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궁,왕을적시다 (11)화 (12/93)

제 11 화 저주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어

한참 동안 바다를 느끼며 헤엄치고 있을 때 무언가 두 귀를 자극했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소리에 도아는 움직임을 멈추고, 바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청량한 푸른색의 바다에 붉은 피가 섞여 흐르기 시작했다.

‘피?’

화들짝 놀라 핏물이 흘러온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바다 안으로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활과 창을 목격하게 됐다.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려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로 물드는 바다를 두 손으로 휘저어 보았으나 눈앞의 허상이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무언가 바다 안으로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큰 소음과 함께 머리 위에서 무언가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도아를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물체, 피는 그 물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어……. 인어잖아.’

가까워진 물체의 정체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종족이었다. 황금색 꼬리는 피로 얼룩져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온몸은 활과 창으로 찢겨서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눈물이 솟구쳤다.

도아는 본능적으로 떨리는 손을 뻗어 인어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허상이기에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죽어 가던 황금 인어가 마치 도아가 보인다는 듯 시선을 맞추었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인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만나야 할 것이다. 허나,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인간들이 그리도 할 수 있겠느냐? 눈이 시뻘게져 팔아넘길 테지.’

‘만일 그런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저주는 그 대에서 끝나고, 그 인어는…….’

분명히 말했다.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이 허상으로 보이는 황금 인어가 저주를 건 인어란 말인가?

그런데 황금 인어는 끝말을 매듭짓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서서히 바다 저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무려 300년 전에 일어난 일이야.’

혼란스러운 도아는 떨리는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눈을 감았다. 터질 듯 뛰는 심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자 눈을 떴다.

피로 얼룩져 있던 바다는 어느새 청량했던 색을 되찾아 있었다.

-황금 인어가 죽어 가면서 내게 부탁했다. 언젠가 이 저주로 태어난 사람 인어가 바다를 찾아오면 이 죽음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크고 웅장한 울림이었다. 처음 두 귀를 자극했던 소리, 그것은 이내 선명한 소리가 되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바다란다.

“바다? 바다가 말을 할 수 있나요?”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언어가 있는 법이지.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네가 인어로서 완벽하게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럼 내게 허상을 보여 준 것도 당신인가요?”

-그렇다. 네가 본 황금 인어가 너의 가문에 저주를 내린 바로 그 인어다.

어느새 바다는 파도를 잠재우고, 잔잔해져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자랐으니 인어의 말도, 인어의 능력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인어들에게도 언어가 있나요?”

-말하지 않았느냐.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언어가 있다고, 물론이다.

“네……. 알지 못했어요.”

-네 능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바다의 물음에 도아는 눈물이 진주가 되는 것과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의 접촉이 생길 때 과거의 대화를 읽게 된 것을 말했다. 

-네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알려 주세요. 알고 싶어요.”

-인어는 네 말처럼 사람의 손을 잡으면 과거의 기억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네가 갖고 있는 감정도 인간에게 전할 수 있다.

“그러고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

-마지막으로 이 능력은 인간들이 알게 된다면 눈이 뒤집힐 것이다.

“네?”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 

“비요? 하늘에서 내리는 그 비요?”

-그래, 허나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늘이 소관하는 일인 줄 알았던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니 도아는 놀랍기만 했다.

-단, 이 능력을 사용하면 네 생명에 지장이 갈 만큼 큰 여파를 몰고 올 수 있으니 그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잘못 사용하면 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그러니 신중을 기해 사용하도록 해라.

신비로운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어는 예부터 영물이라 불렸으니 이런 능력이 있을 만도 했다. 

바다 밖으로 나온 도아는 한 시진 동안 바위에 기대고 앉아 물속에서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내 모습을 알고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내를 만나면 이 저주가 풀린다는 거 같은데 그 끝말이 무슨 말이었을까.”

모든 생각의 끝은 황금 인어의 최후였다. 인간의 욕심에 난도질당한 채 죽어 가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았다. 

‘내가 인어란 게 밝혀지면 사랑은커녕 나도 저렇게 죽이겠지.’

바다를 삼키며 넘어온 해가 어느새 하늘을 집어삼켰다. 

* * *

오늘은 음양의 조화가 좋은 날이라 하여 강과 은하의 합궁일로 정해진 날이었다. 

일찍 대전을 나선 강은 교태전에서 저녁 수라를 함께 들었다. 그 후 옷을 갈아입고 처소로 돌아온 강이 보료에 앉았다.

“주안상이라도 올리라 하올까요?”

“됐으니 물러가라.”

“예, 전하.”

상선이 물러가고 난 뒤, 강은 저만치 단정하게 깔려 있는 금침을 응시했다. 

‘중전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후궁 조건서의 3번 조항은 강이 지킬 수 있었지만 1번과 2번 조항은 내명부를 주관하는 은하의 도움이 필요로 했다. 

괜히 독단적으로 강이 나섰다가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은하가 소복 차림으로 돌아왔다. 달에 두 번은 정해진 날에 이렇듯 함께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저어, 중전.”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음……. 몇 가지 부탁을 좀 했으면 하는데.”

금침으로 가려던 은하는 강의 말에 다시 걸음을 옮겨 앉았다. 

“이번에 간택된 후궁 중에 좌상댁 장녀 있지 않소.”

“예, 그런데 어찌 그러시옵니까?”

“그 댁 장녀가 몸이 허약하여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던데.”

“그렇다 하옵니다.”

“말하자면 편의를 봐주려 하는데.”

강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소리가 나오자 은하는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예, 편히 말씀하시옵소서.”

“측근에 둘 궁녀는 그 댁 집안사람으로 들였으면 하는데.”

“이 편의는 어마마마께서 먼저 봐주신 것이니 그리하도록 하겠나이다.”

“그렇소?”

“예, 그리고 더 있으시옵니까?”

말하는 것을 보아 하나가 더 있을 법했다. 눈치가 대단한 은하가 그리 묻자 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편의라기보단 경계 조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오.”

“예, 말씀하시지요.”

“머물 전각은 허름하더라도 가장 외진 곳으로 했으면 하는데 어떠시오?”

“친정 하녀를 궁으로 들이는 것으로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전각을 허름하고, 외진 곳으로 한다면 말이 들어갈 것이옵니다.”

이번에도 큰 탈 없이 은하에게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진 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더 없으시면 이만 자리에 눕겠사옵니다.”

“아, 그럼 그럽시다.”

은하의 말에 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금침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하는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속으로 품은 의문을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은하도 자리에서 일어나 금침으로 향했다.

모두의 바람과 다르게 두 사람은 옷자락 하나 벗지 않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 * *

번듯한 집을 놔두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팔도를 유랑하며 지낸 것이 언 2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반년에 한 번씩은 꼭 집에 들러 하루를 머물고 갔다. 평생의 약조, 정혼이 깨지고 인겸의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얇은 옷으로 몇 벌 챙겼으니 허름하게 다니지 말고, 잘 챙겨 입고 다니도록 해라.”

“예,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걸 아는 녀석이 그러고 다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밥을 먹던 인겸은 애써 웃으며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상을 물리고, 다시 떠날 차비를 위해 짐을 꾸렸다.

“못 뵙고 가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반년에 한 번 보는 자식 얼굴인데 와 보기는 해야지.”

“죄송합니다.”

“됐다.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매번 인겸을 보면 눈물부터 보이는 어머니와 달리 그의 아버지는 체념한 듯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벌써 유랑 생활을 한 지 2년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이냐?”

“부인,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이게 어찌 쓸데없는 소립니까! 2년이면 할 만큼 했습니다.”

“어허. 그래도.”

부부가 실랑이를 벌였으나 인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면서 살 것이냐?”

“제 걱정 마시고, 잘 지내고 계세요. 또 오겠습니다, 어머니.”

“못난 놈, 한심한 놈! 겨우 그런 아이를……!”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마십쇼, 어머니.”

그 누구의 입에서도 은하를 낮추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인겸이 고개를 저어 가며 말리자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언제든 돌아오도록 해라. 기다리고 있으마.”

“예, 어머니.”

“가 보도록 해라.”

“예,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인사를 마친 인겸은 늘 그랬듯 조용히 집을 나섰다. 

“반년에 한 번 보는 얼굴, 일 년에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러셨소?”

“하도 속이 상해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다시는 인겸이 앞에서 그런 소리는 마시오.”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 꼴을 보면 속이 상해서 울분이 터집니다.”

대문을 넘어서서 이미 보이지 않는 인겸의 그림자를 어머니는 계속 찾고 찾았다.

“저 녀석이 저리 떠도는 것이 비단 그 아이 때문만이겠소? 우리 가문을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오.”

“압니다. 속 깊은 놈이 오죽이나 할까요.”

“그래도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니 다행이라 생각합시다.”

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혼이었다. 작은 마을에서는 건너 건너 알고 있을 만큼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그랬기에 인겸은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럽기만 했다. 자신의 행동 하나로 은하에게 어떤 여파가 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떠나는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가득이었다. 

* * *

간택된 세 후궁의 입궐은 생각보다 빠른 날로 잡혔다. 각각의 사저로 은하가 보낸 가마와 궁녀들이 도착했다.

세 사람은 사저에서 품계를 하사받게 되었다. 나은과 청아는 숙의로 봉해졌으며 나란히 녹원삼이 내려졌다. 

‘숙의? 고작 숙의를 내렸다니.’

좀 더 높은 지위를 원했던 청아는 안색이 파리해졌으나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중전마마의 성은에 망극하옵나이다.”

“길시에 맞춰서 입궐하셔야 하니 차비를 하십시오, 김 숙의마마.”

“알겠네.”

교태전이 있는 곳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청아는 이내 전담 상궁을 따라 별당으로 들어섰다.

* * *

항상 인적이 드물었던 별당에 오늘은 궁에서 보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당에서 품계를 하사받은 도아는 곧장 입궐 준비에 들어갔다.

“아기씨! 아니지, 귀인마마!”

“신났구나.”

“보이세요? 소인은 태어나서 이렇게 고운 옷은 처음 입어 봅니다.”

“그리 좋으냐?”

“예, 너무 좋습니다. 비단옷도 좋고, 우리 아기씨를 따라가게 된 것도 좋습니다.”

함께 입궐해도 좋다는 전갈을 받고, 집안사람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도아만은 의연했다. 

“무이가 함께 입궐하니 내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걱정 마세요. 제가 우리 귀인마마 잘 모시겠습니다, 마님.”

“그래, 혼자가 아니니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내도록 해라.”

“예, 마님.”

궁녀들의 시중을 받아 도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른 궁녀들도 도아의 소문을 익히 들었는지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다 되었사옵니다, 귀인마마.”

“수고했네.”

도아의 치장을 도와주던 세 명의 궁녀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자 자적원삼을 입고, 가체를 올려 떠구지머리를 얹은 도아가 드러났다. 

“와……. 정말 너무 아름다우세요.”

“선녀가 따로 없구나.”

평범하게 있어도 범상치 않던 여인에게 화려하게 치장을 해 놓으니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밖에서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치열과 도진이 안으로 들었다. 언제 다시 네 가족이 단란하게 앉을 수 있을지 몰랐다. 

“꼭 다른 사람 같구나.”

“저는 어디 가지 않아요. 오라버니의 누이, 도아로 머물 겁니다.”

“항시 몸조심하고, 대궐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걱정 마세요. 제 활을 가져갈 것이니 궁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마세요. 언제 내기를 걸고 시합을 할지 모르니 말입니다.”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도진에게 도아는 활기찬 모습을 보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담아 두지 말고, 함께 데려가는 무이를 믿고 의지하도록 해라.”

“네, 매일 주의할 것을 읊어 주셨으니 염려 마세요.”

“어련히 잘하겠지.”

“입궐하시거든 그냥 가시지 말고, 제 처소에 들렀다 가세요.”

도아가 애교를 부리듯 말하며 눈을 맞추자 치열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귀인마마, 길시에 맞춰서 입궐하셔야 하옵니다.”

“행여나,”

“네?”

“비밀이 발각되거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예, 걱정 마세요. 아버지.”

그렇게 가족들에게 등지고 돌아서 나온 도아는 별당을 나섰다. 

평생을 이 안에 갇혀 비밀을 간직한 채 살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떠나게 되었다.

마당에 들어서 있던 가마를 향해 걸어갔다. 무이는 연신 웃으며 궁녀가 된 것이 잔뜩 신이나 있었다.

“오르세요, 귀인마마.”

“고맙다.”

무이가 서둘러 가마 문을 올려 주자 도아는 원삼을 잡아 조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멈칫하며 고개를 돌리자 의외의 인물이 대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자비를 베푸는 청혼이라며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차시현, 그가 보였다. 

‘오늘로서 마지막이겠지.’

시선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곧장 가마에 몸을 실었다.

인어의 저주로 태어난 사람 인어 도아가 후궁이 되어 입궐했다.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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