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화 후궁이 된 인어
입궐을 했다가 사저로 돌아온 후로 부원군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시질 않았다. 부부인이 까닭을 물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매일 사랑채에 앉아 강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가뭄으로 점점 어려운 시국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자칫 구설에 휘말리게 되면 중전의 입장이 난처해질 겁니다.’
‘자중해야 할 것입니다, 부원군.’
곧이듣지 못하고, 꼬인 성정으로 왜곡하여 들었으니 생각할수록 강이 던진 말은 가시가 되었다가 비수가 되었다.
“전하께서 후궁을 들이시더니 달라지셨다.”
종국에는 이런 말까지 지껄이게 되었다.
“장 서방입니다.”
“들어오너라.”
장 서방은 이 댁의 일을 전체적으로 돌보는 이로, 은하가 어릴 때부터 부원군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길을 떠난 지 몇 시진이 되었으니 아마 당도했을 것입니다.”
“단단히 일러두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실수를 했다간 목숨이 성치 못할 것이라 못 박아 두었습니다.”
“입단속도 단단히 해야 한다.”
“예, 걱정하지 마십쇼. 한몫 단단히 물려 주면 조용히 떠나겠다고 약조했습니다.”
“흠……. 천한 것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심 성에 차지 않는 듯 수염을 만지며 한숨을 뱉던 부원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만 잘 성사되면 네게도 섭섭지 않게 한몫 내줄 테니 잘하도록 해라.”
“예, 믿어 주십쇼.”
“그것들 돌아오거든 우두머리는 내 직접 만날 것이니 그리 알아라.”
“뒤쪽 별채로 자리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오냐, 그리해라.”
그러고는 장 서방에게 나가 보라는 손짓을 하다가 멈췄다.
“참, 궐에서는 소식이 없었느냐?”
“다녀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당분간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 하긴, 괜히 자리를 비워 의심을 사서는 안 되겠지.”
“예, 그럴 것입니다.”
“알겠다. 나가 봐라.”
그가 조용히 사랑채를 비우자 부원군은 내심 불안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한자리에 서 있지 못 하고 왔다 갔다 불안해하더니 다시 한숨을 토해 냈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처음부터 자식이 부모를 버리게 만든 장본인임을 여전히 모르는 부원군은 무리수에 발을 담갔다.
* * *
서늘하고 축축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두운 천장을 따라 타닥타닥, 나무가 불에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분간이 가지 않아 꿈인지, 현실인지 어지러웠다. 그러던 중 낯익은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소인을 알아보시겠사옵니까?”
“……상선.”
“예! 맞사옵니다, 전하.”
옆에서 부지런히 불을 피우고 있던 상선이 깨어난 강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자객의 습격을 받으시고, 귀인마마와 함께 바다에 빠지셨사옵니다. 모두 기억이 나시옵니까?”
“……귀인, 귀인은 어찌 보이지 않느냐?”
그리고 보니 동굴 어디에서도 도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소인이 급한 대로 민가에서 옷을 구해 드려 갈아입고 오실 것이옵니다.”
“…….”
“바다에 빠지셨지만, 천만다행으로 두 분 모두 자상을 입지 않으셨사옵니다. 정말 하늘이 도우셨사옵니다.”
“자상을…… 입지 않았다고?”
그에게는 마지막 기억이 선명했다. 자객이 쏜 화살을 등에 맞고, 절벽으로 추락했었다. 그런데 자상이 없다?
“예, 소인이 전하의 옥체를 모두 살폈사옵니다.”
“그럴 리가!”
손을 뒤로 뻗어서 화살을 맞았던 부위를 만져 보았다. 아무리 더듬더듬 만져 보아도 작은 통증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그러시옵니까? 어디가 불편하시옵니까?”
“세상에, 이럴 수가…….”
“전하?”
당황스러워하는 상선의 반응을 뒤로하고, 강은 얼빠진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사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 소박한 차림을 한 도아가 동굴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마마! 전하께서 깨어나셨사옵니다.”
상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동굴에 들어선 도아의 시선이 강에게 향해 알고 있었다.
허공을 쳐다보던 강이 기척을 듣고 도아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전과 달랐다.
“소인이 나가서 말을 가져오겠사옵니다.”
불을 만져 둔 상선은 두 사람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서둘러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자리에 서서 강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도아는 이내 천천히 불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타닥, 타닥. 나무는 불에 온몸을 내주고 타들어 갔다. 그 소리만이 동굴 안을 가득 울렸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첫마디에 도아는 고개를 내저으며 잔잔히 읊조렸다.
“인어는 저희 가문에 내린 저주였습니다.”
망설임 끝에 도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문의 절대적인 비밀이었다.
“……저주?”
“예, 그 저주를 받아 태어난 아이가 저였습니다.”
“그 말을 믿으란 거요?”
혼란에 젖은 그에게 다가가 앞에 앉은 도아는 손을 뻗어서 강의 손등 위에 얹었다.
“놀라지 마시고, 편안히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무엇을…… 대체……!”
그러는 사이 도아는 눈을 감았고,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고스란히 강의 머리에 심어 주었다.
인어로 태어나 살아온 모든 생이 죽음의 고비였던 나날. 작은 별당에 갇혀 살아야 했던 사람 인어의 삶.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남김없이 강에게 모두 보여 주었다. 가족이 받아야 했던 고통마저도 스스럼없이.
그리고 강을 구해 주었던 모든 일마저 함께 나누었다.
“전하께서 오늘 제 목숨을 구해 주셨습니다.”
“…….”
“이제는 서로 빚진 건 없습니다.”
에둘러 그리 말하며 담담한 척해 보였지만 파도를 탄 듯 일렁이는 마음은 가라앉질 않았다.
“……그 인어가, 그대였소?”
“예, 저였습니다.”
“진정 그대란 말이오?”
“예…….”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듯 허공을 어지럽게 도는 눈동자였다.
“내 그리 오랜 시간 공들여 찾아 헤맸는데 정작 그대는 정체를 숨기고, 내 곁에 있었다는 건가?”
“그날의 일은 곧 가문의 비밀과 직결되는 일인지라 쉬이 발설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어를 만나고 돌아온 후부터 강은 몇 년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먹고, 자는 일보다 인어를 찾는 일이 우선이었다.
수시로 바다로 뛰어가는 몸을 상선이 붙들어 잡고, 묶어 놓았다.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과 갈증이 온몸을 삼켰다.
“화살에 맞은 것도 물론 그대가 손을 쓴 것이겠지.”
“예…….”
바닷속에서 혼절한 강을 이끌고 겨우 바위로 올라온 도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의 등에 박힌 화살을 뽑고, 치유를 해 주는 것이었다.
꽤 많은 피를 흘리고 의식마저 잃은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은 살피지도 못한 채 강에게 매달렸다.
살아 달라고, 죽지 말아 달라고 그리 절박하게 매달렸다. 낯선 감정이라 여기고 무시했던 감정이 위기의 상황에 터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김 숙의와 연관된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거군.”
“…….”
“그대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말을 뱉은 강의 눈빛이 점점 도아에게서 멀어져 갔다.
“서로 몸이 닿아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상시에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그대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오?”
“…….”
“도무지 모르겠소.”
“…….”
“모든 일이 꿈만 같아서, 받아들일 수가 없소.”
우려했던 대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강은 큰 혼란에 빠졌다.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진실의 깊이가 깊었다.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예…….”
“그대의 비밀은 지켜 줄 것이오.”
먼저 일어난 강은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도아를 남겨 두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쉬이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는 도아의 눈에서, 차갑게 얼어붙은 진주알이 흘러내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야멸찬 강의 반응에 침착하게 상대하던 도아의 마음에 실금이 간 것이다.
* * *
부득이하게 일어난 사고로 세 사람은 생각했던 시간보다 더 늦게 대궐에 당도했다. 상선이 말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피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밤길을 따라 걸었다.
“오늘 귀인이 출궁하는 것을 아는 이가 있소?”
오랜 시간 침묵을 깨고 건넨 말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무엇을 기대한 걸까, 도아는 괜히 더 허탈해졌다.
“중전마마와 소첩의 나인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 외에는 없소?”
“예, 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알겠으니 그만 처소로 돌아가 쉬시오.”
그게 전부였다. 그 말을 끝으로 강은 무심하게도 어둠 속으로 혼자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매정도 하십니다. 이다지도 벽을 세우고, 외면하시니 진실을 밝힌 일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미 보이지 않는 강을 향해 넋두리를 늘어놓던 도아도 이내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가슴을 지배한 감정이 낯설어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차갑게 뱉는 말 속에 은근한 다정함이 있다고 여긴 것은 오만한 착각이란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쑤셨다.
* * *
대전으로 돌아온 강은 입고 있던 옷자락을 거칠게 벗어 던지고, 제조상궁에게 빼앗듯 용포를 집어 들어 몸에 걸쳤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상선과 제조상궁이 몸을 낮춘 채 분부를 기다렸다.
“지밀에서 과인의 말이 새어 나갔다.”
“예, 예?”
“제조상궁은 들어라.”
“하명하시옵소서.”
곁에서 듣고 있던 제조상궁이 냉큼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오늘 과인이 귀인과 출궁하는 것은 비밀리에 부쳐진 일이었다.”
“그러하옵니다.”
“과인이 지밀에도 입단속을 신신당부했었지.”
불꽃이 튀어 오르는 눈빛에 제조상궁은 대꾸하지 못한 채 고개만 더 깊이 숙였다.
“그런데 버젓이 자객이 나타났다. 그 자객이, 과인이 아니라 귀인을 노렸느니라.”
“예? 자, 자객이라니요! 전하……!”
“남장을 한 귀인을 버젓이 알아보고, 노렸다.”
“…….”
“필시 대전에서 말이 새어 나간 것이다!”
지밀에 속한 모두가 죽은 목숨이었다. 추상과도 같은 호령에 대전 처마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지금 당장 지밀나인을 한곳으로 모아 범인을 색출해라.”
“예, 소인이 모두 한데 모아 범인을 잡아 대령하겠사옵니다.”
“귀인이 털끝이라도 다쳤더라면, 지밀에 속한 것들은 모조리 목을 쳤을 것이다.”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아내야 했다.
“해가 뜨기 전에 색출해야 할 것이다.”
“예, 예! 전하.”
“온몸을 찢어발겨 죽일 것이라 전해라!”
말을 마친 강은 주먹을 말아 쥔 손으로 서안을 몇 번이나 세게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