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화 후궁이 된 인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사랑채에서 조용히 나온 부원군은 앞장서서 안내하는 장 서방을 따라 별당으로 건너갔다.
불을 밝힌 별당으로 들어간 부원군은 제 눈을 의심하며 멈칫했다. 방 안에서는 자객이 피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에 부원군은 장 서방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우선 안으로 드시어 자초지종을 들으시지요.”
밖에서는 소리가 새어 나갈 수가 있었다. 부원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자객은 다친 부위를 대충 천 쪼가리로 묶은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여인과 함께 있던 사내, 그자가 왕입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
“왜 그러느냐?”
왕이냐 묻는 말에 그렇다 하자 자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함께 갔던 두 놈은 같이 있던 사내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놈이 죽기 직전 그 사내에게……. 화, 활을…… 쐈습니다.”
“응? 지금 뭐라 했느냐? 설마 그 사내가, 전하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놈들! 감히 용체에 활을 겨누었단 말이냐!”
강에게 활을 쐈다는 소리에 격분한 부원군이 손바닥으로 서안을 내려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건 자칫 역모가 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아둔한 머리로 짧게 생각해 낸 계략은 스스로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일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구나.”
“나머지 두 놈의 시신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처리했습니다.”
“그래? 흔적을 없앴으니 이것을 다행이라 해야 하나…….”
부원군은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떠올리니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뭐가 남았느냐?”
“사내와 여인은, 나란히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뭐, 뭐라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도아의 추락은 바라던 것이었지만 강의 훼손은 허용되지 않은 범위였다.
마지막 말에 부원군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무언가 들고 뒤늦게 들어온 장 서방도 불상사에 감히 한마디도 꺼내 놓지 못했다.
“자정이 넘었으면 대궐에 소식이 닿았어도 진작 닿았을 텐데 조용한 것을 보면 별 탈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전하께서 무탈하시지 않다면 지금쯤 대궐이 발칵 뒤집혔어야 합니다. 아무 일도 없으실 겁니다.”
“그래야 한다. 꼭 그래야 해.”
곁에서 거들어 주던 장 서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온 것을 자객의 앞에 내려놓았다. 맑고 깨끗한 물이었다.
“오느라 갈증이 났을 것이니 마시도록 해라. 다음 일은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자.”
“면목 없습니다.”
“됐다. 시신을 처리했으니 우선은 그걸로 됐다.”
긴 한숨 끝에 자객이 사발에 손을 뻗었다. 갈증이 심했던 모양인지 그 많은 물을 쉬지도 않고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자객이 붉은 피를 토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빨간 피를 솟구치듯 토하며 괴로워하던 자객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시신의 얼굴을 훼손한 후에 짐승들에게 내주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죽은 자객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말을 마친 부원군은 여전히 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별당을 나갔다.
* * *
대궐로 돌아온 강은 한바탕 대전을 뒤집고 나서도 분을 식히지 못하고, 새벽이 되어서도 자리에 들지 않았다.
제조상궁의 소식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서안에 앉아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전하.”
“들라.”
밖에서 들리는 상선의 소리에 곧장 답하였다. 문이 열리자 제조상궁과 잔뜩 헝클어진 지밀나인 하나가 훌쩍이며 들어왔다.
“고하라.”
“다른 지밀나인의 말에 이르면, 이것이 그간 전하의 행적에 대해 묻고 다니는 수상함을 보였다고 하옵니다. 또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서서 전하께 가까이하려 했다는 말도 있었사옵니다. 다른 지밀나인과 다르게 궐 밖 출입이 잦았다고 하옵니다.”
모두의 증언을 토대로 했을 때 가장 수상쩍은 지밀나인이었다. 강은 그 말을 토대로 생각에 잠긴 채 잡혀 온 나인을 응시했다.
“출궁하여 어딜 갔느냐.”
“…….”
“그 입을 찢어야 말을 하겠느냐.”
“소, 소……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겁을 주니 지밀나인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감히 적반하장으로 양심도 없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단지…… 어린 동생들이 걱정되어…… 궐 밖으로 나갔을…… 뿐이옵니다. 미, 믿어 주시옵소서, 전하.”
“그래? 그렇다면 과인에 대해서는 어찌하여 캐묻고 다녔느냐.”
“…….”
“안 되겠구나. 이런 식이라면 동이 틀 때까지 수확이 없겠어. 상선아! 이것의 주둥이를 당장 찢어야겠다.”
화가 잔뜩 차 있던 강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이에 지밀나인이 벌떡 고개를 들고 몸부림쳤다.
“전하의 승은을 입고 싶었사옵니다!”
“……뭐라?”
“승은을 입고 싶어서 그리했습니다. 전하의 눈에 들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지 다른 뜻은 정말 없었사옵니다.”
“그래, 네 말대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말을 믿어 주는 대답을 늘어놓자 지밀나인이 손등으로 눈물을 거두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할 말은 다 한 것이냐?”
“예,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모두 고하였사옵니다.”
“그래, 그럼 됐다.”
“……예?”
생각보다 손쉬운 설득에 지밀나인은 되려 당황의 빛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말한 당사자는 여유롭게 웃음까지 보이고 있었다.
“네 말은 모두 들었으니 네 가족의 증언도 들어 봐야겠다.”
“예? 가, 가족들은 왜…….”
“빈번하게 대궐을 들락거리며 친정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그 말에 증인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
“네 가족을 심문하여 과인의 의심이 풀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심문을 위해선 온 가족을 의금부로 잡아들여 하옥시켜야 했다. 또한 증언을 토설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다.
“만약 네 말에 거짓이 있다면 한 목숨도 살려 놓지 않을 것이다.”
“…….”
“대신 이 자리에서 네가 이실직고한다면 자비를 베풀어 너 하나 죽는 것으로 끝내 줄 것이다.”
“…….”
“어느 놈의 사주를 받아 언제부터 과인의 행적을 고해바쳤는지 말해라.”
기회는 한 번이었다. 온 가족의 목숨이 지밀나인의 대답에 달려 있었다. 강의 말에 나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
마루에 앉아 서서히 말라 죽어 가는 꽃을 바라보며 도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돌아와 줄곧 한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맹렬히 날아드는 화살을 보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감싸 안아 주던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빈틈없이 감싸던 그의 손길, 체온, 숨소리.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도아를 에워쌌다.
그러나 동굴에서 깨어난 강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눈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아련했다.
도아는 심장으로 손을 가져가 얹어 보았다.
‘내 마음을 내가 헤아리지 못하겠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기억 속의 강은 차츰 도아를 향해 멀어져 갔다.
“귀인마마.”
“…….”
“마마?”
고개를 들자 무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응? 미안. 못 들었어.”
“급히 자경전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자경전은 왜?”
“대비마마께서 찾으신다고 하옵니다.”
가급적 처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전각 주변으로 큰 벽을 쌓아 올리고 싶었다.
* * *
연잎색 치마를 휘적이며 자경전에 들자 저만치 회초리를 대동한 채 단단히 앉아 있는 대비 조 씨가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읽혔다. 그럼에도 불안하거나 마음이 동요치 않았다.
“부르셨사옵니까, 대비마마.”
“앉게, 귀인.”
회초리를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형식적으로 들이던 다과상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주상과 함께 대궐을 나갔다고 들었네, 귀인.”
“예, 그렇사옵니다.”
“주상이 귀히 여기니 잠행에도 동행한 것인가?”
이 물음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비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주상의 총애가 하늘을 찌르니 귀인의 오만방자함도 덩달아 하늘을 찌르는구나.”
“…….”
“아무리 주상의 명이라 할지라도 귀인이 현숙한 여인이었다면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명부의 법도를 지켜야 할 후궁이 함부로 궐 밖을 나가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쯤이 되면 말을 종알종알 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도아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대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내 오늘 중전을 대신하여 내명부의 모범을 보일 것이다!”
“치마를 올리면 되겠사옵니까?”
“뭐라?”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친 육신은 계속해서 도아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자리에서 일어선 도아는 두 손으로 풍성하게 내려온 치맛자락을 잡아 올렸다. 치마에 가려져 있던 희고 고운 종아리가 드러났다.
다리는 곧 인어에겐 생명과도 같았다.
“맞을 때마다 귀인이 잘못한 일을 가슴에 새기도록 해라.”
바람을 가로지르며 매서운 회초리가 도아의 종아리에 날아들었다. 경쾌한 소음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회초리에 피가 묻어나고, 이를 악물고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는 도아의 말간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마마! 대비마마! 그러시다 우리 귀인마마 죽사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듣고 있던 무이가 눈물로 호소했다. 그럼에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독하고 지독한 것! 피가 나도록 맞으면서도 신음 한번 내지 않는구나. 독한 년!’
결국 회초리가 견디지 못하고 분질러지고 말았다. 피가 묻은 나뭇가지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희고 고왔던 종아리의 피부는 너덜너덜 피로 범벅이 되어 못 볼 꼴이 되었다.
“오늘의 일이, 귀인에게 부디 교훈이 되었길 바라네.”
“망극하옵니다, 대비마마.”
“가 보시게.”
“예, 소첩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꽉 잡고 있던 치맛자락을 내려놓은 도아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마지막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처소를 나섰다.
그러자 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로 호소를 하고 있던 무이가 보였다. 무이는 서둘러 일어나 도아를 잡아 주었다.
“마마! 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그만 가자.”
울며 매달리는 무이에게 의연하게 말하며 먼저 돌아선 도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경전을 나서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도아를 감싸 안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던 도아는 서늘함을 느꼈다.
“치마에 피…… 피가……. 마마…….”
무이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반면 도아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질 않았다.
저만치 연에서 급하게 내리는 강이 보였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늘한 얼굴의 강이 걸어왔다. 점점 더 가까이, 그리고 이내 도아에게 닿았으나 스치듯 지나가 버렸다.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야.’
허탈했다. 두 손으로 말아 쥔 치마를 찢어질 듯 꽉 잡았다. 자신을 외면한 강을 붙잡지 못한 미련이었다.
* * *
엄 상궁이 바닥에 나가떨어져 있던 회초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상선의 다급한 외침과 더불어 강이 등장했다.
“소식이 빠르기도 하십니다, 주상.”
싸늘하게 식은 강이 들어와 눈짓으로 엄 상궁이 들고 있는 회초리를 쳐다봤다. 붉은 피가 보였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강은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대비의 앞에 가 앉았다.
“일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엇을요?”
“귀인에게 손대지 마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미가 며느리의 기강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즐겁다는 듯 대비는 여유로운 미소마저 보였다.
“불가합니다.”
“뭐요?”
“어마마마께서는 귀인에게 손대실 수 없습니다.”
“계집의 치마폭에 싸여 이 어미를 내치기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비단 연유가 그것뿐이겠습니까?”
대비의 얼굴을 채우던 미소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귀인은 소자의 사람입니다.”
“…….”
“소자 외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습니다.”
“진정 미치셨습니다, 주상.”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은 입이 벌어진 대비를 향해 간단하게 고개를 숙이고 섰다.
“소자가 미쳐 날뛰는 꼴을 보지 않으시려면 귀인은 건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마마마.”
말을 마친 강이 나가고, 대비는 황당하고 허탈한 마음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계집이, 대체 무슨 술수를 부렸길래 주상이 저리 됐단 말이냐?”
다시 한번 도아에게 손을 댔다간 질질 끌려서 궐에서 쫓겨나게 될 것만 같았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 * *
성치 않은 몸으로 밖에 나와 달을 바라보고 있던 도아는 자경전에서 마주쳤던 강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어리석게도 내 마음이 지옥이 되었구나.’
달이 밝았다.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존재를 향한 열망이 있었다.
“왜 나와 있소?”
기다리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처소에 있지 않고.”
돌아서자 붉은 용포를 입은 강이 서 있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드리겠습니다.”
달을 등지고 선 도아의 눈에서, 구슬픈 진주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