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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왕을적시다 (39)화 (40/93)

제 39 화 동심결, 평생의 정인

동심결로 만들어진 노리개는 그 자태를 유유히 뽐내고 있었다. 도아는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대였소. 남장을 하고, 내게 호색한이라 당당히 말하던 여인을 머릿속에서 놓지 못했소. 사랑……. 받아 보지 못한 못난 사내라 그 마음을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소. 허나 두 번 다시 못나게 굴어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으려 하오. 난 그대에게 미쳐 있고, 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소.”

“…….”

“내 평생을 건 정인에게 주는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것을 도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날 그곳에서 그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소.”

“…….”

“혼란스럽다는 핑계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지. 내가 어리석었소.”

“…….”

“미안하오. 잘못했소, 귀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기다리고 원했던 순간이었건만 정작 현실로 다가오자 도아의 입술이 열리질 않았다. 

“귀인을 향한 연심을 동심결에 묶었소. 영원히 풀리지 않을 매듭, 평생을 걸고 지킬 연정에 대한 약조라 여겨 주시오.”

겨우 말을 하려 입술이 열리나 했는데 이윽고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바늘로 톡 터뜨린 듯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꾹꾹 담아 놓았던 감정이 터지고 나오자 막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도아가 끅끅 소리를 내며 울자 강은 당황하여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렇게 속상했소? 과인은 정말……. 미안하오. 정말 잘못했소.”

아이처럼 우는 도아를 바라보는 강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본인을 탓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귀인에게 화내지 않을 것이오. 어떤 일이 있어도 심술을 부리지 않고, 상처 주는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그만 좀 우시오. 응?”

“히끅…….”

“그대가 하라는 대로 뭐든 하겠소.”

뭘 시킬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그만큼 이 상황이 정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서서히 도아의 눈물이 잦아들자 여유가 생긴 강이 안도의 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유유히 광을 내는 진주들이 도아의 주변에 가득했다. 희귀한 광경에 강이 진주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진정이 된 듯한 도아를 바라보며 양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다 울었소?”

아이처럼 울어 버린 것이 부끄러웠는지 도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도 붓고, 코도 빨개졌다.

눈이 부었다는 느낌이 온 도아는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숨기지 않아도 되오.”

“…….”

“뭘 해도 예쁘니까.”

말을 마친 강은 손을 들어서 도아의 턱 끝을 잡아 고개를 들었다.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눈에, 눈물이 그윽하게 차 있었다. 강은 저도 모르게 그 눈에, 입을 맞추었다.

“그대만 받아 준다면 내 몸과 마음, 영혼마저 그대에게 바치겠소.”

“저는 저주받은 여인입니다.”

“그대가 아니라 가문이겠지. 그렇다 해도 상관없소.”

“그리고…….”

머뭇거리던 도아가 강의 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몸이 온전치 못하여 후사를 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응?”

“네?”

덩달아 당황한 도아가 되묻자 강이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과인의 아이를 낳아 줄 생각도 한 것이오?”

“예? 아……. 아니, 그것이…….”

“아무래도 좋소. 그대가 필요한 것이지 후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 보였다. 도아는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하는 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럼에도 전하께서 마음을 물리시지 않는다면, 동심결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지금 그 말, 무를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소?”

조급증에 강이 기쁨을 누른 채 물어 왔다. 이에 도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다가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강은 세상을 얻은 듯 활짝 웃다가 도아를 품에 안았다. 두 팔 가득 도아를 품은 채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대의 마음,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예, 전하.”

수줍은 마음을 담아 답을 올렸다. 어느새 떨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을 맞추었다.

“그만 보세요.”

먼저 눈을 피한 쪽은 도아였다. 그러자 강은 집요하게 따라가 다시 눈에 입을 맞추고, 빨개진 코끝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도 허락해 주겠소?”

“언제는 허락받고…….”

답을 회피하려 중얼거리던 입술이 강에게 먹혔다. 훅 들어온 강은 말랑거리는 촉감의 입술을 진득하게 빨아들였다.

뒤로 물러나기에 급급했던 도아는 어느새 벽에 닿아 도망칠 수 없어 강의 손에 붙잡혔다.

“하아, 하…….”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내뱉은 도아가 자신을 집어삼킬 듯 내려다보는 강을 바라봤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밤을 새울 기세였다.

“전하, 숨을 좀…….”

말을 채 맺을 틈도 주지 않고, 강은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도아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단숨에 눕혀 놓았다. 

한 번씩 말간 촉, 촉, 소리가 울릴 때마다 도아의 솜털이 곤두섰다. 처음 느껴 보는 야릇한 감정에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 같았다. 

순진무구함에 갇혀 있던 남녀 간의 감정에 휘말린 도아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두 팔로 강의 목을 끌어안은 채 매달려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강의 손길이 옷고름에 닿아 단숨에 풀어놓았다. 화들짝 놀란 도아가 움찔하며 멀어졌다.

“오, 옷고름은 왜요?”

“잡아먹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오.”

그는 그리 말하며 도아의 반응을 보고, 픽 하고 웃었다. 

“근데 왜…….”

“보고 싶어서.”

사내에게 저런 눈빛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원치 않으면, 그만하겠소.”

그런 눈빛으로 옷고름을 푼다면 누구든 마다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침묵의 의미를 안 강은 다시 도아의 입술을 삼켰다.

단단히 여며져 있던 붉은 저고리가 벗겨져 나가자 여린 여체를 보일 듯 말 듯 가린 속저고리가 드러났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살결이 드러난 도아를 훑었다. 강은 입고 있던 야장의를 벗어 던지고 상의를 벗었다.

‘이게 사내의 몸이구나.’

넓은 어깨를 타고 내려오니 곳곳에 잘 잡힌 근육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강의 벗은 몸을 감상하던 도아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대의 것이니, 보지만 말고 만져 보시오.”

“……괜찮습니다.”

“그럼 과인은 만지겠소.”

이번에도 작은 틈도 주지 않고, 강의 입술이 도아의 목선을 타고 내려와 어깨로 내려갔다. 

치마도 벗겨져 나가고 소복 차림이 되어서야 강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는 더 이상 벗기지 않고 도아의 입술만을 탐하였다. 

“잠은 낮에 자도 되겠소?”

“전하께서는 낮에 못 주무시잖아요.”

“어차피 이대로라면 잠자기는 틀렸소.”

“…….”

“갈증이 채워지질 않으니 부디 이해해 주시오.”

벌써 몇 시진째 입을 맞추고 있었지만 강은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체를 아무리 쓰다듬고, 입술을 마셔도 갈증은 이어졌다. 

* * *

밤을 꼴딱 새우고,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겨우 한 시진 남짓 잠을 청했다. 

소복 차림으로 강의 팔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었던 도아는 따가운 시선에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입술이 붉어졌소.”

그는 그리 말하면서 도아의 입술을 매만졌다. 밤새 물고 놔주지 않았으니 붉게 올라오는 것이 당연했다. 

“아프진 않소?”

“예…….”

괜찮다는 말에 강은 다시 애틋한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었다. 길었던 새벽에 나누었던 입맞춤과는 달랐다.

“설마…….”

“응?”

“밤을 새웠는데도 부족하세요?”

제 입술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강을 보며 도아가 건넨 말이었다.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입맞춤이었다.

“나가 보셔야죠.”

“그래야지.”

“그만 일어나세요, 전하.”

“그래야지.”

일어나라 밀어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강은 도아의 품을 파고들었다. 

“미치겠네, 정말.”

그간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강에게도 간밤의 일은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토록 헤어 나올 수 없는 쾌감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 도아를 붙들고 놓을 수가 없었다. 사로잡힌 감정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으니 그로서도 난감했다. 

“그대는 더 자도 될 것이오.”

말을 마친 강은 그제야 일어날 마음이 생겼는지 자리에 앉았다. 도아가 따라서 일어나려 하자 그는 저지시키며 다시 눕혔다.

“그대로 있으시오.”

“괜찮은데…….”

“내가 괜찮지 않소.”

그러더니 이불을 끌어 올려서 도아의 목 아래까지 꽁꽁 감싸듯 덮어 주었다. 의미를 알게 된 도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 짓던 강은 야장의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도아는 수줍음에 보시시 웃으며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 

* * *

하루를 꼬박 새우며 숨조차 아끼며 달려온 길이었다. 온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 같아 그제야 말을 세웠다.

말을 세운 곳 너머로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코에 매달리는 비린내, 전라도로 내려온 시현은 바다를 찾았다. 

‘네 누이는 또 혼나는 것이냐?’

‘응, 몰래 바다에 나갔다가 어머니에게 들켰다.’

어린 시절부터 도아는 줄곧 혼날 것을 알면서 바다를 찾고는 했다. 성숙해지며 버릇을 고친 듯했지만 도아에게는 늘 바다 향이 났다. 

신비로움을 간직한 모습은 늘 시현이 좇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시현은 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네가 대궐에서 불행하다면 내 결코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쥐며 바다를 바라보던 시현은 시끌벅적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바다에 다녀온 어부들이 그물망에서 고기를 꺼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들을 잠시 감상하던 시현이 가슴 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비단보에 싸인 것을 들고, 어부들에게 다가갔다.

“여쭐 것이 하나 있소.”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외지에서 오셨소?”

“그렇소. 내 오래전부터 지닌 것이 있는데, 이게 어느 물고기의 비늘인지 알려 줄 수 있겠소?”

“어디 자세히 봅시다.”

비단보에 싸인 비늘은, 반짝이며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것을 도아의 별당에서 주운 지 꽤 되었음에도 빛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거 참 신기하군. 이 빛깔 좀 보게.”

“그러게 말일세. 어부로 평생을 먹고살지만 이런 비늘을 가진 물고기는 내 평생 본 적이 없네.”

“흠……. 생긴 것은 물고기 비늘인데.”

어부들은 시현이 가지고 온 비늘을 둘러싸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백발의 노인이 무슨 일이냐며 기웃거렸다.

“이 비늘, 어디서 나셨소?”

“예?”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것이오?”

“그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것이라, 귀한 것이오?”

백발노인이 수상쩍게 물어보자 시현은 없는 말을 둘러댔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비늘을 다시 관찰했다.

“이건 인어 비늘이오.”

“예?”

“인어 말이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어부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노인은 비단을 다시 고이 싸서 비늘을 가려 주었다.

“이젠 볼 수 없는 아주 귀한 것이오.”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인어라니, 도아가 지내던 별당 호수에 어째서 인어 비늘이 있단 말인가?

수많은 의문이 시현을 둘러쌌지만 뾰족한 답 하나 나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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