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궁,왕을적시다 (7)화 (8/93)

제 7 화 저주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던 집이었다. 떠날 때, 모두가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참았던 이별이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던 하인이 도진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도련님 아니세요?”

“며칠 못 봤다고 귀신 본 듯이 놀라는구나.”

“그게 아니라 당분간 집을 비우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부모님은?”

“사랑채에 계십니다.”

며칠 동안 도진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야윈 얼굴로 사랑채로 건너가 밖에서 소리를 내니 부서질 기세로 문이 열렸다.

“네가! 네가 어째서 아직도 여기에 있느냐?”

“듣는 귀가 있으니 우선은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버지.”

그리하여 다시 사랑채 안으로 들어가니 부모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도진을 응시했다.

“도아는 어디 가고 혼자 왔느냐?”

“왜 하필 오늘 온 것이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예, 모두 알고 혼자 돌아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부모는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설명하라며 도진을 채근했다. 

“그날 밤 말을 달려서 배를 타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몇 시진 쉴 수 있었기에 모두들 밤새 말을 달리느라 지친 몸을 뉘었습니다.”

“그래, 그랬는데?”

“배를 타려고 하는데 도아가 거부를 했습니다.”

“거부하다니? 배를 타지 않겠다고 했단 말이냐?” 

치열의 물음에 도진은 그날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도아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마도 지금이면 간택을 치르러 입궐했을 겁니다.”

“간택을 치르러 대궐로 갔단 말이냐?”

“예…….”

“안 된다! 이것을 막으려 너희를 청으로 보낸 것인데 멋대로 이게 무슨 짓들이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치열은 당장 대궐로 달려갈 기세였다. 그러자 도진이 서둘러 그 앞을 가로막았다.

“억지로라도 배에 태우려 했으나 도아의 말에 더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

“왕명을 거역할 시 부모님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이미 대비전에서 뜻이 완고할진대 그것을 알면서 여식을 숨기면 군주 기만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도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도진의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후궁 간택과 부모님의 죽음을 어찌 비하겠냐고 했습니다. 도아가 쉬고 있던 그 자리에 진주가 가득했습니다.”

“이 미련한 것아…….”

“죄송합니다. 차마 그 말을 듣고 억지로 배에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네게 이런 짐을 맡기다니 부모로서 자격이 없구나.”

치열은 자신을 붙들고 있던 도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짧았던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릴 수 없었다. 

이로써 청으로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남매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 *

난생처음으로 성문을 넘어 대궐에 발을 들인 사대부의 규수들은 솥뚜껑을 밟고, 상궁들을 하나씩 배치받아 간택장으로 향했다. 

총총 생기가 넘치는 규수들은 봄을 넘어 활짝 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외모로 모두의 눈총을 받은 도아도 보였다.

‘좌상댁 장녀가 저리 절세가인일 줄은 몰랐구나.’

앞장선 도아를 살피던 청아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도아의 외모를 시기했다.

국모를 뽑는 간택이 아닌지라 후궁 간택은 단출하게 치러졌다. 간택장 안으로 들어가자 발을 내리고, 대비 조 씨와 중전 은하가 앉아 있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했네.”

“망극하옵나이다, 대비마마.”

대비 조 씨의 말에 규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같이 말하였다. 열 명의 규수들이 나란히 서서 명을 기다렸다. 

“중전도 보시고 마음에 드는 규수가 있는지 잘 살피도록 하세요.”

“예, 어마마마.”

“그럼 시작하세.”

이리하여 간택을 주관하는 엄 상궁이 발이 쳐진 곳으로 나왔다. 손에 든 명부를 살피며 규수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대제학의 장녀는 앞으로 나오시오.”

부름에 청아는 경직되지 않은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나아갔다.

“품행이 바르고 단정하여 좋구나. 글공부는 어디까지 했는고?”

“아뢰옵기 송구하옵니다. 소녀는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내훈』을 읽었으며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줄로 아옵니다.”

“『내훈』으로 가르침을 얻었으니 그 성정이 알 만하도다.”

“망극하옵나이다, 대비마마.”

정석으로 대답을 하니 듣고 있던 은하가 조용히 대비 조 씨의 얼굴을 살폈다. 누가 봐도 청아를 마음에 쏙 들어 했다.

“도총관의 차녀는, 앞으로 나오시오.”

이번에는 제법 토실토실 살이 오른 나은의 차례였다. 꽤나 복스러운 얼굴로 어르신들이 좋아할 법했다.

“칠거지악의 으뜸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소녀의 짧은 견해로는 먼저 후사를 잇지 못하는 것은 큰 허물이라 보지만, 그중 가장 으뜸이라 할 것은 투기라 생각하옵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느냐?”

“쉬이 투기하여 집안의 기강을 무너뜨린다면 바깥일을 해야 하는 지아비의 앞을 가로막는 일이 되기 때문이옵니다.”

이번에도 아주 흡족한 대답이었다. 이리하여 가장 마지막이 도아의 차례가 되었다. 부름에 응하여 앞으로 나갔다.

발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가려지지 않는 것이 도아의 미색이었다. 

‘세상에! 좌상이 저런 여식을 이제껏 꽁꽁 숨겨 뒀단 말인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은은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조금도 숨겨지지 않는 미모였다.

“글공부는 어디까지 했느냐?”

“어려운 자리인 만큼 숨김없이 아뢰어 올려야 할 줄로 아옵니다.”

“그렇지. 거짓을 해선 안 되지. 그리하도록 해라.”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병약하여 사시사철 병석에 누워서 지냈사옵니다. 부친이 까막눈을 만들 수는 없다 하시어 겨우 천자문을 떼는 정도이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태어나기를 허약하게 났다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고, 천자문을 겨우 뗐다는 말이라니. 듣고 있던 대비 조 씨의 입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대비를 살핀 은하는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담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글공부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면 무엇을 가까이하며 지냈느냐?”

“살 만할 때마다 궁도를 가까이했사옵니다.”

“궁도? 활쏘기를 말하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뒤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규수들이 술렁였다. 일반적이라면 자수나 난을 치는 것이라 할 텐데 뜬금없이 궁도가 튀어나왔다.

“이외에 다른 것은 몸이 병약하여 꿈도 꿔 보지 못했사옵니다.”

“어마마마, 더 하문하실 것이 있으시옵니까?”

“아닙니다, 되었으니 좌상댁 장녀는 물러가도록 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비마마.”

이리하여 할 말을 다 하고, 흡족한 얼굴로 물러난 도아는 자리로 돌아갔다. 

바로 그 옆에 서 있던 청아는 매서운 눈초리로 의기양양해하는 도아를 쏘아보았다. 

* * *

무미건조한 얼굴로 상소문을 읽으며 상선에게 간택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 듣던 강이 이윽고 소리 내어 웃었다.

“진정 그리 말했다더냐?”

“예, 어찌나 과감하게 솔직하던지 다른 규수들이 술렁였다고 하옵니다.”

“좌상댁 장녀가 보통이 아니구나.”

“송구하옵니다.”

상소문을 내려놓고 상선에게 들은 말을 곱씹으며 다시 웃었다. 아무리 좌상댁 장녀라지만 보통내기가 아니고선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사옵니다.”

“말하라.”

이번에는 상선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이 들어왔다.

“대궐에 핀 꽃들이 절로 고개를 숙였다는 소문이 자자하옵니다.”

“꽃들이? 갑자기 왜?”

“이 또한 좌상댁 장녀를 향한 소문이옵니다.”

“그 정도라는 말이냐?”

그 물음에 상선은 고개를 연거푸 끄덕거렸다. 덧붙여 직접 봤다는 궁녀들의 얘기를 해 주니 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절세가인이란 말인가.”

구중궁궐은 꽃밭이란 항간의 소문이 있었다. 그만큼 용모 단정하여 고운 여인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좌상이 양귀비를 숨겨 두었구나.”

* * *

간택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도아는 눈물을 흘리며 안아 주는 어머니의 품에서 한참을 있어야 했다. 

모두가 진정되고 난 후에 도아는 큰절을 올리며 잘 다녀왔음을 대신 전했다.

“어쩌자고 겁도 없이 간택에 참가했느냐?”

“아무 염려 마세요, 아버지.”

“대궐에는 비밀이 없는 곳이다. 어디든 귀가 있고, 눈이 있어!”

“아버지에게 숱하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아는 알고 있었다. 만약 오늘 간택에 참가하지 않아 대궐에서 사람이 나왔다면 부모의 안위가 편치 못했을 것이다.

“소녀 때문에 부모님이 죗값을 치르시는 것보단 백 배 천 배 나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리 말하느냐.”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소녀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잘해 낼 것입니다.”

도아라고 어찌 이 상황이 버겁지 않겠냐만 우선은 낙담하고 두려워할 수는 없었다.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만일 간택이 된다면 그 수를 쓰면 될 것이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면 될 일이었다.

“오라버니랑 제가 다시 돌아왔으니 그저 기뻐해 주세요.”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치열을 향해 도아는 애써 밝게 웃어 주었다. 결국은 그 웃음을 따라 치열도 함께 웃었다.

* * *

간택을 마치고 돌아온 후로 대비 조 씨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그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엄 상궁조차 낮게 몸을 숙였다.

“나랑 해 보자는 심산이겠지.”

“감히 대비마마 앞에서 방자하게 굴었으니 좌상을 불러 엄히 꾸짖으셔야 하옵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지.”

도도하게 굴던 치열을 떠올리며 도아를 생각하니 빼다 박은 듯 닮아 있었다.

“제 아비가 성정이 독불장군이라더니 그거 하나는 맞는구나.”

“방자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성품을 두고 봤을 때는 얼마 전 치열이 찾아와서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닌 것만 같았다. 

“허나, 내 그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다.”

“얼굴 하나를 두고 보자면 그렇긴 했사옵니다.”

“발을 사이에 두고 봐도 그 정도였으니.”

“대궐의 꽃이 모두 시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옵니다.”

어차피 현숙한 국모를 뽑는 간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주상의 총애를 얻기만 하면 되느니라.”

“그렇사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주상을 손아귀에 넣으려면 총애가 필요하다.”

“…….”

“그러려면 대단한 미인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그것을 당돌하기 짝이 없는 도아가 얻게 해 주리라 확신했다. 확신에 찬 대비 조 씨는 분노를 식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 * *

대궐에서 어느 댁 규수가 후궁으로 간택되었는지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공공연하게 누가 될지 알고 있었기에 놀라는 이는 없었다. 

밖에서 전해 온 소식을 들은 도아는 변화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별당으로 돌아갔다. 

“아기씨, 괜찮으세요?”

“이미 예견했던 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서 지필묵을 내오너라.”

단호한 말에 무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필묵을 대령했다. 

간택장에서 했던 말과 다르게 도아는 서책을 늘 가까이했고, 서예 솜씨도 제법이었다. 

붓끝에 먹을 묻힌 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도아는 마침표를 찍고, 거침없이 글을 적어 내려갔다. 

“됐다.”

“서신을 쓰신 거예요?”

“응, 너는 나가서 아버지가 퇴청하고 돌아오시면 내게 곧장 알리도록 해라.”

“예? 아, 예. 알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도아는 조용히 붓을 내려놓고, 쓴 서신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접고, 접어서 봉투 속에 고이 넣었다.

“도아 있느냐!”

“어? 대감마님 목소리신데…….”

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치열이 열어젖혔다. 

“당장 짐을 싸서 청으로 건너가도록 해라.”

“무이 너는 나가 보도록 해라.”

“아비 말이 들리지 않느냐!”

잔뜩 상기된 치열과 다르게 도아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도아의 말에 무이가 밖으로 나갔다. 

“앉으세요, 아버지.”

“소식을 듣지 못했느냐?”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선 앉으세요.”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너만 생각하도록 해라.”

그의 말에도 도아는 미소마저 띤 얼굴로 여유를 부렸다. 겨우 치열을 자리에 앉히고 도아도 따라 앉았다. 

“처음부터 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어쩌면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무슨 낯으로 보겠느냐.”

괴로움에 얼룩진 치열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리 가문이 피로 물들어 받은 저주이니 누구든 죗값을 치르는 게 맞습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리되어야 300년을 이어 온 저주가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네 희생으로 저주가 사라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나 도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던 도아가 차분하게 치열을 위로했다. 

“그 저주가 사라져야만, 우리 가문에서 자식을 가졌을 때 더 이상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

“회임은 집안의 경사스러운 일인데 우리 가문은 그렇질 못하지요.”

행여나 여자아이를 가져 사람 인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출산할 때까지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이 길을 가야 한다면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진정 괜찮겠느냐?”

“네, 괜찮습니다. 아버지.”

말을 마친 도아는 조금 전에 써 둔 서신을 치열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전하께 전해 주십쇼.”

“주상 전하를 말하는 것이냐?”

“예, 그저 전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네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서신을 받아 든 치열이 의문스러워했으나 도아는 서신에 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0