소.”
“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옵소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다가와 강을 잡아 주었다. 곧장 쓰러진다고 해도 하등 무리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신을 신으려고 마루 끝에 서자 여전히 마르지 않고 내리는 비가 보였다.
“하…….”
비틀거리며 신을 신고 아래로 내려가 손바닥에 비를 받았다. 그러고는 온 힘을 다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던 비인가. 그 비가, 강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상선아.”
“예, 전하.”
“귀인의 친정에 사람을 보내도록 해라.”
허공을 바라보는 중에 힘없이 흐르는 강의 눈물에, 상선은 숨죽여 울었다.
“가서 귀인의 어머니를 입궐시켜라.”
“…….”
“어머니의 눈물이, 귀인을 가지 못하게 붙들어 놓을 것이니.”
“예……. 예, 전하.”
이대로 홀연히 도아가 떠나 버릴까 봐 그 두려움이 컸다. 가족을 생각하는 도아의 마음이 크니 그렇게라도 붙들고 싶었다.
다시 빗속으로 나아간 강은 준비되어 있던 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